울릉도 바위산 속 외딴집부부
아내와 함께 울릉도의 태하 등대에 올랐다. 바닷가의 수직바위절벽 125미터 위에 서 있는 등대였다. 젊은 시절 나는 전국의 바닷가 등대들을 도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등대는 고독이었다. 그러나 보랏빛 노을이 아니라 당당한 있음이라고 할까. 그런 존재감을 가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등대라고 하면 그리움을 연상시키는 녹색의 환상적인 불빛이 떠오른다. 소설 ‘위대한 캣츠비’속의 주인공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녹색의 불빛을 보고 꿈을 꾸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등대 옆에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절벽 밑으로 투명한 녹색의 맑은 바다 속이 들여다보였다. 포도주색 바위가 보이고 그 사이의 하얗고 둥근 바위들이 대비를 이루는 것 같았다. 안개가 낀 듯 드넓은 수평선 아래의 파란 바다 위로 점점이 하얀 갈매기가 날고 있다. 등대 옆으로 호젓한 오솔길이 나 있다. 우리부부는 그 길을 걸었다. 옆에는 수백년 된 것 같은 동백나무와 아름드리나무 들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이따금씩 맑은 새소리가 낮게 퍼졌다가 투명한 느낌으로 되돌아온다.
“우리영혼이 잠시 지구로 여행을 온 건데 하나하나 좋은 것만 잘 봐 두고 가자구.”
내가 옆에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사람이 죽는 순간이 되면 다시한번 바다를 보고 싶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 싶기도 하고 파란 하늘에 떠가는 하얀 구름을 보고 싶다고 한다. 평소에 뇌리에 수많은 아름다운 장면을 기억으로 담아두는 게 행복할 것 같았다. 오솔길 옆 바위 벼랑에 낡은 로프에 매달린 방석만한 사각의 철판이 있다. 얼핏 백여미터의 바위아래위로 물건을 오르내리기 위해 설치한 시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향목등대가 있는 봉우리는 울릉도 안에서도 섬중의 섬이라고 불리는 곳이라고 했다. 오솔길을 걷다가 숲속에 숨어있는 듯한 퇴락한 창고 같은 집이 한 채 보였다. 오래된 시골집이었다. 마당에는 시멘트가 발라져 있었고 플라스틱 세수 대야가 놓여져 있었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바람이 세계 불면 곧 쓰러질 듯한 어두컴컴한 집 안에서 노인부부가 말린 나물을 봉지에 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툇마루에 앉으면서 말을 걸었다.
“여기 사시나 보죠?”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이 자리에 들어와서 나까지 삼대가 백오십년을 살았어요. 내가 금년에 여든여덟살이오.”
“어떻게 두 부부만 사세요?”
“이웃사람들이 다 아랫마을로 포항으로 울산으로 떠났으니까 우리만 남았지.”
“외롭지 않으세요?”
“하나도 고독하지 않아요. 저기 벼랑에 걸린 케이블카도 내가 집사람 아랫마을로 내려가라고 직접 손으로 만들어 준 거요.”
나의 시각으로 그들 노부부는 스스로를 유폐시킨 빠삐용 같이 보였다. 그러나 삼대가 그곳에서 살아왔다는 노인은 그곳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얘기하나 해 줄까요? 전에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묻길래 말 해 줬는데 젊은 사람들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 같았어.”
“말씀해 보세요”
“내가 여기서 염소를 키우는데 바람을 막아주려고 우리에 유리판을 끼웠어. 그런데 어느 날 새 한 마리가 그 유리판에 머리를 박고 기절을 한 거야. 어떻게나 안됐던지 몰라. 그래서 내가 새를 손위에 올려놓고 쓰다듬기도 하고 볼에 비비기도 하면서 살아나라고 기원했지. 그런데도 정신을 못차려. 죽은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새를 염소우리 옆 기둥에 올려놨지. 거기서도 새는 축 늘어져 있었어. 꼬리가 아주 긴 새인데 말이야.”
노인은 새를 손에 쥐고 볼에 비비는 흉내를 냈다. 그가 잠시 후 말을 계속했다.
“한 참 있다 보니까 정신을 차리고 날아가더라구.”
노인의 얼굴에서 기쁨이 주름살을 타고 잔잔히 퍼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사랑으로 살리셨구나?”
내가 알겠다는 듯 되물었다. 노인은 그냥 웃었다.
“요즈음은 살아가시는 게 어때요?”
내가 물었다. 그곳 바위에 모노레일이 만들어지고 관광객이 많은 것 같았다.
“전에 내 손으로 바위에 만든 케이블카를 타고 집사람을 아랫마을로 내려 보낼 때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방송에 우리 얘기가 나간 후로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요 군에서 등대 옆에 인간극장에 나온 사람 집이라는 팻말을 붙여 놔서 그래.”
조금 전 오솔길 바위에서 본 로프에 매달린 방석크기의 철판은 할머니가 아랫마을로 내려갈 때 타는 할아버지 동력의 수제 케이블카인 것 같았다.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으면 좋잖아요?”
“좋긴 뭐가 좋아요? 화장실을 쓰자는 사람이 많은데 여기는 재래식 화장실이야. 그걸 치우려면 내가 직접 똥이나 오줌을 퍼 날러야 하는데 힘만 들어. 그렇다고 군청에서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텔레비전 인간극장에 나온 집이라고 왜 말뚝을 박았는지 몰라.”
자연인 노부부에게 그런 괴로움이 있는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들 부부는 기절했던 새처럼 다시 날아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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