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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친일마녀사냥 139 -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의 오만

운영자 2019.11.25 11:15:38
조회 121 추천 0 댓글 0
친일마녀사냥 


139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의 오만


김진웅(金進雄)은 1943년 보성전문 법과에 입학한 학생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고창 김씨가와 교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는 후에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역임한다. 이미 고인(故人)이 된 김진웅 교수는 내가 대학시절 법학통론과 민법을 배웠던 스승이기도 했다. 그는 강의시간에 법이 당하지 못하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가르쳤다. 하나는 돈 없는 사람이다. 민주법제도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같이 돈 없는 사람의 살덩어리를 베어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죽음을 각오한 인간이다. 그에게는 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장이었던 그의 강의 중에서 그 한마디가 평생 기억 속에 화석같이 굳어 있다. 

어느 날 국립중앙도서관 인문서적들이 쌓여 있는 서가(書架)를 뒤지다가 우연히 김진웅 교수가 쓴 글을 발견했다. 고대 교수였던 그는 고대의 설립자인 김씨가가 친일파로 몰리자 그에 대한 증언을 한 내용이었다. 

고창 김씨가의 친일행위에 대한 주장이 나오는 데 대해 생존 시 김진웅 교수는 이렇게 항변했다.

“최근 유행처럼 떠도는 친일이란 단어는 정말 무책임한 말입니다. 과거사, 특히 친일행위를 청산하자는 기본취지에 반대하고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어느 시기에 어떤 일을 한 것이 친일이냐는 친일행위의 개념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저는 말이죠, 역사학자들에게 역사는 현실을 그대로 기술한 것처럼 보이지만 본의 아니게 허위로 빠질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하죠. 

당시에 실제로 일어난 일은 그때를 살아본 사람들이 누구보다 제일 잘 알아요. 역동적인 과거 사회현실의 한 귀퉁이일 뿐인 글 한 조각, 삐라 하나를 금과옥조인 양 여기고 그에 기대어 역사를 재조립하려는 습성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 위험성에 대해 학자들은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제가 일제 말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살았고 알았던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생 시절 나도 이런저런 글을 많이 써봤지만 후세의 사가(史家)들이 남은 자료가 그것밖에 없다고 해서 ‘무엇에 의하면’ 하고 사실의 전부인 것처럼 써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글이 남았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그게 진실의 전부인 양 설득당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 상황을 아는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기가 막힌 일이죠.”

김진웅 교수는 일제 말 경성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전차를 타고 남대문 앞을 지나갑니다. 전차의 차장이 ‘지금 전차가 조선신궁 앞을 통과합니다’ 하면 승객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남산을 향해 절을 했죠. 학교에서도 조선말로 인사라도 한마디 하다가는 잡혀 갔습니다. 너도나도 창씨개명을 한 시기였죠. 

이런 시대상황을 확실히 알고 나서 친일 여부를 얘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시 경성제대나 보성전문, 연희전문을 다니던 엘리트 학생들이 고창 김씨가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봐야 합니다. 당시 민족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젊은이에게 고창 김씨가의 김성수는 우상 같은 존재였어요, 김성수의 말 한마디가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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