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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변호사 8

운영자 2010.02.11 10:17:46
조회 381 추천 1 댓글 1

   선고 이틀 전이었다. 오후에 사무실로 돌아오니 내가 맡은 사건의 담당 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 즉시 담당 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변호삽니다. 전화를 주셨다는 데 어쩐 일로..”

  “그 사건 말입니다. 엄변호사님이 제출하신 준비 서면을 읽고 그게 진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걸 입증할 자료가 아무것도 없어 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판사가 진실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증거가 없어 그쪽으로 판결을 쓸 수 없는 경우가 참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지금이라도 변론 재개 신청을 내시고 증언을 하게 하실 수 없는지요?”


  선량하고 착한 판사의 말이었다. 판사로서는 양쪽 당사자가 제시한 증거에 의해 법원칙에 따라 판결문을 쓰면 그만이다.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판사에게 아무도 돌을 던질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사건 하나하나에 그만큼 정성을 기울이고 사심 없이 전화까지 해서 안쓰러운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판사님의 고마우신 말씀은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K목사가 중풍에 걸린 칠십 노인을 법정에 내세워 자신이 잘못했던 점을 증언시키느니 차라리 자신이 패소하고 그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걸요..”


  “그러면  K목사는 판결이 그에게 돈을 다 지급하라고 명령하면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생활비도 안 되는 월 팔십만원의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고 개척교회라 그나마 신자도 몇 명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K목사는 말하기를 판결문은 주님의 성령이 판사님을 통해 그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각오가 서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판사님께서는 그대로 선고를 하십시오.”


  생각 없이 말을 전하다 보니 그 판사에게 부담을 주었다는 후회가 들었다. 전화기를 통해 잠시 저쪽에서 침묵하는 게 느껴졌다. 이윽고 송수화기를 통해 가라앉은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저 이 판결의 선고를 미루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재자의 입장이 되어 조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정 기일을 잡아 양쪽으로 통보를 하겠으니 그 날 출석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판사는 전화를 끊었다. 이미 질 것으로 각오하고 모두 마음을 정리했는데 새롭게 담당 판사가 적극적으로 중재하겠다고 나서 주는 것이었다.


  조정 기일 날 나는 조심스럽게 담당 판사의 방으로 들어섰다. 같이 온  K목사는 밖의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재킷의 단추가 두 개씩 마주보며 달린 더블을 입은 판사는 법복을 입었을 때와는 달리 한결 젊어 보였다. 담당 판사는 나를 보자 전화로 법원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에게로 전화를 걸어 빈 조정실이 없는냐고 물었다. 빈방이 하나도 없었다. 담당 판사는 급한 대로 판사실 맞은편의 빈방을 사용하겠다면 문을 열어 달라고 지시를 했다. 담당 판사가 앞장을 서고 나는 그 뒤를 따라서 그 방으로 들어섰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K목사와 조합의 직원에게 따라 들어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평소에 쓰지 않는 것들을 임시로 가져다 보간하는라 그런지 커다란 의자와 책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의자 위에는 법원 직원이 운동을 하고 팽개쳐 둔 것으로 부이는 트레이닝 복 하나가 헝클어진 채 있기도 했다. 우리는 구석에 있는 비닐로 커버를 한 딱딱한 소파 위에 가서 앉았다. 판사는 그동안 재판을 요약한 종이를 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심리하다가 보니 K목사님이 일단 금전소비대차약정서 상에 서명 날인을 한 이상 그 책임을 모면하기는 힘들다는 판단입니다. 그리고 청구를 한 조합 측으로서도 간부로 있던 사람들의 과실점이 많아 변호사님이 그 과실을 계속 지적하면 청구액을 제대로 받기 힘든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맡은 판사인 저로서는 중간선에서 절충하여 끝내려고 하는데 원고인 조합 측을 대표해서 나오신 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담당 판사는 일단 양측의 문제점을 치면서 중간선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조합 측의 직원이 입장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재판장님께서 조정을 하시겠다고 하는 바람에 저희 조합에서는 조합중앙회를 맡고 있는 고문 변호사님들에게 검토를 의뢰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오는 답이 담당 판사의 조정에 응하지 말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이의신청을 해서라도 끝까지 판결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조합의 하급 직원인 저로서는 조정에 응하기가 곤란할 것 같습니다.”


  “피고 측 대리인인 변호사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담당 판사는 이번에는 나한테 의견을 물었다.


  "저는 여러 번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당사자인 K목사님을 이 자리에 나오게 했습니다. 직접 당사자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담당 판사는 맞은 편에 앉아 있던  K목사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저는 어떤 결과에도 승복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주님의뜻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했으니까요. 다만 조합을 대표해서 나왔다고 하시니까 원고 대리인에게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조합의 전무로 있던 분이 지금 성남 변두리의 무허가 판잣집에서 중풍에 걸린 채 누워 있습니다. 부인이 김밥 장사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고 있습니다. 조합에서는 그 분이 전무로 있을 당시의 잘못을 고발해서 그 분은 그 처벌로 징역까지 살고 나왔습니다. 젊은 분이 조합을 대표해서 오셨는데 높은 분들에게 이야기하셔서 조합을 위해 일하셨던 그 분을 위로해 주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건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떤 결과도 감수하기로 했으니까 이 조정에 대해서는 아무 의견이 없습니다.” 

  조합을 대표해서 나온 직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자기도 지금은 조합일을 열심히 보고 있지만 실수가 있을 경우 그 사람 같이 되는 차가운 현실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가 담당 판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판사님, 제가 조합의 말단 직원으로 독자적인 재량을 보일 수는 없는 입장입니다. 그렇다고 사고가 경직된 간부들에게 먼저 일일이 설득을 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현장에서 보지 않는 사람들은 원칙만 고집할 뿐 아무런 피가 통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조합중앙회의 감사 시 지적 받을 것만 염두에 두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제가 임의로 조정에 응하는 것으로 하지 마시고 판사님이 강제 조정을 했다고 결정을 하시면 그 후에 제가 조합의 간부들을 열심히 설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강제 조정을 하는 것으로 해 주시지요.”

  “조합의 경직적인 분위기를 말씀해 주시는데 조합보다 더한 국가기관에 대해서도 제가 조정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입장을 고려해서 제가 강권을 발동해서 조정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래도 실무자가 가장 조합에서 영향력이 있을 테니까 가셔서 조합 간부들에게 잘 말씀을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조합 측에서 청구한 금액을 적정선으로 줄여 강제 조정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변제 기일도 연말에 하는 것으로 늦추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조합 측에서도 상부 기관의 감사 때문에 그 증빙 서류로 법원의 판결문을 만들어 두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드려서 비록 변제할 때가 된다고 해도 아무것도 없는 K목사님 교회에 가서 압류를 하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봄에 시작해서 여름을 넘어선 그 재판은 늦가을에 들어서 조정으로 그렇게 끝이 난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모두가 이긴 싸움이었다. 소송의 과정에서 판사의 진실을 향한 온정과 조합의 양보, 그리고 K목사의 믿음이 더욱 굳어진 좋은 계기가 된 것이다. 나는 법원 문 앞에서 그동안 일을 진행하면서 감정의 굴곡을 느꼈던  K목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제가 보니 엄변호사님은 믿음이 약한 것 같아요. 그래도 주님을 팔긴 기차게 파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주님을 반대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으로 감싸 주시니까요. 앞으로 깊은 믿음을 가지시라고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이번 여러 일을 통해 정말로 많이 느꼈습니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고 해도 주님이 이끌어 주시는 것을 정말 확신했습니다. 앞으로도 정말 열심히 목회를 할 거예요.”


  그 말을 남기고  K목사는 자기의 양들을 찾아서 총총히 법원 문을 걸어 나갔다. 사무실로 돌아오며 나는 생각해 보았다. 목사는 목사대로 변호사는 변호사대로 각자 그가 선 위치에서 열심을 다하는 게 결국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게 아니냐고 자신을 합리화해 보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K목사의 말대로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도록 믿음이 강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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