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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잔머리만 굴리는 놈이야! 2

운영자 2010.03.05 12:09:15
조회 378 추천 2 댓글 1

  며칠 후 그의 어머니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나이 오십이 넘은 초라한 여인이 등에 갓난아이를 업고 들어왔다. 우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우유병을 입에 물린다. 아이가 발을 꼼지락거리며 열심히 우유를 빨고 있었다.


  “손잡니까?”

  나는 손자를 엎고 변호사 사무실까지 찾아오는 게 이상해서 물었다. 내 말에 그의 어머니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초라한 외모와는 달리 아직 하얀 피부에 섬세한 윤곽을 유지하고 있었다. 커다랗고 시원하게 생긴 눈이 젊어서 상당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김민구는 자기 어머니의 인상을 빼다 박은 것이다.


  “사실은 혼자 파출부나 장사 아무거나 하다가 어라 전에 먹고 살려고 시집을 갔어요. 그리고 주책으로 뒤늦게 애를 난 게 이 놈인데..”

  그녀는 부끄러운 듯이 겨우 말했다. 나는 속으로 ‘실수를 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감옥에 있는 김민구를 만나 보니까 반성하는 기색도 없고 죄도 강도, 강간 등 수십 개 되는데 동정 받을 여지도 없습디다. 그러니 변호사를 선임해서 뭔가 효과를 바라시지 말고 여기서 그냥 포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권했다. 변호사가 뛰어도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죽어가는 중증의 환자에 대해 의사가 무력할 때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받은 적은 돈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녀에게는 클 수도 있는 돈이기 때문이었다.


  “그 우라질 새끼! 내가 젊어서 그 새끼를 술주정뱅이 계집질 하는 아버지한테 놔두고 도망 나와 사느라고 한번도 에미 노릇 제대로 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내가 주책으로 시집을 가서 새 남편한테 그 새끼 있다는 거 말도 못하고 몰래 빠져 나오느라고 이렇게 애를 데리고 왔어요. 그 새끼 징역 20년이면 늙어야 나오고 그쯤 되면 나도 세상에 없을지 모르는데 마지막 돈이라 치고 그 돈 마련해 왔어요. 변호사님 제발 한번 도와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이 붉어지면서 커다란 눈물방울들이 떨어져 나왔다.


  “효과가 없을텐데도요? 괜히 돈만 날리는 건데 그래도 좋단 말입니까?”

  나는 다시 다그쳤다.


  “죽은 자식을 위해서 굿도 하는데 변호사 한번 사주지 않으면 한이 될 것 같아요. 변호사님 아니면 그 돈에 사건을 맡아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운데 목사님까지 낀 거 아닙니까?”

  “....”


  그 어머니의 마지막(?) 모정을 위해 나는 사건을 맡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는 진정 열심히 뛰었다. 본인을 위해 변명할 여지가 없는 대신 피해자들의 문제점을 조사해서 법정에서 낱낱이 밝혔다. 강간 피해자 중 상당 부분이 가출한 여자라든가 술집 접대부라는 사실, 그리고 그 여자들이 강간을 당한 후 오히려 돈을 요구해 김민구가 준 사실 등을 밝혀 나감으로써 사건의 독성을 희석시키는데 노력했다.


  재판이 끝난 얼마 후 나는 교도소의 김민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내용은 이랬다.


  <선고 하루 앞둔 지금 저는 몸도 마음도 춥습니다.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을 한순간이라도 떨쳐버리기 위해 편지를 씁니다. 변호사님께 ‘잔머리만 굴리는 놈’이라는 욕을 먹고 사동에 돌아와서 무척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20년이란 형을 선고받고 수갑 찬 몸으로 생활하다 보니 반성보다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그저 운이 나빠서 좋은 판사를 만나지 못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호사님의 그런 행동들도 불만스러웠습니다. ‘어차피 살아봐야 저주받은 인생인데’ 하는 생각으로 그 범조들을 저질렀습니다. 자포자기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이제 감옥에서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미치겠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변호사님, 저를 소개한 임목사님 같이 되고 싶습니다. 그분도 많은 전과로 청송의 보호감호소까지 갔다가 목사가 되신 분 아닙니까? 저도 그런 목회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변호사님이 이 쓰레기 같은 놈을 변론하시는걸 보면서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요. 저는 그럴 가치도 없는 쓰레기 아닙니까? 이제 내일 형이 선고되면 이감 가서 다시 편지 올리겠습니다. 답답한 마음 이렇게라도 풀어 보려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 편지를 한 다음날 그는 징역 20년에서 10년으로 감형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사무실로 찾아와 진솔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징역 10년이 남았는데도 활짝 핀 그녀의 얼굴은 감사로 넘치고 있었다. 죽은 아들을 찾은 어머니의 얼굴 같았다.


  마음이 가난해질 때 하나님은 구제의 손길을 펴 보이신다는 생각을 잠깐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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