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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승 김상협 - 스승 난바라

운영자 2016.06.21 17:14:34
조회 259 추천 0 댓글 0

1940년12월1일 일본천황 히로히토가 참석한 회의에서 수상 도조가 미국과의 전쟁은 목전에 임박했다고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일본의 요구가 외교수단을 통해 달성되기는 이미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국력으로 보거나 전략상으로 보아 현재의 교착상태를 그대로 지속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제야말로 국운을 걸고 용감하게 전진할 기회가 성숙됐습니다. 우리 육해군은 오로지 폐하에의 충성과 군국에 대한 애국일념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유럽이 히틀러의 독무대가 되고 있었다. 히틀러는 폴란드에 이어 노르웨이 침공작전을 개시했다.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단번에 점령하고 프랑스 영토로 깊숙이 진공했다. 일본육군의 참모본부는 내각을 총사직시켰다. 새로운 육군대신에 도조 히데끼가 임명됐다. 헌병사령관출신으로 군의 과격파 대표였다. 일본군는 네델란드가 독일에 항복한 틈을 이용해서 인도차이나로 진군해서 석유자원을 확보하려고 했다. 인도차이나는 네델란드와 불란서의 식민지영향권이었다. 이어서 일본 군부는 미국에게 중국대륙에서의 일본 기득권을 인정하고 중경의 장개석정부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이 일본에 대해서 공급을 중단하고 있는 석유류와 철강류를 원상대로 수출하라고 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은 모든 해외파견병력을 철수하라고 맞받아 쳤다. 그날의 어전회의는 도조수상의 개전주장으로 매듭지워졌다. 일본의 육해군은 그날로 전투태세돌입명령을 받았다. 육군은 행동개시와 함께 홍콩, 말레이, 필리핀, 인도지나등을 점령해서 전격적으로 전략물자들을 확보할 것을 계획했다. 해군은 연합함대사령관 야마모도 이소로쿠로 하여금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기습해서 미국의 태평양함대를 단번에 괴멸시키고 태평양의 제해권을 일거에 장악한다는 계획이었다. 일본의 공기는 나날이 변해갔다. 일본인 대학생들 사이에 ‘인생 25년’이란 말이 돌았다. 중국에 끌려가 청춘이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일본청년들은 대수롭지 않은 언쟁에도 칼부림을 하는 분위기였다. 일본거리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담배 가게의 일본아주머니의 눈이 퉁퉁 부었다. 남편이 군인으로 중국에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냉면집 주인도 군대 가고 꽃집 아저씨도 떠났다. 동경거리에서 일본인 남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남자라곤 노인과 불구자와 조선인 유학생들만 보였다. 그 무렵 일본인들도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부모들도 많았다. 자식들을 고등전문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거의 무시험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삼류대학의 전문부도 15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었다. 일본청소년들은 어떤 학교든지 들어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건 향학열이 아니었다. 군인이 되어 중국대륙에 끌려가기 싫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입학하면 징병연기의 특전을 얻을 수 있었다. 일본학생들은 조선 유학생에 대해 묘한 증오와 선망의 감정을 가졌다. 

‘너희들은 군대 가지 않아도 되는 놈들이구나’

그런 조선인 유학생들의 내면도 복잡했다. 유학생들의 내면에는 두개의 ‘나’가 있었다. 일본인으로서의 자각을 나타내는 제목으로 작문을 해야 경우가 있었다. 그런 땐 ‘나아닌 나’를 허구로 세워놓고 그 의견을 꾸며야 하는 것이다. 그런 내가 가상해서 만든 ‘나아닌 나’가 어느 정도로 나를 닮았는지 어느 정도로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1941년12월8일 날이 밝기 전 , 야마모도 이소로쿠가 지휘하는 연합함대는 진주만 근처에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2백여대의 항공기와 특수 잠함정은 호놀룰루를 벌떼같이 기습했다. 진주만에 정박중이던 미국 태평양함대는 전멸상태의 타격을 입고 화염에 휩싸여 태평양의 하늘을 휘황하게 밝혔다. 홍콩이 함락되고 영국전함 프린스 오브 웰즈와 레파르즈호가 격침됐다. 말레이반도에 상륙한 일본군은 파죽시세로 남진하여 2월에는 싱가포르에 상륙했다. 일본군 남양방면 총사령관 야마시다 중장은 항복하러 온 영국군 퍼시벌 사령관에게 고함을 쳤다.

“무조건 항복이냐 아니냐 대답만 하라?”

일본군은 영국군의 항복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군은 필리핀에 상륙해서 바로 수도 마닐라를 점령하고 맥아더를 쫓아버렸다. 인도지나의 쟈바, 수마트라 등에 상륙한 일본군 부대들은 석유지대를 모조리 장악해 버렸다. 괌섬과 웨이크 섬도 무난히 점령했다. 미얀마로 진격한 일본군은 랭구운을 점령하고 영국군을 인도국경 너머로 격퇴시켜 버렸다. 남양지역을 점령한 일본군은 전리품의 표시로 수많은 고무공을 만들어 전국의 아동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하고 동남아일대를 석권하며 전승무드에 젖어있을 때였다. 축하의 거리행진이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동경제국대학에서 강의가 진행되던 어느 날 일본인 교수 난바라가 갑자기 강의를 중단하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노트를 덮고 눈을 감아보세요. 그리고 내 말을 들어봐요.”

학생들은 교수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여러분 눈을 감고 손으로 더듬어 보십시오. 마음속에 무엇이 잡힙니까? 사람을 죽이고 축하행렬을 하는 게 무엇을 얻은 것입니까? 전쟁에 이긴 것이 무엇이고 대일본제국이란 게 무엇입니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서로 슬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그걸 축하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난바라 교수는 군부의 광기어린 작태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전쟁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헌병이 강의실까지 들어와 전쟁반대자는 검거해 가던 험악한 시절이었다. 난바라 교수의 말을 들으면서 김상협은 온몸을 뚫고 지나가는 전율을 느꼈다. 기침소리 하나 없이 가라앉은 실내공기 속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논점을 난바라교수는 두려움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나갔다. 난바라 교수의 강의는 민족감정을 넘어선 지성의 교감이기도 했다. 그는 난바라교수로부터 진정한 학문의 길과 학자의 삶을 깨우쳤다. 그를 닮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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