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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승 김상협 - 신혼의 정치학교수

운영자 2016.08.15 10:21:04
조회 339 추천 0 댓글 0
신혼의 정치학교수

  
1946년8월15일 미군정청은 보성전문을 고려대학으로 인가했다. 보성전문은 김경중이 1932년 인수한 학교였다. 큰아들인 인촌 김성수선생이 맡아왔다. 작은아들인 김연수 회장도 설립자가 되어 많은 돈을 기부했었다. 고려대학에서는 정치과가 개설되고 정치학교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김상협은 고려대학교의 정치학교수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의 정치사강의는 한국 정치학의 출발을 의미했다. 만26세의 젊음이 넘치는 소장교수인 김상협의 열정적인 강의가 시작됐다. 그의 강의는 정치학불모지에서 한국정치학의 출발을 의미했다. 그의 열정적인 강의는 초두부터 학생들의 화제가 되었고 명 강의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좌경화된 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의 전 구성원이 천사라는 환상 속에서 시장도 없고 화폐도 없고 자유경쟁이 철폐되는 사회계획경제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가 되면 개인의 창의력은 소멸되고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없고 철학자만 남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원죄는 자유경쟁이 아니라 불충분한 자유경쟁 즉 제한경쟁의 독점경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유경쟁의 원죄론은 무죄선고를 받아야 합니다.” 

좌익의 흐름이 사회저변을 장악한 그 시절 그의 주장은 파격이었다. 그는 이렇게 그들에게 반박했다. 

“집단이 곧 전체인 절대적 동질사회라면 만장일치의 단일의사만 존재할 뿐 굳이 다수결 원칙을 적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면 물과 불의 관계같이 절대대립의 첨예한 대결상황만 존재하는 절대적 이질사회라면 폭력투쟁만 있을 뿐 토론이나 타협의 소지는 전무합니다. 민주정치란 어떤 사회, 어떤 풍토 하에서도 성립할 수 있는 만능의 제도가 아닙니다. 민주정치가 가능한 사회적 조건이 전제되지 않는 풍토에서는 민주정치는 필연적으로 붕괴되고 극단적 무질서와 무정부상태에 빠짐으로써 결국은 강력한 반작용으로 독재정치를 불러오게 됩니다. 불란서 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나폴레옹독재의 반동이 나왔고 로마 공화정의 무질서가 황제의 탄압을 불러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정치는 과연 가능할 것인가. 대한민국이 통일성, 통합성, 그리고 전체성을 잃지 않고 있다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파괴되어 버렸다면 민주정치는 시행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굳이 시행할 필요도 없습니다. 민주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동질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상대적 동질사회란 무엇인가? 다소의 대립과 분열은 있으되 최후에는 통일과 결합에 이를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민주정치는 토론과 설복 타협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상대적 통일성과 통합성 그리고 상대적 전체성을 전제로만 가능한 정치과정일 것입니다. 자유사회는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이성적 평등을 지향하며 평등과 동시에 자유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립서울대학교안을 둘러싸고 반대투쟁이 전 학원가를 휩쓸고 있었다. 좌익의 유혈폭동과 시위가 살벌했다. 학원도 좌우대립의 격전장이었다. 해박한 지식을 허스키한 목소리로 논리정연하게 펴가는 그의 강의는 학생들을 매료시켰다. 아직 학문적 연구가 전무했던 그 시절 김상협 교수는 전후 독일 특히 동독과 동유럽제국에서 내건 정치구호를 유심히 관찰했다. 소련과 동유럽권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는 구호정치였고 그 구호 속에 그들의 통치이념이 담겨 있었다. 그런 구호의 변화를 보면서 공산권의 통치흐름을 읽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지주 자본가출신이라고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좌익교수와 학생들의 포위망 속에서 고독한 섬이었다. 좌익계의 교수와 학생들은 노골적으로 그에게 지주 자본가 출신이라고 야유와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1946년 가을 무렵 김상협은 동경대 1년 선배 정인조의 처 소개로 22세의 김인숙을 명동의 3.1다방에서 소개 받았다. 개성의 송도병원집 딸인 그녀는 경기고녀와 일본여자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교사를 하고 있었다. 김상협은 첫날 그녀를 본 후 바쁜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다. 몇 주후 김상협은 선배의 집에서 다시 김인숙과 만났다. 과묵한 김상협은 이렇다 저렇다 평가가 없었다. 그때 김인숙의 눈에 비친 김상협은 어떤 인상이었을까. 김인숙은 다소 야윈 얼굴의 김상협이 평범한 촌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회색의 한복에 중절모를 쓰고 나타난 김상협은 동경에서 신문물의 세례를 받았는데도 신식과 구식이 버무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양말도 여러 군데를 기워 신고 있었다. 몇 마디 말에 금세 얼굴이 벌개졌다. 수줍음을 타는 것 같았다. 며칠 후 김인숙이 서울에 와서 볼일을 보고 남대문에서 전차를 내려 서울역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집에 내려가십니까?”

뒤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렸다. 돌아보았다. 김상협 교수가 어색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수줍은 표정의 김상협 교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렇게 한마디 덧붙였다.

“결혼을 생각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어눌했지만 천천히 또렷하게 말했다. 길거리에서의 프로포즈였다. 무미건조하고 멋없는 사람 같았다. 순진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김상협은 개성에 내려와 송도병원 근처 여관에 자리를 잡고 김인숙에게 연락을 보내왔다. 딸에게서 대충의 내용을 들은 김인숙의 아버지 김준형은 김상협을 집으로 오라고 했다. 주안상을 가운데 놓고 두 남자의 대화가 진행됐다. 사위감을 본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 이후 결혼까지 두 달간의 데이트에 대해 김상협은 “46년 말부터 내가 개성을 왔다 갔다 했어요. 일요일 날 오라고 하면 내려가고, 또 집의 안사람이 시간이 있으면 서울로 올라오고 그렇게 왔다 갔다 했지요”라고 짧게 표현했다. 주변에서는 당대 거부의 아들이 왔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그들의 결혼식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았다. 당시 잘사는 집들은 예식장에서 호화결혼식을 했다. 예물들도 다이어몬드등 최고급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김연수 회장은 아들에게 명륜당에서 전통혼례식으로 하라고 했다. 신부 측에서 전통혼례라면 개성의 순양서원에서 하자고 요구했다. 김연수회장 측은 결혼식 전날 함을 보냈다. 함 속에는 한 벌의 치마저고리감과 사주가 적힌 종이만 있었다. 결혼식 날이었다. 김연수회장이 개성으로 내려왔다. 김연수회장은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타는 것도 생략하자고 했다. 그러자 신부 측은 그래도 평생 한 번의 결혼인데 신부가 꽃가마를 타야한다고 했다. 결국 신랑은 걸어서 가고 신부는 가마를 타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1947년5월12일 개성의 순양서원에서 열린 결혼식광경이었다. 

시집으로 온 며느리 김인숙은 성북동 3천평의 대지에 지어진 거대한 저택을 보고 놀랐다. 양식2층의 본채가 있고 그 옆에 김연수회장이 기거하는 고풍스런 한옥이 있었다. 그 옆에 부속건물이 있고 본채 뒤편으로 위쪽에 손님들을 위한 별채가 있었다. 넓은 마당에는 농구대가 보였고 그 아래 돌계단으로 내려가면 온갖 꽃들이 화사하게 핀 정원이 보였다.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로 조경이 되어 있었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의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 부부는 본채를 차지했다. 일층에서 살림을 하고 이층은 서재였다. 서재에는 영어 독일어 일어로 된 어마어마한 양의 원서들이 꽂혀 있었다. 과묵한 남편은 학교에 나가 강의하는 이외에는 거의 서재에 틀어박혀 밤늦게 까지 책을 읽었다. 아침이면 상을 열 개씩 차려야 하는 큰 집이었다. 김상협 교수는 아내에게 말이 없었다. 어렸을 때의 일도 별로 털어놓는 법이 없었다. 모처럼 틈이 나서 아내가 쉬고 있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김상협은 아내를 자신의 서재로 불렀다. 그는 아래층에서 올라온 아내를 책상 맞은편의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김상협은 노트를 꺼내 앞에 놓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아내 앞에서 강의를 위한 예행연습을 시작했다. 정치학용어인지 철학용어인지 모를 전문적 학술용어로 가득 찬 내용들을 50분 동안 쉬지 않고 얘기했다. 이미 내용을 다 외운 듯 노트만 꺼내놓고 보지는 않았다. 연습강의가 끝난 후 김상협교수는 아내에게 물었다.

“어조가 빠르지 않았소?”

“듣기 좋았어요.”

“발음은?” 

“명확했어요”

“이해가 안가는 대목은?”

“나야 다 이해가 가지 않죠.”

“지루하지는 않았소?”

“재미있었어요.”

“수강자로서의 소감을 말해 보시오”

그 이후도 아내를 놓고 김상협은 계속 강의연습을 했다. 그는 강의내용을 수시로 보충하고 수시로 강의노트를 다시 만드는 정성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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