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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승 김상협 - 자애로운 스승

운영자 2016.09.20 11:50:13
조회 277 추천 0 댓글 0
자애로운 스승 

  

1956년 아직 찬바람이 불던 봄 어느 날이다. 이리의 남성고등학교 강당에 전 학년 학생들이 모두 모여 앉아 있었다. 고려대학교 김상협교수가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고 있었다. 교장선생이 김상협교수의 아버지 김연수회장과 아는 사이라 초청을 하게 된 것이다. 김상협 교수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넓은 세상의 얘기를 해 주고 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눈을 사방으로 세계를 향하고 포부를 크게 가지라고 했다. 미국을 알려주고 유럽을 설명해 주었다. 정의감을 가지고 국가와 인류를 생각하라고 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바깥세계에 도전하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6.25를 치르고 폐허가 되었지만 장차는 복지국가가 될 거라고 했다. 복지국가가 되면 집집마다 자가용을 가진 나라가 된다고 했다. 지금처럼 들끓는 거지들을 다 국가에서 먹여주고 치료해주는 천국 같은 세상이 온다고 했다. 처음 듣는 소리들이었다. 집에서 부모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거나 높은 사람이 되라고만 했었다. 김상협 교수가 말해주는 건 전혀 다른 세계였다. 김상협 교수의 특강은 시골뜨기 어린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강의를 듣고 있던 3학년 조남희는 생각했다.

‘저런 선생님 밑에서 공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연히 끝난 후 3학년 조남희는 김상협 교수 앞으로 용감히 다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교수님께 편지를 써서 지도를 받아도 되겠습니까?”

말을 하면서도 그는 주저했다. 워낙 훌륭한 분 같았다.

“내가 주소를 알려주지”

김상협교수는 양복 쟈켓에서 메모지를 꺼내 조남희 학생에게 주소를 적어 주었다. 얼마 후 조남희는 특강을 들은 소감과 함께 김상협교수에게 배우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2주일 후 김상협교수가 직접 쓴 답장이 왔다. 고등학생에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라면서 고려대학교에 지원할 생각이면 그 때 다시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흥분한 조남희는 너무 좋아서 그 편지를 급우들에게 자랑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육군사관학교를 가려던 그의 진로가 고려대학교 정외과로 바뀐 순간이었다. 입시철이 다가왔다. 그는 편지로 김상협교수에게 고려대 진학의사를 알렸다. 김상협교수는 입학원서를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꼭 합격하기 바란다는 글이 함께 들어 있었다. 합격자 발표 하루 전날이었다. 조남희가 고대로 김상협 교수를 찾아갔다. 사무처장을 겸임하던 김상협교수는 빙긋 웃으면서 “축하하네 ”라면서 합격사실을 미리 알려주었다. 

  

1957년 4월경 고대 정외과1학년 구종서는 김상협 교수의 정당론 강의를 듣고 있었다. 첫 시간이었다. 퉁퉁하고 온유한 인상의 김상협 교수가 특유의 저음으로 느릿느릿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은 이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점수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학생들에게 공부가 중요하긴 하지만 공부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강의시간이 90분이었던 그때 대부분의 교수들은 20분쯤 늦게 들어와서 20분쯤 일찍 나가는 게 통례였다. 그러나 김상협 교수는 정확히 제 시간에 들어와 90분을 다 채우고 나가는 교수였다. 그 때문에 김상협 교수의 강의시간엔 지각생이 많은 편이었다. 대개의 교수들은 강의에 늦게 들어오는 학생들이 있을 경우 그냥 강의를 진행하거나 꾸중을 했다. 김상협 교수는 일단 강의를 멈추고 늦게 들어온 학생을 미소로 지켜보고 있었다. 지각생이 자리에 앉아 노트를 꺼내 수업자세를 취한 걸 보면서 김교수가 말했다.

“수업준비 다 됐나?”

김교수가 미소로 여유를 보이며 말했다. 지각생이 무안해 했다. 김교수의 강의가 다시 이어졌다. 

“민주주의란 정치를 국민총의에 따라 실현함을 이상으로 하죠. 그런데 국민총의는 어디에 있을까요? 사실 말이 국민총의지 총의란 어디에도 없어요. 그렇다고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죠. 다만 각인각색 중구난방식의 무수한 국민들의 의사가 잡음처럼 공중에 떠돌고 있을 뿐이예요. 따라서 국민총의가 형성되려면 누군가가 그 잡음상태의 국민의사를 수렴해서 가닥을 잡고 비판, 설득, 타협의 과정을 거쳐 몇 가지 정리된 의사로 종합해 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누가 그 과업을 맡을 것인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당이 필요한 겁니다. 국민의 의사를 실현시켜줄 당에서 투표를 하면 그 당이 집권당이 되죠. 그런데 집권당이 정치를 더럽혀 국민이익을 저버리는 배신행위를 할 때에는 서슴지 않고 다른 당으로 정권교체를 할 수 있어야죠. 국민이 당을 선택할 수 있어야 민주정치의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결국 시민각자의 양심과 용기 그리고 선택에 달려있죠.”

정당이란 자기네들의 이념을 상품으로 내놓고 돈이 아닌 표를 받고 그걸 파는 것 같았다. 김상협 교수는 이어서 사회를 이렇게 분석했다. 

“자본주의는 거대한 금융자본을 형성해서 독점자본으로 성장합니다. 산업과 ​ 금융관료의 교묘한 인적결합으로 구성된 극소수 금융자본가그룹은 자본의 위력을 발판으로 생산수단과 원료자본의 대부분을 장악할 뿐 아니라 정치까지 농단함으로써 집중과 독점에 의한 막대한 이윤을 축적해서 자본과잉이라는 기현상을 낳게 합니다. 결국 넘치는 유휴자본은 자국민 대중의 경제적생활향상에 재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이윤창출을 노리고 후진지역으로 진출합니다. 극소수 금융자본가그룹의 앞잡이로 전락한 게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세계적 금융세력과 그 위기를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국회의원선거가 끝난 후 한 정치학과 3학년 학생이 김상협교수의 연구실을 찾아왔다. 그 학생은 성적표를 내 보이면서 말했다.

“선생님, 성적을 좀 올려주십시오. 선거운동을 하느라고 시험준비를 제대로 못하긴 했지만 C학점은 너무합니다. 앞으로 저는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데 정치학 학점이 낮아서야 되겠습니까? 정치학과 학생이 정치 실무를 현장체험하다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습니다.”

“정치실무를 하다가 시험을 못쳤다? 좋아 내가 자네한테 졌네 이만하면 됐나?”

김상협 교수는 그 자리에서 성적을 B학점으로 올려주면서 덧붙였다. 

“앞으로 큰 사람이 되라. 남자란 배짱이 커야 한다. 대범하고 크게 행동해라.”

  

1960년경 고대법대를 다니던 김시복씨는 한국일보 기자에 이어 오랫동안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내던 사람이다. 그는 대학시절 강의하던 김상협교수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제가 당시 알기로 김상협 교수는 학교에 자기 연구실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 한 사람을 교수로 만들어 주기 위해 교수 티오에서 자신이 빠지고 그 제자에게 그 자리를 준 거죠.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세운 고려 대학내에 자기연구실이 없는 거예요. 아무리 집안이 부자라고 하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기가 어려운 겁니다. 김상협 교수는 혜화동 집에서 공부했다고 들었어요. 하여튼 강의시간 무렵 김상협 교수가 차에서 내려서 강의실로 오던 풍채 좋은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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