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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승 김상협 - 미국의 본심

운영자 2016.12.12 11:25:22
조회 214 추천 1 댓글 0
김상협은 총장직에서 물러난 후 북한산자락의 지축리 농장에서 독서와 산책으로 시간을 보냈다. 위궤양증세에 혈당치가 높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는 하루 두 갑을 피우던 담배를 끊고 좋아하던 술도 줄였다. 그는 세계정세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뉴스위크지’와 격월간 학술저널 ‘공산주의의 제 문제’는 그가 끊임없이 읽는 잡지였다. 그는 서재 에 파묻혀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저서 ‘모택동사상’을 틈틈이 손보고 있었다. 문화대혁명이후 중국이 싫건 좋건 실용주의적 개량노선을 걷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월남패망의 배경을 살펴보면서 한국의 안보가 걱정되었다. 그가 알게 된 월남패망의 배경은 대충 이랬다. 미국의 여론은 전쟁반대고 월남의 독재자 티우 대통령에 대해 인상이 좋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선거 직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월맹은 월남정부를 배제한 채 미국과 직접 파리에서 평화협상을 하자고 제의했다. 월맹은 닉슨대통령의 휴전안을 수용한다고 파격적인 제의를 했다. 미국의 여론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방향으로 돌았다. 미국의 반전 운동가들은 미국의 외교정책은 부패한 사회의 오만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여론을 부추겼다. 여론과 언론이 전쟁반대 쪽으로 돌아섰다. 의회는 미 군사력을 인도지나의 육상이나 상공에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월남에 대한 군사원조액도 깍아 버렸다. 월남에 있던 미군이 철수를 개시했다. 한때 50만 명에 달하던 병력이 3만명으로 줄었다. 뿐만 아니라 육상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 보좌관 키신저는 다급해졌다. 얼마 후로 닥친 대통령선거에서 닉슨이 반전평화운동세력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의 조지 맥거번을 꺽기 위해서는 일단 월맹과 휴전협정을 맺어야 했다. 키신저는 월남대통령 티우를 압박했다. 월남의 티우 대통령이 그를 방문한 키신저에게 항의했다.

“귀하는 월남을 팔아넘길 작정인가? 우리는 공산당과 직접 대화하지 않고 귀하가 중계했는데 귀하는 누구편인가? 왜 적에게는 호의적이고 우방을 희생시키려 드는가?” 

6.25전쟁당시 미국은 어땠을까.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과 서둘러 휴전협정을 맺고 한국에서 물러나려는 기색이 보일 때 북진통일 선언과 반공포로 석방으로 미국을 압박했다. 미국은 이승만정부를 달래기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 국군 현대화 계획, 주한미군유지등을 약속했다. 월남의 티우 대통령은 닉슨을 상대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무능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여론과 언론이 티우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미국 안에서 월남에 대한 지지세력이 없었다. 닉슨은 티우를 위협했다. 만약 티우가 휴전 협정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미국과 월맹이 조약을 강행하고 티우를 평화반대자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결국 티우가 굴복했다. 휴전협정이 파리에서 조인됐다. 

  

월맹은 13만명의 월맹정규군과 함께 탱크, 장갑차, 로켓포, 장거리포, 대공포를 동원해 남쪽으로 침공하기 시작했다. 휴전협정위반이었다. 월맹의 지휘부는 월남에 대한 총공세를 시작해도 미국이 개입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월맹 공산당 서기장은 이렇게 큰소리쳤다. 

“미국 행정부의 내부갈등과 정당사이의 분열이 깊어지고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미국은 사이공 정권의 파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미국의 국론은 분열되어 월남상황을 방관했다. 

  

주한 미국대사 하비브는 1972년10월21일경 키신저에게 들은 월맹과 미국과의 휴전협정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알려주었다. 그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월맹과 미국의 휴전협정안속에 미군은 철수하겠다고 하면서 월남에 침투해 있던 월맹정규군의 철수에 대한 규정은 없느냐고 따졌다. 협상당시 약14만명의 월맹군이 월남에 들어와 베트콩으로 위장하여 싸우고 있었다. 국제적 감시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월남 침투 월맹군에 대해서는 잔류를 허용하고 주월 미군은 철수시키는 협정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게 박정희 대통령의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1975년4월29일 박정희 대통령은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전국에 중계하는 가운데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사이공이 월맹군에 포위되고 탄손누트 공항이 포격을 받고 있으며 주월한국대사관이 문을 닫고 교민들이 철수선을 타고 귀환 중인 시점에서 나온 박대통령의 담화의 내용은 이랬다.

“우리에게 어떤 약점이 생기거나 우리가 약하다고 그들이 보았을 때는 지금까지 체결한 협정이니 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휴지처럼 내동댕이치고 무력을 가지고 덤벼드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입니다. 병력이나 장비가 우세했던 월남은 집안싸움만 하다가 패전을 당한 것입니다. 만약에 앞으로 북한 공산집단이 전쟁을 도발해 온다면 우리가 사는 수도서울은 절대로 철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전 시민이 이 자리에 남아서 사수해야 합니다. 국민들은 제각기 내 고장, 내 마을, 내 가정을 사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중대한 시국을 에누리 없이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1975년7월 미국 매릴랜드주 포트미드의 국가안전보장국 사무실에서 정보분석관 존 암스트롱은 북한군 탱크들을 항공촬영한 사진들을 살펴보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기존자료와 비교해 볼 때 탱크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비무장지대 북쪽 계곡에 전에는 없던 전차사단이 등장했고 그 규모는 전차 270대, 장갑차량 100대 규모였다. 암스트롱은 북한군의 전차가 기존 정보판단 보다도 약 80%가 증강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 놀란 국방부는 35명의 분석팀을 새로 만들어 북한군 전력에 대한 종합적인 재평가작업에 들어갔다.

  

1975년11월9일 김상협은 미 국무성의 초청으로 워싱톤으로 갔다. 워싱톤에서 그는 전 주한 미국대사 그레그와 하비브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그레그는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3년 후에 있을 박정희의 재집권 기도는 그 자신을 위해서나 한국의 장래를 위해서나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본인은 물론 한국에도 일대 파국이 올 것으로 봅니다. 지금 흐름은 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김상협 교수 께서는 당분간 매사를 관망하면서 은인자중함이 바람직합니다.”

그는 하비브 전 주한 미대사도 만났다. 그는 김상협 총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3세계 때문에 난장판이 되어버린 유엔에서 미국은 득표능력이 저하됐습니다. 대 유엔 외교가 난관에 봉착한 겁니다. 그 때문에 한국문제 처리도 계속 어렵게 전개되리라고 보입니다.”

김상협은 미국이 한국문제에 대해서는 피곤을 느끼고 언급조차 하기 싫은 체념상태인 것을 느꼈다. 김상협총장은 그 외에도 많은 미국의 요인들을 만났다. 미국 내 리버럴리스트들은 한국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면서 비민주적이라는 점에서 남과 북이 다를 바 없으므로 한국을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인상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월남의 티우대통령보다 더 박정희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김상협 교수는 만약 미국이 북한과 직접 평화협정을 맺을 경우 월남패망에 비추어 한국은 어떨 것인가를 떠올렸다. 유사할 것 같았다. 북한의 김일성은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등을 통해 미국에 벌써 손짓을 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렸다. 

  

김상협총장은 로스토우교수도 만났다. 로스토우는 한국경제발전을 언급했다. 한국은 기본 동력인 우수인력에 기대를 걸 수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전자 정밀공업 자원절약형 두뇌산업으로 발전해 나가면 희망적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상협에게 부유층에 많은 세금을 물려 그 재원으로 의료, 교육 사회사업에 충당해서 기회균등을 기하면서 부패일소에 힘써 나가야 한다고 권유했다. 김상협총장은 통일문제에 대한 미국의 시각도 살폈다. 한반도의 통일은 남과 북 어느 쪽에 의해서건 통일이 주변국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4강은 현상고착을 바란다는 걸 재확인했다. 김상협은 미국방문에서 미국인들의 단면을 발견하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는 변덕이 있었다. 미국에 있어 월남전은 잠시 판단착오로 빠져든 전쟁이었다. 미국은 쉽게 빠르게 월남을 망각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 대해서도 언제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6.25전쟁시 미국이 참전했지만 휴전협정은 사실상 미국의 패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공의 자존심을 한껏 높인 결과가 되었다. 중공군이 직접 미국과 싸워 승리를 지킨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뜻없는 미소를 잘 짓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될 수 있으면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려는 미국적 삶의 방식의 일면일 뿐이었다. 그걸 항구적인 호의나 절대적 호감으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한국의 민주화와 안보의 관계에 대해 그는 생각했다. 안보가 확보되어야 민주화도 가능한 것이다. 동시에 안보가 불확실해지면 그걸 구실로 독재가 더욱 강화될 수도 있었다. 월남패망의 쇼크과 미국의 믿을 수 없는 변심, 그리고 국내의 전 영역에 걸친 긴급조치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그는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위기는 바로 앞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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