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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운영자 2017.04.17 09:49:03
조회 304 추천 0 댓글 2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사무실로 김 목사가 찾아왔다. 1인이 경영하는 기독교 잡지를 하는 그와는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됐다. 그 후로는 그가 쓴 글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된 사건을 맡게 된 인연으로 함께 이런저런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하는 사이가 됐다. 칠십대인 그는 마음의 각오가 이미 저세상으로 한발자국쯤 떼어 논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와 함께 사무실 근처의 돌솥밥집으로 갔다. 종업원이 먼저 반찬을 가지고 와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간장에 졸인 메추리알, 김치, 나물, 장조림이었다. 잠시 후 뜨거운 돌 솥밥이 나왔다. 전복을 넣어 조리한 밥이었다. 김목사가 싱글싱글 웃는 표정으로 김이 피어오르는 밥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늙어서 이렇게 좋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건지 모르겠어요. 내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거리에 야채노점상으로 나가면 초등학생이던 내가 직접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어요. 데운 물에 간장을 넣고 밀가루반죽을 뚝뚝 떼서 넣은 거였죠. 그때는 그것도 어떻게 맛이 있었나 몰라. 그런데 요즈음 세상은 어디나 밥이 풍성하게 널려있어.”

“맞아요 나도 그 무렵 판자 집들이 게딱지 같이 붙은 낙산 아래 살았는데 우리 집은 열 평짜리 일본식 집이었어. 그런데도 판자 집에 살던 친구들은 우리 집에 와서 보고는 궁전 같다고 표현했어. 그게 맞는지 몰라?”

내가 말했다. 목재와 다다미로 만든 엉성한 집에 살던 나는 이웃의 한옥 기와집이 탄탄하고 좋아 보였었다. 

“궁전 맞죠. 나는 루핑을 씌운 판자 집에 살았어요. 말이 좋아 루핑이지 그거 종이에 기름 바른 거예요. 그걸 지붕으로 삼고 사니까 수시로 구멍이 뚫리고 비가 오면 물이 쏟아지는 거야. 난 판자집 방 안에서 그 물을 막느라고 고생했다니까요. 그 판자 집에 살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열 일곱 평짜리 변두리 주공아파트에 사는데 나한테는 왕궁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세상이 이렇게 좋아지고 행복할 수가 없어.”

“맞아요, 그때는 가을에 쌀 한가마니, 연탄 몇백장, 김치 두독이 준비된 집은 흐뭇 해 하곤 했으니까”

내가 화답을 했다. 그의 화제가 갑자기 바뀌었다.

“내가 예전에 이십일 금식기도를 해 본 적이 있어요. 이십일 동안 음식을 끊은 거죠.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정말 구름위에 올라간 것 같이 기분이 황홀해졌어요. 아무생각도 나지 않는 거예요. 그 경험을 한 뒤로는 죽을 때는 음식을 끊고 죽어야겠구나 마음먹었어요. 병원에 가서 위 아래로 파이프를 가득 끼고 연명해야 뭐하겠어요? 때가 되면 내가 글을 쓰던 작은 아파트 방에서 조용히 음식을 끊어 버리는 거야. 그런 마음이 드니까 하루하루의 삶이 아주 편해요. 아무 걱정이 없어요.”

죽음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때 바른 삶이 살아지는 지도 모른다. 나도 며칠 전 가난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김목사에게 이렇게 생각을 얘기해 보았다. 

“예수가 병을 고치고 기적을 일으킬 때 엄청난 돈이 들어올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예요. 그런데도 예수는 끝까지 가난을 고집했죠. 여우도 굴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는 말은 스스로 만든 가난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누가복음을 보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고 했어요. 부처도 왕자자리를 하루아침에 박차고 거지가 됐어요. 고행자니 수도승이니 말하지만 밥을 빌어먹는 가난을 택한 거죠. 그 시절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외형적인 모습은 평생 가난한 수행자 아니겠어요. 성경이나 부처의 일생을 보면 사람은 가난 쪽이 더 삶에 의미를 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맞아요 내가 어려서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으면 노년의 이른 행복감을 느낄 수가 없었겠죠. 행복할 때는 행복을 못느껴요. 고통이 있어야 행복을 느끼는 거죠.”

김목사가 화답했다. 늙은 두 사람의 주책 같은 점심시간의 넑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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