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청진기
백마강가의 먼지 냄새가 나는 오래된 단층 기와집을 구해 일주일의 반쯤을 보내는 선배를 찾았다. 그 집의 구석방 장식장 안에는 한 의사가 사용하던 오래된 청진기와 혈압계 그리고 검은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부여의원’이라는 간판을 단 일본식 목조건물의 의원사진을 넣은 액자가 보였다. 고교선배의 고향집에 보관해 놓은 그의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오래전 저 세상으로 간 한 시골의사의 미미한 흔적이었다.
“아버지는 어떤 의사였어요?”
내가 벽에 붙어 있는 시골의사의 오래된 흑백사진을 보면서 물었다.
“일제시대 아버지는 조선인으로 부여의 고등보통학교에서 일등만 하는 수재였지. 당시 대도시인 평양의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시고 당시로서는 촌이었던 부여에 와서 의원을 개업하셨어. 부여일대에 의사가 아버지 혼자셨지. 그때는 갑자기 산골 집들에서 사람이 죽어간다고 왕진을 와달라고 문을 두드리면 한밤중이라도 청진기와 진통제 같은 약품을 넣은 가방을 자전거에 싣고 밤길을 급히 달려가야 하셨지. 여름에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범람할 때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다 빠져 죽을 뻔 하신 적도 있으시대. 그리고 강물이 얼어붙은 겨울에 급한 김에 얼음 위를 걷다가 혼이 나신적도 있고. 아버지는 그런 시골의사였지. 그때 농촌에 무슨 돈이 있겠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못 냈어. 그러다 추수 때가 되면 어떤 사람은 옥수수를 가져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감자수확이 되면 감자를 가져오기도 하고 그랬지. 그런데 우리아버지는 일 년에 한 번씩 외상장부를 불태웠어. 그 순간 진료비가 면제되는 의식이야. 아버지는 그렇게 사셨어.”
순간 그 시대를 살았던 의사인 이광수의 부인이 떠올랐다. 그녀는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의 서울인 경성에서 의원을 개업해서 이름이 알려지고 돈도 잘 벌었다.
“그 시절 조선인 중에서 의사가 나오기가 참 힘든 시절일텐데 서울에서 개업하시지 않고 왜 시골인 부여였죠?”
내가 물었다.
“여러 번 그럴 기회가 있었지. 그런데 아버지는 의사가 없는 고향을 버릴 수가 없다면서 평생 부여에서 의원을 하셨어. 당시 부여일대에 살던 사람들은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좋은 사람도 뒤에서 비평이나 비난의 소리를 얼마만큼은 받아. 그런데 나는 우리아버지를 조금이라도 비평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어.”
나는 아침이슬 같은 삶의 보석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댓가를 바라지 않고 그런 작은 사랑을 베풀어 가는 게 진짜 이웃사랑이 아닐까. 선배와 배를 타기 위해 낙화암과 고란사를 오르내리는 백마강 선착장에 이르렀다. 그곳에 있던 칠십대쯤의 선장이 당장 선배를 알아보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부여의원의 의사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좋은 일을 참 많이 하셨죠. 그 복을 받아서 그런지 자식들이 다 잘됐어요. 아버지를 따라 의사도 되고 선생님도 되고 법조인도 됐죠. 다 아버지의 음덕이예요.”
돌아가신 시골의사의 따뜻한 사랑의 향기는 아직도 잔잔히 흐르는 백마강 주변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즈음 한 인간이 죽은 후 그의 삶은 어떤 흔적으로 남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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