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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운명

운영자 2017.05.04 12: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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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운명

  

  

어린 시절 동네극장에서 흑백영화를 볼 때면 나무가 거의 없는 남산위의 정자와 벤치가 자주 등장했다. 일자리를 찾아 아니면 먹고살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 거기서 긴긴 하루를 무료하게 지내는 장면이었다. 그 남산이라는 장소를 무대로 인간의 운명이 달라지는 걸 변호사를 하면서 목격하기도 한다. 한 유명한 영화감독이 찾아와 이런 얘기를 했었다. 소년시절 그는 무작정 상경해서 남산주위를 방황했다. 그런데 그 무렵 남산부근에서 영화촬영이 자주 있었다. 그는 영화를 찍는 광경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배가 고파도 영화배우를 보면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었다. 열심히 구경하던 그는 촬영이 잠시 중단 될 때면 눈치 빠르게 물을 떠다 주기도 하고 배우들이 쉴 수 있게 목 의자를 옮겨주기도 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계속 그렇게 스텝진을 도와주니까 짜장면을 한 그릇 얻어먹는 날도 있었다. 그는 감독의 눈에 들어 그렇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고 영화인의 길을 걸었다고 했다. 사람은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것 같다. 지난해 봄 어느 날 사무실로 한 남자가 들어섰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목소리가 컸다. 그가 몇 년전 교도소에 살 때 그곳으로 강연을 왔던 나를 기억하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가 한탄같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은 대충의 내용은 이랬다. 그는 열여섯 살에 남도의 끝에서 몰래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남산주변을 맴돌았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밥한끼 사먹을 돈도 없었다. 막노동을 할 자리조차 없었다. 굶으니까 눈앞이 빙빙 도는 것 같은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남자가 그에게 와서 따라오라고 하면서 짜장면을 한 그릇 사주었다. 얼마나 고와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짜장면을 먹고 났더니 그 남자가 자기 일을 잠시만 거들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얻어먹은 것도 있고 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해가 어스름해 질 무렵 북한산 자락에서 버스를 내린 그는 남자를 따라 산길을 걸었다. 한 참을 걸으니 암자 같은 절이 나타났다. 남자는 입고 있던 점퍼에 손을 넣고 부스럭 거리더니 손도끼를 꺼내어 건네주면서 말했다.

“절 마당에서 이걸 손에 번쩍 들고 잠깐만 서 있어주면 돼.”

왜 그렇게 하라는 것인지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남자가 시키는 대로 도끼를 들고 섰다. 달이 떠서 절 마당을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도끼를 들고 있는 자신의 그림자가 보였다. 남자는 소리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나와서 산을 내려가자고 했다. 남자가 시내로 들어와 그와 헤어질 때 십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건네주었다. 처음 만져보는 돈이었다. 다음날 그는 남대문 시장의 청바지가게로 갔다. 세련되게 청바지를 입고 싶었었다. 수표를 받아든 가게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잔돈이 없다면서 내일 와서 받아 가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다음날 가게를 찾아간 그는 남대문서의 형사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걸 봤다. 그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강도죄로 징역을 살았다. 그리고 강도범이라는 붉은 딱지는 그가 중년을 지나 노년이 시작되는 지금까지도 따라다닌다는 것이었다. 그가 변호사인 내게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님 인생이라는 게 참 이상해요. 어떤 친구를 만나는냐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데 제 경우는 만나는 사람마다 질이 좋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인생이 계속 남의 운명에 끌려 풍파가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걸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데도 잘되지 않아요.”

살다보면 천사가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악마가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천사라고 빛나는 흰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악마라고 뿔 달린 괴물이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혜의 눈으로 잘 구별해서 천사를 맞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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