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베르나르드 폰 작센-바이마르 공작: 한동안 대제국(對帝國) 전선의 주연 배우가 된다.
<그림 2> 빌헬름 폰 작센-바이마르 공작: 30년전쟁 초기부터 꾸준하게 황제와 맡서 싸웠던 베르나르드의 첫째 형. 스웨덴 휘하에서 싸우면서 그의 동생을 휘하에 둔 적도 있었지만, 그의 동생은 곧 그를 제치고 원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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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대제국(對帝國) 전선에서 주연을 맡아 온 사람을 꼽자면, 두말 할 것 없이 요한 바네르였습니다. 이 주연배우가 포메라니아로 쫓겨 들어간 지금, 그를 대신하여 1, 2년간 순식간에 주연 배우로 떠오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뤼첸 전투의 승리자인 베르나르드 폰 작센-바이마르 공작이었습니다. (쉴러는 이 친구를 가장 좋아하더군요. 스웨덴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게 기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말이죠. ^^)
<최강의 부대, Bernardine>
이전 편에서 바네르가 제 2전선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프랑스와 베르나르드를 비난했었지요. 그럴 만한 이유도 있는 것이, 바네르가 2만도 안되는 병력으로 제국군 전부와 맞상대 하고 있는데, 그 당시 최강의 병력을 소유한 프랑스는 라인강 서부에서 흘러가는 강물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네덜란드에서는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지만)
이 때, 프랑스에 튀렌이라는 유망주가 있기는 했지만 그는 아직 경험이 미숙한 장군이었고 프랑스군 중 가장 뛰어난 장군, 가장 정예병력을 꼽으라면 바로 베르나르드와 그의 병사들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병력은 어쩌면 유럽 최강일지도 몰랐습니다. 요한 바네르의 스웨덴군이 동쪽에서 활약하고 있었지만 그의 병력은 신병들과 일부 용병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장비는 형편없었지요. 하지만, 구스타프 아돌프 휘하에서 살아남았던 베테랑 용병들이 프랑스의 막강한 자금 지원을 받아 뛰어난 장비를 갖춘 베르나르드 공작의 부대는 정말로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면모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남송을 지원을 받는 몽고군이랄까? ^^)
<Bernhard Herzog von Sachsen-Weimar>
1637년 당시 33세에 지나지 않았던 베르나르드 공작은 아마도 스웨덴군의 원수들 중 가장 젊은 사람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1604년에 바이마르의 공작인 Johann 3세의 열 한번째이자 막내 아들로 태어났지요. 그가 태어난 지 일년이 되지 않아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어머니 역시 그가 13세 되던 해 죽게 됩니다.
그는 그 당시 귀족 가문에서는 특이하게도 Jena의 대학에 들어가 고등 교육까지 받습니다. 이후 곧 사촌인 Coburg의 공작, Johann Casimir의 궁정에 들어가 기사 수업을 받기 시작하지요. 1620년 16세의 나이로 Waldersee의 여백작인 Marie와 결혼합니다.
30년 전쟁이 일어나자, 초기부터 신교도 편에 가담하여 Mansfeld의 휘하, Baden 변경백의 휘하에서 참전했고, 그의 형인 Wilhelm의 휘하에서도 종군합니다. 하지만 참여했던 대부분의 전투에서 패배를 경험했지요. 하지만 이에 실망하지 않고, 다시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의 군대에 대령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크리스티안 역시 틸리에게 처절하게 패하고 후퇴하자, 베르나르드는 한동안 네덜란드로 가서 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
<스웨덴의 깃발 아래에서>
1631년 그가 27세 때 구스타프 아돌프가 이끄는 스웨덴군이 독일에 상륙하자, 베르나르드는 곧 그에 합류하였고 작전 회의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구스타프 아돌프의 호위 기병대의 대령으로 발탁됩니다. 브라이텐펠트의 전투 이후, 그는 구스타프 아돌프를 따라서 라인강 방면으로 진격하게 되고, 이러는 동안 구스타프 아돌프로부터 전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스웨덴군의 중장이던 그의 형 Wilhelm의 부관으로 있었으나, 곧 그의 지휘권을 인수하고, 이후 원수가 되어 독립적인 지휘관이 됩니다.
발렌슈타인과 대적한 Alte Veste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고, 뤼첸 전투에서 구스타프 아돌프 휘하에서 좌익 총사령관을 맡고 있다가 구스타프 아돌프가 전사하자 대신 총사령관을 맡아 처절한 혈전 끝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됩니다. 구스타프 아돌프 사후 용병 파업에 가담하여, Wurzburg와 Bamberg의 대주교령을 획득하여 Franken의 공작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베르나르드는 형들 중 한 명을 그의 영지 관리인으로 내세운 후, 다시 전쟁터로 돌아갑니다. 1633년 스웨덴의 구스타프 혼과 함께 바바리아에 침입하여 제국군의 지휘관인 Aldringer와 대적하지요. 독실한 개신교도였으며, 그가 정복한 카톨릭 교도들로부터 무거운 전쟁 세금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스웨덴 휘하에서 가장 유명한 독일 출신 장군이었으며, 그의 승승장구는 독일 신교도들로부터 구스타프 아돌프 이후의 구원자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는 전투에 임하여 과감무쌍했으며 불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뤼첸 전투 당시에는 대령 한 명이 그의 돌격 명령을 만류하자 그를 쏘아 죽인 후 직접 병력을 이끌고 돌격한 적도 있었지요. 1634년 뇌르딩겐 전투에서는 구스타프 혼 원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숫적으로 우세한 제국군에 도전하여 대패, 스웨덴군의 최정예 군단이 전멸하게 되고 구스타프 혼 원수 역시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이후 프랑스로 퇴각한 그는 1635년 프랑스의 리슐리외에 고용된 용병 대장이 되어 라인강 방면군을 책임지게 됩니다. 그는 이 같은 수많은 패배를 겪었지만, 한번도 좌절하지 않았고 자신은 행운아이며, 결국 행운은 자신 편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뚝이처럼 항상 다시 일어났습니다. (실의에 빠져서 술을 퍼마시면서 전투를 벌이는 바네르와는 매우 다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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