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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집] 삼한갑족 백사 이항복 가문.

풍원부원군(125.137) 2015.08.15 15:43:10
조회 2916 추천 13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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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이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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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이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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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 이시영>







우리나라 항일광복운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자 우당 이회영(李會榮1867~1932)은 아나키스트 계열의 항일광복지사로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다.

그는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李始榮:1868~1953)의 친형이기도 하다.
양 선생은 모두 이조판서 이유승(李裕承:1835~1906) 공의 아들들이다.

시호가 효정공인 이유승은 이건영,이석영,이철영,이회영,이시영,이호영 등 아들을 여섯명 두었다.

경주이씨 상서공파 백사공세가인 우당의 집안은 삼한갑족이면서 이항복이래 대대로 고관대작을 지낸 최고의 명문가였다.

관직으로 말할것같으면 오직 동래정씨와 쌍벽을 이룬다.
귀족중에 귀족, 양반 중에 양반이면서 우당과 그의 형제들은
나라가 병탄당하자 현재 싯가 2,3조억이나 되는 모든 재산을 급처분하고 60여명의 식속들과 함께

서간도(길림성 류하현 삼원포)로 망명하였다.

우당일가가 배를 타고 두만강을 건너 서간도로 향할때 뱃사공에게 원래의 요금 두배를 주면서 "왜경, 헌병들에게 쫓기는 광복투사가

헤엄쳐서 강을 건너려거든 나를 생각하고 배에 태워 건너게 해주시오"라고 당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안동에서 올라온 고성이씨 임청각 종손 석주 이상룡 선생과 함께 경학사를 설립하고

부설교육기간으로 신흥강습소를 세우는데 이 신흥강습소가 바로 항일광복운동의 요람지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이다.
이들이 왜인들의 식민통치에 조금이라도 모른척하거나 묵인했다면 1등귀족의 위치를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당선생의 집안은 대대로 국은을 받은 집안이라 여기며 터럭만큼도 왜적들의 병탄을 용납하지 않았다.
삼한갑족의 영예를 누린만큼 국은에 보답하겠다는 양심을 지켜 서간도로 이주하여 구국광복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책무와 의무를 다한 것이다.

머나먼 고향땅을 떠나 항일광복운동 전선에 나선 우당과 그의 형제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모든 것을 바쳤다.

6형제 중 장자 이건영(李健榮1853~1940)은 88세의 노령으로 결국 중국 땅에서 별세하였고

둘째 이석영(李石榮 1855~1934)는 80세의 노령에 빈민가를 떠돌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야만 했다.

셋째 이철영(李哲榮 1863~1925)은 훗날 신흥무관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던 인물로 중국 땅에서 병사하였고

넷째 이회영은 6형제의 서간도로 망명하는 계획을 모두 주도하였고 그는 일찍이 1896년에 경기도 개성부 풍덕일대에서

인삼을 재배하는 삼포농장蔘圃農場을 경영하면서 그 수익금을 항일의병들의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또 을사늑약 이후 국권이 상실될 것을 예견한 그는 해외에 군사와 교육을 담당할 광복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

헤이그밀사로 유명한 이상설,여준, 이동녕과 함께 1906년 북간도의 용정촌에 서전서숙을 설립하였다.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외교권이 박탈되고 국권병탄이 사실화되자 우당은 해외에 광복기지를 건설하는 것 외에도

여러모로 분주히 활동하였다.

특히 고종황제 퇴위의 발단이 된 헤이그밀사사건은 우당이 기획한 것으로 을사늑약의 무효와 일본의 강압적이고 교활한

만행들을 전세계에 폭로하고자 한데서 비롯되었다.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하기도 하였던 우당은 경술국치를 당한 후 결국 가족들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들을 양성하였다.

우당은 경술국치 이전부터 유독 교육진흥에 관심이 많았다.

자라나는 민족의 젊은이들을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이끌려고 했던 그의 노력은 전국 각지의 신식학교 설립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그 결실은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신흥무관학교에서 먹고 자며 공부한 생도들은 청산리대첩, 의열단 등 항일무장투쟁의 주역들이 되었다.

그 후 우당은 일본의 악랄한 탄압이 계속되자 고종황제의 서간도 망명을 계획하여 주도했지만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실패하고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세워질때 그는 반대하는 입장이면서도 동생 이시영과 함께 참여하여 하나의 정부를 건설하려 했지만

임시정부 안에서 벌어지는 내분으로 인해 그는 북경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다물단, 항일구국연맹,흑색공포단 등의 조직을 결성하여 항일무장투쟁을 벌여나갔다.

백정기, 이강훈, 원심창,정화암 등과 함께 한 흑색공포단 활동은 일본의 관공서를 폭파, 파괴하고 친일매국노들을 암살하여 숙청시키면서

왜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또 중국국민당과의 교섭을 통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는 약속을 하는 등 외교적인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은 만주로 진출하여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청나라의 마지막 왕 애신각라 부의를 내세워 괴뢰정권 만주국을 수립하였다.

이로써 만주는 광복운동지사들에게 있어 굉장히 위험한 땅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당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만주행을 택해 광복활동의 폭을 넓히려 하였다.

주변사람들과 동지들이 극구 우당을 말렸으나 우당은 66세의 노구를 이끌고 상해에서 대련(大連)으로 향했다.

1932년 11월의 일이었다.

그가 대련으로 온다는 첩보를 받은 일본경찰은 대련항구에서 기어이 그를 체포하였고 그를 일본 영사관 감옥에 수감시켜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그리고 우당은 끝내 옥사하였다.

우당선생은 나라가 무너지고 인심이 흩어지던 혼란한 시기 속에서도 인의로써 일어나 외롭게 구국의 길을 걸으며

민족의 희망을 열었던 선비였다.

다섯째 성재 이시영은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 도원 김홍집(金弘集:1842~1896.경주김씨로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를 지낸 좌의정 김명원의 9대손.)의 사위이기도 하다.

성재 이시영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이듬해인 1886년 가주서로 관직에 출사하였다.

20세에는 세자익위사 익위가 되고 23세 되던 해에는 증광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26살때에는 부승지에 오른 수재였다.

이어서 우승지, 참의내무부사, 궁내부 수석참의, 외부 교섭국장 등을 지내고 1906년 평안남도 관찰사를 거쳐

한성 재판소장, 법부 민사국장, 고등법원 판사에 이르렀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그를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고 형 우당과 함께 서간도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데 참여하였다.

이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참여하여 법무총장, 재무총장 등을 지내고 이후부터 해방때까지

백범과 더불어 임시정부를 사수하는 몇안되는 인물이 되었다.

1945년 해방 후 6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귀국하여 대한독립촉성회의 위원장이 되어 민족.민주진영을 영도하였고

초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에 당선된 후 1948년 정부 수립 후 초대 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그는 6.25 발발 후 전쟁의 와중에 국민방위군사태, 거창양민학살 사건 등을 지켜보면서

대통령 이승만의 비민주적인 독재통치에 반대하게 되었고 결국 1951년 5월 9일 사퇴하게 된다.

나이 90을 바라보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반독재운동을 벌이다가 1953년 4월 19일 "조국의 완전통일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되니 통한스럽다" 는 유언을 남기고 별세하고 만다.

그는 해방이 되고 귀국을 한 후에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을 이어 1947년 2월 성재학원을 설립하게 되는데

이 성재학원이 신흥전문학관으로 개칭하게 되고 훗날에 경희대학교로 발전하였다.

여섯째 이호영(李護榮 1875~1933)은 북경에서 광복운동을 하던 중 1933년 이후로 소식이 끊겼는데

아마 왜적들에 의해 몰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6형제 중 해방 후 유일하게 살아서 귀국한 사람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 뿐이었다.

우당과 그 형제들은 삼한갑족의 명문가 자제들로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진정한 애국지사들이라 할 수 있다.

이건영, 석영,철영,회영,시영,호영 이들 6형제의 행적은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위대한 역사이다.

우당과 동시대를 살았던 한산이씨 월남 이상재 선생은 "우리민족은 우당가문에게 큰 빚을 졌다"라고 하며 이렇게 평하였다.

"동서 역사상에 나라가 망할 때 망명한 충신 의사가 비백비천(非百非千)이지만, 우당 군과 같이 6형제 가족 40여 인이 한마음으로 결의하고 일제 거국한 사실은 예전에도 지금도 없는 일이다.

그 미거(美擧)를 두고 볼 때 우당은 이른바 유시형(有是兄)이요, 유시제(有是弟)로구나. 진실로 6인의 절의(節義)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 되고, 우리 동포의 절호(絶好) 모범이 되리라."



<우당 이회영의 가계도>

우당.성재의 11대조 정헌공 이몽량(李夢亮:1499~1564)은 1528년 형 이몽윤과 함께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강원도 관찰사, 대사간,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1551년에는 재야사림 남명 조식을 천거하기도 하였다.

형조판서, 한성부 판윤에 이르렀다.
10대조 오성부원군 문충공 이항복(李恒福:1556~1618) 대감은 1580년 알성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부정자로 출사하였다.

이후 우승지, 좌승지, 호조참의 등을 지냈고 임진왜란때는 의주로 임금을 호종하였으며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하는데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 당시 병조판서, 이조판서, 양관대제학 등을 지내면서 류성룡, 이덕형, 이원익 등과 함께 전시재상으로

국난을 평정하는데 힘썼다. 

오성부원군의 봉작을 받았고 관직은 정1품 의정부영의정에 이르렀다.
9대조 이정남(李井男) 선생은 예빈시 정을 지냈다.

8대조 이시술(李時術:1606~1671) 선생은 1652년 정랑으로 증광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참판,이조참판에 이르렀다.

그의 장인은 부마 홍주원의 부친 홍영이다.
7대조 문경공 귀천 이세필(李世弼:1642~1718) 선생은 암행어사 박문수의 외조부이며 우암 송시열과 남계 박세채의 문인이기도 하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을 시작으로 공조참판과 형조참판에 이르렀다.
6대조 이형좌(李衡佐) 선생은 관찰사를 지냈고 그의 친형 충정공 아곡 이태좌(李台佐:1660~1739)는1689년 정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의정부좌의정,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이태좌,이형좌 형제의 6촌인 운곡 이광좌(李光佐:1674~1740.이세구의 아들)는 의정부영의정을 지냈다.
5대조 정민공 목천 이종백(李宗白:1699~1759)선생은 1723년 증광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그의 4촌 문충공 오천 이종성(李宗城:1692~1759)은 소론의 영수로 어려운 시기에 노론에 맞서 사도세자를 지지하였고 영의정에 이르렀다.

4대조 사서 이경륜(李敬倫:1735~1789)선생은 이종백의 아들로 5촌 종숙 이종성의 양자가 되었다.

우참찬 서문유의 양외손자이기도 한데 음보로 관직에 출사하여 남원부사를 지낸 후

1774년 정신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동지의금부사.황해도관찰사를 지냈다.
증조부 이정규(李廷奎) 선생은 관찰사를 지냈다.
조부 이계선(李啓善:1812~  )선생은 1850년 증광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사간을 지냈다.

이계선 공의 형 동천 이계조(李啓朝:1793~1856)는 1831년(순조31) 식년문과 갑과로 급제하여

이조판서에 올랐다.

우당의 부친 이유승 공은 이조판서로 그의 12촌이 충문공 귤산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다.
이유원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인물로 이유승의 차남 이석영을 양자로 들였다.

이석영은 이유원의 양자가 된 후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고 이 재산이 훗날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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