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한 짝이 달아났다.

기어코 허리를 구부려 변변치 않은 운동화를 신을 생각은 없다.

이로써 오랜만에 시도하는 바깥구경은 현관에서 실패다.

해가 너무 밝다.

나는 늘 언제고 시간을 들여 해에 관한 고찰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눈앞의 저 해는 뜨기 위해 지는 것일까 지기 위해 뜨는 것일까.

저것이 지는 해라면 너무나 슬픈 일이다.

저물어가는 해만큼 슬픈 풍경은 세상에 없다.

누구도 영영 그 모습을 보지 말아야만 한다.

나는 항상 모두들 나간 텅 빈 집안을 좋아했다.

나른한 오후에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는 갈색 햇빛이 주는 권태감이 언제나 좋았다.

실은 며칠 만에 방에서 나왔는지 잘 기억지 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나온 거실에선 어제 식구들끼리 구워먹은 삼겹살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나왔다.

우리 가족은 언제나 화목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들의 일상에 있어야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씻어보고자 욕실로 향했다.

언제나 화장실이 불만이었다.

집안에 여유가 생기고 난 후 확장공사를 하자고 해도 아버지는 그냥 쓰라며 조그맣고 초라한 화장실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낮은 잿빛 천장 아래 조그만 거울 속 내가 나를 바라본다.

입술이 잔뜩 말랐다.

천천히 옷을 벗었다.

며칠을 입었는지 모를 말라비틀어진 속옷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샤워기에 물을 틀고 따뜻한 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팍'

순간 전구가 나갔다.

코딱지만 한 창문 사이로 어스름히 들어오는 햇빛을 틈타 거울에 얼굴을 비췄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억지로 씨익 웃어봤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이렇다.

알몸으로 욕실을 빠져나왔다.

체취 배인 옷 따위가 지나가다 주운 낙엽데기 보다도 못하게 느껴졌다.

평소처럼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조그마한 간이 화장대 앞에 앉았다.

일 년이 넘게 하지 않았던 화장을 조심스럽게 하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잔뜩 길어 엉켜버린 머리를 열심히 빗어 넘겼다.

씻지도 않은 얼굴에 엉망진창인 화장을 보고선 눈물이 날 뻔했지만 잘 참았다.

나는 오늘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평소처럼 침대로 가서 누웠다.

팔을 쭉 뻗어 침대 옆에 놓인 조그만 서랍 두 번째 칸을 열고, 잠을 청할 약을 꺼냈다.

여전히 창밖은 너무나 밝다.

지는 해는 너무나 슬프다.

아무도 영영 그 모습을 보지 말아야만 한다.

그냥 비트리올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써봤는데 

ㅆㅎㅌㅊ 글이 되버렸슴니다 

그냥 봐주셈

아래 그림은 제가 생각하는 잠을 청할 약을 그린

ㅆㅎㅌㅊ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