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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에 진을 치고 있던 9공수 병력들이 다시 원대복귀했다는 소식에 우리도 잠시 설렜으나, 오히려 그들의 공백때문에 우리는 수경사에게 있어서 더욱 중요한 부대가 되어버렸다.
"연대장님, 보안사에서 전화 왔습니다."
"보안사? 보안사 누군데?"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인 허화평 대령입니다."
대원들이 품고 있던 9공수를 부러워하던 마음도 사그라들고 다시 묵묵히 주어진 환경에 몸을 맞추고 있던 그 무렵,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 즈음에 영 꺼림찍한 선배의 수족인, 친하지도 않은 동기놈에게 전화가 왔다. 당장 16기 장세동 선배를 앞세워 술자리를 몇 번 만들었던 녀석중 하나가 바로 저 녀석이었다.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어, 화평이.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 반갑네. 합수부다 김재규 재판이다 뭐다 해서 바쁠텐데, 무슨 일이야?"
[ - 격무중에 고생이 많구만. 얼마 전에 연대 김장할때 돈 좀 보태라고 주신건 잘 받았어?]
'그게 김장하라고 준 돈이야?' 속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전두환 저 양반이 능력있는 육사 선후배 챙겨준다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뿌리는 자칭 금일봉이란게 나한테도 오기 시작했는데, 일단 돈을 받고는 있었다. 상종도 하기 싫었지만 이게 나한테만 은밀히 꽂아주는 것도 아니고 공공연연하게 주요부대 지휘관에겐 전부 쥐어주는 돈인 것이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 받는 돈 나만 안 받는다고 하면 너무 모양 안 좋게 찍힐까봐 일단 받기는 했는데, 워낙 금액이 부담스러워서 매번 받을 때 마다 연대 간부들 다 모아놓고 금고에 넣어놨다가 회식비나 장비 조달비용에 보태곤 했다.
몇일 전에 받은 돈은 계엄 이후론 처음이었는데, 이번엔 무슨 돈을 백만원씩이나 준 것이었다. 이번에도 금고로 골인하긴 했지만, 너무 속내가 뻔히 보이는 것 같았다. 다시금 전두환 일파에 대한 경계심이 커졌다. 뭐지? 돈으로 구워삶으려는건가?
"김장비 치곤 너무 과한거 아냐? 봉투 열어보고 깜짝 놀랐네." 라고 겉으로는 여유있게 대꾸하면서도, 속으로는 이 자식들이 무슨 꿍꿍이인지 종잡을수가 없기에 답답했다.
[ - 우리 사령관님이 보통 통 크신 분이던가. 아무튼말야. 자네 12일날 저녁에 시간 되나?]
"아이고, 이 사람 보시게. 그랬다가 우리쪽 사령관님한테 걸리면 경을 칠걸?" 시답잖은 술약속 이야기군. 맥이 빠졌다. 적당히 핑계를 대 가면서 불참의사를 넌지시 비쳤는데, 이번에는 이 녀석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 - 장 선배 말 하는거지? 수경사령관님은 우리 사령관님이 잘 설득하실테니 걱정 말어. 다른게 아니라, 우리 사령관님이 자네가 더 고생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 수경사령관님 모시고 근사한 식사 자리를 만들려고 하는데, 사령관님께서 자네도 초대하셨거든.]
이게 무슨 소리야. 왜 이렇게 직접적으로 접촉이 들어오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화기 너머로 내 표정을 상대에게 보일 수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 - … 연희동에 운치있고 맛도 좋은 한정식집 하나를 알고 계시거든. 시국이 시국인데 장 선배며 자네며 고생하는게 눈에 훤해서 한번 모시면서 저녁 대접 해 드리면서 자네한테도 선배 노릇 좀 해 보고 싶으시다는데. 어때, 올 수 있지? ]
"하늘같은 선배의 지시사항인데, 안 가면 내가 죽일놈이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수경사령관님께 나도 별도로 보고 드리도록 할께. 자네도 그 때 오나?"
[ - 나는 무슨, 부대 일 보고 사령관님 모시느라 바쁘지. 다음에 따로 술 한잔 하자고. ]
"좋아, 좋아. 그럼 이만 전화 끊겠네."
전화를 끊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수화기를 들었지만 그것은 수경사령관 장 장군에게 거는 전화가 아니었다.
[ - 자네도 전화를 받았다고? 황 대령 출세 했구만, 보안사령관이 알아서 찾아 모시고 말이야. 하하하.]
전화로는 깊은 이야기를 상의드릴 수가 없을 듯 하여, 특전사령관님께 드린 전화는 그렇게 적당히 마무리하고 끊어버렸다. 나와 수경사령관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특전사령관에게도? 이 비상시국에 수도권 주요 지휘관을 나는 제외한다 쳐도 두 사람 이상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 이유가 뭐지?
월남의 정글 한 복판에서 느꼈던 기묘한 촉이 왔다. 단순한, 야전감각 없이 속편한 계파놀음하는 탁상물림의 정치질에서 나온 철없는 짓거리는 아니어보였다. 적어도 1:1 대면보고가 가능할 수경사령관에게는 미리 의논을 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자네 말이 맞아. 확실히 수상쩍은 면이 있어."
지난 몇 년 간의 자초지종을 늘어놓으며 심증에 불과한 고자질을 늘어놓았지만, 확실히 수도권 주요 지휘관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다는 것은 충분히 수상한 일인지라 수경사령관도 특별히 나를 나무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정보를 고마워했다. 직책상 지금같은 비상시국에 이런 민감한 움직임은 오히려 꼭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일단 정말로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수도권 주요 지휘관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거라면, 간다고 말을 해 놓고 갑자기 취소하는 것은 저쪽의 경각심을 불러올거야. 다만 참석하더라도 긴장은 해야겠구만."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물으려고 할 때, 장 사령관이 먼저 내게 나의 행동지침을 내려주었다. "자네는 내가 참석 못하게 막았다고 입을 맞춰 두도록 하지. 장군들 모이는 자리에 건방지게 영관이 끼어들수 없다는 식으로 내가 배제시켰다고 둘러대면 될거야. 방금 전두환이랑 통화할 때 자네 이야기가 나오길래 영 마땅찮아서 한마디 했는데, 잘 된 일이었구만."
수경사령관은 참모장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하러 갔다. 장 사령관에게 미리 언질을 준게 잘 한건지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제일 못 믿을 녀석들로 찍고 있던 30단과 33단의 단장들을 사령관은 많이 신임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냐. 장세동 30단장이나 33단장 김진영은 월남전때 나랑 같이 싸우기도 했던 전우야. 전두환이가 좀 챙겨줬다고 해서 막상 그런 큰일이 터졌을때 나를 배신하고 역모에 가담할리가 없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럼 그 둘에겐 이번 일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쪽이 어떻겠습니까. 정말 믿을 수 있는 자들이면 유사시에 사령관님을 따를테고, 아니라면 우리가 준비를 하고 있다는걸 보안사측에 알릴 필요가 없으니까요.”
사령부 직할 보안부대를 믿을 수 없다는 점, 보안부대가 유사시 적이 될 공산이 크기에 대놓고 준비를 할 수가 없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병력을 준비한다던가 작계를 수립한다던가 하는 시끄러운 대비는 취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유사시 혼란을 최소화 할 수는 있겠지. 그래. 미리 보고를 한 것이 역시 말을 안 하고 혼자 끙끙 앓는 것 보단 낫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다음은 내 집안 식구들 단속이다. 지역대장은 육군 학군출신 하나에 갑종 출신 하나, 해군 출신 하나. 중대장선에선 육사출신들도 많긴 했지만 지난 몇 년 간 인사과장과 나 단 둘이 주의 깊게 살펴본 결과론 그쪽이랑은 별 연관 없었다.
참모부나 연대 직할대를 다시 점검해봤지만 역시 다들 믿을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마지막 하나, 연대 직할 보안대였다.
별 도움도 안 될테니 연대 주둔지에 남아있으라고 했는데도 기어코 따라가고싶다길래, 어차피 빈 내무반이야 여남은개 남으니 별 상관은 없겠거니 싶어서 데려오긴 했었다. 차라리 잘됐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싶으면 바로 한데 구금시켜버릴 작정이었다.
그날 밤, 간단히 연대 참모부 회식자리를 만들었다. 내 지시를 받은 참모장과 부연대장, 인사과장이 보안대 녀석 몇 명을 집중적으로 마킹해서 술에 떡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들을 아예 자기들 내무반으로 치워버린 뒤, 파장 분위기를 유도하고 은근슬쩍 지역대장 셋을 불러모았다.
“긴장 풀지 말고, 조심하라고. 적어도 전두환이 동경사로 인사발령 나버리고 그 파벌들 좌천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어.”
“연대장님. 육사에선 쿠데타 하는 법 강의라도 들려줍니까? 아니 뭐 좀 혼란하다 싶으면 수작질이랍니까.”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모르겠다. 우리학교 선후배들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좋은 사람들 많으니까 육사나왔다고 해서 너무 백안시하지 말고. 적어도 보안대 빼면 몇 년 전부터 인사과장이랑 나랑 심혈을 기울여 가려뽑은 인원들이야.”
우리가 생각하는 유형의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제일 먼저 보안대부터 구금한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부하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다들 은근히 신난 눈치였다.
“기초 공수교육만 받고 오라고 해도 벌벌 떠는것들이 보안대랍시고 깝죽대는 꼴 볼때마다 눈꼴시었습니다. 개처럼 끌려갈때 표정이 볼 만 하겠습니다.”
“너무 기대들 하지 말어. 정말로 우리가 보안대 조져야 하면 그땐 아군끼리 한 판 해야 하는거야.”
적당히 주의를 주긴 했지만, 반란군이 무슨 아군이냐. 이런 생각이 순간 내 머리속을 지나갔다.
- 6 -
운명의 12월 12일. 총장 공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리자 마자, 전 병력과 기동수단인 경장갑차들을 연병장에 집합시키고 차내에서 출동대기 상태로 기다릴것을 지시했다. 언뜻 수경사 5분대기조가 장갑차를 앞세워 정문쪽으로 나가는게 보였다.
“공관촌 경비 담당이 해병 헌병대였지? 해군 헌병감이 통제하고 있는거 아니야?” 해군 출신인 부연대장 문 중령에게 물어봤다. 마침 문 중령이 또 예전엔 헌병병과였어서 이럴때는 이야기가 잘 통할듯 싶었다.
왠 헌병병과가 특수부대에 와 있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지만, 해군 장교도 육군처럼 특전병과가 따로 존재하진 않는데다 해군 특수부대는 규모도 훨씬 작고, 육군의 보병처럼 그나마 맏기고 보낼만한 병과도 없어서 기관이니 항해니 이런데서도 교육을 받고 UDT로 간다고 알고 있다. 헌병이었다고 해서 못 갈건 없는 셈이다.
“해군에서 통제하는게 맞습니다.”
“그럼 그 해군 헌병쪽에 연락해서말야, 누가 저지른 짓인지 확인 좀 해 볼 수 있겠어? 심증은 있지만 그래도 확증이 있어야지.”
“해보긴 하겠지만, 당장은 힘들겁니다. 거기도 전화기가 불나고 있지 않겠습니까.”
“어쩔수 없지. 그래도 손 놓고 있을순 없잖아.” 라는 내 말에 부연대장 역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수화기를 들었다.
참모장 조 중령이 나의 보안대 제압명령만 기다리면서 발을 구르는 동안, 나는 나 대로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쿠데타의 주체는 보안사, 다만 보안사는 전투부대가 아니니까, 서울 시내에서 가용 가능한 실병력은 아마도 30단과 33단.
이쪽 머리수를 생각해보면 정면대결은 불가능하다. 많이들 착각하지만, 특수부대는 절대 일당백의 용사들이 아니다. 저기 공수여단이랑 보병대대 모아놓고 1:1 총쌈 요이땅 시켜 봐라. 특별나게 잘 할 수 있겠나. 하물며 이쪽은 전투병력이 2백명 남짓, 저 쪽은 둘 다 보병부대식 편제라 경비단 둘 중 하나만 상대하기도 벅차다. 각 경비단에 분산 배속된 전차부대도 꺼림찍하고.
‘할 수 있는데까진 해 봐야지.’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참모장 조 중령이 내게 보고했다. “연대 주둔지에서 잔류중이던 병력들 모두 여기 도착했답니다.”
“지시대로 탄약이나 공용화기도 전부 챙겨온거 맞지?”
“미리 준비시켜놔서 망정이지, 얘기 안 해 뒀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그래, 그거 얘기해야 하는데 보안사에서 도감청할까봐 다음날 통금 풀리자 마자 관용차 타고 달려가서 구두로 명령한답시고 반나절 그대로 까먹었었지. 그래도 이렇게 일찍 도착한 것을 보니 보람이 있다.
계엄령 이래 수경사에 우리측 전투부대가 전부 주둔중이라곤 했지만, 연대 주둔지에 두고 온 것들이며 직할대 병력들이며도 많았다. 특히 절실히 필요한게 탄약과 공용화기였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필요한 물건은 역시 무반동총이었다.
LAW로는 경전차 잡기도 힘들었다는, 월남전 당시 ‘랑 베이’ 기지 전투때 그린베레가 피로서 체득한 전훈을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각 지역대원들이 지참해왔던 LAW는 없는것보단 나은 그런 물건에 불과했다. 이번에 연대 무기고에서 미제 90밀리보다 훨씬 쓰기 편한 스웨덴제 84밀리 무반동총도 불출해 왔으니, 이제 전차가 오더라도 최소한 대항은 해 보고 죽을 수 있다.
“각 팀마다 무반동총 1문씩 분배하고 경장갑차에 비치시켜놓도록 해. 여차하면 꺼내 쓸 수 있도록.”
이 와중에 보안대 녀석들도 무슨 일이냐고 호들갑을 떨면서 연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비상사태가 벌어져서 수경사령관 지시로 연대의 전투준비를 하고 있는거다’ 라고 둘러대면서, 놈들이 핵심적인 정보를 수집할 수 없도록 티나지 않게 접근을 제지하는 휘하 참모들과 지역대장들의 노고가 정말 컸다.
“연대장님, 해군쪽 이야기 정리됐습니다.”
수경사령관의 복귀소식이 들린 직후, 부연대장 문 중령의 보고가 들어왔다.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구두 대면보고를 들었다.
“수경사 33단 헌병들이 해병 헌병들을 무장해제시키고 공관을 점령, 위병소로 차 한대가 빠져나오고 얼마 안돼서 해병 헌병 증원병력이 도착해서 공관을 포위하고 33단 헌병과 교전중이라. 정황상 33단이 총장을 납치한게 확실하구만.”
“예. 사건 전후과정도 모르는 육군 공군 경찰 각 부대에서 다들 몰려와서 지금 개판이라고 하소연입니다.” 바로 그 때, 참모장 조 중령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연대장님! 수경사령관님께서 찾으십니다. 사령부 참모회의가 있나봅니다.”
“알았어, 바로 가지.” 라고 대답한 뒤, 간단한 부대 현황이 정리된 서류철을 챙겨서 부관과 함께 나서다가, 다시 참모장을 불렀다.
“참모장. 보안사에 문의전화 한 통 넣을 수 있겠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가 혼란에 빠진것 처럼 꾸며야해. 자네가 거기 비서실장한테 전화해서, 내가 궁금해가지고 동기인 비서실장 당신을 찾아서 뭐라도 물어보려고 전화했단 식으로, 간단한 연기를 해 보란 말야. 문제 없지?”
“물론입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때는 그냥 뭐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즉흥적으로 낸 아이디어였다. 이 전화가 요새 젊은 애들 말로 ‘신의 한 수’였다는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 생각처럼 큰 계획이 있던건 아니었다.
수경사 참모회의는 뭐. 드라마같은데서도 많이 나왔다. 김기택 장군의 보고, 해군 헌병측 이야기도 겸사겸사 들려줬고. 정말로 장세동 김진영이 자기 뒷통수를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태완 장군이 30단장실에 전화를 걸었다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그 ‘반란군노 무새끼들’ 소리를 통화하는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그 다음은 내 차례였다.
“사령관님. 서빙고를 한번 기습해보는게 어떻겠습니까?”
“무슨 소리인가?”
“저 놈들이 먼저 총장님을 납치했다면, 이쪽에서 구출작전을 벌이는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총장님이 서빙고에 계신다면, 지휘계통이 다시 원상복구되고 저 놈들은 끝장나는겁니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장 사령관은 우리의 구출작전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 무렵이 21시경. 이미 사건이 벌어진지 세시간째에 다다르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보안사 취조시설인데다, 납치된지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 보안사측이 이미 총장님을 서울 바깥으로 빼돌렸을거라 예상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내게 따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놈들이 정말로 서빙고에 육참총장을 감금시켜뒀을 줄이야.
지역대 하나를 보내서 구출작전을 진행하겠다는 나의 건의가 받아들여져서, 나는 다시 임시 연대본부로 직행했다. 그런데 미처 출동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참모장 조 중령이 나를 찾는 것이었다.
“어, 그래. 전화는 잘 마무리 지었지?” 알려준다는 정보라고 해 봐야 저 놈들이 입맛에 맞게 가공한 정보에 불과할테니 내용을 묻지도 않았는데, 참모장의 대답은 내 예상을 벗어나는 이야기였다.
“연대장님.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 직접 전화통화를 하고 싶답니다.”
“뭐? 나를?”
“비상시국이라 개인적으로 긴히 알려줄 정보가 있답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중에야 알았다. 저 반란군놈들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헷갈려했던 것이다. 부대의 앞날을 생각해서 아무리 싫어도 대놓고 척지지 않고, 겉으로는 유들유들하게 굴며 가끔 술자리도 나가고, 전두환 칭찬도 하고 했던게 여기서 의외의 효과를 본 것이었다.
내가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각별한 사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기에 초기 멤버로 섭외를 하진 않았지만, 일이 생각 외로 복잡하게 꼬이던 와중에, 내가 상황판단이 안 된다는 사인을 보내자 놈들이 잔꾀를 부렸다.
‘저 녀석, 말도 잘 통하고, 육사 동문에 비서실장 인사처장이랑은 아예 동기다. 잘 꼬시면 이쪽으로 넘어 올거다!’ …라는, 야무진 착각을 한 것이었다.
[ - 어, 황 형. 나 화평이. 고생 많네.]
“걱정해주는건 고마운데, 뭐 좀 알고 있는 거 있어? 동기 좋다는게 뭐야. 명색이 수경사 전략예비인데 다들 아무것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니까 답답해 죽겠어.”
[ - 성질 급하긴. 좋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리 편이 돼 줄 수 있겠어?]
“뭐…? 갑자기 왠 뚱딴지같은 소리야?”
[ - 전두환 사령관님께서 자네를 믿으시니까 이렇게 제안하는거야. 김재규 수사를 위해서 참모총장을 구속수사할 필요가 있는데, 육참총장 라인들이 합수부를 겁박하고 있어.]
“…정말, 자네들이 정 총장을 연행해갔단 말이야?”
일부러 ‘납치’같은 강경한 표현을 쓰지 않았다. 좋은 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런 표정의 부관과 참모장에게, ‘연기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대충 휘갈겨 적은 쪽지를 보여줘 안심시키면서, 통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정 총장을 자네들이 데리고 있는게 확실하다 이 말이지?”
[ - 그렇다니까. 자네만 도와주면 세상은 전두환 사령관님의 것이 되는거야. 자네도말야. 부대도 눈치 안 보면서 팍팍 키우고, 별도 달고 싶을거 아냐. 동기라서 하는 말이야. 지금이 기회라니까.]
“… 음… 그러면 말이야… 내가 자네를, 아니 전 사령관님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는거지?”
[ - 사령부를 접수하고 장 장군을 우리한테 넘겨주면 돼. 육본이랑 국방부는 우리가 해결 할거야.]
“특전사는? 정 선배는 어떡할거고?”
[ - 공수여단들을 비롯해서 이미 수도권 주요부대는 전부 우리의 거사에 동참하기로 했어. 특전사 정병주 장군은 휘하에 실병력이 없으신데 무슨 방해가 되겠나. 자네만 마음 먹으면 돼. 아군끼리 전투가 벌어질 일 없이, 깔끔하게 해결 되는거야.]
오냐 그래. 1, 3, 5공수 여단장 그 놈들이 경복궁에 들어앉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다. 어쩌라고 이 놈들아. 난 너희들한테 한방 먹일 기회만 노리고 있었어. 버러지같은 정치군인같으니라고.
“좋아. 내가 수경사령관을 확보하겠네. 다만 여기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준비가 다 되면, 바로 전화를 줄께.”
[ - 고마워. 난 자네를 믿었어. 동기 좋다는게 이런거지 뭐야. 있다가 다시 전화하세.]
“별 말씀을. 허 형 수고해.” 라고 전화를 끊은 뒤, 바로 참모장을 불렀다. “작계 짜 놓은대로 해. 서빙고로 쳐들어간다. 무선침묵 유지한 채로 장갑차 타고 기동해서, 현장 도착하면 공격 먼저 시작하고 공격했다고 구두로만 보고해. 정 총장님 계신지 확인하고, 계시면 여기로 모셔와. 보안대놈들 먼저 때려잡는거 잊지 말고.”
방금 말한 보안대라는게 우리 연대 보안대라는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미리 조를 짜서 보안대원 한명 한명을 지정하고 있던 연대 본부반은 내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전광석화처럼 놈들을 체포해서 빈 생활관 한 구석에 감금을 시켜버렸다.
멀직이 복도 끝에 서서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그 시원한 광경을 지켜보는데, ‘황선규 이 개 씨발새끼야!’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바로 달려가서 그 소리를 지껄인 보안대 상사새끼의 면상을 군홧발로 찍어버린 일이 나중에 소소하게 그날 밤의 주요 에피소드로 구전되곤 했다. 드라마에서도 막 그거 재현해서 보여주던데. ‘코리아게이트’가 실제랑 가장 비슷했고 ‘제 5공화국’은 극적인 각색이 잘 돼서 재밌던걸로 기억한다.
“븅신새끼들. 연대에 비상이 떨어져도 탄띠 하나 차고다니기 싫어하니까 이렇게 굴비두릅 꼬라지 나는거지.” 문을 잠그고 나오는 길에 구금작전을 수행했던 본부중대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난 그렇게 한마디 했다. 그 안하무인격으로 놀아나는 분위기 덕에 이렇게 쉽게 제압할 수 있었으니. 전화위복이로다.
서울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아무런 부대마크도 없고, 부대 번호도 안 새겨진 경장갑차의 윗뚜껑을 열어놓고서 벨기에제 기관총과 스웨덴제 무반동총을 걸어놓은 내 부하들의 살벌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찍힌게 이 무렵이었을것이다. 서울의 밤이 전쟁터가 되기 일보 직전의 순간.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총성과 폭발음. 몇일 전에 급조 작계를 짜던 와중, 화력투사는 어느정도까지 해야하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쪽이 쪽수가 딸리는 이상, 상대방이 저항한다면 찍소리도 못하게 확실하게 찍어누르기로 결정했었는데, 그 탓인지 서빙고 녀석들이 정문쪽에서 총을 쏘면서 저항을 하니까 장갑차에 탑재한 유탄기관총을 몇 발 찍고 무반동총까지 한 방 갈겼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그들이 돌아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젠 빼도박도 못하겠구만. 전화기, 전화기…….”
예상대로 전화가 연결되자 마자 별 쌍소리가 다 흘러나왔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몇 분을 혼자 떠들다 잠잠해지더라. 그때 입을 열었다.
“어이, 반란군. 늬들이랑 손 잡아서 부대 키우고 별 달 바에야 차라리 우리 모두 전부 한강물에 빠져 뒈지는게 낫겠더라. 다음에 남한산성에서 보자. 사식으로 두부 한 모 챙겨 갈게.”
[ - 야 이 황선규 개새ㄲ…….]
“어우, 입에 걸레를 물었나?” 수화기를 탁 내려놓고, 비웃으면서 한마디 하자,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눈치를 보고 있던 부연대장이며 참모장이며 부관이며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깨소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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