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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79년 12.12 반란사건의 진행 과정을 되돌아보면, 13일 0시를 전후했을때부터를 기점으로 합수부측의 본격적인 반격이 개시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도 그럴것이, 월권을 저지르면서 진행하려 했던 정승화 육참총장 체포작전은 절대 그들이 생각하던 대로 이뤄지지 진행되지 않았다.
수도권 주요 지휘관들은 치밀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일찍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적극적으로 반란 진압에 나섰고, 상호간에 가용 병력이 부족하던 초기 상황에 진압군은 수경사의 유일한 전투부대가 된 우리 연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총장님을 구출, 저들의 전략목표를 재 탈환하고 전군의 통신을 도/감청하던 보안사를 점령하여 연달아 잽을 날리고 있었다.
12일 저녁 ~ 밤의 양상이 이렇게 일이 꼬인 합수부측 반란군을 상대로 진압군이 선전을 하는 양상이었다면, 13일 자정을 기해서는 반란군이 휘하 3공수를 동원하여 특전사를 점령하면서 반격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특전사는 휘하의 실병력이 없는데다 다른 진압군 지휘부와도 동떨어진 한강 이남에 위치하였기에 실질적인 큰 타격은 없었지만, 반란군 역시 별 의미도 없는 특전사령부를 점령하는데서 만족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다만, 그 반격이 또 그들 생각대로만 이뤄졌냐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이다.
“9공수 본대가 방금 행주대교를 도강했다고 보고가 왔습니다.”
1공수는 육참총장의 직접 명령으로 바짝 긴장한 30사단이 전투를 불사하며 행주대교를 틀어막자 결국 다른 길을 찾아보러 길을 돌린 상황이었다. 하마터면 도상에서 9공수와 1공수가 마주쳐 일이 대차게 꼬일 뻔 했다.
9공수 본대의 한강 이북 입성 소식을 즈음해서 9공수 선발대와 보안사로 원정을 나갔던 우리 지역대들도 다시 필동으로 복귀를 했다. 연대 상황을 알아보러 가겠다고 수경사 CP에서 나와서, 연병장에서 점검을 하고 있는 그 자리로 부관 하나만 데리고 갔다.
그 와중에 가벼운 해프닝도 있었다. “황선규 이 개새끼야!” 하는, 익숙한 목소리들의 분노섞인 외침들이 보안사에서 잡아온 핵심 포로들의 행렬 구석에서 들렸다. 내가 무어라 대답도 하기 전에, 살기등등하게 CAR15을 꼬나들고 있던 우리 대원 몇 명이 먼저 달려들어 개머리판과 군홧발을 가차없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난 의도적으로 연출한 여유있는 걸음걸이로 그들 앞에 다가섰다. “우리 비서실장님만 아니라 인사처장님도 같이 계시네. 그동안 정치질 하면서 안하무인격으로 놀아난 거 잘 아는데, 이렇게 쳐맞았으면 좀 주제 파악을 하셔야지.”
너무 아파서 대들 엄두를 못 내는건지, 막상 내가 건방떠는걸 보니 말도 섞기 싫었는지, 놈들은 잠잠했다. 서로 할 말 없으면, 꼴도 보기 싫었다.
“이 새끼들 치워라. 아, 취사반에 두부 있으면 여기 이 주제파악 안 되는 새끼들한테 좀 갖다줘라. 동방예의지국인데 미풍양속을 지켜야지. 안 그래?”
“예, 알겠습니다.” 지독한 화약냄새를 풀풀 풍긴 채, 승자의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던 우리 대원들이 간결하게 대답하고, 다시 포로 대열을 정렬시켜 수경사 헌병대쪽으로 인솔하기 시작했다. 난 짧은 해프닝을 마무리짓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본업에 집중할 시간이다.
“인원 피해는?”
“9공수에서 전사 하나, 부상자 다섯입니다. 저희는 손실 없습니다.”
“9공수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말야, 불행 중 다행이구만. 아까 서빙고처럼 사람만 구하고 바로 빠지는게 아니라서 인명 피해가 있을 줄 알고 걱정이 많았어.”
“업무분담이 저희쪽에 좀 유리했습니다. 9공수 대대장이 저희보고 아까 서빙고에서 수고 많았다면서, 저희는 화력이 강하고 자기들은 머리수도 많으니까 자기들이 앞장서겠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첫 진입때 장갑차로 방패막이가 돼 준 후로는 9공수가 앞장서고 저희는 화력지원과 저격지원 위주로 작전을 했습니다. 대신 섬광탄과 야간투시경을 좀 빌려주긴 했는데, 진입작전에서 큰 도움이 된 모양입니다.”
자세한 적 정보를 알아보지도 않고 작전을 세울수도 없기에, 세부적인 사항은 현장에 도착한 뒤 지휘관들의 재량으로 작전을 진행하라고 지시했었는데 현장의 판단이 그러했다고 한다. 이치에 맞는 판단이기도 하지만 우리쪽이 실내전 훈련을 많이 받았고 장비도 충실했는데, 차라리 우리가 앞장섰으면 전체적인 인원 손실은 더 적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방탄복 여벌도 좀 챙겨줄걸 그랬네. 미안하게 됐구만… 우리쪽 탄약 소모량은 어떤가?”
“적이 워낙 약하고, 9공수도 있고 해서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처음에 기를 꺾으려고 무반동총이랑 유탄기관총을 몇 발 쏘긴 했는데, 무반동총은 고폭탄만 썼고 적 전차 상대할 대탄은 한 발도 안 썼습니다. 소화기 탄약은 거의 안 썼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맘놓고 탄약을 소모할수 없는게 문제야. 아무튼 판단 잘 했어. 언제라도 놈들의 전차가 들이칠지 몰라. 탄약 관리를 잘 해야돼.”
“연대장님! 수경사에서 찾습니다!” 부관이 무전을 받고 내게 말하자, 나는 다시 수경사 CP로 뜀걸음하듯 달려갔다. 머리통만 베레모지 나머지는 당장 전투 나서는 말단 팀원들처럼 단독군장에 실탄, 개인화기까지 다 챙기고 있는데, 간밤에 무장구보를 몇 번을 하는 꼴인지 모르겠다.
회의실 앞에서, 숨을 고르고, 수통 안의 물을 살짝 마셔 목을 축인 뒤, 건빵주머니에 쑤셔넣고있던 휴지 몇 장을 뜯어서 얼굴의 땀을 닦았다. 대충 매무새 정리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섰는데, 다들 분위기가 너무 좋아보였다. 아니 되게 심각한 일이라서 불렀다고 들었는데, 이게 왠 일이야?
“좋은 소식일세. 33단이 다시 정상 지휘계통에 복귀했어.”
“정말입니까? 반갑긴 한데, 좀 당황스럽습니다.”
“33단장 그 놈이 실수한거야. 이야기가 어떻게 된거냐면…….”
사연인즉슨 다음과 같다. 합수부측에서는 반격을 위해 당장 서울에 전개된 부대를 동원하기로 결정했는데, 작전 계획만 보면 당장 자기들을 호위하는 30경비단을 제외한 모든 병력을 총 동원한 수준이었다.
방금 우리쪽으로 넘어온 33단 병력들을 통해 들은 그들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33단은 기갑과 보병의 제병협동으로 육본 B2 벙커를 포위 및 공격, 육참총장을 다시 확보하고 자신들 앞으로 내려온 사살명령과 보직해임명령을 번복시킨 뒤 보안사 비밀 취조시설에 격리 후 ‘조사’를 한다.
3공수여단은 1공수여단과 합류 후 다시 행주대교를 공격, 30사단으로부터 행주대교를 탈취 후 도하 교두보를 확보한다.
강북 태릉과 성남의 육군종합행정학교에 각 1개 연대씩을 계엄군으로 주둔중인 20사단은 태릉의 연대를 수경사로, 성남의 주둔부대는 5공수여단과 함께 행주대교를 도강하여 추후 작전진행 상황에 따라 병력을 운용한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사태 악화와 북괴 리스크 탓에 시외곽 병력 동원에 회의적인 국방장관조차도 심각성을 인지할만한 그런 대규모 작전이었다. 다만 반란군이 계산을 못 한 부분도 있었다. 이미 반란군도 내부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반란군의 분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33단장의 이탈과 정상 지휘계통 복귀 역시 이런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이탈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33단장 김진영이 자신의 33단으로 직접 복귀해 지휘를 하지 않고 휘하 간부들에게 연락을 해서 병력을 이동시켰다는 점이었다.
김진영 전 33단장이 왜 직접 병력을 지휘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육참총장과 수경사령관 명의로 자기에게 내려진 사살명령과 보직해임명령때문에 위축이 됐는지, 아니면 처음 1공수를 단순히 전화로만 출동시켰다가 부대의 통제가 제대로 안 돼서 1공수가 회군하는 상황의 반복이었는지, 진실은 아마 다음해 12월이 오기 전 초겨울에 총살당한 그 본인만이 알 것이다.
수경사령부의 주요간부 소집명령에, 퇴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33단 부단장과 사령부로 나왔던 33경비단 작전주임 김달연 소령은 12일 밤의 혼란기 속에서 제대로된 상황도 모르고 직속상관들 지시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흔한 그날 밤의 군인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8240연대의 첫 서빙고 구출작전 직전, 사령관이 수경사 기밀실에 휘하 장교들을 모아놓고 현 상황에 대한 설명과 반란 진압의 방향을 천명하는 지시를 내리자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무렵 군대 문화의 한 단면을 살펴보자면, 영관장교쯤 되면 자신의 직속상관이나 직속부하는 서로를 마치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처럼 이끌어주고 따르는 분위기였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앞에서 설명한 것 처럼 휘하 여단장들을 아끼고 챙겨줬던 데에는 다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직속상관이자 군생활의 멘토였다는 ‘전’ 33경비단장 김진영의 반란군 가담소식과 진압 및 반란군 지휘부 사살명령이 주는 충격 속에서, 때마침 그의 눈에 띈, 정승화 육참총장의 험하게 상한 얼굴은 가치관의 혼란에 빠져있던 김 소령의 인식을 한번에 정리해줬다고 한다.
고심 끝에, 군인은 사사로운 정이 아닌 정규 지휘계통을 따라야 한다고 마음을 정리한 그는, 사령관이 자신과 함께 온 33단 부단장에게 33단 병력을 사령부로 복귀시킬수 있도록 설득하라는 명령까지 내리는 것을 보고 누구를 기다릴것도 없이 행동에 나섰다. 33단 중대장들에게 연락을 넣어 그들이 정상 지휘계통으로 돌아오도록 회유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반란군 지휘부가 입단속을 시켰음에도 반란군측 지휘관들에 대한 육참총장의 보직해임 및 사살명령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 33단 예하 장병들이 동요하던 가운데, 보안사의 함락과 수경사의 명령이 전달되자 33단의 전투병력을 현장에서 통제해야 할 중대장과 소대장선에서 이미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런 와중에 33단에 대한 육본 출동명령이 떨어지면서 정작 단장은 그에 동행하지 않았으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맞긴 꼴이었던 것이다.
보안사측의 방해공작을 우려한 33단 병력들은 육본에 도착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이 합수부측 병력인 것처럼 행세를 했다. 방금 수경사 CP에서 심각하게 나를 부른 이유도 그래서였다. 육본이 그대로 홀라당 넘어가는 줄 알고 초긴장 상태였던 것이다.
우리 연대에 이어 수경사의 새로운 영웅이 되어버린 김달연 소령의 지시에 따라, 전차중대를 앞세운 33경비단의 병력이 육본에 도착하긴 했지만 전투가 벌어지긴 커녕 그대로 육본의 방어부대가 되어버렸다.
33단의 이탈과 함께 반란군의 작전계획을 간파하게 된 수경사는 김진영 33단장의 1차 저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휘계통으로 돌아오게 된 33단 배속 전차중대를 즉시 30사단이 막고 있는 행주대교로 보내는 한편 육본의 방어부대로 눌러앉게 된 나머지 33단의 보병부대중 2개 중대를 20사단 연대병력과 붙을 위기에 처한 필동 수경사령부로 재배치를 시켰다.
압도적인 적의 대규모 병력 이동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자, 육본과 수경사 모두 비상이 걸렸다. 다행이라면 저들의 적전계획이 이미 우리의 귀에 들어왔다는 점.
유일하게 병력이동이 가능하게 개방되어있는 행주대교는 30사단에 전차중대 증원까지 들어갔으니 한강 이남의 공수부대는 더이상 우리의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33단까지 우리 손에 넘어오고, 30단은 반란군 지휘부를 지키느라 발이 묶인 지금, 전방부대를 불러오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카드는 태릉의 20사단 1개 연대 뿐이었다.
아마 이미 작전계획이 드러나서 작전 성공에 필요한 제반 조건들이 다 한참 어긋났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은 그 시점에서 전의가 떨어져 항복하지 않았겠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육본과 수경사에서는, 반란군에게 33단의 복귀 사실 공개와 항복권유를 하다가는 오히려 반란군측의 전방병력 무단 재배치를 통한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고, 지금이 사태가 그 지경으로 악화되기 전에 반란군을 격멸할 마지막 찬스라고 여기고 있었다.
다만 막상 일선에서 싸우는 입장에선 그게 또 그리 쉽게 여겨질 문제가 아니었다.
“1개 연대라구요?” 연대 참모들과 지역대장, 중대장들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아무리 소수정예하고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머리수가 천 명도 넘을텐데 이쪽 인원은 33단에서 증원나온 2개 중대를 합쳐도 전투원이 고작 5백여명에 불과했다.
“33단에서 병력을 더 받아올수는 없습니까?”
“안된대. 여기가 실함돼도 육본이 버티고 날이 새면 지휘계통이 살아있으니 9공수랑 33단으로 버티면서 증원병력을 불러오면 되지만, 육본 병력 뺐다가 놈들이 이상한 수작부려서 육본이 함락되기라도 한다면 모든게 끝장나.”
“보안사의 9공수는 안됩니까? 지역대 하나만이라도…….”
“9공수는 보안사에 남아서 30단을 견제하는 예비대가 됐어. 함부로 뺄수가 없다는구만.”
30사단은 말 할 것도 없다. 말이 사단이지 향토사단이라 전시나 국지도발 상황에 예비군 증편받기 전에는 실 전투력은 사단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아마 반란군 2개 공수여단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20사단 증원까지 들이닥칠 행주대교를 막는데는 그들도 나름대로 벅 찰 것이다.
“총리공관을 재탈환해서 각하께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올리는건 어떻습니까?”
“그 이야기도 해 봤지만, 육본에선 각하의 신변에 위협이 갈 수 있다고 기각했어.”
“망할놈의 경호실… 각하 지키라고 만든 부대가 반란을 모의하니 정말 골치아픕니다.”
“그나마 박 대통령 유고하고 줄어든게 저 모양이야. 66대대까지 있었어봐라. 머리통 깨졌을거다.”
“차실장의 606이 백지화된게 천만 다행입니다.”
“걔들까지 있었으면, 어우, 66이든 606이든 같은 공수부대끼리 총쏘는건 좀 그런데요.”
“저놈들이 먼저 총부리 겨누면서 특전사령관님까지 납치했는데, 약한 소리 할 것 없어.”
부연대장 및 참모들과의 허심탄회한 대책회의가 그렇게 오갔지만, 결국 우리들이 내린 결론은 당초 수경사에서 급조한 방어계획. 퇴계로 4가에 주 방어선을 치고 놈들을 매복후 화력우위로 저지한다는 방법을 따르는 것 뿐이었다.
“야포단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보병처럼 쓰진 못하더래도 병력 운용엔 여유가 있었을텐데.” 내가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나 자신도 현 상황에서 야포단 증원까지 바라는건 지나친 과욕이란건 잘 알고 있었다.
9공수 후발대가 행주대교를 건너온 것 만 해도 기적이었다. 다른 한강다리를 찾으러 잠시 이동했던 1공수가 9공수의 도강 직후 다시 나타난것이다. 그것도 뒤에 3공수와 5공수를 달고서.
“마지막 희망은 26사단인데… 걔들은 아직 한참 멀었지?”
“이제 막 출발했으니까, 제 때 올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통금떨어졌어도 그렇지, 양주에서 여기까지 보통 멉니까. 길도 안 좋구요.”
국방장관은 저놈들이 20사단을 움직이고 나서야 마지못해 26사단 동원에 동의했다. 육본의 정 총장님이나 수경사령관은 당연히 수기사 동원까지 요구했지만, 수기사는 만약의 사태에 북괴군을 저지하는데 뺄 수 없는 국군의 유일한 사단급 기계화부대였다. 거리도 서울에서 한참 먼 것은 덤이었다.
나는 수경사 지휘실에서 목격했던, 뒤늦게 배속된 26사단과 사령관님의 속 터지는 전화통화가 이뤄지는 그 답답한 현장을 다시 떠올렸다. 보안사놈들이 수도권에서 포섭 못한 부대들을 막기 위해 참 별별 방법을 다 쓰는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수기사는 과연 부른다고 정시에 출발할수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사령관님, 저쪽도 반란군에 넘어간겁니까?” 통화가 끝나고, 부글부글 끓으면서 수화기를 내려놓는 사령관의 모습에 수경사 참모장 김 장군이 불안감을 느껴 물어보았다. 여기서 수경사령관의 대답은 여러가지로 걸작이었다.
“그건 아닐세. 그런데, 전화를 사단장이 아니라 참모장이 받는거야. 황당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이 보안대 자식들이 말이야, 사단 출동을 막으려고 사단장에게 양주를 잔뜩 먹여서 곯아 떨어지게 만들었다는구만! 이놈들이말이야, 나라지키라고 군복 입혀놨더니 국가 위기사항에 술이나 퍼질러마시고 쳐 멕이고말이야! 이런, 단매에 때리직일놈들!”
사단장이 보안부대 공작이라곤 하지만 위기상황을 인지하고서도 술을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시는 부대가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라니, 부하들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이건 지금은 말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잔류 인원들을 참모장에게 맞기고 출전을 나서기에 앞서, 수경사 CP에 들렀다. 사령관은 직접 나서는 나와 부연대장, 지역대장들의 손을 잡고 일일히 악수를 해 주며, 시간이 급박해서 연대 전원을 모아놓고 사령관이 얼마나 우리에게 고마워하는지 직접 말하지 못해 미안하니 대신 전해라도 달라고 했다.
연병장으로 나서는 길에, 베레모를 어깨 견장에 끼워넣고, 다른이들과 똑같이 미첼 패턴 커버가 씌워진 티타늄 방탄모를 착용하면서, 멜빵으로 몸에 붙이고 있던 M653 CAR15을 손에 쥐었다.
차갑다 못해 살벌한 겨울 바람이 맨 살을 에이게 만들었지만, 실전을 앞둔 그 미묘한 공기만큼은 처음 야간 매복을 섰던 월남의 밤공기와 같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느억 맘 양념이 쳐진 반찬을 먹고 자란 콩들 특유의 그 체취가 날 것 만 같았다.
“연대장님, 거의 10년만의 실전을 앞두셨는데, 기분이 좀 어떠십니까?
부연대장이 본부반의 다른 KM900 경장갑차에 올라타기 직전, 내게 그렇게 물었다.
각자의 지역대 차량으로 몸을 움직이려던 지역대장들이며, 다른 참모들이 슬그머니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내게 고정했다. 뭔가 말을 할 타이밍이구나.
미리 연설문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면 우국충정에 빛나는 감동적인 연설을 늘어놓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레 멍석이 깔리니 그냥 평소 생각하던 개똥철학을, 두서없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수 밖에.
“자식들이 말이야, 연대장을 은근히 겁박하고 있어, 어? 에라 모르겠다, 나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너희들 앞에 세워놓고 뭐라고 이야기 하다보면 무슨 답이 나올런지 모르겠다. 그냥 뒷방 늙은이 주책이라고 생각하고 한귀로 듣고 흘려. 기억해두면 쪽팔린다.
막 나를 너무 띄워주는 애들이 많은 데 말야, 사실 무슨 사명감이나 애국심이 있어서 군대에 온 것은 아니었거든. 머리는 좋은데 찢어지게 가난한 수재들이 다 그랬잖아. 학비 걱정이나 덜어보자고 육사에 갔던거지.
들어오고 보니까, 군 생활이 적성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생도시절부터 종종 했어. 근데 이 대한민국 육군이란 조직에 애정이 생기진 않더라고. 적성에 맞는거랑 몸 담은 직장을 좋아하는건 사실 다른 문제거든. 그렇잖아.
그래도말야, 나이도 먹고 어설픈 연륜이란게 쌓이고 보니까 그 시절보다야 물론 많이 군대란 조직 자체에 정이 들긴 했지만, 본질적으론 지금도 비슷해. 시발 군대 좆같은 거 하루 이틀이야? 근데 말야. 왜 지금까지 남았냐면, 그 깨달음을 월남에서 얻었기 때문이야. 내 인생 최악의 위기의 순간에, 내 옆에서, 뒤에서 서로를 지켜준 그 평범한, 보잘것 없는 군바리들말이야.
지금 되게 짜릿해, 잃을게 많으니까 겁이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러니까 더 싸우고 싶어. 지켜야하니까말야.
사실 지금이 내 인생 최대의 위기야. 월남보다 더하지. 그때는 가진거 불알 두 짝밖에 없는 골수부대 무대뽀 중대장 나부랭이였지만, 지금은 쌓아올린게 너무 많아. 늦장가 들어 만난 처자식들, 눈앞에 보이는 원스타의 별도 그렇고, 그치만 말야, 제일 걱정되는건, 내 인생을 통해 쌓아올린 모든걸 바쳐서 만든 우리 연대와 우리 연대 식구들 그 자체야.
근데, 걱정돼서 다들 뒤에 숨기고 나 혼자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한편으로는 너희들이 내 옆에서, 뒤에서 같이 목숨을 걸어준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좋아. 꼭 살아나올 보장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마냥 좋아. 갓 중위달고 월남 처음 왔을때, 어리버리 모지리 챙겨주시던 중대장님, 인사계 생각나고 그래. 이젠 내가 그 사람들처럼, 훨씬 많은 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전우라고 생각하면 막 훈훈하고 그래.
사지로 나가는데 생기가 느껴져. 내 인생은, 내가 우리 연대를 만든 이유는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서 신이 준비한 길 같아. 나 종교 없는거 알지? 그러니까 나중에 주간회의때 특정 종교 편파발언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알았지?
아무튼 뭔 소린지 말하는 나도 모르겠네. 근데 이렇게 말하니까 머리 속이 좀 정리가 되는거같아. 나쁘지 않네. 그러니까 자식들아, 못난 연대장 믿고 따라와 줘서 정말 고맙다. 한 발짝만 더 따라와 주라. 믿을 수 있지? 새끼들 왜 대답이 없어, 쪽팔리게시리. 믿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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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해도 좀 오글거리는거 같아서 쪽팔려하는 부분을 같이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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