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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특수부대 만들기 (끝)

ㅇㅇ(203.123) 2020.05.09 13:45:11
조회 11026 추천 83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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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 지휘부는 대부분 4인 ~ 6인단위로 나뉘어 경장갑차에 분승했다. 제원표상으로는 하차보병이 1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장갑차지만, 직접 본 사람은 안다. 봉고차만한 장갑차 뒷칸에 완전무장한 건장한 체구의 성인남성 10명이 들어가라는건 말도 안되는 개 헛소리다. 


  우리 부대에 경장갑차가 그렇게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계엄상황시 수도권에서 활동해야 할 우리 부대가 이리저리 검토한 결과, 국군이 보유한  기동수단 중에서는 이 놈이 가장 최적이었다. 다만 말도 안되는 카탈로그 스펙이 문제였다. 그래서 실제로는 4인 1조 팀당 한 대씩 연대 수송부에서 이 차를 배속받아 쓰기로 결정하고 그 많은 장갑차들을 도입한 것이었다. 


  워낙 많은 수량이라 금전부담도 크고 해서, 마침 대테러부대 소요제기고 하니 미군 군사원조금을 신청했는데, 인원에 비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미군 고문단들이 의혹의 눈초리로 우리 부대를 봤던 시절이 새삼 생각났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복잡한 정치문제같은 건 아랑곳 할 것 없던 속 편한, 그립기까지 한 시절이었다. 그 때 그래도 열심히 발품 팔기 잘 했다. 안 그랬으면, 연대 전투원 반은 이 추운 날씨에 히터는 커녕 호로도 걷은 두돈반 짐칸 위에서 덜덜 떨고 있었겠지.


  상부 해치를 필요한데만 열어놓고 있었음에도 찬 공기가 차내로 들어와 히터의 효율을 극적으로 감소시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면서, 이제 나도 늙었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비웃었다. 젊은 시절같다고 일장연설을 늘어놔놓고서, 이게 무슨 추태란말인가.


  “커피 한 잔 하시겠습니까?”


  “고마워요, 주임상사.”


  예전에 전투복을 새로 만들던 과정에서 상의 아랫단 주머니를 팔로 옮긴 그 해군 상사가 지금 연대 주임상사가 되어 내 앞에서 보온병에 담은 커피를 졸졸졸 따라주고 있었다. 따뜻하면서 달달한 믹스커피가 냄새만 맡아도 입 안에 침이 고이게 만들었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다간 이 급박한 상황에 오줌이 마렵게 될 까봐 한 잔 밖에 못 마셨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다. 


  “잘 먹었습니다.”


  “저야말로 이거밖에 못 해드려서. 허허.”


  사실 차로 가면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지라, 그 짧은 대화가 끝난 직후 우리는 목적지인 퇴계로 4가에 도착했다.  놈들은 저 멀리 태릉에서 오느라 아직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지만, 어차피 통금 시간이라 차 막힐 걱정도 없으니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곧 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급한대로 본부반 장갑차 몇 대를 최후 저지선을 구성할 바리케이드로 삼기로 했다. 트럭 정도는 이렇게만 조치해도 절대 지나갈 수가 없다. 중요한 장비들을 꺼내고, 큐폴라에 거치돼있던 중기관총과 유탄기관총도 탈거해서 삼각대에 올려 근처 4층 빌딩 옥상에 걸어놨다. 이제 명령만 떨어지면, 이 장갑차들은 숨겨둔 골목에서 달려나와 길을 틀어막고 운전병들만 빠져 나올 것이다.


  “미안합니다, 시민여러분. 국가 비상사태라 어쩔 수 없어요.”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상가의 셔터를 잠궈둔 자물쇠를 절단기로 파손시키고 있었다. 촤르르륵하는 아침을 여는 활기찬 소리가 시간에 비해 너무 일찍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여기가 주택가는 아니니까 당장은 교전이 벌어져도 시민 피해는 없겠지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왠 개짖는 소리가 이렇게 요란하냐. 사람 사는 동네 아닌데.


  가로등 불빛밖에 없는 칠흑같은 어둠이었지만, 우리는 그 가로등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앞앞으로의 작전계획에선 가시광선의 통제도 우리에게 중요한 요소였다. 모자라는 머릿수를 채우려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 했다.


  단발의 총성이 딱쿵, 딱쿵 할 때 마다 전구가 하나씩 깨져나갔다. 근처의 주택가에 살고 있을 주민들은 아닌밤중의 총성에 잠에서 깨어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그때는 밤이면 라디오며 테레비며 방송도 끊기던 시절이니까. 발만 동동 구르는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새삼 지역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함은 영문도 모른채 반란군으로 동원되어 두돈반에 차곡차곡 실린 채 우리의 살상지대로 달려오는 저 불쌍한 20사단 62연대 청춘들에게도 해당되는 감정이었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끌려와서, 굶주리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며 군생활을 하는것도 서러운데 죽을 위기에 처하다니. 이런 사람들한테 미안하지 않으면 누구한테 미안해야 할까.


  하지만 평화적인 해결책만 생각하기엔 이미 서로가 선을 많이 넘은 상태였다. 이제 이 한 밤중의 유혈극이 더 커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하나, 둘 중 하나의 전의가 다하여 백기를 드는 것 뿐이었고, 누가 먼저 백기를 들 것인가가 앞으로의 한시간 남짓에 결정될것이란 사실은 저기 33경비단 말단 이등병부터 현재 매복지점의 최선임자인 나까지 모두가 이해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괜찮지?”


  “20사단에 사촌동생이 있는데 걔가 걱정됩니다. 재수좋게 사단본부 떨어졌다고 좋아하던게 엊그제같은데 벌써 2년 전 이야깁니다.”


  “설령 일이 꼬이더래도, 20사단 사단본부는 저기 행주대교쪽에서 다리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어. 서로 총부리 겨눌 일은 없을거니까, 걱정 말아.”


  “감사합니다, 연대장님. 무슨 육이오도 아니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반복하는 줄 알았습니다.”


  완전히 전투대형으로 매복한 우리 연대원들이 웅크리고 있는 곳곳을 직접 뛰어다니며 방어 태세를 점검하고 있던 중, 야간투시경을 통해 보이는 녹색 시야의 저 끄트머리에서 차량 헤드라이트의 끝없는 행렬이 아련히 보이기 시작했다.


  야투경을 들어올리자, 칠흑같은 어둠 저 편에서 명멸하는 오랜지색 불빛들이 꼬리를 물고 다가오는게 똑똑히 보였다. 긴장도 되지만, 흥분도 그 못잖다. 아마 남들이 밝은데서 지금의 나를 보면 동공이 평소보다 커졌다는걸 눈치 챌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오시는구만.” 방금 20사단 복무중인 친척 이야기를 하던 기관총 사수가 어깨 주머니에서 해태껌 한 통을 꺼내 동시에 두개를 입 안에 우겨넣었다. 문득 뭔가 씹을게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참았다. 만약 일이 꼬이면, 나도 전투원이 되어야 한다. 난 소총을 들고 있다. 기관총처럼 면을 제압하는 무기가 아니다. 정확한 조준을 위한 규칙적인 호흡에 방해가 될 것이다.


  ‘니미, 씨벌, 더럽게 많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부관, 무전병 둘만 데리고 다니던 나는 또다시 전속력으로 질주하여 가까스로 연대 CP로 돌아왔다.


  “경고사격이야. 딱 한번만 기회를 주는거야. 하지만 그래도 딴 맘 먹고 이상하게 굴면, 그때는 계획대로 싹 조져버린다. 알았나?”


  모두가 처음 내린 명령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나의 무전에 각 지역대는 물론 임시 배속된 33단의 보병 중대에게까지 알았다는 대답이 나왔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혹시나 저쪽이 우리 말을 듣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서로간의 쪽수가 불공평할정도로 심각하게 차이가 났다. 어쩌면 이쪽이 밀릴지도 모르고, 여차저차 저지한다면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할 터였다. 서빙고나 보안사 습격이야 상대가 총장 납치극의 주체이기도 하고, 교전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기에 적극적인 교전을 주문했지만, 상대가 말이 통한다면, 서로 굳이 피를 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예상대롭니다. 선두가 지프입니다. 1호차라면 좋겠습니다.” 저격수들의 보고를 취합받은 작전참모가 내게 다시 보고를 올렸다. 


  “1호차일거야. 이럴때는 최선두가 제대 최선임자잖아.”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찬공기가 폐 속을 채우며 정신이 말짱해진다. 내가 말을 이었다. “작계 대로, 약정한 신호에 맞춰서 각 저격조들은 사격 개시.”


  가로등을 파손시켰기에 스파이크를 보지 못한 것이 그들이 겪은 약간의 고생의 시작이었다. 션두 지프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타이어 펑크로 차량들이 미끄러지듯 멈추기 시작했다. 그나마 여기가 고속도로가 아니라 속도를 많이 못 내고 있던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 직후, 큰길 양 옆 골목마다 몰래 세워놨던 우리의 경장갑차들 차례가 돌아왔다. 방탄판과 기관총 마운트 위로 하나씩 설치해놓은 제논 탐조등이 거의 동시에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뒤이어 콩볶는듯한 총성들이 연속적으로 울렸다. 저격수들과 일부 소총수들이, 차량의 전조등만 골라서 경고를 겸한 신중한 조준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뭐, 확성기 들고 경고방송이지. 갑작스런 차량 고장과 시야 차단, 연이은 사격까지. 혼이 빠진 차량 대열 선두가 비틀대자 뒤에서 달려오던 트럭들도 줄줄이 멈춰서서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대열 중간과 후방의 인원들이 대응사격을 하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시작된 경고 방송이었다.


  [ - 아, 아, 20사단 62연대 장병들에게 고한다. 나는 수경사의 황선규 대령으로, 반란군에 가담한 33경비단장 김진영 대령을 대신해 임시로 경비단장을 맏고 있다. 귀측은 계엄사령부와 국방부의 작전지시를 무시하고, 반란군 가담자인 전 20사단장 박준병의 불법적인 지시에 따라 병력을 이동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에 대한 반역 행위이다. 지금 당장 원대 복귀하라. 조금이라도 불온한 움직임을 보일 시에는 귀측을 사살할 수 밖에 없으나, 아군간의 불미스런 충돌은 있어선 안되기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사실 지금이 제일 쫄리는 순간이었다. 이건 일종의 허장성세였다. 자칫 잘못하면 너죽고 나죽는 식의 피바다가 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직의 책임자라면 이런 순간일수록 배짱이 두둑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 이스라엘군 기갑부대에서도 대충 그런 이야기를 했다잖아?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으음. 전투가 벌어지면 지휘관은 겁을 먹어도 침착한 척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나? 지휘관이 쫄은 티를 목소리로 드러내면, 무전망의 모든 병사들이 쫀다고 말이다.

 

  그래서 연출된 허장성세를 보였다. “어때, 괜찮아?” 하고 부관을 돌아보며 한 마디 물어보자, 부관은 내가 긴장한 줄은 꿈에도 모르는듯, 참았던 미소를 피식, 하면서 슬쩍 드러내고는  “누가 들으면 진짜 33경비단장 대리인줄 알겠습니다.” 하며 대답했다.


  “그럼 어떡해야하나. ‘8240연대가 있어요’ 하면 그런 부대가 있는줄도 모르는 놈들인데 내 말을 믿겠어?”


  그렇게 조금 철면피같이 능청을 떨고, 다시 메가폰을 잡아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제발, 제발 너무 오래 같은 이야기 하기 전에 협박이 먹혔으면… 간절히 소망하는 그 순간, 이윽고 저쪽 최선두 지프의 천으로 지붕을 씌운 뒷칸에서 사람이 비틀거리며 나오더니 나를 찾았다. 됐다. 말문이 트이면 그걸로 반은 해결 된 거다. 역시, 33단의 사례를 보면서 굳이 모두를 쳐 죽이진 않더라도 적당히 흔들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거라 생각한 내 판단이 옳았다.


  그렇게 양측의 사격이 일시 중지되고, 도로변에서 간단한 합의가 진행되었다. 20사단은 62연대는 불법적인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정상 명령계통에 복귀, 계엄 주둔지인 불암산 예비군 훈련장으로 복귀하여 계엄군 업무에 복귀한다. 추후 계엄사의 별도 지시가 있기 전에는 병력 이동을 엄금하며 이에 불응시엔 명령 불복종과 반역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될것임을 인지한다. 전 사단장인 반역자 박준병과 기타 반란군 지휘부(목록 별첨)의 지시를 일체 받지 않고, 계엄사령관의 명령에만 복종한다.


  무척이나 당연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이런 사항을 협박하고 어르고 달래서 해결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잠시 후, 바퀴가 멀쩡한 차량들은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 다시 복귀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전조등이 파손되거나, 바퀴가 펑크났거나, 둘 다인 차량에 타 있던 인원들은 어떻게 복귀하는지의 문제를 두고 62연대장과 우리가 잠깐 고민을 하는 해프닝이 있긴 했었다. 결국 62연대장을 비롯해 파손된 차량을 타고 왔던 인원들은 ‘계엄사의 지시사항’으로 무장해제만 시킨 뒤, 신체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수경사로 이송해 사태가 수습될 때 까지 연금을 시켜두기로 했다.



* * * * *



  12.12 군사반란의 마지막 분수령으로 일컬어지는 20사단의 수경사 출동은 이렇게 진압군측의 마지막 승부수인 ‘퇴계로 회군’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주대교를 둘러싼 전투에서 전차의 증원을 받은 30사단이 대교를 전차로 막아버리고 접근을 차단하는 가운데, 20사단이 태릉으로 퇴각하면서 33경비단마저 수경사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이 퍼지자 반란군 지휘부는 급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사태 초기에 각 여단을 직접 통제하러 내려갔던 1, 3, 5 공수여단장들이 현장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공수여단이 다리를 확보하면 한강을 건너기로 했던 20사단 사단본부와 61연대는 단독으로 작전수행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한강 이북으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그냥 그 자리에 멈춰섰고, 한강 이북에는 30경비단 하나만 남게 되었다. 


  나와 수경사 참모들의 우려대로 이들이 전방 병력들을 후방으로 재배치시켰다면 이들의 명줄은 아주 조금이나마 더 연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지휘계통에 정상으로 복귀된 가운데, 우왕좌왕하던 대부분의 야전부대들은 연달아 반란군을 저지하는 진압군 측으로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이 민감한 촉을 누구보다 경복궁 안의 이들이 냄새를 맏기 시작했다. 차규헌 수도군단장이 화장실을 간다며 경복궁의 30단 주둔지에서 빠져나와 과거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같은 부대에서 복무했던 인연을 믿고 수경사로 향한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물론 차 장군은 정문에서 바로 ‘정중하게 장군의 예우를 갖춰’ 무장 해제를 당하고 독방에 연금되는 신세가 되었지만.


  연이은 반란군 지도부의 이탈과 잠적 속에서, 이미 눈이 뒤집힌 전두환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측의 전방부대의 사단장과 군단장들은 이제 추후 벌어질 군사반란 재판법정에서 자신들이 서게 될 위치와 형량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반란군 지휘부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는 가운데, 한강 이북의 모든 군사적 위협을 축출한 진압군의 핵심 전투부대인 9공수와 33경비단, 그리고 우리 8240연대가 경복궁의 30단을 포위하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 수경사 전차대대장은 30단에 파견나가있던 자신의 부하들을 도로 복귀시키는데 성공하기까지 했다.


  이제 남은것은 파멸뿐인 그 순간. 반란군 장성들이 직접 백기를 들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나왔다. 수경사령관 장태완 장군을 제일 골치썩혔던 사령관의 ‘옛 전우’, 30단장 장세동은 자살했고, 또다른 옛 전우였다던 33단장 김진영이나 반란의 주모자인 전두환 보안사령관  역시 자살하려 했으나 나중의 재판과정에서 큰 지분를 차지할 그의 부재를 두려워한 동료 반란군 장성들이 그를 ‘물리적으로’ 제지했다는 일화는 두고두고 블랙코미디처럼 회자되고 있다.

  

  총리 공관을 둘러싼 포위가 풀리고, 총장공관을 접수했던 경호실 병력들은 역으로 무장해제를 당한 뒤, 가혹행위 수준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원 주둔 병력들인 현병들에게 개처럼 얻어맞으며 영창으로 끌려갔다.


  총성과 폭발로 얼룩진 밤이 지나가고 아침해가 떠오를 때 쯤, 세상은 간밤의 혼란을 어느정도 수습하고 다시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전국의 주요 일간지들이 일제히 호외를 뿌리기 시작했다. 내용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검열을 하지 않더라도, 12일 저녁 통금이 걸리기 전에 찍힌 몇 몇 사진들을 제외하면 어차피 정보 소스는 계엄사에서 제공하는 것 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12일 저녁 전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의 주도로 쿠데타 발생. 총성으로 얼룩진 서울의 밤, 13일 03시를 넘어서 반란진압 성공.’ 등등… 이 와중에 어느 신문사에서 남들은 건지지 못한 특종 사진을 건져 호외 1면에 실어버렸고, 이는 곧 12.12의 아이콘과도 같은 장면이 되어버렸다. 앞서도 언급했던, 서빙고 전투를 앞둔, 그리고 전투가 끝나고 칼같이 빠져나오는 우리 연대 대원들을 찍은 사진 몇 장 말이다.

  

  “외신까지 그 사진들이 도는 바람에 영국 미국에서 뜬금없이 축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장군 진급을 축하한다면서요.”


  “뭐, 결과적으론 맞는 말 아니었던가. 자네는 진급 할 자격이 있어. 훈장도 그렇고말야.”


  어느덧 새로운 80년대가 밝아오고, 총생을 입고 후송됐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퇴원이 사흘 남은 날, 사령관님은 아침일찍 서울지구병원을 찾아간 나를 반기면서 장군 진급과 태극무공훈장 서훈을 축하해주었다. 그날 이후 별들의 숙청과 군에 불어닥친 군법 및 인사상의 광풍탓에, 진급한 날 직접 찾아뵙지도 못하고 전화로 인사를 드려야 했던게 워낙 죄송스러웠지만, 사령관님께선 내가 민망하도록 내 진급과 훈장 서훈을 추천해주셨다.


  “별이야 그렇다 쳐도, 훈장은 아직도 쑥스럽습니다. 월남전때도 화랑 무공훈장이랑 미국애들 동성 무공훈장이 전부였는데요.” 진심으로 태극 무공훈장은 스스로가 민망했던 내가 그렇게 말하며 뒷통수를 긁었다. 아, 월남에서 받은 미국 동성훈장은 미군들이 ‘그 정도면 명예훈장 감이다’ 라며 띄워줬는데도 결과물이 동성훈장이었던건 굳이 말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퇴원 하시면 바로 복직하시는 거 맞죠? 전역하신다고 하셨을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황 장군, 난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치가 떨려. 부관이고 참모고 뭐고 다 도망가고, 김오랑이 혼자만 남아서 나를 지키다가 그만… 그보다 자식처럼 아끼고 감싸줬던 박가놈, 최가놈, 장가놈 그 셋은 정말…….”


  사령관님의 목소리가 끝에서 살짝 잠기는게 확실했다. 얼마나 큰 인간불신에 시달리셨을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바였다. 그날 나도 최세창의 패륜 소식을 듣고 얼마나 크게 분노했던가.


  “죽일놈들 맞습니다. 정말이지… 하지만 사령관님. 이럴때일수록 마음을 굳게 드셔야죠. 군의 기강을 다시 바로잡으려면 사령관님같은분이 조금만 더 힘 내 주셔야합니다.”


  “그래, 그래, 그래서 내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은거 아닌가. 다시는 후배들에게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지금 더 힘 내야지.”


  하루 종일을 사령관님 병문안 일정으로 보내고, 해가 떨어질 무렵 병원을 나섰다. 별 하나짜리에게 주어진 세단 관용차는 아직도 너무 부담스러웠다.


  “어차피 주인없는 관용차들이 한둘이 아니야. 부대의 중요성도 크고, 이번 사태 수습에도 자네가 1등공신 아닌가.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받게. 자꾸 거절하면 화낼거야. 알겠나?”


  별 하나를 달고, 특수부대라 정규군의 편제와 1:1로 대입이 불가능하긴 하지만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들 ‘장군 연대장’이 된 직후의 일이었다. 얼마 전에 군사 재판으로 사형 집행이 판결났다는 전두환이 쓰던 차를 내 명의로 돌리면서 성판까지 별 하나짜리로 바꾸고 내게  주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였다. 누가? 참모총장님이!


  실력으로 나 자신을 평가받고 싶던 나는 너무 거북해서 거절하고 싶었지만 높으신 분이 저리 강경하게(?) 새 차를 권유하는데 막무가내로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문에 타고 다니긴 했지만, 육본이나 국방부 등 다른 많은 선배 장성들을 뵐 일이 생길때마다 부담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바뀐것은 자동차 뿐만이 아니었다. 12.12 직전 정승화 총장이 계획했던 것 과는 비교도 안되는 인사상의 광풍이 육군 전체를 강타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헌병과 중정의 합동 수사 과정에서(김재규 사건 이후 보안사에게 많이 시달렸던 중정이 열성적으로 이번 사건 수사에 임했다는 뒷이야기를 언뜻 들은 적 있다.) 드디어,  어렴풋이 존재만 추측할 뿐이던 군 내 사조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회’라는 이 사조직은 윤필용 사건때도 한번 숙청의 칼날을 맞을 뻔 했으나 박종규 전 경호실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호로 일부 조직원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선에서 끝을 냈다고 한다. 그 이후 몇 년 간 절치부심하다 자신들을 잡아먹을 뻔 한 보안사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으니, 기세가 하늘을 찔렀을 것은 불보듯 뻔했다.


  “지금이라도 그 실체가 드러나서 천만 다행일세. 하마터면 말이야. 몇 년 만 늦었어도. 그 놈들이 군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거야. 암을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듯이 말이야. 더 늦기 전에 찾아서 다행 아닌가.”


  얼마 전, 장군 진급을 축하하신다면서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부르신 수경사령관 장태완 장군이 내게 한 말이었다.


  “사실 이미 많이 늦은 감이 큽니다만… 그 놈들 등쌀에 진급을 못 하고 전역한 유능한 인재들이 한둘이었습니까. 박동원 장군도 인사발표에서 줄줄이 미끄러졌던게 그 놈들 농간 때문이었잖습니까.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고보니 수경사도, 특전사도 다들 이번 인사 태풍을 가장 심하게 직격당한 부대들이었다. 30단과 33단을 제외하고서도, 취조 과정에서 수경사 안의 하나회 끄나풀들이 모습을 드러낸것이다. 상황실장 김진선 중령, 현병단 부단장 신윤희 중령에 그 이름도 기억 안나는 인사참모 모 중령 나부랭이 등등…….


  특전사는 더 심했다. 골수 하나회 종자들 말고도 쳐내야 할 무능한 인원들이 사령부가 점령되던 그 순간 민낯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사령부에 잔류해있던 참모들이며 심지어는 부관까지 전부, 제 한몸만 살겠다고 도망을 쳤는데, 이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추태조차도 1, 3, 5 공수의 하극상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했다. 반란군의 핵심 멤버였던 이 세 공수여단장들은 빠른 잠적에도 불구하고 몇 일 지나지 않아 남한산성행 특급 배송 화물이 되었다.


  듣자하니 이 세 공수여단의 부대 이름은 영구 결번을 시킬거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알제리 주둔 프랑스 외인부대의 쿠데타 전례를 참고했다나? 30경비단도 33 경비단에 통폐합되는 식으로 없앤 뒤 부대 이름을 제 1경비단으로 새로 바꾼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 특전사의 경우도 소문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아, 피곤하다.” 이젠 해가 뜨면 어다 소풍이라도 나가고 싶은 따스한 5월 중순. 일이 좀 적당히 있었다면, 다른  여단장들 사단장들처럼 가끔 마실도 나가고 싶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혼란했던 사회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고. 계엄령도 오늘 17일 0시를 기해서 풀렸다.


  정치판이야 언제나처럼 복잡했지만, 민주주의란게 다 그런거지 뭐. 야당에도 여당에도 인재들은 많으니까, 정 총장 말처럼 우리는 군 본연의 자세에 집중해서 민의 군에 대한 신뢰를 새로 쌓아나가면 되는 것이다. 


  작년 겨울의 쿠데타에 대한 강경진압도 그런 군에 대한 외부의 냉정한 시선을 다소나마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뭐 정치 이야기는 잘 모르겠으니 이 이상 뭐라 말하고 싶지도 않다.


  “연대장님, 사령부에서 연락입니다.”


  “무슨 급한 일인데, 이 시간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부관의 말에 기지개를 펴다 말고 다시 물었다. 뭐 또 복잡한 문제라도 터졌나. 다행히도 부관이 하는 말은 그런 이야기랑은 거리가 멀었다. 복잡하다면 복잡하지만, 진짜 복잡한 꼴을 보고 나니 대수롭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


  “영국이랑 미국에 가 있던 연락장교단에서 보고서를 보내왔습니다. 연대장님이나 특전사령관님도 궁금해하시던, 미군 독수리 발톱 작전과 영국군 님로드 작전에 대한 보고서들입니다.


  “아, 둘 다 오래 기다렸지. 난 또 뭐 이상한 일 터진 줄 알고 말이야. 그나저나, 우리 찰리 대장님, 고생 끝났다 싶더니 또 고생이야. 참 안타까워. 이 와중에 영국 친구들이 잭팟을 터트렸으니, 로즈 그 자식은 입이 귀에 걸렸겠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 델타부대장이라는 분, 사령관님 말씀하사는거 보면 그런 참군인이 또 없던데 말이죠. 그나저나, 그럼 바로 퇴근 안 하시고 연대 들렀다 가실겁니까?”


  “급한 일은 아니니까, 보고서는 내일 보도록 하지. 그보다, 배가 등가죽에 달라 붙겠네.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자. 자네도 운전병도 아직 저녁 못 먹었지? 불고기 백반에 소주 한 잔 어때. 김 상병은 술은 참아. 알겠지?”


  그래. 꼭 큰 일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일들은 얼마든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토록 염원했던 별을 달아도, 그동안보다 더욱 수준 높은 판단을 요하는 사안들이 관문 하나를 간신히 넘은 나같은 사람들에게 들러붙으며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관료조직에서 그 구성원은 기를 써서 자기가 무능해지는 지점까지 기를 쓰고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다. 언젠간 나도 감당이 안 되는 그런 직책에 내가 올라가서, 머지않아 뒷방 늙은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이 어떤 모양이던간에, 한번 꼭 보고 싶었다. 처음 월남 1년차를 넘기고, 저기 관용차 조수석의 부관과 같은 대위 계급장을 갓 달았을 무렵의 그 초심처럼 말이다.


  “편 대위, 같이 밥이나 먹고 들어 가자고. 좋지?”


  “요즘 마누라가 맨날 집에 늦게 들어온다고 성화인데요. 장군님은 사모님이 뭐라 안 하십니까?”


  “에헤이, 아무리 집 안에선 내무부 장관이 실세라고 해도 그렇지, 밥 먹으면서 눈치 볼 필요 뭐 있어? 내 이름 팔어 그냥. 김 상병은 좋지?”


  “어휴, 저야 싸제밥 먹는 맛에 운전병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민주주의로 하자. 총원 3, 찬성 2, 반대… 는 아니지? 결정. 김 상병아. 항상 가던데로 가자?”


  아직도 제법 따뜻한 늦봄의 초저녁무렵, 그동안 자꾸 스트레스를 줬던 골치아픈 모든 것들이 다 해결된 새 시대 80년대의 첫 순간, 나는 이런 평화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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