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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짧은 조각글 - 스킨십 [사심백일장]

검은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8.19 05:48:10
조회 1907 추천 46 댓글 11
														

“박사님은 손마디가 굉장히 얇네요.”

그렇게 말하며 아이가 손깍지를 끼어오는 바람에 앙겔라는 흠칫 몸이 굳었다.
부드럽게 감겨드는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저보다 약간 높았다. 앙겔라는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그런가요?”
“네, 박사님 손 볼 때마다 생각한 건데 손이 참 예쁜 것 같아요.”

그리고선 아이는 양손으로 앙겔라의 왼손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앙겔라는 괜히 더워지는 것 같았다. 별 거 없는 스킨십이었다. 아이가 자란 나라에서는 여자끼리 이 정도 접촉은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기실 앙겔라뿐만 아니라, 레나나 메이에게도 아이는 친근하게 굴었다. 그러니까 이건 분명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일 게 뻔했다.

아이는 종종 의무실로 놀러왔다. 아무것도 없는 의무실인데 뭐가 좋아서 놀러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커피에 잘 어울리는 간식 같은 걸 가져와서는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와 같이 먹으며 앙겔라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고 가곤 했다. 작은 입으로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그 날 했던 게임 배틀전부터 시작해서 식당 밥이 맛없다는 이야기까지 잘도 떠들어댔다. 앙겔라는 아이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가 좋아서 아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그냥 듣고 있을 때도 있었다. 오늘의 주제는 앙겔라의 손인 듯 했다.

“반지 끼실 때 얇은 게 어울리겠어요. 몇 호 끼세요?”
“글쎄요……. 반지를 끼어본 적이 없어서.”
“왜요? 아, 수술하실 때 불편하시겠구나.”
“그런 것도 있고, 낄 일이 없었어요.”
“왜요? 박사님 이렇게 예쁜데, 사귀는 사람 없었어요?”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앙겔라에게 예쁘다는 말을 하곤 했다. 별 뜻 없는 걸 아는데 자꾸 가슴이 두근거린다. 앙겔라는 자꾸 제 왼손을 만지작대는 아이의 손길을 무시하자고 되뇌면서 대답했다.

“네, 없었어요.”
“주위 남자들이 눈이 없는 게 아닌 이상 박사님한테 접근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으셨구나?”
“그렇게 보여요?”
“네. 그렇게 보여요. 그래서 좋아요.”

아이는 가끔 앙겔라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좋다니, 뭐가 좋다는 걸까. 아무 뜻 없는 말일 거라는 걸 알면서 어떤 의미든 끼워맞춰보려는 제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앙겔라의 속내는 복잡했다. 연애를 못해봤다고 했더니 좋다는 게 무슨 뜻일까. 상대가 남자라면 그 뜻이 분명할 텐데 아이는 여자였고, 앙겔라보다 무려 18살이나 어렸다. 도통 뜻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앙겔라의 손을 펴서 책상에 얹어 놓은 제 손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제 볼을 가져다댔다. 말랑말랑한 볼살이 손바닥 위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까부터 진료 차트를 훑던 앙겔라의 눈이 결국 아이를 향했다. 아이의 순한 갈색 눈동자가 앙겔라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 양, 심심해요?”
“아니오. 그냥 이러고 있고 싶어서요. 방해되세요?”
“방해는 아닌데…….”
“그럼 다행이고요.”

방해는 아닌데 엄청나게 신경 쓰였다. 애써 오른손에 든 차트로 시선을 돌렸다.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자인데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온 몸의 감각이 죄다 왼손으로 쏠리는 것만 같았다. 아이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기다란 속눈썹이 새끼손가락을 스쳤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명치에서부터 올라오는 듯 했다.

“가끔은 박사님 주머니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해요.”
“…네? 주머니요?”
“박사님 가운 주머니 말이에요. 거기 들어가서 있다 보면 박사님이랑 같은 걸 볼 수 있으려나?”

뒷말은 혼잣말하는 것처럼 웅얼거리는 말투였으나 의무실은 아주 조용했기에 앙겔라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별 말 아니라고 생각하며 애써 차트에 집중하는데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앙겔라는 입안으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아이를 흘깃 바라보았다. 아이는 앙겔라의 왼손을 베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호흡이 점점 느려지는 걸로 보아 곧 잠이 들 것 같았다.

아이를 깨워 의무실 침대에라도 누우라고 하고 싶었으나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맞닿아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졌다. 잠깐의 고민 끝에 결국 앙겔라는 딱 10분만 기다렸다가 아이를 깨우기로 했다. 요새 훈련이 고되어 많이 피곤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맞닿은 온기가 속을 천천히 간지럽혔다.
긴 10분이 될 것 같았다.



끝.

written_by_blmt
사심백일장 참가할 겸 해서 짧은 거 올려봄.

원래 1.5만자 정도로 길게 써볼랬는데 오버워치 세계관 묘사는 내게 너무 힘든 일이라 그냥 올림.
재벌3세랑 주치의 외전 너무 어렵네;
리퀘 괜히 받았나봐... 꾸금 + 하루종일 방에서 꽁냥 + 달달 + 메르시 질투라니, 너무 고난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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