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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올해의백합] 우리를 위한 날갯짓 (리즈토리)

구망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1.13 03:53:00
조회 801 추천 27 댓글 4
														


<주의! 조연으로 오리지널 캐릭터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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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 때문에 나는 법을 배웠어

네가 떠난다면 나도 함께 갈 수 있도록

네가 내 안에서 본 모든 게

그저 내가 원하던 거였지



내가 제대로 한 걸까?

-"Wish my life away"


요로이즈카 미조레. 나와 같이 대학에서 오보에를 했었고, 과내에서 단연 최고였던 사람. 그랬던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려 한다.



옛날 옛적 어느 숲속에 작은 파랑새가 있었답니다. 파랑새는 항상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늘 동물들을 돌보고, 늘 혼자였던 주황색 머리의 외톨이 소녀. 파랑새는 소녀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파랑새는 사람의 모습으로 소녀에게 다가갔어요.

주황색 머리의 소녀는 친절했어요. 소녀는 파란색 머리의 소녀를 자신의 집에 지내게 해주었고, 파란색 머리의 소녀는 행복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파란색 머리의 소녀가 물었어요.

“이름이 뭐야?”

“응?” 주황색 머리의 소녀가 약간 놀란 듯이 말했어요.

“이름을 말해줘. 이름을 부르고 싶어.” 파란색 머리의 소녀가 대답했어요.

“…리즈.” 주황색 머리의 소녀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어요.

“리즈?”

"응. 그게 내 이름이야."

그 말을 들은 파란색 머리의 소녀가 “리즈! 리즈!” 하고 신이 난 채 외쳤습니다.

주황색 머리를 한 소녀는 모든 것을 가려줄 듯한 환한 웃음을 짓고 말았답니다.


현관에서 나를 맞이하는 부부에게 인사를 한 뒤, 학생을 찾으러 들어갔다. 이름은 하시모토 미치에. 이번에 내가 과외를 맡은 고등학생이다.

“안녕하세요.” 방에 들어서자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네가 하시모토 양이지?"

"네. 하시모토 미치에 에요." 나는 내 이름을 말하며 하시모토 양에게 인사를 했다. 하시모토 양은 잔뜩 긴장한 듯이 뻣뻣하게 있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나는 마주보고 있는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엄청 대단하신 분이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자 하시모토 양이 방에서 무언가를 찾더니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 선생님 맞죠?"

하시모토 양이 가져온 것은 얇은 책자 같은 인쇄물이었는데, <학교를 빛낸 사람들> 이라고 되어있는 페이지 아래에 나의 사진과 이름, 콩쿨 경력 등과 '플루티스트' 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인쇄물의 앞표지를 폈고, "키타우지 고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음, 후배님?"

"네?"

"어, 아니다. 그냥 우리 수업부터 시작하지 않을래?" 어찌됐건 긴장은 서로 풀린 것 같았다.

나는 가져온 악보를 꺼내어 하시모토 양에게 보여주고는 연주해보라고 시켰다.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연습곡이었다. 하시모토 양이 자신의 플루트로 연주를 끝마칠 쯤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나아져 있었다.

"기본기는 괜찮아 보이네. 본격적으로 지도하기 전에 확실히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거나 하면 말해주는 것도 괜찮을 거야."

"자꾸 실수를 하게 돼요." 하시모토 양이 잠시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평소에는 잘 실수가 안 나는 편인데, 중요한 파트를 맡게 되거나 하면 잘못하는 부분이 늘어나요. 이번에 학교 취주악부에서 콩쿨에 나가는데, 그게 또 플루트 파트가 중요한 곡이라서 문제라니까요.“

"그렇구나. 그럼 콩쿨 곡 연습 때 조금 더 봐줄게." 나는 하시모토 양에게 몇 곡을 더 시켜보았고, 조언을 조금 해주고 다시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레슨 첫날은 그렇게 끝났다. 나는 플루트를 내 악기 가방에 넣고, 두개의 악기 가방을 모두 챙겨 떠날 준비를 마쳤다.

"저, 선생님?" 하시모토 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아이 쪽으로 돌아보았다. 그 아이는 무언가 말하기를 망설이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

하시모토 양은 계속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계속 지었다. "저, 실례되는 말이지만." 그 아이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같은 일류 연주자는 이렇게 과외 같은 걸 하실 필요는 없으실 텐데, 왜 이 일을 하시는 지 궁금해서요."

속죄. 말을 듣고 처음 떠오른 단어였지만 다행히 그대로 입 밖에 나가는 불상사는 없었다.

"이 일이 좋아서." 그렇게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현관을 나서기 전 옆에 있는 전신 거울을 쳐다보았다. 묶어놓은 뒷머리가 약간 어긋나있어, 머리끈을 바로 고정했다. 검은색 머리카락이 몇 번 손에 닿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매우 더웠다. 여름 방학 때라 그런지 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낮에도 길에 몇몇 보였다. 얼굴의 땀을 닦기 위해 고개를 살짝 돌리자 아주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키타우지 고교였다. 나는 바로 다시 고개를 돌려 그곳을 못 본 척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다. 커튼을 치지 않았는데도 어두운 방이 아침이 아님을 알려준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한 시 반 정도, 소등이 자정 이였으니 얼마 자지 못한 셈이다. 방 건너편의 침대가 비어있음을 확인한 후, 방을 나온다.


어두운 복도 반대편 작은 방의 문을 열자, 놀란 얼굴을 한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깜짝이야. 사감인 줄 알았네."

여자가 손에 들린 플루트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미조레가 안 오길래. 여기 있을 것 같았어."

"아." 카사키 양이 자신의 침대에서 복어모양 베개를 안은 채 자고 있는 미조레를 보았다.

"미안. 연습만 끝내고 바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카사키 양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네가 미조레 룸메이트였지?

"어. 연습 열심히 하네."

카사키 양이 멋쩍은 듯이 말했다.

“그냥, 난 재능이 없으니까.” 카사키 양이 잠시 생각하다 말을 잇는다.

“저기, 뭐 좀 물어봐도 될까?”

잠에서 한 번 깨서 다시 잠들 수 있을 때까지 시간도 걸릴 것이고, 더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응, 상관없어.”

카사키 양의 방은 2인실이었지만 현재 카사키 양 혼자만 배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침대가 2개였다. 카사키 양은 노조미가 잠들어있는 쪽의 침대에 앉았고, 나는 그 반대편의 침대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사키 양은 미조레가 잘 생활은 하고 있는지, 친구는 많은지 같은 것들을 물었고, 나는 알고 있는 대로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참, 그 애 실력은 어때?

“오보에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최고야.”

“압도적으로?”

“응, 그렇게나 잘 하는 애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니까.”

카사키 양은 자신의 침대에서 잠들어있는 미조레를 잠시 쳐다보았다.

“…역시 미조레는 나 없이도 잘 하는구나.”

카사키 양의 그 말에는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허탈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노조미가 좋아.” 그때 미조레가 기습적으로 카사키 양을 안으며 허리를 팔로 감쌌다. 복어모양 베개는 이미 침대 밖으로 내팽개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잠꼬대인 듯 했다.

카사키 양이 그런 미조레를 곤란하게 쳐다보다 가볍게 웃고는 말했다. “그래. 해피엔딩이 좋지.”

“응?”

“아, 그냥 혼잣말이야.”

그렇게 대화가 끝났고, 나는 노조미를 깨워 카사키 양의 방 밖으로 같이 나왔다. 닫힌 문 쪽으로 옅은 플루트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구두의 발소리가 매끄러운 바닥을 크게 울린다. 내가 들어간 연습실에서는 관악기 파트 연습을 위해 오케스트라 인원들 일부가 악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앉을 자리, 그러니까 제2오보에 자리로 갔다. 리드 케이스에서 미리 준비한 리드들 중 두 개를 꺼내어 넣고는, 옆을 돌아 익숙한 얼굴의 오케스트라 수석 플루티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차림새 일부는 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부터 바뀌는 일이 없었다. 늘 뒷머리를 똑같은 방식으로 묶었고, 늘 진짜 표정을 숨기게끔 옅은 미소를 표정에 띄웠다. 그때 이후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악기 가방은 하나가 늘었고, 그 중 그녀가 여닫는 가방은 항상 하나 뿐이였다.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진행되었다면, 저 사람은 그래도 저 자리에 있었을까. 그녀가 나의 시선을 알아채어 나를 잠시 바라본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표정을 짓고, 그녀는 평상시와 같이 약간 쓸쓸하고 공허한 미소를 띤 표정으로 돌아와 다시 아름다운 음색을 내기 시작한다.

저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이젠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주황색 머리의 소녀와 파랑색 머리의 소녀는 풀밭을 거닐었어요. 때론 같이 바구니를 들고는 붉은 열매를 땄고, 때론 같이 누워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고, 때론 라일락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며 가지를 꺾었어요.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계속되었어요.

날이 어두워지자 두 소녀는 집으로 기쁘게 돌아갔어요. 파란색 머리의 소녀가 열매로 만든 잼을 맛보고 있는 동안, 주황색 머리의 소녀는 연보라색 꽃이 있는 가지를 수건이 담긴 물에 넣고 끓였고, 곧 예쁜 주황색 물이 나와 수건을 물들였어요.

“와! 꼭 리즈의 머리색 같아.”

파란색 머리의 소녀가 신기해하며 외쳤고, 주황색 머리의 소녀는 소녀가 기뻐했기에 같이 웃었어요.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고, 파란색 머리의 소녀가 스튜를 끓이고 있는 주황색 머리의 소녀의 등을 바라보았어요.

소녀는 깜짝 놀랐어요.

“리즈! 등에 그건 뭐야? 많이 아파?”

소녀가 바라본 등에는 새빨간 큰 상처가 나있었어요.

“아프지 않아. 그저 옛날의 어리석은 흔적일 뿐이야.” 소녀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파란색 머리의 소녀에게 대답했답니다.

“네가 이걸 갖지 않았으면.” 그렇게 소녀가 소녀를 안으며 속삭였어요.


“너는 왜 날지 않는 거니?” 소녀가 물었어요.

“어?”

“나는 숲속에서 날아오르는 새들을 아주 많이 보았어. 그만큼 날지 않는 새들도 말이야. 어떤 새는 날개가 너무 작아서, 어떤 새는 날개가 부러져서, 그리고 어떤 새는 나는 것보다 다른 것이 더 좋아서 날지 않았지. 너의 날개는 날 기에 충분해. 다른 것이 좋은 거니?”

“아니.”

“그럼 어째서 너는 날지 않는 거니?”

“무서워. 하늘이 무서워.”

“하지만 저 하늘은 푸르고, 넓고, 아름다운 걸.”

“그렇지만 하늘은 추워. 햇빛에 가깝게 올라가기 전에 날개가 먼저 얼어버릴 꺼야. 결국 무언가 놓치게 될 거고, 나는 떨어지고 말 거야.” 파랑새는 고개를 저으며 소녀에게 몸을 붙였어요.

“그래. 떨어지면 안 돼.” 소녀는 따뜻한 몸으로 새를 덮어주며 말했어요.

“고마워. 리즈.”

“절대로 떨어져서는 안 돼.” 소녀가 아주 깊고 다정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어요.

그리고 파랑새는 잠에서 깨어났어요. 다른 한 소녀는 이미 아침을 준비하러 일층의 부엌에 내려가 있었고, 혼자 침대에서 일어난 파랑새는 참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 수업 이후로 몇 번의 수업이 더 있었다. 하시모토 양이 첫 번째 수업처럼 긴장하진 않았고, 연습의 경우 별다른 실수 없이 잘 해내고 있었다.

하시모토 양이 현관에서 나를 맞이했다. 오늘은 평일이라 하시모토 양 혼자만 집에 남아있다고 했다. 하시모토 양은 방에 들어가 하고 있던 방학 숙제를 치운 후 나를 들여보냈다.

"이제 기본적인 부분은 잘 확인된 것 같네, 오늘 레슨부터는 본격적으로 콩쿨 곡을 해보자."

"네. 플루트 파트만 끊어서 해도 되죠?"

"물론. 일단 평소에 어떻게 연습했는지 알려줄래?"

"음. 일단 콩쿨 곡은 리즈와 파랑새에요." 하시모토 양이 한숨을 쉬었고, 나는 표정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취주악부 인원들이 서로 일정 조정해서 따로 방 잡고 연습하고 있어요. 원래 같으면 방학이라도 학교 문이 열려있으니까 부실에서 하면 되는데, 하필이면 방학 때 학교 일부 리모델링을 한다는 거예요. '키타우지 고교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쩌고'는 참 좋은데, 그게 하필 콩쿨이 2학기 시작하고 거의 바로일 때 한다는 거죠." 하시모토 양이 짜증을 가라앉히고 다시 말했다.

“어쨌든 그렇게 돼버려서 개인 연습으로 거의 대체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나는 최대한 긴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저 곡 하나일 뿐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어’ 하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하시모토 양이 리즈와 파랑새의 악보를 꺼냈다.

"그럼 1악장부터 쭉 해볼게요."

하시모토 양이 메트로놈을 잡은 손을 놓았고, 플루트 소리가 시작되었다. 의식이 흔들렸다. 옛날의 음색이, 그때의 취주악부에 다시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주 그리운 그 사람이 떠올랐다.

'안 돼. 그게 얼마나 많이 지난 일인데.'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시모토 양이 1악장과 2악장의 플루트 파트를 거의 다 끝내고 있었다. 연주를 제대로 듣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리즈가 파랑새에게 말했어요.

“너의 날개를 빼앗을 수는 없어. 너는 저 높고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야 해.”

파랑새는 두려워했어요.

“그러면 같이 날자. 내가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같이 가 줄게.”

리즈는 파랑새의 손을 잡았고, 한 발짝, 한 발짝, 구름을 밟으며 높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3악장이 시작되었다.

시작을 알리는 오보에 독주 소리가 들려야 할 부분에 메트로놈만이 딱딱거리며 울부짖었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 내가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그랬다면 그 애는 지금쯤.

'옛날 일로 남겨야해. 잊어버려.'

이성이 도저히 말을 듣질 않았다. 손이 흔들렸다. 전부 내 탓이었다. 내가 그 애를 몰아세워 버렸다. 내가 그 애에게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내가 그 애를 죽게 만들었다. 들려서는 안 되는 악기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귀를 막아버렸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하시모토 양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아. 그저 오늘 선생님 상태가 조금 안 좋은 것 같네. 이번 레슨은 여기서 끝내도 되겠니?” 내 목소리가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둘은 같이 하늘을 오를 수 없었어요.


“네. 선생님, 그런데 정말 괜찮으세요?”


리즈가 그만 구름 하나를 밟지 못하고 떨어졌거든요. 아래로, 아래로, 저 멀리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요로이즈카 선생님?”

"괜찮아. 정말. 나중에 보충으로 수업을 한 번 더 잡아야겠다. 미안하구나." 나는 그렇게 대답하곤 짐을 챙겼다. 플루트를 챙기고, 옆에 있던 나의 낡은 오보에 가방까지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집었다. 현관 옆의 거울을 보았다. 머리카락의 염색이 풀린 부분에 푸른빛이 감돌았고, 붉은 눈동자에 눈물이 조금 어려 있는, 아직도 한없이 나약한 사람이 보였다.

나는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다.



파랑새는 알고 있었어요. 리즈가 자신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러니 같이 가주겠다는 결정은, 그건 실수도, 착오도 아닌.


“너의 오보에를 완벽하게 받쳐줄게.”


사랑으로 내린 결단이었죠.

파랑새는 떨어진 리즈를 보며 원망의 말을 내뱉었어요.

"신님, 어째서 제게 날개를 달아 주셨나요.“

그렇게 원망은 파랑새의 날개와 함께 하늘에 버려졌답니다.



두 소녀는 일과를 끝내고 집의 이층의 작은 침대에 누었어요. 파란색 머리의 소녀가 방에 들어오면서 가져온 램프를 껐고, 주황색 머리의 소녀의 오른편에 누우며 말했어요.

"리즈가 정말 좋아."

"나도. 잘 자, 내일 보자."

"내일 보자."

그 말과 함께 파란색 머리의 소녀가 그대로 잠들었고, 주황색 머리의 소녀는 잠시 뒤척이다 자기 자신을 껴안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뱉었어요.

"나도. 리즈가 정말 좋아.“



카사키 노조미는 죽었다. 과로사. 그 세 음절뿐인 단어가 내 심장을 깊숙이 찢어놓는 듯 했다.

"너의 오보에를 완벽하게 받쳐줄게.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줘."

그 말을 내가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그 말이 콩쿨에서 힘내자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노조미가 한 결심이 그렇게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나는 정말 몰랐다.

결국 전부 나의 탓이라는,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너의 장례식에서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만났다. 모두들 나를 위로해주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너무 깊숙한 곳으로 떨어져 그 위로들이 닿질 않았다.

"미조레의 오보에가 좋아.“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오보에를 불려 할 때마다 너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쿡쿡 찔러댔다. 그 아픔이 도저히 적응되질 않았다.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노조미 너도 싫어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아주 비겁한 방법을 썼다. 너를 따라 흉내 내는 것이었다. 너를 입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그렇게 밉지 않았다. 적어도 그 동안에는, 나는 내가 절대로 싫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너를 잊으려고 했다. 너와의 달곰씁쓸한 추억들을 최대한 마주하지 않고 무시했다. 노조미는 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 노조미를 위해서, 나는 노조미를 등지고 도망쳤다.

우산 없이 비에 계속 젖어가며 달리는 나날이었다.



카사키 양이 죽은 뒤부터 미조레는 오보에를 잡는 것마저 괴로워했다. 당연히 그녀가 실기 시험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 리 없었고, 결국에는 휴학을 신청했다. 휴학하고 난 뒤 그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교수님과의 상의 후 플루트로 전공을 바꾸었고, 듣기로는 플루트 중에서도 여전히 가장 우수했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보이스트 요로이즈카 미조레는 사라졌다.

나는 다시금 수석 플루티스트의 자리에 오른 그녀와 그녀의 낡은, 그 때 이후로 절대 열리는 법이 없었던 남색 오보에 가방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이젠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어느 비 오는 날의 저녁이었어요.

빵집을 하는 알토 할아버지는 걱정스런 얼굴을 했어요. 원래 이곳에 늘 일하러 왔던 소녀, 리즈가 며칠 전부터 오지 않았거든요. 할아버지는 영업을 끝내기 위해 도구들을 원래 위치로 정리하고 있었어요.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요.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어요.

문 앞에 있던 것은 온몸이 젖은 채로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파랑머리 소녀였어요.

“리즈가… 리즈가 많이 아파요.”

소녀가 힘겹게 말했어요.

그 날 이후로 소녀는 리즈를 대신해서 빵집에 와서 일했어요. 소녀가 빵집에서 일하는 동안 소녀의 눈물자국은 작아졌어요. 모든 것이 익숙해질 무렵, 파랑머리 소녀는 빵집에 나오지 않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누군가 다시 문을 두드렸어요.

열린 문 앞에는 연한 노랑색 앞치마에 밤색 숄을 한 주황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소녀가, 늘 오던 소녀가 현관 앞에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소녀를 잠시 살펴보다 말했어요.

“…키가 많이 줄었구나.”

주황색 머리의 소녀가 억양 없는 말투로 말했어요.

“그 애는 이제 안 온다네요.”

할아버지는 "그렇구나." 라고 말하고는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할아버지는 잘 알고 있었고, 주황색 머리의 소녀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렇게 평온함은 다시 모두에게 찾아왔답니다.

아주 오랫동안요.



하시모토 댁에서 나온 후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갔다. 나는 아직도 나약한 사람이였다. 고작 같은 고등학교인 것에, 고작 그때와 같은 곡인 것에 그렇게나 동요하다니. 아직도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서, 조금 다른 것을 생각해보았다.

하시모토 양의 실력은 뛰어난 편이였다. 다른 악기와의 협주에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 자신의 실력은 아주 준수했다. 이어지는 실수도 연습이 부족해서가 아닌, 자신감의 문제로 보였다. 만약 하시모토 양이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믿을 수 있게 된다면, 실수도 자연스레 줄어들 터였다.

그렇게 다른 과외 생각으로 생각을 환기시키며 길을 걷는데, 큰 바퀴 소리가 났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돌아보았다.

키타우지 고교의 운동장에 자재들을 실은 트럭이 여럿 보였다. 그러보니 방학동안 학교 리모델링을 한다고 하시모토 양이 말해주었다. 학교의 상태를 보니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리모델링이 시작하고 나면, 취주악부의 부실도, 도서관도, 과학실도. 추억이 담긴 공간들이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가야할 곳을 두고 발이 다른 쪽으로 향한다.

교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저 미친 짓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다고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시간만 낭비할 뿐인데. 그냥 돌아가는 게 낫다고, 추억을 파헤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그저 아무 쓸모없는 그리움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머리로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몸은 절대 생각을 따라주지 않았다.

복도로 들어서자 아주 익숙한 것들이 내 눈에 들어온다. 복도와 교실 바닥의 마룻바닥, 나무로 된 복도 창틀. 다행히도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보러 여기 온 것이 아니다. 다른 교실에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로 복도를 돌아 목적지로 떠난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비어있는 창가의 수조였다. 플라스크와 샬레, 그 외에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초자로 된 실험기구들이 몇몇은 종이 상자에 정리된 채, 몇몇은 진열대에 그대로 놓인 채로 있다. 정리 중인 모양이다.

이끌리듯 수조 앞으로 몸을 움직인다.

수조 표면에는 너와 전혀 닮지 않은 얼굴이 비친다.

수많은 기억들이, 추억들이 잔잔한 수면을 헤집고 올라온다.

그렇게 나는 지난날의 흐릿한 발자국을 되짚어 걷기 시작한다.

“노조미는 나의 전부야.”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착각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노조미는 나에게 특별해.”

아무리 잊으려 해도 너를 잊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노조미에겐 아무 것도 아닌 일도 나에겐 모두 특별해.”

네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아는데.

“노조미가 아니었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야. 악기도 안 했겠지.”

그래서 너를 잊으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잊는 것을 두려워했다.

“노조미가 말을 걸어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다정하게 대해줘서 기뻤어.”

이제는 너에게서 도망치지 않아보려 한다.

“모두를 이끌어주고 늘 즐거워 보여서 대단하다고 생각해.”

너를 등지고는 너를 안을 수 없으니까.

“노조미의 웃음소리가 좋아.”

더 이상 너를 기억하려고도, 잊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노조미가 말하는 게 좋아.”

지금 여기 네가 없는 것이 나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노조미의 발소리가 좋아.”

이제 너의 흔적들은 나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노조미의 머리카락이 좋아.”

왜냐하면, 정말 좋으니까.

“아직도, 노조미의, 노조미의 전부가 좋으니까.”

나는 팔을 뻗어 현재의 우리를 품 안으로 맞이했다.

“고마워, 노조미. 고마워.”

주황빛의 환한 노을빛이 창문을 통해 비쳐 들어와 나를 감싸주었다.



집에 돌아와 마음이 한결 나아진 채로 나는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가방에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처음으로 보였던 것은 아름다운 파랑색 깃털이었다.



다음 레슨 때가 되었다. 찾아가는 길은 여전히 더웠지만, 예전에 비해 어딘가 마음속부터 바람이 살랑이는 듯 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저번과 같이 하시모토 양이 혼자 나를 맞이해주었다.

“선생님, 지금은 좀 괜찮으세요?” 아마 저번에 동요했을 때 크게 걱정을 끼친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이젠 정말 괜찮아. 그때 조금 힘들었던 거란다.”

“저, 그때 이후로 계속 연습했는데도 여전히 실수가 하나씩 생겨요.”

“하시모토 양의 연주는 정말 훌륭해. 자신감을 가지고 하면 분명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하시모토 양은 여전히 불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저번에 1,2악장 파트는 잘 하는 걸 들었는데, 3악장이 문제니?”

“네. 아무래도 플루트가 메인이니까요.”

“그럼 만약에 오보에랑 같이 하게 되면, 괜찮겠어?”

“아마요. 그런데 단체 연습은 아직 일정이 잘 안 잡혀서 큰일이에요.”

나는 두 번째 가방으로부터 오보에와 오래된 악보를 꺼냈고, 하시모토 양은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파랑새는 소녀에게 말했어요.

“아직도 하늘이 무섭기는 마찬가지야.”

“내 손을 잡아.” 소녀가 더 이상 숨기는 표정이 아닌, 정말로 웃음을 지으며 다정하게 말했어요.

파랑새는 소녀의 손을 꼭 잡았고 소녀는 날개가 뜯겨나간 등에서 새로 자라난 날개를 펼쳐 파랑새와 같이 날기 시작했어요. 둘은 하늘 높게 떠올랐어요.

파랑새가 파랑새에게 말해주었어요.

“무서우면 밑을 보지 않아도 괜찮아. 넌 아래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날 수 있어. 네가 추워하면 안아 줄테고, 네가 떨어질 것 같으면 잡아줄게. 어서. 네가 어느 방향으로 가도 괜찮아. 네가 원하는 곳이라면 분명 좋은 목적지일 테고. 분명 아름다운 비행이 될 거야. 한번 네 마음껏 날아보렴.”

그렇게 두 쌍의 날개가 하늘 위로 펼쳐졌어요.


분명 플루트가 강조되도록 오보에가 받쳐주는 연주는 원래 이 곡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내가 지도했던 아이는 이 첫 번째 합주에서 플루트 파트를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소화해 냈고, 서툰 연주였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연주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더 이상, 마음 한 구석이 아픈 일은 없었다. 레슨이 끝나고 현관문을 나섰을 때, 빛바랜 악보에 쓰인 '날아라!' 라는 오래된 글씨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다가, 이내 날갯짓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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