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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ㅇㅇ(14.43) 2019.03.25 00:17:35
조회 646 추천 30 댓글 9
														

※ 뒷부분 또 더 있어....또 내일이나 모레쯤 옴/  한번에 읽으실 분들은 그때 싹 이어서 재업할 생각이므로 아직 읽지 말 것!







[하나메르하나]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 문장이 마음에 박혀 든다. 하나는 문득 고개를 든다. 이제는 세상의 반만 보이는 시선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꽃을 본다. 사각형의 프레임 속 유리창에는 제가 비치고, 손에 든 편지가, 또 그 너머 봄꽃이 비친다. 각기 다른 곳에 있는 것들이 그 안에 모두 담기는 것이 새삼 신기해 한참을 그러고 본다.

하늘이 맑다. 봄비가 조금씩 부슬이던 것도 잠시, 하늘이 맑다. 기다리는 이가 있다. 깨어난 이후로 하나는 기다리는 그 사람이 오기를 기다린다. 다시금 손에 든 문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참으로 그러하다. 하나는 정말이지 그만큼 사랑스러운 이를 본 일이 없다. 10대의 풋사랑도, 20대의 첫사랑도 이렇게 사랑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는 그때의 사람들에게 미안한 동시에 고마웠다. 나는 그 사랑에 자랐고, 그래서 그만큼 사랑스러운 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었으므로.

손끝으로 지면을 더듬는다. 만져질 리 없는 문장에 손가락이 베일 듯하다. 아릿한 감각이 든다. 하나는 편지를 접는다. 동시에 약간 어두워진 귀 대신 예민해진 감각이 문 너머에 누군가를 알아챈다.

문이 열린다.
아나 아마리다.


"사령관님."
"되었다. 이제 은퇴했는데, 사령관 소리는."



아마리가 손에 들린 봉투를 하나에게 안긴다. 하나가 빙긋 웃는다. 봉투 속에는 그렇지 않아도 까만 세상의 반을 가려줄 물건이 있다. 얼핏 보면 아마리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 있다.



"시커멓네요."
"내가 볼 땐 네 속이 더 검은데."



하나가 열없이 웃는다. 딱히 반박은 하지 않는다. 등에 힘을 푼다. 아나 아마리는 속으로 혀를 찬다. 그러잖아도 가벼워 날아갈 것 같던 애가, 저 부질없는 표정이라니.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났는데 어째 꼴도 보기 싫었던 것들이 더 자주 보이누. 그녀는 근처에 있던 1인용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하나가 입가를 어색한 듯 문지른다.



"소식은 없나요?"
"수색 중이다."
"……."



수색이 벌써 5일째 접어들었는데. 하나가 가만히 날을 센다. 오늘로 5일째가 맞았다. 아마리는 이어 몇몇 소식을 전했다.


하나는 맞장구를 친다. 그러나 속으로는 여전히 날을 센다.


다친 사람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지?

아니, 상처를 입긴 한 걸까. 어쩌면 무사한 모습으로, 단지 지하 깊숙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아직 발견을 못 한 걸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사실 하나는 알 수가 없다. 그 사람의 마지막을 확인한 것이 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습 경보가 울렸을 때 하나는 의무실에 있었다. 다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손에는 편지를 들고서. 언제 건네줄지,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지 고민하면서. 그 사람은 하나를 보며 늘 그렇듯이 팔을 벌렸고 하나는 그 품에 안겼다. 둘만 있는 의무실에서 때때로 웃고, 장난도 쳤고, 애정어린 키스도 했다.


하나는 몇 번을 망설였다. 지금? 아니면 다음 외출 때? 레스토랑을 빌리는 정석 같은 프러포즈가 좋을까? 하지만 저번에 같이 본 영화에서, 조용하고 편안한 프러포즈를 한 주인공이 좋다고 했는데. 그래서 이렇게 편지도 썼다.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 당신이 내게 해 준 것처럼, 솔직하게.


그 사이 그 사람은 어쩐지 어색한 하나의 태도에서 무언가를 눈치챘던 모양이었다. 하나를 다시 품에 안은 그녀가 순식간에 편지를 가져갔다. 어어, 하다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하나가 바둥바둥 편지를 되찾으려 했지만, 그 사람이 짓궂게 웃어 버리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편지를 내주었다. 차라리 일찍 내 손으로 줄걸. 멋없다 진짜, 하고 속으로 제 탓도 했다.


그 순간 울린 쨍한 경보음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굴이 굳었다. 조심해요. 박사님도요. 열어보지도 못한 편지는 그 사람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비전투 인원들과 의무병들이 먼저 퇴각하고, 하나는 전선 구축에 앞장섰다.


모두가 방심하고 있었다. 전쟁의 종결이 선언된 지 1달이 지난 지금, 예전보다 급박한 호출이 줄었고, 마음도 느슨해져 있었다. 고작 카메라 앞에서 글자 몇 개 읽는다고 진짜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닌데도.


지부 몇 군데가 동시에 공격받았다. 서로 연락망이 얽힌 곳이어서 지원 요청에도 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건 습격이 시작된 지 10분이나 흐른 뒤였다. 이미 피해가 나기 시작한 때였다.


후방에서 터진 폭음에 하나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거기서부터는 기억이 없다. 눈을 떴을 때 이미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다. 본부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는 동안 들리는 소식에, 하나는 제가 살아있는 게 용하다 싶었다. 기지의 반파. 다수의 희생자와 부상자. 책임자의 사퇴. 그리고 실종….


의무관들이 퇴각하며 부상자들을 옮기는 사이 그 근방으로 포탄이 터졌다. 몇은 폭발에 휩쓸리고 몇은 간신히 퇴각로에 올랐다. 그리고 나머지, 부상자 1명과 그 사람을 포함한 의무관 2명은 여전히 소식이 없다.


앙겔라. 앙겔라 치글러. 사랑스러운 사람. 당신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으면 어떡해. 편지를 가져갔으니 대답을 해주어야지. 이제 하나에게 남은 것은, 몇 번이고 고쳤던 흔적이 있는 실패한 편지들뿐이었다. 눈의 반이 실명된 것도, 다리 한쪽을 아직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것도 별로 상관이 없었다.

앙겔라가 여기에 없다.
지독하게 현실감이 떨어지는 문장이었다.


아마리는 하나의 기계적인 대답을 눈치챘다. 한숨을 가볍게 삼킨 아마리가 그걸 지적하는 대신 좀 더 희망적인 말을 했다.


"내일이면 지하로 작업이 들어간다더군. 설계상 지금까지 작업한 곳 중에 공간이 가장 넓은 곳이니까, 아직 발견 못 한 이들도 대부분 거기 있을 거야."
"……."
"하나."



타이르듯이 어르는 말에 하나는 아마리의 얼굴을 멍하니 살핀다. 친한 사이였을 텐데, 어쩌면 나보다도 속이 상할 텐데.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저 얼굴은 사령관이라는 자리가 만든 것일까. 아니면 군인이라 그런 것일까. 그게 아마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속에서 열이 치밀어 오른다. 저번에는 감정을 못 이기고 화를 내버렸다. 결국 병문안을 온 맥크리를 쫓아버렸지. 그는 애써 위로하는 말과는 달리 눈에서 이미 포기한 듯한 기색이 엿보였다.


하나가 괴로운 것은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나가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이 실종에 희망이 거의 없다는 걸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앙겔라 치글러였다. 다른 이도 아닌 앙겔라였다.


하나는 군인이 될 수 없었다.


"……."


하나는 그냥 눈을 감아버린다. 아마리가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못났다. 정말로 못난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발."


부탁이니 내 곁으로 다시 와 줘요, 앙겔라. 점점 더 내가 아니게 되는 거 같아.












**



정말, 누가 더 사랑스러운지.



앙겔라는 속으로 불완전한 편지의 내용을 곱씹었다. 깜깜하고 폐쇄된 이 공간에서 앙겔라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손에서 바스락거리는 이 종이 한 장 덕분이었다. 건너편에서 들리는 숨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다가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숨소리만이 들린다는 걸 알아버린 그때. 앙겔라는 간절하게 빌었다.


그와 내가 미치지 않기를.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번갈아 가며 잠을 청했고, 그 사이 구조대가 오지 않았다는 것만 알 뿐.


포탄이 터질 당시 앙겔라는 마지막 헬기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한발 앞서 공격을 눈치챈 동료가 아니었다면 앙겔라도 폭발에 휩쓸렸을지도 몰랐다. 지하 창고로 급하게 피신하자마자 곧 굉음과 함께 입구가 함몰되었다. 엄폐물 삼은 책상 밑에는 앙겔라까지 있을 자리가 없어 급하게 다른 쪽 벽 모서리로 달린 순간, 지하의 천장이 무너져내렸다.

정신을 차린 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축축함 때문이었다. 배관이 터졌는지 수돗물이 벽면을 타고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동료와 부상자도 무사했다. 아니, 무사했었다….
그 둘과 앙겔라 사이는 콘크리트 잔해로 막힌 것 같았다.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아 온통 시커먼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알아낸 사실이었다. 곧 구조대가 도착할 거란 희망 속에 그들은 어둠을 버티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는 괜찮았다. 부상자의 숨소리가 멎기 전까지는. 앙겔라는 차라리 자신이 불침번을 서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료는 앞으로 몇시간 정도는 더, 평온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체감상 교대하기로 한 시간은 한참 지났지만 앙겔라는 그냥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좀 더 순식간에 끝날 줄 알았지. 앙겔라는 고개를 뒤로 살짝 젖혔다. 머리 뒤로 단단한 벽이 느껴졌다. 몸에 힘이 없다.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수돗물로 수분은 조금씩 보충했다지만 음식이 들어가지 못했으니.

유언장에 무슨 말을 했더라. 종전 직전에 고쳐쓴 유언장이었다. 하나를 만난 후 처음으로 고쳐 쓴 것이기도 했다.

……하나. 아, 하나.

몇번이고 만졌던 품 속의 편지를 매만졌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색하게나마 입매가 휘었다.
웃음소리가 떠오른다. 한껏 붉어진 얼굴이나, 그녀가 좋아하던 것들, 그리고 어느 주말의 아침도. 앙겔라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든 하나의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조용히 자리에서 빠져나와 유언장을 고쳤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군인이었다. 최전방에 서는 그들에게 있어 유언장을 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늘 뒤를 생각해야 했으니까. 앙겔라는 거기에 하나를 적었다. 조금이나마 자신을 기억해주었으면 했으므로. 그리고 언젠가 깨끗이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그 애는 미래를 약속하려 했다. 유언장 대신 편지, 어설픈 독일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이가 앙겔라의 눈앞에 있었다. 의무실에서 둘만 남으면 으레 그렇듯이 하나를 품에 안으려 할 때 앙겔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 라인하르트의 주위를 뱅뱅 맴도는 그 애를 봤었다. 그 애의 방에서 쓰다 만 독일어 편지들이 침대 밑에 굴러다니는 것도 봤었다. 이제는 다 자란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꼭 그렇게 어설픈 구석이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저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고 한다. 비록 품속의 편지는 보지 못했지만, 침대 밑에서 구겨진, 미완성의 그 구절들로도 앙겔라는 충분했다. 실은 편지를 받고, 열고, 그래서 전부 읽고 나면, 곧장 반지를 건네줄 생각이었다. 아마 지금쯤 앙겔라의 사무실 책상 서랍 가장 아래쪽에 있을 테지. 각자의 탄생석이 작게 박힌 솔리테어 링이었다.

그걸 당신에게 건네주고 싶었다. 한 번쯤은 앞을 보고 살아 보겠다고, 거기에 함께 해 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치글러, 깨어 있어?"
"…네."
"내가 좀 오래 잔 것 같은데, 슬슬 교대하지. 그리고 미안한데 당분간은 너랑 나랑 교대로 하는게 좋을 것 같아. 이 친구가 지금 상태가 좀 별…"


텁텁한 말소리는 거기서 끊겼다. 앙겔라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어두운 밤. 차라리 눈을 감으면 그리운 이라도 볼 수 있었다.

나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말하는 예쁜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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