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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미사카논

ㅇㅇ(182.212) 2019.03.27 23:52:38
조회 963 추천 1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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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


조용한 도서관은 무미건조하다. 사각사각한, 펜이 움직이는 소리와 페이지가 팔락거리는 소리만이 잡음처럼 섞여들어 온다. 나는 그 속에 포함되지 못하고 홀로 표류한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둥둥, 당신이 없으면 나는. 애꿎은 문제집 끝 부분이 구겨진다. 그제야 퍼뜩 되돌려 놓으려 애를 쓴다. 구겨진 쪽들은 뿌리를 내린 듯 요지부동이다.


"미사키, 뭐 하고 있었어?"

"아. 카논씨... 아무것도. 가져오신 거에요?"

"응. 사서님이 알려주신 곳이랑 다른 책장에 있었어, 조금 오래 걸렸네."

"괜찮아요."


무엇이 괜찮은지는 모른다. 습관이 되어 버린 말 하나를 불현듯 내뱉는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더 돌려 책을 가지고 온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은 미소 지은 채로 옆에서 스쳐온다. 늘 그랬던 것처럼 조심스레 다가온다. 옷자락이 스친다. 자국이 남듯이 오소소한 소름이 돋는다. 무미건조하던 실내에 싱그러운 향기가 퍼지기 시작한다. 나는 다만 쓰게 웃는다. 그녀는 오늘 향수를 뿌린 적이 없다.

잠시간 서로는 그 앞에 놓인 문제집만을 바라보며 연필을 놀리기 시작한다. 나는 당신에게 가려는 시선을 붙잡아 다시 문제로 내려놓는다. 시야에 들어오는 문제는 직관적이다. 공식에 맞춰 대입한 숫자들은 곧 하나의 답으로 귀결된다. 내가 지금 처한 문제에도 공식이 있던가. 결국, 시선은 검은색 파도를 넘어 당신에게로 향한다. 그 사이를 어지럽게 오간다. 갈 곳 잃은 손이 방황한다. 그런 의미 없는 잡념에 한순간 펜이 멈추고 떨어진다. 나무 바닥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당신과 나 사이에서 증폭된다. 당신은 그제야 놀리던 손을 멈추곤 나를 바라본다. 눈만이 힐긋 움직여 펜을 바라보곤, 다시 나를.


"문제가 어려워?"


그녀는 옆으로 나를 바라보며 질문한다. 파란 물결에 가려 보이는 얼굴이 약간 붉다. 투명한 살결은 잔망스레 비친다.


"계속 같은 페이지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와중에도 당신은 나를 신경 쓰고 있다. 과할지언정, 나는 그런 관심이 반갑다. 당신의 시선을 끄는 것이. 주머니에서 놀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옷감이 강하게 쥐어진다. 꺼끌꺼끌하다. 당신은 어떨까. 당신의 손은 과연 어떠할까.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집중이 조금 안 되네요."


그리고 다시 침묵. 당신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디 아픈거야?"



물어오는 그녀의 눈이 동그랗다. 놀란 기색으로 당신은 물어온다. 카논씨를 바라보느라요. 수없이 삼켜낸 말들로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나는 마주치려는 눈을 피한 채로 고개를 내린다. 다시 문제집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마, 여기서 내가 그렇노라 답하면 당신은 이 모든 것을 관두곤 그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만을 바라보기 시작할 것이다. 쉬이 예상되는 결과는 매력적이다. 다만 나는 스스로, 또 그녀에게 더한 거짓말들로 관계를 쌓아올리는 것이 경멸스러웠다. 이것은 진실로 거짓말쟁이의 위선이다. 대답 없는 질문에, 또 숨을 연달아 내쉬는 내 모습에 당신은 안절부절못한다. 호흡이 일일이 끊어진다. 당신의 표정이 궁금한데. 더는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잠시, 물 한 잔만 마시고 올게요. 죄송해요 카논씨."


단숨에 말을 내뱉고 나는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곤 걸어나갔다. 또다시 현상유지다. 나는 경계에서 당신을 끌어들이려 안간힘이다. 유혹. 나는 당신이 지금 내게 다가오기를 바란다.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되자 나는 당신을 바라본다.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까. 당신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작게 손을 흔든다. 그럼 그렇지. 자조 섞인 비웃음이 자신을 짓밟는다. 겁쟁이는 한없이 작아져만 간다. 제 걸음 소리만이 귓가를 맴돈다.

#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썩 맑은 날씨였다. 이렇다 할 거 없이, 기억에 남지 않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흘러갔을 하루. 당신을 제외하면.
이제 곧 졸업의 때가 다가오는 그녀였다. 멤버 한 명이라도 없는 하로하피는 하로하피가 아니라는 코코로의 말이 있었기 때문에, 새해의 시작부터 라이브의 나날들은 잠정 중단된 상태였다. 당연히, 당신과 내가 만나는 횟수도 점점이 줄어간다. 달갑지 않은 사실, 내게는 그것을 거스를 용기조차 없었다. 자연히 당신과 나는 점차 서먹해진다. 그러던 나날이였다. 선생님의 부름으로 스치듯이 당신이 있을 복도를 지나치던 때였다.


'아, 카논 선배...'


홀로 걸어가는 그녀에게선 어떤 틈도 보이지 않는다. 아쉬움. 질투, 그리고. 안도감. 그녀의 곁에서 다른 누구도 보이지 않았을 때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반갑다는 듯이 움직이던 손이 어정쩡하게 멈춘다. 손가락이 차례로 접힌다. 들키지 않았기를 바라며, 나는 천천히 발을 돌려 뒤로 걷는다.


"아, 미사키, 어쩐 일이야?"


시선이 맞부딪힌다. 돌아가던 고개는 멈추고 자연스레 괴상한 몸짓이 되어 버린다. 홀로 앞에서 위치하는 오른발. 제동이 걸린 몸은 더 나아가려 안간힘이다. 나는 점차 무너진다. 세상이 반전된다. 그 세상에 당신이 자리한다. 시야에 그녀만이 가득하다.


"조심해, 미사키. 여기, 꽤 미끄럽거든."


허리춤에 느껴지는 당신의 손길도, 허벅다리를 스쳐 지나가는 스커트의 감촉도. 내 위에 자리하는 자주색 눈동자도. 흘러내리는 바다 결도. 흔들흔들, 당신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숨결이 닿는다. 채 삼켜내지 못할 만큼 달다. 당신은 멋쩍게 입가를 휘어낸다. 뭇 주변을 환기하는 싱그러운 향기가 퍼진다. 나는 바닥까지 닿은 널브러진 손을 들어 올려 시야를 차단한다. 힘껏 참아왔던 한숨이 터져 나온다. 그제야 당신은 나를 떼어낸다. 나는 멀어져가는 온기를 느낀다. 당장에라도 손에 들어올 것만 같다.


"잠깐, 뵐 분이 있어서."


당신에게 완전히 떨어지자 체온은 급속히 낮아진다. 분위기는 얼어붙는다. 아마 지금쯤, 서로가 그 행동을 자각했을 테니까. 기다란 복도에서 나는 당신의 발끝만을 바라본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를 지배한다. 그리고 그녀.


"그랬구나. 조심해서 가봐, 늦겠다."

"...네."


나는 사죄의 말을 또다시 삼킨다. 넘어진 것,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어 버린 것, 그리고 또.
그녀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난다. 처음엔 약간 빠르던 걸음은 점차 그 속도를 높여간다. 마침내 달리기와 비슷한 속도로. 빠르게 엉킨 머릿속은 답답하다. 호흡은 가빠 목으로 올라오는 걸 겨우 내려보낸다. 이 와중에도 나는 호의라기엔 너무도 뜨거웠던 당신의 온기를 자각한다. 아직도 호흡에 걸친 듯 설탕 내가 코끝에 맴돈다. 달리기 탓인지 얼굴이 뜨겁다.

결국 하교 중에 그녀를 만나 따로 약속을 잡았다. 당신은 그때야 허리춤에 있던 손을 입으로 가져가고는, 소리 내 웃었더랬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 다만, 이 문제가 그녀를 마주하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던걸 지도 모른다.

#

주종일 흘러갔던 모든 순간이 꿈결처럼 뿌옇다. 그 속에 당신만이 존재한다.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은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린다. 손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그제서야 나는 깨어난다. 소매 부분이 처량하게 젖어있다. 제 꼴이 답답하다. 따라진 물을 흘려 내려 보낸다. 당신의 걸음 소리가 귀에 잡힌다.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아마도 나만이.


"미사키, 괜찮아?"

"조금, 나아졌어요. 괜찮아요."


몇번이나, 나는 당신에게 걱정 받고 있다. 다만 그 근원이 궁금할 따름이다. 나는 또다시 선 위에서 당신을 보고있다. 한걸음, 아니 어쩌면 영원히 닿지 않을.


"카논씨, 실은 저."

"공부하는 거, 힘들어?"


서로의 말이 스친다. 무언가를 말하려던 당신은 그대로 멈춘다. 잠시간 그렇게 우리는 침묵한다. 주변이 완벽히 조용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까지. 무지에 대한 두려움. 결심의 순간까지도 나는 겁쟁이인 채로 그대로다. 이 순간. 지금부터는, 내가.


"아뇨, 그렇지 않아요. 사실 공부보다는 저. 카논씨를 만나고 싶었어요."


아마도, 모든 것이 새로울. 조심스레 손을 그녀에게 가져간다. 물기가 있는 손은 차갑다. 그녀의 손을 잡아낸다. 단숨에 타 없어질 정도로 뜨겁다.


"카논씨만 괜찮다면.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저. 저쪽 큰 거리로 나가다 보면."


한번 내디뎌 보려 한다. 끝없이 표류할지라도. 손가락이 얽힌다. 당신은 내 눈을 바라본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당신은 가늘고, 또. 탄탄하다. 상상했던 그대로의 것. 굳게 닫혀있던 당신의 입이 열린다.


"미사키는 참, 한결같구나."


소매부분의 펭귄 장식, 커프스 단추. 머리띠까지 한껏 꾸민 채로. 저번의 나는 단순한 공부를 목적으로 당신을 불렀을 텐데. 오늘 만난 이후로. 당신의 웃는 얼굴을 나는 처음 마주한다.


"나도, 괜찮아. 미사키. 신경 써줘서 고마워."


짧은 대답, 서로는 그 말속에 숨은 수많은 의미를 알고 있다. 처음 느끼는 당신의 온기를 나는 그제야 만끽한다.


----


미사키는 여친 많아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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