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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치사토 생일 기념 - 벚꽃의 모습

NiTR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4.06 21:24:28
조회 560 추천 18 댓글 3
														


시라사기 치사토를 수식하는 말 중 가장 올바른 말은 ‘항상 바쁜 사람’일 것이다. 그녀의 스케쥴은 무려 세 달 전부터 가득 차 있었고, 그건 생일이라도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생일’이기에 더더욱 바쁜 일정이 그녀의 수첩에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생일 당일이자 토요일인 어제도 연극 연습, 그리고 일요일인 오늘은 점심부터 생일 기념 팬미팅. 지금같이 해가 질 시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여유가 생길 정도였다.


그리고 카논이 ‘평소처럼’ 헤매며 치사토의 집 앞에 도착하자 어느덧 8시가 다 되어있었다.



아르바이트 동료이자 친한 친구인 아야에게 듣기론 내일 점심시간에 조퇴해 다시 연극의 연습을 하러 간다고 했다. 즉 오늘의 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시간이 치사토의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하지만, 카논은 쉽사리 초인종을 누르지 못했다.


올해 들어, 아니 작년 가을부터 치사토의 행동은 명백히 이상했다. 그녀는 항상 카논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를 마실 때도, 수족관에 갔을 때도 치사토는 바로 옆에서 그녀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처음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저 우연히 눈이 마주친 것 뿐 이라고. 하지만 곁눈질을 할 때마다 눈이 마주치고, 카논을 향해 방긋 미소 짓는 치사토의 모습은 명백히 이상했다. 그리고 치사토의 그런 행동을 보고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는 카논 자신 또한.


이런저런 생각에 카논의 몸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꽃다발의 비닐이 바스락 소리와 함께 구겨지고 나서야 자신의 행동을 눈치 챈 카논은, 그럼에도 여전히 주저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맑은 차임벨 음이 들린 직후 안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작게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곧 문이 열렸다.


“어서 와 카논.”


햇님보다 더 눈부신 금발의 친구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웃었다. 반 쯤 열린 문틈으로 불이 꺼진 실내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인기척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광을 이상하게 여긴 카논이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안을 엿보는 카논의 시선을 차단하듯 크림색의 커튼이 길게 늘어졌다.

“카논?”

“아, 응.


정신을 차린 카논이 대답했다.


생일 축하해, 치사토쨩.”

“어머, 멋진 꽃다발이네. 정말 고마워 카논.”


치사토의 미소에도 카논의 양발은 제자리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우두커니 선 채 불안한 시선을 던지는 친구를 가만히 바라보던 치사토는, 이내 웃으며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여느 때보다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차림을 하고 있었다. 성인 남성들이 입고 다니는 와이셔츠 같은 기다란 흰 원피스 위에 언제나의 목걸이가 짤랑거렸고, 왼쪽 손가락에선 연노란색의 반지가 반짝였다. 그리고 카논을 향해 걸어오는 치사토의 움직임을 따라 허리에 매여져 있는 하얀 띠가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늦어서 미안해 치사토쨩.”

“괜찮아. 별로 안기다렸는걸.”

“……저기, 다른 가족들은?”

“잠깐 할머니네에 가셨어.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꽃다발을 품 안에 안으며 쿡쿡 웃는 평소 같은 모습에 카논은 안심했다. 하지만 성큼 다가온 치사토는 꽃다발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카논의 손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꼭 붙잡았다.


“자, 들어와.”

“어? 으, 응.”


정말 작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이대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허락하고 안으로 들어가버릴 정도로. 하지만 지금의 치사토의 눈은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 아니 요염하다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저번에 봤었던 영화 속 여배우와 같이 촉촉한 그 눈빛에 거북해진 카논은 자기도 모르게 슬쩍 눈을 돌렸다.


“…….”


시선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에 카논이 조심스럽게 눈을 돌렸지만, 치사토는 여전히 자주색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치사토쨩.”


카논의 목소리에 방금 전까지 바로 앞에 서 있던 치사토가 한걸음 뒤로 떨어지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건 평소 카논에게 보내던 미소와는 약간 달라서, 카논은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차리고 상처 받은 것 같은 친구의 모습에 손을 뻗으려 했지만, 치사토는 부드럽게 몸을 빙글 돌렸다.


“……그렇네. 꽃구경을 가자고 했었지? 조금만 기다려주겠어? 레온을 데리고 올게.”

“아, 응.”


멀어지는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무서워했던 주제에 자기가 먼저 손을 뻗다니 바보같아.' 머릿속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지만 카논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




공원은 말 그대로 벚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람을 따라 산들산들 흔들리는 가지에서 벚꽃잎이 흩날리며 주변을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여가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좋은 날씨이기에 자리를 잡기 힘들 것 같다는 카논의 예상은 다행스럽게도 빗나갔다. 거나하게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멀찍이 피해 한적한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가방을 내려놓은 카논은 치사토를 슬쩍 바라보았다. 어느새 레온의 목줄을 나무에 묶어 놓은 그녀는 자리에 앉아 카논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고, 카논도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꽃향기를 실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머리카락에 붙은 꽃잎을 떼는 사이 시간을 확인한 치사토가 가볍게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기에, 카논은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건내 주었다. 건내는 와중에 맞닿은 손가락은, 밤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따스했다. 멍하니 그 감촉을 느끼는 와중에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고 깜짝 놀란 카논은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치사토가 의아해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내 그녀는 다시 방긋 웃었다. 카논은 도시락을 개봉하며 변장을 하지 않은 모습은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어딘가 무섭네.”

“응?”


식사가 대강 끝마쳐질 무렵, 카논의 입에서 나온 두서없는 말에 치사토가 바로 반응했다.


“벚꽃 말이야.”


카논이 그새 쌓인 벚꽃잎을 조심스럽게 털어내며 말했다.


“……밤에 보는 벚꽃은 어딘가 무서워.”

“아, 벚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묻혀있다는 이야기 때문에?”

“아니, 그런게 아니라.”


카논은 치사토를 바라보았다.


“그냥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낮의 화려하고 포근했던 벚꽃이 밤이 되면 어딘가 차갑고 덧-. 아차.”


말실수를 깨닫고 재빠르게 입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하지만 정작 치사토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작게 키득거릴 뿐.


“후후. 괜찮아 카논. 계속 이야기해줘.”

“응.”


카논은 보온병을 꺼내 차를 따랐다. 보온병이 이상한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낮은 온도로 타서 그런건지, 자스민티는 반 쯤 식어있었다. 카논은 몸 안을 채우는 어중간한 온기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차갑고…… 안이 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무서워.”

“하지만 본질적으론 같은 벚꽃이잖아.”

“응. 머릿속으론 알고 있지만.”

“……카논.”


작게 중얼거리는 카논을 향해 치사토가 자세를 바르게 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하면 벚꽃이 가엽지 않을까?”

“벚꽃이?”

“응.”


치사토가 주변의 벚꽃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 애들은 낮이나 저녁이나 똑같이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뽐내고 있을 뿐이잖아. 그걸 우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건 좀 너무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응. 꽃들은 항상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 하잖아. 사람들에게든, 곤충에게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여러 변화가 생겼다 해서 그걸 무시한다면, 그건 나무가 꽃을 피우기까지 기울인 노력을 무시하는 게 아닐까?”


말을 마치자마자 치사토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데, 어때 카논?”


카논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였다.


“그래도 아직도 무서워?”

“…… 응. 조금은.”


카논이 그렇게 말하며 작게 몸을 떨었다. 손 안에서 느껴진 작은 온기에 자기도 모르게 숙였던 고개를 들자, 따스한 자주색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치사토쨩?”

“음…….”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던 치사토가 돌연 몸을 일으키더니 카논의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조심스레 몸을 기댔다.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무게감에 놀라면서도, 자신을 배려해주는 그녀의 태도에 고마워하며 카논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순간 놀란 표정을 지은 치사토였지만, 이내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이젠 괜찮아?”

“응. 덕분에.”


카논도 치사토를 향해 맑게 웃었다.


치사토가 이상해져도 변함없이 그녀의 곁에 있으려는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늘 자신을 마주봐주며, 자신에게 필요한 걸 파악하고 바로 베풀어주는 사람이었기에. 그러기에 카논도 치사토가 싫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좋아한다고 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친구 이상의 의미로. 그건 작년 가을 이후로 이상한 모습을 보일 때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카논에게는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예전의 치사토였다면 이런 자신을 배려해주었겠지만 요근래 어딘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여 카논은 좀 걱정이었다.


니,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 나 자신일지도 몰라.


카논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에게 몸을 맡긴 치사토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잠시 눈을 감고 그런 손길을 즐기던 치사토는, 이내 카논에게 실없는 대화를 던지며 카논의 왼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둘이서 만나는 날엔 항상 반지를 낄 것. 벼룩시장에서 반지를 사고 난 후 둘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그리고 치사토는 만날 때마다 약지에 낀 푸른색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한 행동에 카논은 늘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했다. 그리고 치사토도 굳이 무언가를 말하지 않았다. 카논과 치사토,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카논은 그때마다 매번 뒤로 물러섰다.

이런 자신을 치사토는 언제까지 기다려주는 걸까? 나는 치사토의 노력을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카논의 머릿속으로 방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바람이 다시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갔다. 치사토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살랑였고, 그녀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머리카락을 손질했다. 그리고 나서 잠시라도 떨어져 있던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 카논에게 몸을 던지며 팔을 꼭 끌어안았다. 다시 한 번 대화가 끊겼다. 이번에도 치사토가 먼저 대화를 던져주었다.


“……그러고 보니 엄청 오랜만이네.”

“응?

“이렇게 카논이랑 느긋이 보내는 시간 말야.”

“그렇네.


카논이 다시 한 번 치사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치사토쨩, 요새 무척 바빴지?”

“약간은.”


그렇게 말한 치사토였지만, 작은 입에서 하품이 새어 나왔다.


“아니, 음. 일이 잘 풀리는 건 좋은 일이지만, 너무 바쁜 건 좀 지치네.”

“치사토쨩 피곤해?”

“나도 참, 카논에게 걱정을 끼치고 말았네.”


치사토가 팔짱을 낀 손에 힘을 주며 배시시 웃었다.


“난 괜찮아.”

“치사토쨩은 늘 무리하고 마는 경향이 있으니까 걱정돼.”

“……응. 언제나 고마워 카논. 카논에겐 항상 많은 걸 받고 있어.”

“나, 난 아무것도 안했어.”


당황해 팔을 휘적거리는 카논을 보며 치사토가 키득거렸다.


“너는 항상 내게 많은 걸 주는 걸.”

“으, 응.”


낯간지러워하며 고개 숙인 카논의 귀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이렇게 있어도 될까?”

“응. 물론 괜찮아.”

“후후. 그럼 말씀에 감사히.”


다시 한 번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스치고 나서야 자신의 뺨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는 걸 눈치챈 카논은, 자신의 붉은 뺨을 보이지 않기 위해 치사토의 머리카락을 얼른 대신 정돈해주었다. 치사토는 기분 좋은 듯 만족스런 목소리를 내었다. 강아지 같아고 속으로 생각하며 키득거렸다.


“바람이 기분 좋네.”

“응. 이젠 완연한 봄이니까.”

“그러게. 온화한 날씨라 무척 좋네.”

“역시 지치지?”


카논의 말에 잠시 침묵하던 치사토가 한숨을 내쉬었다.


“……응. 역시 카논에겐 숨기질 못하겠네.”

“중학교 때부터 옆에서 봐왔으니까.”

“응.”


치사토가 돌연 카논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깜짝 놀란 카논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잠시 심호흡을 하던 치사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카논을 불렀다.


“……저기 카논.”

“왜 그래, 치사토쨩?”

“집에서 차라도 마시고 가지 않을래?”


이윽고 고개를 든 치사토는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사람에게 짓는, 무언가를 참고 있는 것 같은 미소를. 카논은 고개를 끄덕였다. 벚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눈부신 친구의 미소에 카논도 마주 웃었다. 문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참아내었다.


레온을 부르는 치사토를 바라보며 카논은 생각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다 한들, 적어도 자신만은 치사토의 옆에 있어주자고.


정리를 하는 카논의 귀로 뭐가 그리 즐거운지 기쁘게 짖는 레온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요새 괴상하게 바빠서, 무려 21시간 24분이나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치사토쟝 미안해...


급하게 쓰다보니 후반부가 좀 날림이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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