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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goodbye

방문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7.04 18:16:48
조회 715 추천 20 댓글 3
														






이 말이 뭐라고 그렇게 어려웠었을까.


내일 아침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함께 마당에 있는 집기들을 치우는 중이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타고 강변을 달리던 자전거들을 차고에 집어넣고 나왔다. 너는 마당 귀퉁이에 설치해뒀던 빨래 건조대를 분리해서 발치에 차곡차곡 내려놓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이불을 널어두면 저녁에 퇴근한 네가 걷어 우리 침대에 깔아 놓았다. 그 위를,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뒹굴던 너의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는 좋았다. 그런 너를 내려다보는 나를 보며 너는 거보라는 표정을 짓곤 했다. 마당에 잡동사니가 많이 있는 게 싫은 나와 다투었던 일을 너는 그렇게 용서해주었다.


"동주야."


어느 날엔가는 만취한 네가 안경을 잃어버린 채로 내게 연락을 했다. 이리저리 휘청이며 잘 서지도 못하는 너를 겨우겨우 데리고 들어와 힘들고 짜증이 났었다. 아침에 일어나 안경을 찾다 포기하고 멍하니 침대 위에 앉아있는 네가 미워서 가만히 서서 널 보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서있는 나를 용케도 발견한 네가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지만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시력이 아주 안 좋은 너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내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얘는 눈도 잘 안 보이는 애가 내가 데리러 가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겁도 없이 대로변에 나와 앉아있었던 걸까 생각하다 더 화가 오르던 때였을 것이다. 이리저리 눈가를 좁히며 애를 쓰던 너는 기어코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한걸음 한걸음 나와 가까워지면서 점점 초점이 또렷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때 네 입가에 서서히 번지던 미소에, 여전히 네가 미웠지만 나도 좀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동주야."


함박눈이 내리고 난 새벽이었다. 그날은 회사에서 네가 큰 실수를 하고 늦게까지 야근을 했었다. 그때 나 혼자 살던 아파트 놀이터에서 너를 만났었다. 늦은 시간 느닷없이 찾아온 너를 기다리게 하기 싫어 잠옷 위로 잠바만 얼른 주워 입고 뛰어나갔다. 네가 건드렸는지 느리게 흔들리는 그네 옆에선 네 모습이 바람 한 점 없던 그 겨울밤의 공기보다도 추워 보였다. 뽀득뽀득 놀이터에 쌓인 눈을 밟으며 뛰는 나를 발견한 너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소리 내 웃었다. 겨우 눈을 밟는 것뿐인데 어떻게 그렇게 시끄럽게 소리가 날 수 있냐며 신기해하는 너를 위해 네 앞에서 춤이라도 추듯이 열심히 눈을 밟았다. 등에 땀이 나도록 눈을 밟는 중에 점점 울음기가 사라지는 네 얼굴을 보며 밟지 않은 눈이 있는 쪽으로 펄쩍 뛰고는 나도 소리 내 웃어버렸다. 널 웃게 하겠다고 이 새벽에 잠옷 바람으로 눈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내가 기가 막혀서였다. 내가 널 정말 좋아하는구나. 내가 이만큼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드디어 만났구나.


"동주야."


그보다 더 오래된 어느 날.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는 여학생이 내 앞에 앉아있었다. 우리 과 학생도 아닌 아이가 어떻게 알고 지원했는지는 몰라도 뽑아만 준다면 뭐든 정말 열심히 해서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게 좀 웃기기도 하고 귀여워서, 스스로 말을 멈출 때까지 잠자코 들어주기로 했다. 까무잡잡한 콧등에 땀이 배어나도록 열심히 떠드는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 성마르긴 하지만 거슬리는 곳 없이 매끄럽게 들렸다. 저런 목소리라면 줄곧 들어도 짜증이 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점점 느려지던 목소리가 드문드문 끊이더니 드디어 말이 멈췄다. 입술을 말아물고 머뭇거리던 아이가 아주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다음에 올 때 수업시간표를 가지고 오라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함박웃음을 짓는 너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동주야."


분리한 건조대를 모아 끈으로 묶어세운 뒤 네가 나를 돌아봤다. 내가 부르는 걸 듣지 못했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잠시 너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침실 한편에, 네가 남겨두고 간 물건을 모아둔 서류 상자가 있었다. 네가 이 집을 떠난 뒤에 네 생각이 날 때면 널 찾아 온 집안을 뒤져 모아둔 것들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찾아도 더 이상 너를 찾아내지 못한 지 한 달이나 되었다. 나는 상자 옆 바닥에 주저앉아 뚜껑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손가락에 먼지가 희미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상자에 손을 얹은 채 나는 아직도 주저하는 마음과 싸워야 했다. 조금만 더, 며칠이라도. 자꾸만 나약한 제 목소리가 속삭이는 걸 들으며 주먹을 꾹 쥐었다가 벌떡 일어나 상자를 들고 침실을 나왔다.


계단 앞에 서서 일층을 내려다보는데 네가 물 한 컵을 들고는 어디에도 앉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다. 선채로 물을 마신 네가 홈바에 컵을 올려두는 걸 보면서 계단을 디뎠다. 그래, 이젠 여기가 네 집이 아니구나. 정말로 이제는 네가 쉴 수 있는 곳이 아니구나.


내가 들고 내려온 서류 상자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네게 그걸 넘겨줬다. 얼떨결에 받아든 네가 그걸 다시 홈바에 올려두고 뚜껑을 열었다. 그 안을 잠시 들여다보던 네가 붉어진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이제 가도 돼, 동주야."


내 말에 기어코 네가 눈물을 떨어뜨린다. 조금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너를 멀거니 바라봤다. 나는 이제 저 울보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면 안 되겠지. 늘어뜨린 두 손이 괜히 무색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미안해. 오래 걸려서."


미안하다는 내 말에 너는 이제 처참한 얼굴로 어쩌지 못해 채 누르지 못한 울음소리를 조금씩 흘리고 있었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는 것이다. 네가 이리 섧게 우는 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비가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그저 비가 오는 것이어야만 했다.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고 그 사이에 소금물이 스며들어 세포 하나하나가 타들어가는 느낌에 정신이 아찔했다. 시선을 움직일 여력도 없어 네가 코를 훌쩍이며 소매로 눈물을 닦을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우는 네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사랑의 마지막 모습은 이렇게나 아프구나. 사랑이 끝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네가 웃는 얼굴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게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상황일지라도.


네 사랑의 마지막 모습은 어떨까. 헐렁한 옷 속에서 뾰족해진 골반뼈가 엄지손가락뼈에 닿았다. 거의 울음을 그친 너와 눈이 마주쳐서 나도 모르게 몸을 조금 움츠렸다. 네가 보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이 많이 슬프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이 셔츠 안 돌려줄 거예요."


제가 입고 있는 연분홍색 리넨 셔츠 뱃자락을 쥐고 말하는 네 표정이 고집스럽다. 원래 내 것이었던, 예전 언젠가 내 옷을 빌려 입고 서있게 너무 예뻐서 네게 줬던 셔츠였다. 아까 네가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알고 있었다. 네가 그 셔츠를 입고 왔다는 것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네가 서류 상자 뚜껑을 덮고 그 위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 잘, 지내요. 아프지 말고."


또 울음이 나려는지 흔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멍하니 제 두 손을 내려다보던 네가 상자를 집어 들고 돌아서려다가 다시 내 쪽을 돌아봤다. 울 것 같은 얼굴로 가만히 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더니 어렵게 함박웃음을 짓는다.


"행복했어요, 정말 아주 많이."


내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무너져내리기 직전에 너는 다시 뒤돌아 거침없이 현관을 나섰다. 곧이어 대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났다. 나는 홈바에 기대서 현관 밖이, 그리고 그 너머 대문 옆 담벼락에 바짝 붙여 대어놨을 너의 차가 보이는 듯이 이내 시동이 걸리고 차가 떠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박효신 goodbye 듣다가 생각나서 써봤다.

근데 너넨 이런거 별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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