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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선생님의 첫사랑

글쓰기용유동닉(121.144) 2019.09.27 21:55:25
조회 1319 추천 32 댓글 7
														


00.




"선생님! 첫사랑 얘기해주세요!"



선생님이 칠판에다가 아무도 읽지도 않는 수식을 나열할 때였다. 어떤 한 학생의 질문으로 선생님의 손은 멈추고, 조용히 분필을 내려놓았다.



"흐음~ 첫사랑? 역시 여고생은 사랑에 관심이 많구나."


"네! 그리고 첫경험의 얘기도요!"



장난꾸러기 여학생이 그 말을 하자 다들 키득키득 웃기 시작한다. 물론 농담 섞인 말이지만 선생님은 '흐음~'하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씨익 웃으면서 교탁 앞에 손을 얹는다.



"그럼 야하게? 아니면 평범하게?"


"오오오오오오오~"



학생들의 환호 속에서 선생님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난 듣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의 첫사랑 따위, 선생님의 첫경험따위. 그런 건 전혀 듣고 싶지 않았다.











01.





"선생님, 여기요."


"아! 고마워~"



학급의 숙제를 거둬서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에게 갖다주었다. 이번 연도부터 학교에 오신 선생님, 대학교 졸업 후 기간제 교사로 채용된 그녀는 우리 학교의 선배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도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고, 대학교를 졸업 후에도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채용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선생님은 짧은 시간에 많은 학생과 친해지고 동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자, 여기."


"어……"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던 찰나에 그녀는 나에게 막대사탕 하나를 건넸다. 딸기우유 맛 막대사탕. 나는 얼떨결에 그 막대사탕을 받은 뒤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언제나 고마워. 그건 선물."


"네,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 인사와 함께 다시 한번 꾸벅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에 교무실을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그녀에게서 받은 사탕을 쥔 손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그러면서도 보물을 양손에 꼬옥 쥐고, 절대로 이건 먹지 않고 보물로 남겨두려고 마음먹었다.



"그거 뭐야? 사탕? 그거 요즘 유행하는 거 아니야?"


"응? 응……"


"헤에~ 맛있겠다. 나주면 안 돼?"


"싫어……!"



나는 양손으로 보물을 꼬옥 쥐고 숨겼다. 하지만 항상 나를 괴롭히던 친구는 억지로 내 손에서 그 보물을 뺏어 가려 했다. 선생님께서 받은 첫선물을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던 나는 안간힘을 썼다.



"아 진짜!"


"요놈!"



갑자기 누군가가 내 보물을 빼앗으려고 하던 여학생의 머리를 책으로 가볍게 쳤다. 깜짝 놀란 그녀는 머리를 감싸며 뒤돌아보았다. 그곳에서는 선생님이 한 손에 책을 들고나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선생님……"

"친구끼리 그러면 안 되지~"

"읏……"


선생님은 나와 그 여학생을 번갈아 보더니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사탕 가지고 고등학생이 돼서 그러는 거야?"

"죄송합니다……"

"으읏……"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백마 탄 왕자님처럼 나를 구해준 선생님에 내 감정은 폭발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떨렸다. 나는 다시 한번 그 보물을 양손에 꼬옥 쥐고 치마 주머니에 몰래 숨겼다.


"그래, 사탕이 먹고 싶으면 나중에 나한테 찾아와. 더 있으니까."

"네에……"


나를 괴롭히던 여학생은 풀이 죽어서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에게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씨익 미소를 지어주었다.


"다른 아이들이 괴롭히면 언제든지 얘기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힘이 되는 한 도와줄 테니까."

"네……"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가다듬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다시 선생님은 가던 길을 갔고,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방금 그 일과 선생님이 쓰다듬어준 손길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02.




"여기서는 미분해서 나온 x값과……"

"선생님! 첫사랑 얘기해주세요!"


그 말이 시작이었다. 선생님은 수업하다가 지루해진 한 학생이 뜬금없이 첫사랑 얘기를 해달라는 말을 했다. 선생님은 곧 뒤돌아서 학생들의 눈을 한 번씩 훑어보았다.

그리고 이어진 분위기는 선생님이 첫사랑 얘기를 하게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선생님도, 그걸 딱히 싫지는 않았는지 좋은 표정으로 오히려 어떤 게 좋냐는 듯한 말을 하였다. 모든 학생은 열광했다. 나 빼고는.


나는 선생님의 첫사랑 얘기 같은 건 듣고 싶지 않았다. 그야 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런 거 따위 없었던 게 나았으니까. 심지어 선생님의 첫경험이라니, 선생님이 말하는 걸 들어보니 선생님은 경험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부터 싫었다. 선생님을 독차지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에게서 다른 좋아하던, 좋아했던 사람이 있지는 않았으면 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그냥 그 자리에 있어 줬으면 했다.

나는 가슴이 쓰렸다. 두근거려야 할 가슴이 미친 듯이 쓰렸다.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래도 다 들릴 것 같았다. 속으로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첫사랑을 얘기하는 선생님에, 마치 지금도 사랑에 빠진듯한 소녀의 얼굴로 얘기하는 선생님이 싫었다. 그런 표정,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으면 했었다.







"뭐어~ 그렇게 선생님의 첫사랑과 첫경험은 연하와의 연애였다. 라는 결론입니다. 어때? 재밌었어?"

"와아~ 선생님 야해~"

"아하하…… 이러다가 잘리는 게 아닌지 몰라."


기나긴 사랑 얘기가 끝이 나고,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듣게되었다. 선생님은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끝냈고 그와 동시에 수업 종료의 종이 울렸다. 학생들은 전부 재밌었다는 등 생각보다는 평범했다는 등 여러 의견을 각자 얘기했었지만, 나의 의견은 단 하나였다. 재미없었다. 그리고 싫었다. 가슴이 아픈 것은 멈출 생각은 안 했고, 나는 수업이 종료되어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른 선생님들께는 비밀이다? 그럼 수업 끝."

"네에~"


그녀는 그렇게 앞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망가진 마음을 고치지 못한 채, 아직도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보물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그녀의 사랑 얘기를 억지로 머릿속에서 지워보려고 노력하였다.








03.




나의 사랑이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 나의 첫사랑. 내 첫사랑은 이렇게도 아픈데, 선생님의 첫사랑은 너무나도 빛이 나고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딱 하나 있다면 바로 그녀의 수업 시간의 기억. 하지만 이미 들어버린 그 이야기는 내 평생 머릿속을 괴롭힐지도 몰랐다.

그래도 아직 선생님을 향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야 지금 화장실을 가는데도, 혹시나 선생님과 마주칠까 봐 교무실 옆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나의 유치한 행동이 그걸 말해주고 있으니깐. 나는 꽤나 멀리 화장실로 와서는 볼일을 보고 손을 씻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혹시 또 윤서가 괴롭혔어?"

"앗!? 선생님……"


선생님과 마주쳤다. 때마침 손을 씻으러 온 그녀와 마주쳐서는 나는 나란히 그녀와 손을 씻게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예쁘고 빛이 났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내 마음속에서 너무나도 쓰디쓴 기억을 남기게 해 주었다. 물론 그건 그녀의 탓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뇨, 아무것도……"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얘기해."

"선생……! 님의 첫사랑…… 그 남자를 아직도 좋아해요……?"

"으응?"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은 말을 뱉어버렸다. 왠지 조금이라도 일말의 여지를 남기고 싶었다. 멍청하고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래도 지금 그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괜찮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멀뚱히 고개 숙인 나를 쳐다보다가 잠깐 생각을 하더니 말을 꺼낸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거 알아? 그런데 선생님이 한 사랑은 조금 달라."


"네?"

"그때, 그 애들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남자와 사귀었던 게 아니었거든."

"예!?"


순간 목소리를 높여버렸지만 그녀는 주변을 쳐다보다가 손짓으로 목소리를 낮추라는 표현을 했다.


"그럴듯하게 얘기했지만, 선생님의 첫사랑은 여자였고, 첫경험도 그녀였어. 그래서 애들이 아프냐고 물어봤을 때는 대충 둘러댈 수밖에 없었어."


그녀의 말은 또다시 내 가슴에 백합꽃을 피웠다. 시들어가던 백합꽃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잔뜩 꽃을 피워서 하얗고, 아름답고, 그리고 달콤하게 피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마음이 그녀에게 전해질인지도 모른다고, 그런 헛된 꿈이지만 꿈꿀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버렸다.


"다른 애들……한 테는 비밀이다? 선생님이 믿어서 얘기하는 거니까. 아직 우리 사회는 이런 나를 받아줄 준비가 안된 거 같거든."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예쁜 미소를 지으면서 화장실에서 나갔다. 나는 또다시 그 자리에 경직이 돼서, 선생님이 준 두 번째 선물을 마음속에 보관했다. 아주 예쁘게 피어난 백합꽃 한 송이를.









04.





하굣길, 교문을 나가고 한참을 걸어서 집에 다 왔을 때였다.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학교에서 책을 놔두고 온 것을 생각해버렸다. 수학 교제가 있어야지 오늘 선생님이 낸 숙제를 할 수 있었기에, 나는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남기지 않기 위해 다시 학교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꽤 먼 길, 나는 30분이나 되는 길을 다시 되돌아 학교로 돌아왔다. 교실의 불은 전부 꺼져서 어두컴컴했다. 나는 복도의 불을 켜면 무언가 잘못될까 봐 일부러 켜지 않았고 어두운 복도 속을 조심히 걸어갔다. 그리고 교실에 거의 다 와서, 나는 내 교실 안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있음을 느꼈다. 불은 꺼져있고, 문은 닫혀있지만 분명 누군가가 있다. 나는 겁이 났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슬쩍 교실 문 뒤 창문으로 안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난 엄청난걸 보고 말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과,

내가 가장 싫어하고 나를 괴롭히는 그 여학생이 키스를 하는 모습을……


나는 소리를 지를뻔했지만 억지로 양손으로 입을 막은 뒤 그대로 뒷문의 옆쪽으로 등을 기대 자리에 주저앉았다. 잘못 본 것일까, 아니 그럴 일은 없다. 분명 두 사람은…… 서로의 가슴을 주무르면서 끌어안아, 그리고 이후에 치마 속으로 손이 들어가며 키스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 들켜버리는 거 아니에요?]
[뭘?]
[선생님의 첫사랑 얘기. 그거 저잖아요.]


[으음……들킬 일이 있을까? 애초에 선생과 학생, 그리고 여자 끼리라고는 생각조차 안 하잖아.]


교실 문 안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 나온다. 나는 여전히 숨을 죽인 채 그 소리를 엿들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온몸에 식은땀이 나는 게 이미 내 몸은 정상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선생님, 너무 그 애 감싸주지 마요. 짜증 나니까요.]
[응? 그래도 불쌍하잖아. 너 말고도 괴롭히던데……으읏……]
[그러니까 선생님은 나보다 그 애가 더 좋다는 거에요?]
[그건 아니지만……]


급기야 신음소리까지 안에서 흘러나왔다.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손이 떨려서 내 귀를 막을 수도 없었고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설 수도 없었다. 나는 숨죽여 울면서, 그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그 애한테 사탕 주거나 잘해주면 다시는 키스랑 그거, 안 할 거예요.]
[미안…… 앞으로 모른척할 테니까……]


곧이어 더한 신음이 이어졌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아직도 내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나는 꺼냈다. 어느샌가 깨져있던 사탕, 나는 그것을 보고 눈물을 흐르는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가슴에 핀 백합꽃은 어느샌가 썩어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렇게 그곳에 주저앉아 숨죽여 울며,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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