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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크리스마스) 러브 픽션 어드벤처 - 4

모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2.22 19:19:32
조회 184 추천 16 댓글 1
														

러브 픽션 어드벤처 4


이전화 (3)

다음화 (5)


릴리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기 전,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 늘 들이쉬던 공기가 아닌 새로운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 것이다. 아니, 새로운 게 아니다. 이건...


"돌아왔어..?"


그녀는 낯선 침대 시트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보라색의 다소 까슬까슬한 그것은 그녀가 바로 몇 달 전까지 매일 몸을 누이던 곳이었다. 그것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릴리는 수진의 방에 익숙해져 있었다.


'말도 안 돼.'


릴리는 우선 달력부터 찾았다. 9월 29일. 그녀가 어제까지 수진의 탁상 달력으로 확인했던 날짜의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녀가 존재하지 않아도 이곳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던 것이다. 현실의 시간과 같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릴리는 떨리는 손으로 달력을 넘겼다.


'10월'


하지만 그 뒷장엔 아무 내용도 없었다. 꼭 열두 장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끼워넣은 듯한 백지가 그녀를 맞이할 뿐이었다.


"아, 휴대폰."


원래의 세계로 돌아왔다면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도 그대로 있을 터. 릴리는 침대 귀퉁이에서 휴대폰을 발견했다. 기도라도 드리는 것처럼 휴대폰을 감싸쥔 손으로 그녀는 캘린더를 찾았다. 그리고 릴리의 바람을 비웃듯이 그곳에도 11월은 없었다.


"...리."


"아!"


두통과 같이 머리를 울리는 목소리가 그녀를 급습했다.


"..나...봐요..."


"리ㄹ...리.."


".....릴리."


"릴리."



급하게 숨을 들이키는 폐부 깊숙한 곳까지 그리운 공기가 가득 밀려들어와 릴리는 벅차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다.


"괜찮아요?"


침대 곁에 바싹 붙은 수진은 갑작스런 그녀의 눈물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진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데. 그런데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얼굴에 이렇게 안도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릴리는 스스로가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괜찮아요. 좀 무서운 꿈을 꿔서 그래요..."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자 수진도 표정에서 긴장이 풀렸다. 릴리는 손수건으로 축축해진 눈가를 정리했다.


"깨우길 다행이네요."


"수진의 목소리였군요..."


릴리는 꿈에서 들었던 두통 같은 환청을 떠올렸다.


"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수진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곤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말투는 평소보다 조금 들뜬 느낌이었다.


"안 깨우려고 했는데 역시 빨리 말하고 싶더라고요."


수진은 말과 함께 릴리의 눈앞에 휴대폰을 들어보였다.


"접속에 성공했어요."


'잠시 뿐이었지만.' 뒷말은 릴리에겐 들리지 않았다.


꿈이 아니었다는 것. 그 사실이 릴리를 더 악몽으로 몰아넣었다.



******



"자, 아 하세요."


"제가 먹을 수 있는데요..."


"알아요, 자."


아니 뭘 안다는 건데요! 수진은 턱 밑까지 밥숟가락을 들이밀고 있는 릴리에게 항의했다. 속으로만.


"맛있어요?"


얌전히 저작운동을 하고 있는 수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릴리가 물었다. 수진은 척하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일단 릴리가 만들었다면 그녀에겐 뭐든지 OK였다.


후후. 딱 그런 웃음 소리를 흘리며 기뻐하는 얼굴을 수진은 유심히 바라보았다. 뭐 예뻐서도 있지만, 그보다 최근 릴리의 행동 때문이다. 그녀는 새로운 일을 하는 데에 조바심을 냈다. 꼭 버킷리스트라도 적어 둔 사람처럼. 오늘만해도 그랬다. 아 하라니...


"다 먹었어요?"


다시금 아까 일을 상기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던 수진은 릴리의 목소리 덕에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설거지는 수진이 하세요. 저는 그동안 방을 치우고 있을 게요."


그녀는 수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명령만을 남기고 방으로 사라졌다. 급할 일도 없는데. 정말로 청소를 시작한 건지 방으로부터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분부를 받들기 위해 수진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



샤워까지 마친 수진이 들어선 방은 너무나도 깨끗했다. 물론 평소에도 청결에는 신경썼지만 그래도 있어야 할 것은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방은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다.


"릴리, 제 이불이 없는데요."


릴리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 있었다.


"치웠어요."


"네? 그럼 저는-"


어디서 자라구요.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수진은 침대 위로 쓰러졌다. 릴리가 그녀의 어깨를 떠민 것이다. 이제부터 네가 잘 곳은 여기라는 듯이. 수진은 하마터면 부딪힐뻔한 뒤통수를 손으로 더듬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같이 자요."


그렇게 말하면서 릴리는 살그머니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건..."


"이거 수진 침대잖아요."


"......"


수진은 반박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나랑 한 침대에서 자기 싫었어요?"


"아, 아뇨..."


"그럼 자고 싶었어요?"


릴리가 웃었다. 그 단순한 질문이 자꾸만 이상하게 해석돼서 수진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것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수진은 정말 거짓말에 약하군요."


그렇게 말하는 릴리는 어쩐지 기쁜 표정이었다. 수진은 약점이라도 잡힌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었지만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다 아시잖아요...제 상황."


어차피 거짓말은 들킨다. 수진은 그냥 자신의 장기인 솔직함을 무기 삼기로 했다.


"네. 저를 좋아하시잖아요."


꼭 그렇게 적나라하게 말해야 할까. 수진은 전투에 돌입하자마자 치명타를 맞은 기분이었다.


"아무튼 그런 상황 때문에 저는 침대에 누워도 마음 편히 잘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이제 바닥에도 적응 돼서 괜찮아요. 배기지도 않고요."


그게 수진의 있는 그대로의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배려였지만 몇 달간 그녀의 몸은 착실히 적응하고 있던 것이다.


"풉."


하하하하하


그런 수진이 뭐가 웃겼는지 릴리는 배를 잡고 큰소리로 웃었다. 가끔 눈물까지 닦아가면서. 수진은 알 수 없는 민망함을 느끼며 그녀가 웃음을 멈출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아...미안해요, 사람은 정말 적응의 동물이네요."


릴리가 눈가를 손가락으로 훔치며 말했다.


"저와의 취침에도 적응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건-"


"제가 된다잖아요."


릴리가 수진과 눈을 맞춰왔다. 유난히 반짝이는 건 조금 전 크게 웃었기 때문일까.


"눈치가 없군요."


"네?"


수진의 반격은


"그런 점도 좋아해요."


릴리의 일격에 무너졌다.



******



릴리가 온 이후 처음으로 수진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상상한대로 역시 침대는 좁고 불편했지만 수진은 무언가로 가슴이 꽉 찬 느낌을 받았다.


'이게 벅차다는 건가.'


수진은 오렌지빛 머리칼에 손을 옮겼다.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릴리의 머리카락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자느라 부스스해진 머리 위에 수진은 살며시 손바닥을 얹어보았다. 과연 쓰다듬으면 깨버리지 않을까. 슬쩍 손바닥을 미끄러뜨리자 수진의 품 안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잘...잤어요?"


매일 하는 인사도 쑥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을 수진은 새롭게 배웠다.


"밤새도록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서 제대로 못 잤는데요?"


뜨끔.


"자는 줄 알았어요."


"자는 사람 얼굴은 마음대로 봐도 되나요?"


언젠가 나눴던 대화를 반복하면서 두 사람은 웃었다.


"전부 당신이 만든 거예요."


릴리가 말했다.


"내 머리도, 눈도, 키도, 이름도..."


말하고 보니까 수진은 나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겠는데요? 릴리가 키득거렸다.


"또 사랑하는 방법도."


릴리는 제 스스로 말을 꺼내놓고 부끄러웠는지 수진의 품 안으로 숨었다. 수진은 말없이 그녀의 달아오른 귀를 응시했다.


"게임 속에 있었다면 전 영원히 제 스스로 사랑을 결정할 수 없었을 거예요."


"고마워요, 수진."


감사를 표하는 릴리의 목소리는 어쩐지 사라져버릴 신기루 같아서, 수진은 용기를 내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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