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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타에사야] 부정의 끝은 긍정

그거제껀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30 10:58:40
조회 770 추천 36 댓글 7
														

"다녀왔습니다!"

"잘 다녀왔니?"


복도를 타고 딸, 이시카와 사에의 인사소리가 들려왔다.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중나가지 못하고 고개만 내민 채, 사에에게 인사했다.

신발을 벗고 주방으로 달려온 사에는 곧장 내 품으로 안겨왔다.

주방엔 뜨거운 물건이 많아 걱정되어 사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조심스럽게 품에서 떼어놓았다.


"배고프지? 저녁 먹을까?"

"네!"

"그 전에 밖에 갔다 왔으면 손부터 씻어야겠지?"

"우우... 네... 다녀오겠습니다..."


어쩐지 실망한듯한 목소리로 답한 사에는 터덜터덜 세면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된 건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딸의 건강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럼 슬슬 가게 문도 닫아둬야겠네."


가게의 팻말을 Closed로 바꾸고 문을 잠그기 위해 주방과 연결된 가게로 향했다.

여자 혼자서 사에를 부양하기 때문에 가게를 닫아놓는게 현명한건 아니지만, 사에가 외롭지 않도록 저녁을 함께 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가게의 문을 닫아놔야 했다. 사에를 홀로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문을 잠그고 돌아오니, 손을 씻은 사에가 식탁에 앉아있었다. 성장기라 배가 많이 고플테니, 조금 서두르기로 했다.

사에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서 준비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오래 기다릴 것 없이 저녁식사가 식탁에 펼쳐졌다.


"잘먹겠습니다!"

"잠깐, 밥 먹을 땐 기타 내려놔야지?"


사에는 까먹고 있었다는듯, "네에~" 라고 말하며 일반적인 크기보단 조금 작은 기타를 식탁 한켠에 기대어 놓았다.

식탁 한켠에 놓여진 기타가 꼭 사에의 동생처럼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다.

배가 고팠는지 쉬지않고 밥을 먹고 있는 사에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간 학원은 어땠니?"

"엄청 재밌었어요!"

"그거 정말 다행이네. 선생님은 좋은 분이셔?"

"네! 엄청 예뻤어요!"


아무래도 사에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여성이였던 것 같다. 다행이라며 안도의 숨을 삼켰다.

사에가 갑자기 TV에서 연주하는 기타를 보더니,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땐 걱정이 앞섰는데,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았다.

기타 비용을 포함해서 이래저래 지출이 좀 크긴 했지만, 사에의 미소의 대가로 지불하는거라면 싼 편이라 생각했다.

사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가자마자 새 친구를 사겼다는 얘기, 하루종일 줄만 잡아서 손가락이 아프다는 얘기.


"아, 그리구 선생님이 토끼도 보여줬어요!"

"토끼? 음악학원인데?"

"첫 수업이라 데려왔다고 했어요. 엄청 귀여웠어요. 저도 키우고 싶어요!"

"아하하, 집이 좁아서 그건 힘들겠는걸? 사에가 더 크면 키우도록 하자."

"이잉... 약속...!"

"응, 약속."


기타... 토끼... 어쩐지 그리운 사람이 떠오르는 키워드들 이였다.

하나조노 타에... 고등학교 시절 친구이자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하던 밴드 팝핀파티의 기타리스트.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

갑자기 떠오르며 나를 감싸기 시작한 타에와의 추억은 "엄마?" 하며 부르는 사에의 소리와 함께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응? 불렀니?"

"엄마 괜찮아요? 울고있었어요..."

"으응, 괜찮아. 음식을 조금 급하게 먹어서 체했나보네."

"네..."


언제 눈물이 나온걸까... 사에를 슬프게 해버렸단 사실에 마음이 저려왔다.

자연스럽게 눈물을 닦고 사에를 쓰다듬어 주었다. 기분이 좋은지, 다시 밝은 얼굴로 웃었다.


"사에... 걱정마렴... 엄마랑 행복하게 지내자..."

"네...! 저도 엄마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거에요!"

"응, 그러자... 반드시..."


저녁을 먹고나면 언제나처럼 다시 가게를 오픈한다. 사에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팔아야 한다는 욕심이였다.

다행스럽게도 저녁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 밤늦게 귀가하는 학생같은 사람들이 제법 사주기 때문에 그러한 욕심이 아주 헛된 것은 아니였다.

저녁장사를 모두 마치고 가게를 정리한 뒤, 집으로 들어가니, 평소와는 다른, 약간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서툴긴 하지만 그것은 기타가 내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사에가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것 같았다.

공부는 강제로 앉혀놓고 시켜도 절대 안하던 사에가 스스로 복습하는 것을 보고 내심 기뻐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욕을 거를 순 없었기에, 사에를 불렀다.


목욕이 끝나고 머리를 말려주자 사에는 쏜살같이 방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기타를 무척이나 치고싶었던 모양이다.

방금 목욕을 해서 기분이 붕 떠서 그런걸까? 어쩐지 익숙한 그 장면을 보고선 저도 모르게 그녀를 다시 떠올렸다.

저렇게 보니 꼭 나랑 타에의 사에같네. 지금 타에한테 사에가 있다면 저런 느낌일까?

그런 말도 안되는 상상도 잠시, 정신이 들었더니,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게 느껴졌다.

방금 목욕해서 그런가? 그런거겠지? 스스로 자문자답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잘 준비를 마치고 누우니,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밤은 감성에 젖기 좋은 시간대라고 했던가? 아련한 기억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오랜만에 그녀가 생각나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그녀, 하나조노 타에와 고등학교 3학년부터 2년동안 사겼었다. 타에가 먼저 고백해왔고, 나 또한 타에를 사랑했기에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했다.

타에와의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후의 그 어떤 연애보다도 행복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린 헤어졌다.


대학에 진학할 무렵, 엄마의 몸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해서, 가게를 돕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대학을 포기하고 가게 일을 돕기 시작했다. 타에도 강의가 비거나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엔 종종 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손자가 보고싶다." 라고.

어쩐지 절실해보이던 그 눈빛은 꼭 다가올 죽음을 예견한듯한 눈빛이였다.

스스로는 그저 무심코 흘려버린 말 이겠지만, 그것은 나에게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타에 또한 사랑하기에 방법을 찾아봤지만, 아직 실험단계에 머물러있는 방법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난 최악의 선택을 해버리고 말았다.

헤어지기 싫다. 이유라도 알려달라는 그녀의 절규가 다시금 내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 절규가 너무 생생해서 베개를 머리 위로 꾹꾹 눌러서 귀를 막아봤지만 그녀의 울부짖는 소리는 내 귓가를 한없이 맴돌았다.


"흐흑... 타에... 미안해... 흐으윽..." 


혹여 사에에게 들릴새라 베개를 누른 채 소리없이 울었다.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계속 하염없이 울었다. 타에에게 미안해서, 스스로가 너무 미워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지 2개월, 사에는 이제 어느정도 코드를 칠 수 있게 되었다.

저 정도로 코드를 칠 수 있다면 이제 간단한 곡은 가능할텐데, 이상하게 사에는 늘 코드만 연습했다.

그런 사에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시선을 느꼈는지, 사에가 말을 걸어왔다.


"엄마, 저 누구 닮았어요?"

"우리 딸은 엄마 닮았지? 보렴, 판박이지?"


사에를 바라보며 손거울로 사에를 비췄다. 사에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과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네! 똑 닮았어요!" 라고 기운차게 말했다.

그러고보면 사에는 엄마의 유전자만 물려받았는지, 이상하리만치 나를 꼭 빼닮았다.

가족들도 가끔씩 보면 어릴 적 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고, 나 또한 그렇게 느낀다.


"왜? 누가 뭐라고 했니?"

"네, 우리 선생님이요."

"누굴 닮았다고 그러셨어?"

"선생님 첫사랑이랑 되게 비슷하다고 했어요."

"선생님의 첫사랑도 사에처럼 예쁜 사람이였나보네."

"그런거 같아요! 아, 그리고 엄마가 드럼쳤었다고 얘기해줬더니 되게 놀라면서 선생님 첫사랑도 드럼쳤다고 했어요!"

"... 그거 참 신기한 우연이네."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애써 부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내가 살던 동네와 정반대이고, 뮤지션이 되겠다고 했었으니까, 이런 곳에서 강사를 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에가 조용한 것을 느끼고 사에를 바라보니, 사에는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나보다.


"왜 그러니? 사에."

"엄마 표정이 안좋아요... 무슨 걱정 있어요?"

"아니, 신기한 우연이네 싶어서 그런거니까 걱정마렴."

"네..."

"사에, 엄마랑 또 박자 맞춰볼까?"

"네! 엄마랑 박자맞추기 할래요!"

"응, 잠깐 기다리렴."


그렇게 화제를 돌리고 스네어와 드럼스틱을 가져왔다.

사에는 늘 메트로놈을 틀어놓고 박자를 맞추는 연습을 했다. 한번은 열심히 연습하는 사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싶어서, 스네어로 박자를 맞춰줬더니 엄청 신나하면서 기타를 쳤었다. 음을 맞추니까 신이 난걸까?

그 후로 시간이 나면 사에의 박자를 맞춰주며, 같이 연습했다. 

준비를 마치고 사에와 작은 합주를 시작했다. 사에의 감각이 많이 좋아진게 체감되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작은 합주가 끝나고, 스네어를 가방에 다시 정리하고 사에를 보니, 기타를 안은 채 자고있었다.

그 모습에서 익숙한 사람을 느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사에를 안아서 방에 데려다주었다. 





도시의 카페라는 장소는 언제와도 생소한 느낌이 든다.

츠구미도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고, 몇번인가 가봤지만, 도시의 프렌차이즈 카페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평소라면 절대 오지 않을거야. 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앉아있었다. 사실, 지금도 좋아서 앉아있는건 아니였다.

아무래도 아빠는 혼기에 찬 여자가 10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홀로 사는게 영 불안하셨나보다.

재혼하는게 어떻겠냐고 끈질기게 물어보며 맞선자리를 주선하려 들어서 몇번이고 거절했더니, 이번 한번만 나와주면 다신 부르지 않겠다고 사정을 해서 마지못해 들어줬다.


"야마부키씨... 맞으신가요?"

"네, 맞는데요?"


아빠에 대한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더니, 왠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이 사람이 맞선상대인듯 했다.

남자는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앞에 놓여있던 의자를 밀고 앉았다.


"안녕하세요. 사토 나오키 입니다."

"아, 야마부키 사아야 입니다."


형식적인 인사로 시작된 맞선은 지극히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직업은 회계사, 이쪽도 아내와 사별했다는 모양이다.

어쩐지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30대 중반이라곤 믿기지 않은 미인이네요. 라는 말에 기분이 상해서 대꾸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이쪽은 가게단골인 아주머니의 소개로 나왔다는 모양이다. 어쩐지 지금까지 아빠가 보여준 맞선상대의 출처를 알 것 같아졌다.

꽤나 쌀쌀맞게 답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그런 태도가 더 호감을 사게 한 듯 하다.


"야마부키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어떤걸 말이죠?"

"저, 진지하게 야마부키씨가 맘에 드는데..."


꽤 당돌하게 나와서 잠깐 놀랐다. 


"아하하... 고맙지만 죄송해요. 전 별로 그러고싶지 않아서..."

"그렇군요... 혹시 이유라도 알 수 있을까요?"

"... 제가 사랑한 사람은 모두 죽어버렸거든요."



집에 돌아오니 오후 5시 반, 지금 저녁을 준비하면 사에가 도착할 시간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 외출복을 벗지도 않고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폭탄선언을 듣고 벙찐 남자를 내버려두고 나왔더니 얼마 지나지않아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무리 싫어도 평범하게 거절하지..."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그저 약속대로 앞으론 맞선을 주선하지 않겠다며 끊었다.

물론 상대가 맘에 안들긴 했지만, 상대에게 한 말은 사실이였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모두 죽었으니까.


타에와 헤어지고 나서 나에게 고백했다는 이유만으로 사귀기 시작했던 마트의 청년.

제빵학원에서 만난, 자기 딸의 이름이 아내의 옛애인에게서 따왔다는 사실도 모르고 좋아하던 순진한 내 남편.

막 태어난 사에를 보고 기뻐서 눈물을 흘리던 엄마까지, 내가 사랑한 사람은 모두 죽었다.

그러니 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 사랑해선 안된다. 내 딸, 사에에게 더이상 아픔을 안겨줘선 안된다.


"아앗...!"


손에 너무 힘을 줬는지, 손가락이 베여버렸다.

사에가 알면 슬퍼할텐데... 베인게 왼손이라 다행이다. 오늘 저녁은 오른손만 쓰기로 하자.

베인 틈새로 흐르는 피를 물로 적당히 씻어낸 뒤, 다시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하고 있으니,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사에의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다녀왔습니다!"

"잘 다녀왔니?"


칼에 베인 왼손이 신경쓰여서 그런지, 저녁을 먹으며 무심코 사에의 손을 보니, 기타를 치는 사람의 손이 되어가고 있었다.

늘 기타를 들고다니며 열심히 배우는 모습을 보니 내심 뿌듯해져서 사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왜 그래요?"

"아냐, 그냥 우리 딸이 사랑스러워서."

"에헤헤... 맞다! 엄마 내일 시간있어요?"

"우리 딸이 원하면 얼마든지 내줄 수 있지, 무슨 일이니?"

"내일 학원에서 부모님들 한테 연주회 한다고 했어요!"

"음... 가능하긴한데, 그런건 보통 며칠 전에 얘기해주지 않니?"

"그게... 사실 까먹어서... 헤헤..."


내 눈치를 보며 헤실헤실 웃는 사에의 머리를 지긋이 눌러주었다. 사에가 "우그읏" 하는 괴성을 지르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웠다.

어쩐지, 전엔 곧잘 내 앞에서 코드를 치더니, 어느 날부터 안치기 시작하길래 무슨 일인가 했었는데, 이거 때문이였구나.

저녁을 먹어야하기에 사에를 누르던 손을 풀고 다음부턴 까먹지 않고 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어차피 하루종일 닫아놨는데, 오늘은 저녁장사도 쉬고 사에와 놀아주기로 했다.

부모님들도 다 온다면 조금 예쁘게 꾸며야겠지...? 자기 전에 팩도 좀 하고 잘까?

몇년만에 한참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며 내일을 준비했다.





몇개월만에 온 학원은 여전히 처음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몇개월 밖에 안지났으니까 당연하려나?

동네에서 유명한 학원인건 알고 있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역시 조금 힘줘서 꾸미길 잘했다 생각하며, 사에를 찾았다.

사에의 선생님에게 주려고 만든 작은 케이크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들고 학원 안을 조금 돌아다녔더니 곧 사에를 찾을 수 있었다.

"아, 엄마!" 하고 달려오는 사에를 다정하게 안아주려던 나의 걸음은 사에의 소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에 멈추고 말았다.


"사아야...?"

"...... 오... 타에...?"


어째서 타에가... 순간적으로 타에를 본 내 뇌는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그것은 타에도 마찬가지인듯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에가 안아주는 감촉에 먼저 정신을 차린 나는 타에에게 조심히 안부를 전했다.


"안녕...?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아...! ㅇ... 으응... 잘 지냈어..."


타에는 어색한듯 나와 사에를 바라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딸이야...?"

"어? 으응..."

"그렇구나... 결혼했구나..."


어쩐지 서글프게 말하는 타에의 목소리는 꼭 울음을 참고있는듯 떨려왔다.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바라보자, 사에는 그 상황이 이상한듯 바라보다 나에게 타에를 선생님이라 소개했다.

사에에게 눈웃음을 지은 뒤, "안녕하세요. 이시카와 사에의 엄마, 사아야 입니다." 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일부러 성은 말하지 않았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들키고싶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하나조노 타에 입니다."


타에는 그대로구나. 그 사실에 어째서인지 내심 안도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희 집이 빵집을 하는데... 괜찮으면 드세요." 라는 말과 함께 케이크를 전했다.

그 뒤에 "연습이 남아있어서 이따 봐요!" 하는 사에를 타에 곁으로 보내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연주회는 훌륭하게 끝났다. 부모님들은 자기 아이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렌즈에 담기 바빴고, 아이들은 정말 즐거운듯 연주했다.

하지만 나에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에를 찍기위해 가져온 카메라는 그저 아무런 미동없이 가방 안에 잠들어 있었다.

연주회가 끝나고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더니, 모든 정리를 마친 사에가 타에의 손을 잡고 다가왔다.

사에는 마치 칭찬해달라는듯이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고 있었고, 사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훌륭했다고 칭찬해주었다.


"사ㅇ... 이시카와 어머님..."


타에는 사아야라고 부르려다 멈칫하고는 이시카와라 부른걸 눈치챘지만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꾸했다.

타에는 사에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을 잘 챙겨주는 점, 장난기도 많아서 아이들이랑 잘 어울리는 점, 기타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

사에를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니 기뻤다. 칭찬에 기뻤는지, 소리에 기뻤는지는 알 수 없었고, 알고싶지 않았다.

그저 기뻤다. 하지만 이내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죄인이다. 타에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긴 죄인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자 결과인 사에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그녀는 그런 사실을 모를테지만 그녀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휘감아왔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

난 타에를 뒤로하고 아무런 말도 없이 사에를 데리고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딸랑~♪


"어서오세ㅇ..."


손님에게 인사하려던 목소리가 먹혔다. 문 앞에는 아무리봐도 빵이 아닌 나에게 볼 일이 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사아야..."

"오타에..."


타에는 조용히 나를 불렀다. 타에의 눈을 도저히 바라볼 수 없어서 시선을 회피했다.

타에는 천천히 다가왔다. 어쩌지? 일단 타에를 멈춰세우자.


"잠깐."

"사아야... 난 그저..."

"... 잠시만 그대로 있어줘..."


가만히 멈춰선 타에를 지나 문으로 향했다. 타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 앞에 걸린 팻말을 Closed로 바꾼 뒤, 문을 잠궜다. 이제 이 공간엔 나와 타에, 둘만 남게 되었다.


"일단 방으로 갈까?"



타에는 작은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있었다. 난 타에를 두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타에를 마주볼 수 없었으니까, 시선도 두지않고 바닥에서 괜히 꼼지락거리고 있는 내 발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의 정적이 흐른 뒤, 타에는 말을 걸기 시작했다.


"좋은 집이네..."

"응... 그 이가 산 집이야."

"... 왜 여기서 빵집 하는거야?"

"... 그 이가 여기에 빵집을 열었으니까..."

"..."


일부러 그 이를 강조했다. 잔인하지 않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타에가 아니라,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으니까.

타에를 다시 보고 느꼈다. 난 아직도 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사실 이미 옛날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였다. 그렇지만 그건 드러내선 안되는 감정이다.

난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멋대로 떠나버렸다.

그러니까 난 그녀를 다시 사랑할 자격이 없다.

또다시 그녀에게 상처를 줄테니까, 나에게 내려진 저주가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테니까.


"나, 사아야가 떠나고 많이 생각해봤어."

"그런데, 다 이해하기로 했어."

"...! 그게 무슨..."

"사아야는 날 사랑해서 떠난거지?"

"아니... 그런... 무슨 근거로..."

"사아야는 날 사랑하니까."

"......"


타에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반박할 수 없었다.

그것은 사실이니까, 난 타에를 아직도 사랑하니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그저 흐느꼈다.

울고있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서 입술을 깨물며 참았지만, 들켜버리고 말았다.

타에는 울고있는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옆에 앉아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난 그대로 타에의 품에 안겨 더이상 참지 못하고, 참을 필요가 없는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흐읏... 엄마가... 흐흑... 돌아가셨어..."

"응... 들었어... 장례식 못가서 미안해..."

"으읏... 그런데... 흑... 엄마가 그랬어... 흐으윽..."

"손자가... 보고싶대... 흐윽... 그런데... 흑... 여자끼린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거야..."

"응..."

"나, 지금도 타에를 사랑하는데... 흐으읏... 미안해... 정말 미안해... 흐아아앙..."

"사아야는 정말 착한 것 같아... 괜찮아..."


타에는 그저 괜찮다며 꼬옥 안아주었다. 그 품이 너무 포근해서, 따듯해서 영원토록 안겨있고 싶어졌다.

한동안 울음을 쏟아내자, 조금 진정되어 타에의 품에서 떨어졌다.

타에의 옷을 보니, 눈물범벅이 되어 굉장한 모습이 되어 조금 미안해졌다.


"어... 미안해... 내가 세탁해줄게. 벗어줄래?"

"... 사아야 변태."

"어!? ㅇ...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마치 변태를 경멸하듯이 바라보는 타에의 시선을 보니, 당황스러우면서도 웃음이 났다.

응, 타에는 변한게 없구나... 여전해...

갈아입을 옷을 줄테니까 벗고 오라해도 여전히 나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저기... 그 시선 이제 그만 거두면 안될까...?"

"싫어. 이시카와씨 변태."


어쩐지 성으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안아주고 싶은건 뒤로 미루고,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기로 했다.


"난 이시카와 아닌데?"

"아니야?"

"응, 난 야마부키 사아야."

"그럼..."

"맞아. 나, 사별했어."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에 타에의 얼굴이 굉장한 모습이 되었다.

찍어둘까 싶어져서 카메라를 꺼냈더니, 그새 얼굴이 다시 돌아오더니 엄청난 기세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사아야 바보!" 라는 말과 함께 타에는 이불을 뒤집어 썼다.


"오타에~"

"..."

"저기~"

"흥..."

"내가 미안해. 그러니까~"

"..."

"...... 내 가슴 만질래?"


사귈 때부터, 타에는 이상하게 가슴 만지는걸 좋아했다.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아져서 하고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입에 담아버렸다.

몇년이 지나도 반응은 확실한지, 타에는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여전히 삐진 눈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과 가슴을 번갈아보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순간적으로 변태같이 느껴졌다.


"... 특별히 용서해줄게."


라는 말과 함께 타에는 이불에서 빠져나옴과 동시에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30초가 지나자 능숙한 타에의 손길에 흥분되기 시작해서 "그만!"이라 외치며 타에를 떼어놓았다.

타에는 불만인듯 뾰루퉁한 얼굴로 바라보더니 이내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아야."

"왜? 오타에."

"우리 결혼하자."

"어...?"


가장 듣고싶었던 사람이 해준 그 말은 내 머릿속을 맴돌며, 그 의미를 하나하나 각인시켜 나갔다.

그 말을 듣고, 스스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빨개졌다. 빨개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이번엔 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타에는 나를 부르기도 하고 내 몸 구석구석을 찔러보기도 했지만 나올 수 없었다.

지금 짓고 있을 표정을 상상하니 너무 부끄러워서 도저히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조금 차분해지고 나서야 이불을 벗고 타에를 바라봤다.


"안돼."


거절의사를 밝히자, 타에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 내가 사랑한 사람은 모두 죽어버렸으니까."

"... 난 살아있는걸?"

"어... 그건 그런데..."

"사아야는 날 사랑하지 않은거야?"

"아니... 그건 절대 아닌데..."

"그럼 괜찮아."

"아니... 어..."

"사아야는 나랑 결혼하기 싫어?"

"그것도 절대 아닌데..."

"그럼 결혼하자."

"... 응, 알았어..."


정말이지... 난 이 사람을 도저히 당해내기 못할 것 같다.





띠리리리링~♪


"여보세요."

"아, 야마부키 씨, 아니, 이제 하나조노씨구나."

"그 목소리는 미사키? 헷갈리니까 사아야로 불러도 돼.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응, 그럼. 뭐, 덕분에. 아, 전화건 이유는 혹시 동성간에 임신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

"아, 뉴스에서 봤었던거 같은데."

"응, 그거. 이번에 츠루마키 연구소에서 연구를 성공했거든. 그 기념이랄까, 코코로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에 동성커플들에게 아기를 만들어주고 싶대서."

"아, 그런데 나도?"

"응, 명단에서 사아야 이름을 보고선 [사아야는 아이를 좋아하는거 같으니 분명 웃는 얼굴이 될거야!] 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혹시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려구"

"음... 생각해줘서 고맙긴한데... 그 방법이라는거..."

"아, 부작용이라던가 실패 가능성은 일반적인 임신이랑 비슷한 수준이니까 걱정마. 이미 나ㄷ... 크흠... 아무튼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어."

"흐응~ 뭔가 흥미로운 얘기가 들린거 같은데? 그래도 일단 오타에 한테도 물어봐야 하는데...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거야?"

"아, 그럴 필요는 없어. 일주일 안에만 알려주면 되니까 천천히 생각해."

"응, 알았어. 그럼 얘기해보고 알려줄게. 고마워!"

"천만에 말씀. 그럼 잘 지내."

"응. 미사키도 잘 지내."


띠리링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타에에겐 물어보나마나 좋다고 할게 분명할테고... 사에는 어떻하지? 동생이 생기면 좋아하려나?

어쩐지 머리가 아파져오기 시작했다. 일단 타에는 돌아오면 천천히 물어봐야겠다.

우선은 희미하게 기타소리가 들려오는 사에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사에는 타에가 준 코드를 보며, 열심히 코드를 치고 있었다.


"기타 연습은 잘 되고 있니?"

"네! 다 연습하면 사아야 엄마한테도 들려줄게요!"

"응! 기대되네."

"에헤헤~"


타에와 결혼하고 나서, 엄마만 두명이 된 사에는 나도, 타에도 둘 다 엄마라고 부르다가 스스로 혼란을 느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앞에 이름을 붙히는 것이였다.

처음엔 조금 어색해 하더니, 이젠 거의 입에 붙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본론을 얘기했다.


"사에는 동생이 있으면 어떨거 같니?"

"엄청 기쁠거 같아요!"

"그래? 역시."

"응, 좀 있으면 타에엄마 오니까 저녁먹을 준비하렴."

"네!"


사에는 예상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 타에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미사키에게 연락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괜히 물어보지 않았다가 삐질 타에를 생각하니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서 물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좀 있으면 올테고, 시간은 많으니까.

사에의 방을 떠나, 다시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으니, 곧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습니다."

"응, 수고했어."


복도를 타고 타에의 인사가 들려왔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마중나가지 못하고 고개만 내민 채, 타에에게 인사했다.


그와 동시에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사에가 타에에게 안겨들었다.


"다녀오셨어요!"

"응, 잘 있었어?"


타에는 사에를 안고 얼마간 있더니, 부엌으로 향했다.


"식사 다 되려면 아직 좀 더 있어야하는데."

"내가 도울건 없어?"

"응, 일하고 온 사람은 좀 쉬세요~"


둘째에 관한 얘기는 자기 전에 하기로 하고, 일단 식사준비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니 타에가 자신의 팔을 내 쪽으로 뻗어주었다.

타에의 팔에 머리를 대자, 타에는 부드럽게 몸을 감싸안아 주었다.


"저기, 오타에."

"왜? 사아야."

"오타에는 둘째 갖고싶어?"

"응!"

"아니... 즉답하면 부끄러운데..."


동의할거란건 알고 있었지만, 마치 예상하고 있었던 것 처럼 즉답을 날아와 부끄러워졌다.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경위에 대해 설명해주려 타에를 바라보니, 어느샌가 입고있던 잠옷을 거의 다 벗겼다.


"ㅈ.. 저기! 뭐하는거야!"

"응? 아기만들기."

"... 하아... 아니, 이런 의미가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모든 단추를 풀어헤친 타에가 잠옷을 벗기려는걸 제지하고 앉혔다.

타에에게 낮에 온 전화의 내용과 자신과 사에도 둘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타에는 "응! 엄청 갖고싶어!" 라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럼, 내일 바로 연락할게."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눕혀졌다.


"오타에?"

"아까 하던거 마저 하자!"

"... 네?"

"벗길게."

"아니, 잠깐!"


타에는 나의 외침을 가볍게 무시한 채, 능숙하게 잠옷과 속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워서 놀란 것 뿐이지, 솔직히 아주 기대를 안한건 아니였기 때문에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하아... 내일도 일해야 하니까, 조금만 하자. 알았지?"

"응!"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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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글쓴거 마지막에 4줄 별 내용 없긴한데 잘리는거 자체가 찜찜해서 재업함

텍스트 복붙한거 색 바꿨더니 html코드 늘어나서 글자수 제한에 걸린듯

타에사야 애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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