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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냥보] 최종장

ㅗ가ㅜ(1.229) 2020.02.27 00:26:46
조회 382 추천 19 댓글 3
														

최종장



To. 모니


소설을 다 읽었으니까 이 편지를 읽고 있는 거겠지. 

소설 결말이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네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했으며, 최대한 네가 행복할 만한 방향으로 적었다. 그런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 탓이 아니라 오히려 네 탓이다. 

나는 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만으로 어두컴컴한 세상 단 한 줄기 빛이 사라진 듯 불행하고 우울하다. 그런 내게 이 세계를 떠난 뒤의 네 행복을 상상하는 것은 마치 고문과도 같다. 물론 쇠사슬처럼 나를 옭아매는 생각을 아예 끊어버릴 수는 없겠지. 그러나 최소한 행복한 네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은 그만두고 싶다. 

그러니 더는 수정하지 않을 것이다. 네 탓이라 말했지만, 솔직히 내 이기심의 발로일 뿐이다. 


나는 생을 끊으려는 순간 우연히 다른 세계로 소환되었고, 그 세계를 구했다.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다. 그러나 헛된 희망이었다. 난 똑같이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나약한 존재였다. 정말로 내가 세계를 구한 게 맞을까? 사실 모두 내가 병원에 누워 있는 사이 꾼 꿈이 아닐까? 그 세계와 이 세계의 부조화를 견딜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일기장이 판타지 소설 연재 블로그로 유명해져 있었다. 

내가 그곳에 실재했다는 감각의 실오라기나마 잡기 위해 써내려간 글이 공상과 허구가 되고 나니 덜컥 무서웠다. 이 글을 완성하면 내 모든 기억이 그저 한 편의 거짓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 불안감에 나는 그동안 소설 마지막을 일부러 완성하지 않았다.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 


기억 속 마왕과 너무도 닮은 네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우연일까? 우연이겠지.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면? 일말의 기대감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만약 네가 진짜 그 사람이라면, 내 서사시의 증명이라면, 다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그럴 리가 없었으니 애써 눈을 돌렸다. 

그런 내게 먼저 다가온 건 너였다. 밸런타인데이에, 무려 세 명의 초콜릿을 쓰레기통에 처박으면서. 일부러 그 범인, 너를 찾도록 유도하면서. 너는 내게 말했다. 나는 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니, 네가 소설의 결말을 바꿔줬으면 한다고. 

다시 진흙탕 속에 처박힌 기분이었다. 


협박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걸까. 너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해피 엔딩을 적도록 내게 강요했다. 그러면 자신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아예 처음부터 줄거리를 바꿔 적어 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네게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며, 너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며, 너와 함께 여러 일을 겪으며 마음 속 이기심이 싹트기 시작한 걸까. 

너는 단 한 명 내가 영웅이었음을 믿어주는 사람이고, 단 한 명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고, 단 한 명 가장 증오했던, 그러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싫어하던 네가 계속 이곳에 있기를, 이곳을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어쩌다가 네가 내게 이런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 


미안하다. 


끝까지 다 적지 않으면 너는 나를 떠나가겠다고 했다. 결말이 정해져 버렸다. 적어도, 적지 않아도 너는 떠난다. 그 후로 나는 일부러 네가 싫은 척 모질게 굴었다. 내 본심이 아니다. 그저 결말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너에 대한 내 감정만이라도 바꿔보기 위한 발악이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처럼 네게 차갑게 대하면 내 마음도 차갑게 식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날, 어두운 방 안에 갇혀 있던 나를 네가 끌어안아 준 그 날, 온몸으로 느낀 열기가 세포 하나하나 낙인처럼 박혀 있어서, 네 손톱만 스쳐도 타오르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러지 못할 바에는 그냥 내가 보내주는 게 나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는 네가 이 세계를 떠난다면 부디 불행했으면 좋겠다. 너도 나를 잊지 못한 채 끝없이 눈물 흘렸으면 좋겠다. 모순된 감정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며 내 마음을 갉아먹는다. 


너는 내 곁에서 행복해질 수 없는 거야?


적어선 안 되는 편지인 걸 안다. 그러나 감정이 북받쳐 올라 감당할 수 없었다. 이 편지를 읽고 조금이라도 네 마음이 흔들리기를 바라는 것이 내 마지막 이기심이다. 

소포를 네 방에 놓은 이유다. 선택권은 네게 있다. 


<*>


응. 소포 부치고 왔어. 

표정 참 멋지네. 기대 이상이야. 솔직히 난 너를 놀리는 게 재밌고, 네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게 언제나 즐거워. 

그래, 네가 내게 고해성사를 했으니, 나도 고해성사를 해야겠지. 


하연아, 난 네가 죽인 그 마왕이 맞아. 


차가운 어둠 속에서 숨조차 쉴 수 없는 기분, 하연이 너는 모르겠지. 네가 나를 칼로 찌르고, 나는 그곳에서 너만을 떠올렸어. 그래서 나는 내가 이 세계에 다시 나타났을 때, 다시 너를 만나 복수할 수 있도록 신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네 얼굴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더라. 내가 복수하고 싶은 사람은 강인한 용사였지, 그런 하찮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반대편 세계에서 수정 구슬을 통해 바라본 너는 질투 날 정도로 밝고 환했는데 여기선 왜 흐리멍덩한 눈으로 아무런 의욕도 없다는 듯 살아가는 걸까? 너와 관련된 걸 조사해 봐도 알 수 없었어. 말은커녕 행동조차 인형 같았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네가 쓴 소설을 봤어. 그 소설을 본 순간 나는 직감했어. 

네 모든 과거가 널 계속 늪에 빠뜨리고 있다고. 


결심했지. 내가 그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어주겠다고. 


응. 네가 가장 행복할 때 내 손으로 복수하기 위해서였어. 네가 망가진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나는 너를 좀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그곳에서 환하게 웃는 순간 너를 낭떠러지로 떨어뜨리고 싶었어. 


그래서 난 네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덕분에 네 행동에 상처받은 적 없지. 저쪽 세계에서, 이쪽 세계에서,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너를 가장 많이 바라봤으니까, 네가 숨기려 해도 알 수 있었어. 

나를 바라보는 네 눈빛, 살결이 살짝 맞닿는 순간의 떨림, 낮게 깔려고 해도 살짝 달뜬 네 목소리, 그 모든 게 단 하나만을 의미했으니까. 

고작 이 정도 희망을 줬다고 내게 사랑에 빠져버린다니, 불쌍하고 가엾고 귀여운 내 하연. 


사실 그토록 이성적이던 네가 지금까지 속아 넘어간 게 믿기지 않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좋았을 텐데. 

내가 소설 속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고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잖아? 물론 그 말은 거짓이지. 그래도, 비록 그 말이 진실이더라도, 네 소설 속 세계는 네 소설의 진행과 관련 없이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말이잖아. 그러니까 네 소설의 완성과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진다는 명제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나와 관련된 것만은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그 점조차 사랑스러워. 


그래. 난 돌아가지 않아. 내가 단 한 명 가장 증오했던, 그러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지? 그 강렬한 감정이 종이 한 장 차이일 줄이야. 처음 보는 표정이네. 기쁘다는 표정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인지 잘 모르겠어. 확실히 행동으로 해야 알겠어?

……이제 믿겠어? 자꾸 왜 이렇게 상식적으로 생각을 못 하는 거야. 복수한다고 내가 떠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됐어. 복수할 거면 널 칼로 찔렀겠지. 넌 내가 이 말을 꺼낸 첫 순간부터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알아챘어야 했어. 

아무렴, 내가 네 종지부를 찍어줬는데, 내 과거 감정에도 종지부를 찍어야지. 


마음고생을 시켰네. 사소한 복수라고 생각해 줘. 칼에 찔려 죽는 거에 비하면 사소한 복수 맞지?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때가 됐어. 이때만을 위해서 계속 널 재촉했단 말이야. 빨리 최종장을 적고, 막을 내리고, 너와 나 사랑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서. 그 모든 여정을 너와 내가 함께할 수 있다니, 이만큼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 어딨을까. 


자, 새로운 이야기의 막을 열 준비는 됐지?


-


이런 걸 원한 게 아닌 건 알지만, 제가 이런 것밖에 못 써요. 

잘 쓰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3월 3일까지 시간 좀 있어서 좀 더 볼까 생각했는데 본다고 바뀔 것 같지 않아서 그냥 올립니다. 


kokoroko3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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