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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냥보] 수리수리 마수리, 나에게 반하리! 下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29 17: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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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달 비였다. 처음에는 추적추적 비가 왔다. 한 방울, 두 방울 몇 방울씩 하늘을 따라오던 비는, 어느새 바람을 동반한 강한 비가 되었다. 


 여름의 날씨는 믿을 수 없다며, 하늘은 하늘을 원망하며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길 반복했다. 날씨도 어두워지고, 휘이잉하고 부는 바람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자전거는 잠시 비가 들이치지 않는 처마에 기대어 두었다.


 경비 아저씨는 농땡이라도 치러 갔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선생님들과 술이라도 한잔 자시러 갔는지 경비실 안에 있지도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마을버스를 탔을 텐데, 그 불만스러움을 참지 못한 하늘의 입이 또다시 잔뜩 튀어나왔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직.무.유.기. 


 시원하게 느껴져야 할 학교의 복도가, 내리는 비 때문에 자꾸만 습하게 느껴졌다. 어두워진 하늘은 그칠 줄 모르고 오히려 거세게 창을 때렸다. 창문을 바라보던 하늘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비가 오는 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비를 싫어하는 편에 가까웠다. 


 일단 습한 날은 몸이 끈적여서 싫다. 조금만 붙어도 짜증 나고, 활기가 강한 하늘에게 그러한 환경은 최악이다. 평소보다 개구리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것마저 싫었고, 작물이 다 죽어버리는 것 또한 싫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런 수많은 이유를 다 제낄 최악의 이유가 있다는 것 또한, 하늘에겐 정말 언짢은 일이었다.


 어둠에 휩싸인 학교는 하늘에게도 처음이었다. 처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비의 소리. 그리고 스산한 복도와 밤이 지닌 분위기가 맞물려, 더욱 음산한 분위기를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발걸음은 힘차기만 하다. 마치 제 방 드나드는 것처럼 개의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두운 학교도, 빗소리도, 심지어는 있는지도 없는지도 잘 모르는 귀신도 하늘은 두렵지 않았다. 지금도 그랬지만 예전에도 어두운 건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긴 예전에도 지금도 항상 이랬으니까.  그랬기에 하늘은 떨지 않고 어두운 학교를 잘도 돌아다녔다.


 “아.”


 오늘 주번이었던 자신이 잠갔기에, 예상못한 건 아니었지만 역시나 교실 뒷문은 잠겨 있었다. 혹시나 싶어 앞문에도 다가갔지만, 역시나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렇다면 이젠 방법은 단 하나뿐.


 읏차, 하고 들린 하늘이의 목소리는, 흡사 담을 넘는 도둑의 기합성과 똑같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앞문과 뒷문이 모두 잠겼다면 결국엔 드르륵, 하고 낡은 소리를 내는, 교실 창문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갈 때도 그 짓은 하기 싫어서, 뒷문을 살짝 열어 두었다.


 하늘의 책상은 비바람이 가장 잘 들이치고, 동시에 봄 햇볕도 참 잘 들었던 창가 맨 뒷자리. 그녀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저의 자리로 찾아갔다. 끼익, 하고 의자를 살짝 끌어 서랍을 확인해보니 얇은 무제 노트가 손에 선했다. 그녀는 그것을 꺼내려고 하다가, 이내 자리에 가만히 앉아보았다.


 서늘한 빛이 교실을 감쌌다. 비는 창을 여전히 두드리고 있었고,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으스스한 소리를 냈다.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묘한 두근거림에 가슴을 졸였다. 창가로 바라본 운동장엔 웅덩이들이 이어져 하나의 바다처럼 일렁였다. 가로등 빛에 비친 웅덩이의 파도가 하늘까지 이어진 것만 같았다. 


 하늘의 시선은 교실을 쭉 훑다가, 이내 저에게서 세 칸 정도 떨어진 하리의 자리에 고정되었다. 자리 바꾸기를 하지 않았던 하늘의 반이어서, 하리는 1학기 내내 저곳에 앉아 손을 들고, 노트를 필기하고, 개인 공부에 힘썼다. 그리고 그녀가 그러고 있는 동안, 하늘은 자신이 그녀의 뒷자리라는 것에 감사하며 쥐 죽은 듯 시간을 보냈다.


 사는 세계가 달랐다. 하리가 서울에 되돌아간다고 말했을 때, 천둥소리가 들린 게 아님에도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그래,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억장이 무너졌다고 말하는 게 옳으리라. 요 짧은 시간 안에, 그녀는 그다지도 하늘의 마음에 들어왔었다. 그래서 힘껏 내지르듯, 내 당신을 기꺼이 따라가겠노라,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의 무게는 생각지도 않은 채, 그녀는. 


 하늘이 기억의 조각들을 더듬자, 책상 서랍 속 만져지는 무제 노트가 가시라도 세운 것처럼 만지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학교 밖에서 터진 굉음에, 하늘은 추위에 떠는 사람처럼 제 몸을 감싸 안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비명소리가 제때 튀어나오지 않아, 새된 목소리만 대신 흘러나왔다. 우르릉 쾅쾅, 하고 잔 번개를 털어내는 구름의 소리에, 그리고 올 게 왔다는 생각에 하늘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식은땀이 났다. 어두운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비로 인해 내리는 번개의 소리가 하늘에겐 그 어떠한 약점보다 훌륭한 쥐약이었다. 


 방심했다. 금방 갔다 오면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었지만, 번개가 큰 변수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애초에 노트를 놓고 온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어서, 하늘은 금세 자신을 욕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한번 쾅, 하고 내려친 번개는 후속타를 준비하려는 모양인지, 계속해서 끓어오르는 소리를 냈다. 달달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그 소리가 듣기 싫어 하늘은 그대로 책상에 엎어졌다. 


 시각이 차단되자, 빗소리와 번개 끓는 소리가 하늘을 더욱 옥죄였다. 그러나 이러고 있으면 번개도 금세 그칠 거란 생각에, 하늘은 떨리는 몸을 달래며 책상에 그리고 자신의 팔에 얼굴을 더욱 묻어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뒷문이 열리는 소리를,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보다는 사실 창밖의 소리에 더욱 귀를 쫑긋 세워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 하늘의 귀에, 조금 더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이어폰에서, 오래전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음색이 아주 특이한, 그리고 이런 밤에 들어버리면 너무나도 애절함이 느껴지는 음성. 이어폰이 끼워지는 감각에, 하늘은 이어폰을 빼며 자신도 모르는 새 뒤를 돌아보았다. 익히 아는 얼굴에, 놀라움보다는 내심 반가움이 더 가까웠다.


 그러한 반가움을 지닌, 자신의 마음에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끼며.


 “안녕.”


 어둠 속에 비친 그 얼굴마저, 그녀는 참 하얗다. 어떻게 찾아온 것인지, 윤하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항상 저보다 앞자리에 앉아, 저보다 한 걸음 먼저 앞서 나간 윤하리가 제 뒤에 서 있었다. 그게 왜 이리 크게 느껴지는지, 하늘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깔았다.


 하리는 말이 없었다. 하늘이가 살짝 고개를 틀어 하리를 바라보아도, 그녀는 가만히 녹색빛 칠판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하늘이도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세워 정자세로 앉았다. 적잖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이리 나란히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창에 부딪히는 빗물 소리가, 불이 타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타닥, 타닥, 하고 아주 조용한 소리가 났다. 몇 번 번개를 떨어트린 구름은, 잠시간의 소강상태에 들어간 듯 점점 멎어 들어갔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누구 것인지 모를 심장 소리가 교실 내부에서 자꾸만 들려왔다. 그것을 구태여 말로 표현하기엔 촌스러웠기에, 소리의 주인은 말이 없다.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러나 먼저 말을 뗀 사람은 하늘이었다. 그녀가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왔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니네 집으로 전화해봤는데, 아줌마가 알려줬어."


 그러나 조심스레 말을 뗀 것치고는, 하리의 대답도 참 간단했다. 하리의 답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늘은 그저 하리의 얼굴만 쭉 바라보았다. 


 새삼스레 생각하는 거지만, 기집애 참 더럽게 예쁘다.


 “두려워.”


 뒷산의 새 소리를 등에 업은 바람 소리가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들어왔다. 잠시간의 침묵을 깬 하늘은 저의 감정을 먼저 제 입술에 담았다. 여전히 눈동자들은 서로에게 맞닿지 않은 채다.


 “번개가?”


 하늘은 하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도시의 문제를 딛고, 그 문제를 다시 시골에서 만난 그녀한테는, 제 나름대로 욕심이자 아집이겠지만 언제나 강한 모습이 되고 싶었다. 이런 초라한 모습만큼은, 절대. 


 “아니,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게.”


 조금 더 본심을 내보였다. 하늘은 저 자신이 지닌 천성의 약함을, 제 검은 속살을 하리에게 보여주었다. 하리의 눈길도 하늘에게로 향했다. 번개는 멈췄지만,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끼어 길을 밝혀줄 달과 별은 아직도 숨어 있는 채다.


 “두렵다면, 넌 여기 있어도 좋아.”

 

 조금 생각을 이어가던 하리가 말했다. 아쉬움을 느꼈지만, 하늘이 두렵다면 그녀도 더 어쩔 수가 없었다. 살아온 세계가 달랐으니까, 그렇다 해도 얌전히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건 싫어.”


 그러나 하늘은 또다시 하리의 말을 부정했다. 책상 위에 놓인 MP3를 부적처럼 주먹에 담았다. 하리의 물건이라는 생각에, 그걸 쉬이 놓을 수 없었다.


 “그럼 어쩌라는 거야, 나보고.”


 “모르겠어.”


 답답한 목소리와 담담한 목소리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둥둥 떠다녔다. 조금 답답해진 듯, 하리는 몸을 등받이에 기대버렸다. 한여름 밤의 마법처럼, 오늘의 하늘은 너무나도 약한 모습을 저에게 쉬이 드러냈다. 이런 적은 그녀를 만나고 난 뒤 처음이었다.


 여름밤의 빗소리는 어딘가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웅덩이에 비가 맞닿으며 보이는 파도의 모습이 하늘의 마음을 더욱 심란케 했다. 어수선하게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을 하늘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무는 좋겠다. 저렇게 흔들리면서도, 우직하게 버틸 수 있어서.


 “책임질게.”


 갑자기 들려온 그 네 글자에,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옆에서 들려온 가냘프지만 힘찬 목소리에, 하늘은 조심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이, 몇 초, 몇십초, 몇 분, 몇 시간이 되는 것처럼 하늘은 길게 느껴졌다. 이상하다란 생각마저 낯설게 느껴지고, 마음에 익숙지 않은 감각이 저의 몸을 뒤흔들었다. 굳이 말하자면, 조금 야릇한 기분.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무슨 소린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뭘?”


 그렇게 마음을 졸였던 주제에, 말은 퍽 쉽게 튀어나왔다. 해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하늘은 하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흔들렸지만, 마음을 다듬었는지 하리는 입술을 앙다문 채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그 공간엔 빗소리와 벌레 소리, 그리고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심장 소리만이 가득했다.


 “내가, 너를.”


 하리의 눈썹이 어둠 속에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훤히 보일 정도로 빨갛게 변했다. 홍당무가 된 것 마냥, 아주 붉게 말이다. 처음이었다. 윤하리란 사람이, 반하늘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은. 


 “가서 뭘 해야 되는지, 그런 건 나도 몰라.”


 하리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을 다 잡았다. 하늘이 진심을 보여준 것처럼, 그녀 또한 저 나름대로의 진심으로 화답해주었다. 말투엔 변함이 없었지만, 얼굴에 확연히 드러난 변화는 칠흑속에서 익숙해진 하늘의 눈에도 띄었다. 웃기기도 하고, 놀리고 싶기도 하고, 조금 귀엽기도 했다.


 “일단 가보면 알겠지, 생길 수도 있고.”


 그 말을 하는 데에 하리는 모든 힘을 다 쓴 것 같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눈썹과 한 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앙다무는 입술이 귀여워서, 하늘은 저도 모르는 새 바람 빠진, 소리 없는 웃음을 깊게 지었다. 하리가 해결책을 제시했으니,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다시 답을 줄 차례였다.


 “그건 싫은데.”


 그녀가 장난스레 말했다. 기운을 다시 찾았는지, 하늘이의 죽어버린 자존심도 되살아났다. 그녀 또한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머리를 등받이 너머로 빼면서 말을 연속해서 맺었다. 그와 동시에 빗소리도 다시 거세게 변했다.


 “너한테 모든 걸 맡기는 건 싫어.”


 솔직히 웃겼다. 책임을 지겠다니, 그렇게 거창한 소리를 내뱉는 건 우리답지도 않았다. 조금 더 깊숙한 마음에선 하리한테 마음의 짐을 얹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다. 다만, 모든 걸 털어놓을 기회를 준 그녀에겐 조금 감사한 마음도 존재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모든 감정을 담아, 하늘은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미소를 입가에 담으며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그래도 고마워.”


 물론 감사 인사를 덧붙이는 걸, 잊지 않은 채.


 X X X 


 “아직도 비가 오네, 무슨.”


 하늘의 그 목소리마저 장대비 소리에 묻혀버렸다.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하려는 듯, 하늘은 정말 빛을 일절 보여주지도 않고 정말 죽어라 쏟아 부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빗방울과 처마에서 자유 낙하하는 빗방울들이 작은 웅덩이가 되어 뒤섞였다. 하늘과 하리 두 사람은 처마에 갇힌 채, 좀처럼 학교를 벗어날 수 없었다.


 “넌 비도 오는데 뭔 자전거를 타고 왔어.”


 하리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하늘의 귓가를 때렸다. 물론 하리의 불평에 하늘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올 줄 몰랐지.”


 “하여간, 진짜.”


 하리가 거칠게 인상을 찌푸리고, 하늘은 멋쩍은 듯 볼을 긁적였다. 두 사람의 마음도 모르고 비는 뚝뚝 떨어지길 반복했다. 제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아무런 자물쇠 없이 자전거를 두고 가는 건 좀 그랬다. 물론 훔쳐가기엔 너무나도 애매한 고물딱지였지만.


 “이거, 잠시 맡길게.”


 결국 하늘이는 들고 있던 수학 노트를 하리의 크로스 백에 떠넘겼다. 자전거를 버리고 갈 수도 없고, 우산은 없고, 그렇다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낮에도 그랬지만, 낡은 페달은 오늘따라 더욱 무겁다. 긴장이 풀려, 힘도 쫙 풀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맞고 가게?”


 “어쩔 수 없지, 뭐.”


 금방이라도 하늘의 자전거는 처마를 빠져나가려 했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것이 낫다는 게 하늘의 지론이었다. 그러므로 어차피 맞을 비라면, 빨리 집으로 가 샤워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잠깐”


 하지만 조삼모사 생각을 하던 자전거 그림자를, 하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밟아버렸다. 하늘의 고개가 뒤로 틀어졌고, 하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흔들림 없는 눈길로, 그리고 더 이상의 망설임이 없는 발걸음으로.


 “내가 태워 줄게, 자전거.”


 하늘의 핸들을 손에 잡았다. 자기의 자전거처럼, 원주인에게 돌려주라는 것처럼, 당당한 말씨와 드센 행동이었다. 하늘의 의견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진 채다.


 “네가 왜?” 


 듣기 드물게 당황한 목소리로 하늘은 되물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미안함과 동시에 확실한 부정의 표시가 입꼬리 위로 가득했다. 같이 가겠다는 하리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민폐를 끼치는 건 둘째 치고, 일단 효율이 없잖아. 효율이.


 하늘이의 황당한 표정에 하리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하리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하늘이를 밀어내려 했다. 그것에 밀리지 않으려 했지만, 이내 들려온 목소리에 하늘이는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가다가 천둥이라도 떨어지면 어떡해.”


 그 강한 빗소리 속에서, 그 목소린 어찌나 크게 들렸는지. 하리의 나지막한 말에 하늘이는 얌전히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리고 하리는 앞좌석에 앉아 자리가 불편한지 확인해보았다. 그 순간 동안 하늘이는 하리를 가만 바라보았다. 볼을 타고 턱으로 흐른 물이, 습기로 인한 땀인지 빗물인지 하늘은 알 수 없었다.


 타, 란 말도 없었는데 하늘은 뒷자리가 제 자리인 것처럼 앉아버렸다. 하굣길에 하리를 태워주는 사람은 늘 자신이었는데, 상황이 바뀌니 뭔가 애매모호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물에 젖는 건 똑같아.”


 근데 그 기분이 그닥 나쁘지 않았다는 게, 더욱 요상한 점이다. 


 “윤하리.”


 촌년이 아닌, 하늘이 하리의 이름을 입술에 담았을 때, 낡은 자전거의 페달은 사정없이 밟혔다. 비 바람이 몸에 맞아가는 걸 느끼며 자전거는 나아갔다. 군데군데 붉게 녹이 슨 몸체에도, 그걸 씻어내려는 마냥 물기를 머금었다. 두 사람의 몸도 점점 젖어가고, 뒷자리의 낯선 감각에 하늘은 하리의 허리를 자신의 팔로 감아버렸다.


 “넌 참 이상한 애야.”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하늘은 저도 모르게 읊조렸다.


 그러나 그녀의 중얼거림은 비바람에 사정없이 휩쓸려갔다. 하얀색 와이셔츠가 물에 젖어, 하리의 몸이 저의 감각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얇다는 생각과 동시에, 굉장히 야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든 그 생각을 떨쳐내고 싶은 듯, 하늘은 하리의 등에 얼굴을 더욱 묻었다. 자전거를 모는 것에 열중한 윤하리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몇십 미터 간격으로 떨어진 가로등들을 벗 삼아 자전거는 달렸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향해 그들은 그렇게, 계속


 -


 부득이하게 잘라 올림. 디씨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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