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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술, 그리고 꿈(술취한 메르시를 하나가 덮치는 썰)

ㅇㅇ(223.39) 2017.08.01 22:34:31
조회 4780 추천 69 댓글 18
														



“어, 치글러 선생이 웬 일이래?”

웬 일은 무슨. 처음부터 봐 놓고서는 이제 와서 아는 척 하는 건 뭐람.

앙겔라는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삼키며 모르는 척 술병을 기울였다. 그러나 병 입구가 술잔에 닿기도 전에 털이 숭숭 난 커다란 손이 나타나 술병을 채갔다.

“에헤이, 3년 만의 회식 참가인데 뭘 또 자작을 하고 그러시나. 내가 기가 막히게 소맥 한 잔 말아 줄게, 응?”

그렇게 능글맞게 웃는 남자의 얼굴이 정말이지 보기가 싫다. 원무과 과장. 병원장의 조카로, 능력도 없으면서 연줄 하나만 가지고 그 자리에 올라 예쁜 의사나 간호사들한테 추근거리는 걸 일삼는 쓰레기였다. 평소엔 앙겔라의 싸늘한 눈빛에 눌려 말도 제대로 못 붙였으면서, 회식자리에선 자기가 터줏대감이나 된 듯이 구는 것이 정말로 눈에 거슬렸다.

여기저기에서 꽂혀드는 시선에 앙겔라는 남몰래 인상을 찌푸렸다. 병원에서 맨날 보는 얼굴, 뭐가 예뻐서 퇴근 후에도 봐야하냐는 생각에 계속 피해오던 회식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앙겔라는 회식에 참가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제 작은 종달새가 서럽게 지저귀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손이라도 잡고 있었을 텐데.

눈물로 얼룩진 작은 얼굴을 떠올리자 속이 타, 앙겔라는 어느새 가득 채워져 앞에 놓인 술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주위에서 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러든 말든 앙겔라의 생각은 온통 작은 종달새에게로 가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만 19세.
파릇파릇한 새싹 같던 아이가 새빨간 얼굴로 제게 고백했던 것이 벌써 반년 전 일이다. 그 전에도 장난 식으로 몇 번이나 고백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 날은 달랐다. 언제나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더 커서 오라고 장난 섞인 고백을 맞받아치던 앙겔라 역시 그날은 웃지 못했다. 아이의 진심이 생생하게 느껴지다 못해 아팠고, 그래서 수많은 불면의 밤 끝에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 날, 아이가 울면서 제 품을 파고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었더라.

아, 그래. 지켜줘야지. 그런 같잖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앙겔라는 비틀어져 올라가는 입 끝을 느끼며 다시 채워진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주변에서 처음부터 너무 달리는 거 아니냐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이 중 절반은 앙겔라에게 추근거릴 타이밍을 재고 있는 사람들일 테고, 남은 반은 제게 시기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진짜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은 반대쪽 테이블에 앉아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몇몇 여의사들뿐일 테지.

그러나 그들 역시 원무과 과장을 거스를 용기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작은 몸으로 기를 쓰며 제게서 술잔을 빼앗거나 대신 마셔주겠다며 나섰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가 없는 자리에서조차 아이를 찾는 제 자신이 앙겔라는 너무 우습게 느껴졌다. 뭐가 지켜주겠다는 거야. 오늘 아침만 해도 아이의 탐스러운 입술만 쳐다보고 있던 주제에.

싸움의 시작은 아이었으나 원인은 앙겔라에게 있었다. 그것은 앙겔라도, 아이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앙겔라 치글러. 오버워치 병원의 외과 과장. 젊은 나이에 나노생물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명을 해내 의학계를 진일보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는 천재 박사. 그것이 그녀를 지칭하는 수식어였다. 앙겔라가 새삼스럽게 제대로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에 대해 되새김질하게 된 것은 모두 아이 때문이었다.
제가 조금만 더 젊거나, 아니면 아이가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많았으면, 어쩌려고?

제 스스로에게 물어놓고 앙겔라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랬으면 상황이 바뀌었을까? 물음에 대한 답은 회의적이었다. 겨우 몇 살 더 젊어지거나 먹는다고 해서 쉬이 바뀔 관계가 아님을, 앙겔라는 알았다. 그 정도로는 바뀌지 않을 정도로 아이와의 나이차가 너무 났다. 그게 제일 큰 문제였다.

아이의 고백을 받아들인 것이 섣부른 판단이었을까? 반년 전 수없이 많은 고민 끝에 결정 내렸던 판단에 의구심이 고개를 쳐든다. 반년 동안 수없이 곱씹었던 질문이다. 이미 너덜너덜하게 닳아 없어졌어야 했을 이 질문은 요즘 들어 새롭게 덩치를 불리며 앙겔라를 짓뭉개고 있었다. 후회 하냐고 묻는다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선택이었냐고 묻는다면, 답을 할 수 없었다. 그 격차가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치글러 선생, 뭐 애인하고 싸우기라도 했나? 왜 이렇게 달려?”

남자가 지치지도 않고 앙겔라에게 말을 걸었다. 앙겔라는 싸늘한 눈초리로 남자를 힐끗 보고 새 술병을 따서 술잔을 채워넣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치글러 박사가 허튼 수작을 거는 원무과 과장을 대놓고 무시하는 걸로 보이겠지만, 사실 앙겔라는 남자의 말이 적중한 게 화가 나고 찔려서 술잔을 연거푸 비운 것이었다. 그래, 싸웠다. 그것도 18살이나 어린 애인이랑!

어디 가서 떠들고 싶지도 않았지만, 남들에게는 도저히 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18살이라니. 도둑도 이런 도둑이 없다. 심지어 상대는 TV를 틀면 볼 수 있는 유명인이기까지 했다!
최연소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에 빼어난 미모까지 겹치니 아이가 유명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거기다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게임 실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거론되는 전도유망한 게이머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앙겔라 자신과 사귄다. 심지어 사귄 지 반년-정확히는 8개월이나 되었다. 우습게도 그동안 아이와는 손만 잡고 지냈다. 그 손마저도 잡는 데 한 달이나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아침, 지지부진한 스킨십에 참다 참다 폭발한 아이가 제 얼굴을 붙잡고 박치기 하듯이 시도한 뽀뽀가 싸움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직후, 앙겔라는 얼굴이 불타듯 달아올랐고, 37살이나 먹어서 뽀뽀-심지어 1/3만 입술에 닿은 불완전한 뽀뽀였다-하나에 이렇게 반응하는 제 자신에게 놀란 나머지 아이이게 성질을 내버렸다.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연인 사이인데 왜 뽀뽀조차도 못하게 하냐고 소리쳤고, 앙겔라는 할 말이 없어서 훽하니 몸을 돌려 도망치듯 병원으로 출근했다.

그리하여 아이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오늘 하루 종일 아이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미쳤어, 앙겔라 치글러. 그녀는 스스로에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아이의 뽀뽀를 그냥 웃으며 받아줬으면 될 일이었다. 아무리 나이차가 나는 연인 사이일지라도, 키스도 아니고 그저 뽀뽀일 따름이었는데. …하지만, 반응해버렸다. 머릿속이 쭈뼛거렸고 심장이 미친 듯이 팔딱였으며,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런 어린애 소꿉장난 같은 뽀뽀 하나에. 그런 자신을 숨기기 위해 화를 내버린 스스로가 너무 싫었다.

욕구 불만이다.
몇 번째 잔인지 모를 술잔을 비워내며 마침내 앙겔라는 인정했다. 솔로도 아니고 버젓이 애인이 있는데도 8개월 동안 손만 잡았으니 당연히 욕구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아이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저를 보는 아이의 눈빛이 뜨거워지는 것을, 앙겔라는 지난 8개월 동안 수도 없이 눈치 챘다. 특히나 여름에 접어들고서는 매일같이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저를 보는데 괜히 등에서 땀이 흐를 정도였다. 한창 불타오르는 청춘일 아이가 앙겔라에게 닿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앙겔라는 도저히 그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머리로는 안다. 아이가 성인이고, 제 연인이고, 아이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그러나 아이가 제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얽기만 해도 심장이 쿵쿵거리면서 양심이란 놈이 미친 듯이 경종을 울려댔다. 사실 앙겔라도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게, 그 양심이란 놈만 아니었으면 저도 아이의 손을 덥석덥석 잡고 뽀뽀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려와서 그 뒤는 그려보지도 못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정신을 차려보니 앙겔라의 앞에는 빈 소주 두 병과 맥주 네 병이 세워져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나 많은 술을 마셔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앙겔라는 내심 놀랐다. 한번 인식하자 뒤늦게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앙겔라는 직감적으로 얼마 안 가 의식이 끊길 것을 예감했다.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려 했으나 전원이 나가 있었다. 이래서 아이한테 연락이 안 왔던 걸까? 술집 벽면에 있는 벽시계를 보니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아이가 걱정할 텐데……. 앙겔라는 술에 꼴아박은 상태에서도 아이에 대해 떠올리자 힘이 나는 것을 느꼈다. 지갑을 뒤져 오만 원짜리 세 장을 꺼내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 그녀를 불러 세웠다.

“치글러 선생님, 취하신 것 같은데 바래다 드릴게요.”
“아뇨, 됐습니다.”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거절 안 하셔도 돼요.”
“혼자 갈 수 있습니다.”

앙겔라는 할 수 있는 최대한 딱딱하게 발음하며 가방을 챙겼다. 술기운이 훅 뻗쳐 순간 시야가 어지러워졌으나 정신력으로 버텼다. 아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집에 가야 했다.

“어어, 조심하세요, 치글러 선생님.”

회식이 시작할 무렵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평소 인사를 주고받는 여의사가 휘청이는 앙겔라를 부축했다. 앙겔라는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몸을 똑바로 세운 후 술집을 나섰다. 다행히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대로로 나와 택시를 탔다. 집주소를 부른 후에 가누기 힘든 몸을 창가에 기댔다. 눈이 가물가물 감기려 했으나 머릿속으로 파르마의 정리를 떠올리며 의식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택시는 지루하리만치 느리게 도로를 달렸다. 앙겔라는 점점 의식이 멀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허벅지를 꼬집으며 의식을 유지하려 애를 쓰는 도중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내비게이션 안내음이 들렸다. 앙겔라는 얼마가 나왔는지 모를 택시비를 카드로 긁고 차에서 내렸다. 토기가 솟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사방이 흔들리는 듯한 기분에 습격당했다.

집에 가야해. 앙겔라는 속으로 필사적으로 되뇌었다. 사귄 이후 이렇게 싸운 건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릴 것 같았다.
사과해야지. 앙겔라는 중얼거렸다. 오늘이 가기 전에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저 멀리 환하게 밝혀진 아파트 입구가 보였다. 앙겔라는 휘청이는 발걸음으로 빛을 향해 걸었다. 문득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앙겔라는 눈앞에 어둠이 까맣게 몰려드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

꿈에 작은 종달새가 나왔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아침에 고였던 눈물이 아닌 걱정과 염려가 담겨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아이가 속상하단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앙겔라에게 포르르 날아왔다. 아이에게서 나는 달콤한 향기에 기운이 좋아진 앙겔라는 팔을 뻗어 작은 종달새를 껴안았다. 아이는 반항 없이 순순히 안겨왔다.

미안해요.

앙겔라는 꿈이란 걸 알면서도 아이에게 사과했다. 아이가 말없이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이 느껴졌다. 포근했다. 앙겔라는 몽롱한 기운에 몸을 맡기고 실제로는 할 수 없는 말을 꿈속의 작은 종달새에게 했다.

나도 하나 양이 좋아요.
그런데 왜 뽀뽀도 못 하게 해요.

아이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앙겔라는 그 목소리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얼른 대답했다.

나도 하나 양이랑 뽀뽀도 하고 싶고 키스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왜 안 하는 건데요?
하나 양이 너무 예뻐서…….
예쁘면 더 해야죠.

어, 그러네. 앙겔라는 꿈속에서도 또박또박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맞네, 예쁘면 뽀뽀도 하고 키스도 하고 더한 것도 해야지.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악마 같은 그놈의 양심이란 것이 꿈에서까지 쫓아와 목소리를 냈다.

- 아직 새파랗게 어린 애한테 웬 키스? 도둑도 이런 도둑이 따로 없네.

앙겔라는 발끈해서 말했다.

누가 진짜 키스한대? 말이 그렇다는 거지!
왜 말만 하는 건데요?
왜냐면… 너무 예쁘니까.
- 예뻐서 아니라 너무 어려서겠지.
맞아, 너무 어려서… 나도 막 뽀뽀하고 그러고 싶은데, 하나 양이 너무 어려서 막 속이 타요.
속이 타요? 진짜 그래요?
- 속만 타겠어?
그렇지, 애도 닳지.
애도 닳아요? 박사님. 그 말 진짜죠?
그럼요-, 진짜죠. 우리 하나 양한테 내가 거짓말을 왜 해.
나한테 키스도 하고 싶고, 더한 것도 하고 싶고 그래요?
- 아니라곤 말 못 하지?
진짜요? 진짜죠?
네, 그럼요. 당연하죠. 나도 미치겠어요, 정말. 근데 하나 양은 너무 어리잖아.
내가 어려요?
네. 어려서 손을 못 대겠어요.
아, 그래요?

여러 목소리가 섞여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지막 아이의 말은 의미심장한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에 한차례 웃음도 터뜨렸던 것 같다. 아이답지 않은 마지막 말투가 새삼스러워서 진짜 꿈이구나 싶었다.

아이가 앙겔라의 손을 잡아당기며 꿈속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앙겔라는 꿈속을 거니는 내내 온 몸이 뜨거워졌다 시원해졌다 하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소리도 쳤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섹시한 목소리로 좋아요? 하고 물었다. 앙겔라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붕 떠올랐다 가라앉는 기분이 계속 반복되었고, 앙겔라는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환상적인 꿈이 계속되는 동안 아이는 계속해서 앙겔라에게 무어라고 속삭였다. 앙겔라는 끙끙대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묘하게 무게감이 느껴지는 꿈이었다. 앙겔라는 그저 아이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마침내 꿈의 끝자락에 다다라 축 처진 앙겔라에게 아이가 부드럽게 키스하고 속삭였다.

잘 자요, 내 사랑.

*

“목말라…….”

앙겔라는 쩍쩍 갈라지는 제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왔다. 등 뒤로 느껴지는 매트리스 감촉이 익숙했다.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나 했더니 어제 오랜만에 참석한 회식에서 술을 퍼마셨던 것이 기억났다. 어찌어찌 집에는 잘 들어온 것 같았다.

앙겔라는 반쯤 감은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쾅쾅 울리는데 그보다 목이 더 말랐다. 이불이 스르륵 몸 위를 스쳐 내려가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자면서 너무 더워서 옷을 벗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앙겔라는 허리에 느껴지는 통증에 저도 모르게 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리를 내자 머리가 쾅쾅 울려댔다. 목이 바짝 말라오는 갈증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세 감각 중에 갈증이 가장 급했다. 앙겔라는 이를 악물며 상체를 일으키고 침대 머리맡에 있는 물 컵을 찾았다. 다행히 물잔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갈증이 해소되니 허리의 통증과 두통도 천천히 사그러들었다. 앙겔라는 잠이 덜 깬 눈을 깜박이며 침실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속옷이었다.

“……?”

너무 더워서 속옷까지 벗었나? 자신도 모르는 술버릇에 놀라는 앙겔라의 눈에 어제 입었던 옷가지가 잇달아 들어왔다. 블라우스, 슬랙스 바지가 침실 문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침실로 향하는 중에 점점이 벗어 던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앙겔라는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혀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다 흠칫 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상태였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온통 울긋불긋한 제 상체였다. 이게 뭐지? 앙겔라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침실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섰다.
세수를 한 후에 눈을 완전히 뜨고 화장실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전히 상체에는 온통 붉은 자국 투성이었다. 심지어 쇄골에는 잇자국도 보였다.
잇자국?
그 순간, 앙겔라의 뇌리에 밤새 있었던 일들이 벼락처럼 떠올랐다. 앙겔라는 심각한 정신적인 타격을 입고 휘청였다. 반사적으로 짚은 세면대에서 큰 소리가 났지만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조각난 기억들 사이에서 뜨거운 눈길로 자신을 내려다보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분 좋아요? 하고 묻던 색정적인 목소리도.

“아…….”

앙겔라는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깨달았다. 아이의 목소리에 자신이 뭐라고 대답했는지가 떠오르자 당장 세면대 물에 코를 박고 죽고 싶어졌다.
죽고 싶다. 죽을까? 그냥 이대로 죽어버릴까? 사인은 수치사로 하고?

“박사님, 일어났어요?”

좌절하고 있는 앙겔라의 등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앙겔라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가 서둘러 양팔로 상반신을 가렸다. 얼굴에 열이 화르륵 올라왔다.

“하, 하, 하, 하나 양……!”
“이미 다 봤는데 가릴 게 뭐 있어요?”

아이가 싱긋 웃더니 가까이 다가와 앙겔라의 양팔을 잡아 내렸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앙겔라는 반응도 하지 못했다.
원래 이렇게 웃는 아이였던가? 뭔가 능글맞아진 분위기에 앙겔라가 버벅이는 사이 아이가 예쁘게 웃더니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일어났으니 이어서 해야죠?”
“네? 무슨…….”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씩 웃으며 앙겔라의 팔을 잡아당겼다. 앙겔라는 얼떨결에 아이를 따라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다다르자 잇자국이 여전히 남아있는 쇄골을 눌러 앙겔라를 침대에 눕히며 아이가 솜털이 바짝 곤두설 정도로 섹시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껴요.”

그래서 앙겔라는 그냥 느끼기로 했다.




끝.




하나메르하나 현대물 써볼랬는데 이상해짐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해보니 내 모든 글이 다 용두사미네ㅋㅋㅋㅋㅋㅋ

15금? 정도인 것 같아서 그냥 올림.
수위 있다고 생각하면 지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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