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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짧은망상2

ㅇㅇ(115.23) 2020.04.10 22:13:54
조회 261 추천 12 댓글 4
														



이전 망상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548607&search_head=20&page=1



우연이 계속되면 인연이라고 했던가

엄마와 이름이 같던 중년 여성은 사는 아파트도 같았다

우리가 301동 1001호 저쪽이 302동 1001호

처음엔 나도 신기하고 반가웠지만 성향이 너무 다른 두 사람이라 크게 신경쓰지는 않고 있었다

전라도 출신의 드센 아줌마랑 최소 석사 출신이고 직장도 좋은 중년 여성이 맞아봤자 얼마나 맞겠는가

그래서 그냥 잊어버리고 나는 나대로 휴학을 즐겼다

오후 느즈막히 일어나서 밀린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강의가 끝난 친구들과 만나서 술 한 잔 곁들이는 해피 슈가 라이프

아~ 이제야 좀 사는 것 같다

오늘도 새벽까지 술을 잔뜩 먹고 집에 들어와서 잠을 청했다


"조나영 일어나"

"...으에엥..웨..왜에...?"


누운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몸이 흔들려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는 깨어났지만 술 기운이 돌아 눈도 못 뜨겠고 혀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 어제 얼마나 마신거지

친구들과 2차로 노래타운을 간 건 기억이 났지만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머리는 아파오는데 누가 자꾸 어깨를 잡고 흔들어서 멀미가 날 것 같다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는 미현인가? 좀, 그만 흔들어라..!


"조나영 일어나라고.."

"...아...쫌!...나 강의 없어!..."

"...아, 쫌?"

"나... 더 잘꺼야...음냐.."

"... 자고싶어?"


그래 이제 날 좀 냅둬라 미현아 나는 휴학한 몸이라고......

그래.. 휴학해서 친가로...

...................응?


"...........헉!..."

"..오냐.. 평생 재워주마"


결국 기존에 있던 멍이 사그라든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멍 들고 말았다.

얼굴만 빼고


-


나의 방탕한 생활을 용납하지 못한 엄마는 나와 거래를 했다

내가 평일 아침에 식당에 나와 재료 손질을 돕고 가장 바쁜 점심시간에는 홀 서빙을 도와주는 대신

엄마는 나에게 주거 공간과 음식을 제공한다는 거래였다

말이 거래지 결국 가게를 돕지 않으면 내쫓겠다는 협박이잖아..

아무리봐도 부조리한 거래였지만 차마 말할 수가 없어 나는 숙취를 안고 가게로 향했다

그렇게 나의 해피 슈가 라이프는 한 달로 막을 내렸다


"..어서오세요!"

"누구?.. 딸래미야? 어이구~ 이쁘게 생겼네"

"헤헤.. 감사합니다"

"그런 소리 하지마! 진짠 줄 알잖아"


힝..

점심시간에만 가끔씩 근처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허기를 채우러 와서 부산스러웠지 식당은 대체적으로 손님이 많지 않았다

이래도 될까 싶어 엄마에게 SNS로 홍보 좀 해줄까 하고 물으니 됐다고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핀잔 들었다

하긴 어느정도 단골 손님도 있어보였고 부모님 두 분이서 정년퇴직 하시고 소소하게 하는 가게인 만큼

내가 끼어들어봤자 두 분께 방해만 되겠지

엄마는 내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하셨지만 내게 다가올 앞날은 이 멸치 똥만큼이나 어두워서 한 치 앞길도 보이지 않았다

으 비린내 내일부터는 극세사 장갑 가져와야지


딸랑-


"성님. 저왔어요!"

"동상왔어?"


아빠는 재료를 사러 나갔고 나 혼자 주방에 쭈그리고 앉아 멸치와 씨름하고 있는데 홀에서 정답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손님이 온 줄 알았는데 대화 하는 소리가 계속되더니 웃음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표준어를 쓰려고하는 엄마가 간간히 사투리를 섞어 대화를 하는게 낯설어서 손을 씻고 홀로 향했다

누구지? 고향 친군가


"엄마 누구 오셨어?"

"어머. 오늘은 따님도 있었네?"

"...어?"


주방과 홀을 잇는 입구에서 나는 멈춰섰다

홀에는 엄마를 포함해서 세 명이 테이블에 앉아있었는데 엄마의 맞은편에 앉아서 내 쪽을 향해 뒤를 돌아보며 기뻐하는 중년 여성은

한 달 전에 손님으로 오셨던 엄마와 같은 이름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갈색 단발 파마머리는 단정했고 의상도 화려하지 않지만 귀티가 흐르는게 한 달 전과 다름이 없는 모습이었다

방금까지 엄마와 즐겁게 대화하던 사람이 이 분이라고?

사투리를 쓸 것 같은 이미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놀라버렸다

하지만 금새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저번에 한 번 만났었죠?"

"얘는 애한테 무슨 존댓말이니"

"성님도 참.. 애는 뭐 기분 안 나쁘나요? 호호"

"....말씀 편하게하세요!....근데...저기... 성님이라니 대체...?"


아무리 수도권에서 태어나 자란 나라도 성님이 언니라는 뜻의 사투리라는건 알고 있었다

그저 겨우 한 달 전에 손님으로 왔던 중년 여성이 엄마를 향해 친근하게 성님이라고 부르는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을 뿐

엄마는 이런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짧게 설명했다


"알고보니까 엄마 고등학교 후배더라구"


세상에.. 고향까지 같았단 말이야?

아무런 접점도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지만 이정도로 우연이 겹친다면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의 얘기를 더 들어보니 중년 여성이 고등학생 시절 자신과 이름이 같았던 선배를 떠올리게되면서

엄마에게 고등학교 얘기를 하게 됐고, 그 후 고등학교 얘기나 고향 얘기로 친해지게 된 모양이었다

역시 나이불문 추억팔이가 제일 재밌는 법

하지만 엄마랑 중년 여성은 나이 차이가 있어서 같이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을텐데 엄마를 어떻게 알고 계셨던거지?


"..저기..근데.."


물어보려고 하는데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이 안 왔다

사모님은 너무 딱딱한 것 같고, 아줌마라고 하기에는 무례한 것 같고.. 으음..


"아 맞아! 우리 딸하고 인사 아직 안 했지?"

"..네?"


중년 여성이 박수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보기보다 활발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중년 여성이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는다

나를 등지고 있기도 했고 엄마와 두 분이 고향 선후배 관계라는 것에 놀라 신경쓰고 있지 않았던 또 한 명의 인물

그러고보니 누구지?


"이모 딸, 현진이"


아, 감사하게도 호칭을 정리 해주셨다

확실히 가족이 아니어도 엄마 친구 분들을 이모라고 부르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작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모라면 딱딱하지도 무례하지도 않고 친근하니까 만족스러운 호칭이다

그런데... 방금 뭐라고 하셨었지?

딸... 이라고 하셨나요?

나를 주시하던 검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차림새와 중성적인 이름 때문에 남자애라고 착각했었던 여자아이의 눈동자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이 검은 눈동자가 다시 나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나를 향해 천천히 뒤돌아 본 사람은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칠흑같이 검고 긴 머리는 살짝 끝이 웨이브펌으로 떨어져 단정해보이면서도 여성스러웠고

어두운 색의 자켓으로 단정하면서도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뽐내고 있는 미인

그때도 눈이 예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오늘보니 눈 뿐만 아니라 이목구비 중에 안 예쁜 곳이 없었다

이게 그때 그 남자애라고?

물론 남자애라고 생각한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지만 그때 그 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쁜 여자였다


"..... 아! 아, 안녕하세요... 저, 저는 조나영이라고 해요"

"........김현진이에요"


별 감흥 없어보이는 목소리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초면에 저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에 굉장히 기분이 상했을 법했지만

나는 그저 눈앞에 있는 현진이 입을 열어 말을 하고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장에 유리구슬이 가득 들어찬 것처럼 무겁고 울렁거리는 기분

뭐지? 이상한 느낌이야


"그러고보니.. 둘이 친구 아닌가요?.. 성님, 나영이가 몇 살이죠?"

"나영이 쟤가 현진이보다 두 살 위일걸?"

"뭐?!"

"어머, 나영이가 언니였구나"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며 현진을 바라봤다

현진은 관심없는듯 무표정하게 유리창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확실히 얼굴만 보면 어려보였다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어른스러워 보였던 거지 나보다 두 살 아래라면 일반적으로 올해 학부 새내기가 됐을 나이다

아 뭐야 새내기라고 생각하니까 좀 귀엽게 보이는 것 같은데..

하지만 평일 낮에 이곳에 있는걸 보니까 대학교에는 진학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초면에 물어보는 것도 좀 그러니까 더 친해지면 물어봐야지

나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하면서 이모에게 말을 걸었다


"이모, 식사는 하셨어요?"

"현진이랑 나갔다가 먹고 들어오는 길이야"

"그렇구나... 후식으로 파인애플 어떠세요?"

"아냐, 괜찮아. 배불러"

"아 맞다. 이번에 선물받은게 있는데 달고 맛있어. 하나도 안 시더라. 너도 한 번 먹어봐. 나영아 가서 깎아와"

"응, 알겠어!"

"아이 참.. 괜찮은데... 현진아, 너도 가서 언니 도와주렴"

".......네"


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보다 살짝 컸기 때문에 옆에 서있는 것만으로 긴장되기 시작했다 

최대한 웃으면서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해보지만 현진은 대답하지 않는다

말없이 나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온 현진은 좁은 주방에서 수선스럽게 움직이는 나의 진로에 방해되지 않게 구석에서 가만히 서 있는다

도마랑 접시를 꺼내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냉장고에서 파인애플 두 개를 꺼냈다

마지막으로 서랍에서 중간 사이즈의 과도를 두 개를 꺼내고 구석에 있던 현진을 불렀다


"저기...칼은 이걸..."


두 살이나 어린애였지만 차마 반말을 할 수가 없어 애매하게 말하며 과도를 건넸다

현진은 나와 한 번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과도를 받아들고서는 내 옆에 나란히 서서 능숙하게 파인애플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 옆모습을 잠깐 쳐다보다가 나도 과도를 손에 쥐었다

꼭지를 따고 양 끝을 자른다음 반으로 자르는데 칼날이 무딘지 심지에서 더이상 날이 나아가지 못한다


"으...이게 왜.."


칼등을 왼손으로 눌러도 잘리지 않자 발뒤꿈치를 들어 온몸으로 칼에 무게를 실었다

온몸을 떨면서까지 힘을 주니 조금씩 심지에 날이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느낌도 잠시 순식간에 심지가 잘리면서 칼날이 도마에 닿아 소리를 낸다


딱-

"됐다!...어?"


심지가 잘린건 좋았지만 순간적으로 오른쪽으로 쏠린 무게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나는 비틀거렸다

어... 어?! 쓰러진다!

다가올 충격에 대비해 눈을 감으려는 순간, 왼팔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오른쪽이 아니라 이번엔 왼쪽으로 몸이 기우뚱하더니 순식간에 옆에 서있던 현진의 품에 얼굴이 안착했다


"......아..저기..."


황급히 현진의 품에서 벗어났지만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시작했다

그러고보니 교통사고가 난 후에는 아드레날린인가 뭔가가 분비되서 흥분상태가 된다는 얘기를 TV에서 본 것 같다

이것도 아마 그런 종류일테지만 어째서인지 현진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고, 고마워"


고개를 들어 고마움을 표하는데도 시선이 현진의 얼굴에 닿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결국 떨어졌다

왜이러지..

한순간이었지만 현진의 품에 얼굴이 닿았을때 좋은 향기가 났던게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 것 같았다

자꾸만 코 끝에서 맴돌던 그 향기가 심장의 고동과 함께 흩어지기도 전에 현진이 입을 열었다


"..나머지는 제가 자를게요. 저건 가져다 드리세요."


현진은 내가 오른손에 쥐고있던 과도를 살며시 가져가면서 잘린 파인애플이 예쁘게 담겨있는 접시를 가리켰다

나는 창피한 마음에 알겠다고 대답하고 허둥지둥 접시를 들고 홀로 향했다

왜인지 모르게 시선이 자꾸 현진의 손이 살짝 닿은 오른손으로 향했다



**********


해피를 써야되는데 생각나는게 다 새드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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