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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우연이 계속되면 3

ㅇㅇ(115.23) 2020.04.13 15:49:59
조회 296 추천 13 댓글 1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 계속됐다

평일은 식당 일을 도왔고 주말은 자유의 몸이되어 노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아주 가끔씩 현진의 품에 안겼던 민망한 기억이 되살아나 이불을 걷어차곤 했지만

그 날 이후로 현진과 만난 적도 없어 그것도 서서히 횟수가 줄어갔다

그래도 엄마는 이모와 여전히 친하게 지내는지 간간이 현진의 소식을 들을 순 있었다

하지만.. 그 소식의 내용이

까르보나라를 만드려다가 치즈의 비율이 잘못되어 떡이되어 버렸다던가

세탁물을 구분할 줄 몰라 옷을 망쳐버렸다던가

욕조에 너무 오래 들어가있다가 실신해버렸다던가 하는 어째 다소 민망한 얘기 뿐이라는 것..

듣는 내가 다 미안해질 지경이다

소식의 출처는 이모일게 분명한데 점잖은 얼굴을 하고서 다 큰 딸래미의 부끄러운 얘기를 하며 웃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엄마하고도 잘 어울리시는걸 보니 의외로 털털하신 성격일지도 모르겠다

전혀 상상이 안 되지만..

근데.. 설마 엄마도 내 얘기를 하고 다니는건 아니겠지..? 아.. 안돼 엄마..


-


"됐다. 간판 끄고 밥 먹자"

"네~"


엄마의 호령을 듣고 간판 불을 끄고 문에 달린 팻말을 돌려 영업이 끝났다는 것을 표시했다

이걸로 오늘도 무사히 식당 일을 마쳤다

뿌듯한 마음으로 허리를 두드리다가 부모님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이미 저녁상이 한 상 가득 차려져있는 상태였다

부모님이 식당을 하면 배 굶을일은 없어서 좋구나~

특히 오늘 반찬에는 내가 좋아하는 조기 구이가 있었기 때문에 기분좋게 부모님 맞은편에 엉덩이를 내렸다


"엥 뭐야.. 왜 반찬이 풀밖에 없어? 조기 구운거는?"

"아까 다 떨어졌어. 오늘 생각보다 손님이 많더라"

"아.. 내가 좋아하는 반찬 없는데.."

"어디 식당 딸래미가 음식을 가려? 군말말고 먹기나 해"


힝..

엄마 눈치를 보던 나는 갈 곳을 잃은 젓가락을 결국 좋아하지 않는 나물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없다는걸 알았는지 아빠가 계란 후라이를 해놓으셨기 때문에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식당을 해도 밥을 굶을 수 있겠구나..

배부른 소리지만


"그러고보니.. 요즘 현진이네가 통 안 보이네?"

"미례랑은 저번 주말에 쉴 때 만났었는데 요즘 남편도 그렇고 일이 바쁘대"

".....미례"


나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이모랑 이름이 같다는건 알고 있지만 엄마 입에서 엄마 이름이 나오는건 좀 소름이 돋았다

마치 귀여운 척하려고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캐릭터를 본 것 같은 공포감이었지만 엄마의 노려보는 시선을 받고는 다시 정신을 차린다


"게다가 이번 모의고사 등급이 낮게 나왔는지 꽤나 걱정하고 있더라고"

"..모의고사? 누가?"

"누구긴 누구야. 현진이지"

"아....... 재수?"

"올해 처음 보는거야. 작년에는 검정고시 보느냐고 못봤대"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지만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검정고시라니.. 그렇다는건..


"학교를 안 다녔다는거야? 왜? 자퇴?"

"..너는 애가 남일에 왜이렇게 관심이 많니? 남 신경쓸 시간에 네 앞가림이나 잘해!"


아니, 얘기를 꺼낸건 엄마잖아..

서러웠지만 잔소리가 이어질까봐 다시 밥으로 젓가락을 향했다


"수험생이라니... 고생이겠어.. 그 왜, 나영이 수험생 때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붹...시험은 내가 보는데 아빠가 왜?"

"너는 기억 안 나겠지만 그때는 모든게 너 중심으로 돌아갔었어"


아빠 말대로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부모님 중 누구도 나에게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어서 섭섭했던 기억이 났다

지금와서 추억 보정이 들어간다면 나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서 그러셨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고3 딸래미가 혼자 학원을 알아보게 냅둔건 좀..

아빠 말에 공감할 수가 없어서 그저 웃기만 했다


"호호호 그치이? 그래서 내가 과외 하나 추천해줬어"

"아 진짜-?.......뭐?! 엄마가 뭘 알고? 애 인생 망칠 일 있어?!"


나를 따라 웃던 엄마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얘기해서 나도 모르게 맞장구 칠 뻔 했다


"...이 기지배가 밥상 앞에서...!"

"아, 아니... 죄송.. 근데 엄마가 그런데에 관심 없는건 사실이잖아? 괜히 나중에 욕 먹으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 괜찮아. 미례 이모도 다 허락했다니깐?"


엄마의 말은 손톱만큼도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이모가 허락했다는 사실에는 좀 놀랐다

이모가 납득할 만한 사람이 엄마 주위에 있을리가 없을텐데...


"그,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치? 그러니까 나영아"

"응?"

"내일 잘 부탁해"

"응? 뭐가?"


-


"아---- 안 간다고-----!"

"야! 이미 간다고 다 얘기 끝났는데 어떡해?! 얼릉 가! 시간 다 됐다"

"그건 엄마가 멋대로 약속한거잖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켜야지!"

"아니-!!"


이게 무슨 논리란 말인가

당사자는 알지도 못했고 바로 전날 통보받은 약속을 약속이란다

안 돼! 못 가! 안 가!


어제 저녁부터 이어진 이 실랑이는 결국 오늘 식당에서까지도 이어졌다

한창 바쁠 점심시간이 곧이라 손님들이 조금씩 들어오는 와중에도 엄마는 날 내쫓으려고 안달이 났다

언제는 가게 일 도우라고 협박 하더니만!


"나 가면 가게 일은 어쩌려고!? 언제는 도와달라매!"

"니가 하도 놀고만 있으니까 시킨거지! 원래는 다- 아빠 엄마 둘이서 하던 일이야. 애 가르쳐주면서 너도 복습하고 얼마나 좋니? 너는 애가 멍청하긴 해도 공부는 곧잘 했잖아"

"그건 학생 때 얘기지! 수능 본지가 언젠데. 그리고 그렇게 멍청한 딸한테 애 인생 걸게 하고 싶어?!!"

"아오 시끄러-! 이모랑도 다 얘기 끝났으니까. 언넝. 가기나. 해!"

"악!"


문을 잡고 버티고 있던 나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문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 괴력 아줌마-!


"오늘은 일단 가봐! 정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네 입으로 말하고 오던지"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았다

아 진짜 너무한거 아냐? 내가 한 약속도 아닌데 왜 내가 사과해야되냐고!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가 아닌 시내 쪽으로 걸었다

한가한 애가 있다면 불러서 놀아야지... 흥, 누가 갈까 보냐!

씩씩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열었다

한참 화면을 내려가면서 연락할 만한 친구를 찾다가 문득 무표정하게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던 현진의 옆모습이 떠올랐다

현진의 나이에 맞지않는 침착함과 무뚝뚝함의 원인이 학교를 다니지 않은 일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몇 년전의 내가 떠올랐다

수험생 시절 나는 불안하고 또 불안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아무런 내색하지 않았고 평소와 같이 행동하셨지만 나는 그것또한 너무 불안해서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빌고싶은 심정이었다

현진이는 한 번 인사를 나눴을뿐 잘 모르는 사이지만 그 아이도 지금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바쁘신 것 같은데 성적은 생각만큼 나오질 않고... 그래서 지금 불안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아--! 짜증나

적어도 직접 못하겠다고 말하면서 사과하는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해 발걸음을 돌렸다


익숙한 돌계단과 화단을 지나 공동현관 앞에 섰다

아무생각없이 주머니에서 카드키를 꺼내 갖다댔더니 문은 열리지 않고 기계음만이 흘러나왔다

「등록되지 않은 카드입니다」

아, 맞다

외관은 똑같았지만 옆동이었기 때문에 당연지만 카드키를 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외우고싶지 않았어도 외울 수 밖에 없었던 번호 1001를 눌러 호출했다


뚜...뚜... 덜컥

「...누구세요?」

"아, 저, 저기.. 조나영 이에요... 그.. 요 앞에 정식집 딸.."

「....」


대답이 없었기 때문에 잘못 눌렀는지 확인하려고 화면에 얼굴이 가까이 대려고 하는 순간, 공동 현관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래 틀렸을 리가 없지

같은 아파트여서 현관 안의 복도 구조는 우리집과 다를게 없었다

익숙하게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고 10층으로 향했다


띵동-


같은 아파트에 같은 층, 같은 호실

동 만이 달라서 복도에서 봤을 때는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벨을 누르는데도 어색해서 죽는 줄 알았다


달칵-


벨을 누른지 얼마 지나지않아 문이 천천히 열렸다

윗가슴까지 내려와 흔들리는 검고 긴 머리카락이 거슬렸는지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귀에 걸으며 현진이 나를 내려다본다

지금 현진은 처음 봤을 때처럼 가벼운 추리닝 차림이었는데

그때처럼 남자애로 보이지않고 누가봐도 예쁜 여자애였다

이런 애를 남자애라고 착각했다니 한순간 세상에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들어오세요"

".........아, 넵"


여전히 무표정에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안내하는 현진을 따라 현관에 들어섰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같은 집 구조여도 인테리어와 조명 차이로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우리집과 같은 집이 맞나 싶을정도로 현진이네는 넓고 깨끗했다

최소한으로 들어서있는 가구 하나하나가 심플하고 깔끔한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와-아, 집 깨끗하다... 실례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우리집과 같은 집 구조였기 때문에 현진이 향하는 곳은 내 방으로 쓰고있는 방과 똑같은 곳이었다

어른들께 인사도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현진을 따라 들어가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 근데 이모는?"


현진은 내 질문이 의아했는지 나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무의식적인 행동인 것 같은데 좀.. 아니, 많이 귀엽다..


"부모님, 잠깐 외출하신거세....야?"

"아.. 일 나가셨는데요?"

"...뭐?"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다는 것에 내심 기뻐하고 있었는데 현진의 대답에 온 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나 오늘 못하겠다고 말하면서 사과드리러 온건데..?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현진이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선.생.님"


스타카토로 끊어 말하는 현진의 입가는 드물게도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 미소가 조소에 가깝게 느껴진 것도 내 착각일 뿐이라고 간절히 바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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