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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Witch's Cafe - 2

mihcki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30 10:04:10
조회 398 추천 15 댓글 4
														



전편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556313

시리즈모음(포스타입) : https://rainbow-nize.postype.com/post/6622502






Episode 1. 밀크티 한 잔과 마녀 : Help! #2



*




소피아가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나무 목재의 탁자였다. 얼굴을 타고 전해지는 매끈한 감촉에 꽤 좋은 재질의 가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웅웅. 실링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소피아의 귓전에 울리자 몸을 움직이지 않고 눈만을 움직이며 주변을 살핀다.
이전부터 주위의 눈치를 보는 소피아의 버릇이다. 세실리아의 보살핌에도 눈치를 보는 버릇만큼은 쉽사리 고쳐지질 않는다.
전등의 밝은 빛과 주위의 빈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숙면을 도와주는 발라드의 음악과 이따금 들려오는 물이 끓는 소리.
그리고 소피아 자신의 어깨 위에 놓인 담요를 보인다.

“!!!”

그 순간 자신이 있는 곳을 알아차린 소피아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 반동으로 다리가 엇갈리고 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어깨 위에 올려진 담요가 떨어진다.
의자가 넘어지며 큰소리를 내자 깜짝 놀란 소피아가 뒷걸음질 친 탓에 담요를 밟고 미끄러졌고 화려하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으….”

자신의 부주의함과 그대로 잠들어버린 바보 같은 점에 스스로 한심함을 느끼는 소피아. 그런 소피아를 보며 카운터에 앉아있던 유미는 키득거리며 작게 웃는다.
유미가 보고 있었단 사실에 창피함과 수치심에 소피아는 자신의 긴 앞머리로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괜찮니? 다친 곳은 없어?”

유미가 다가와 묻자 소피아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떨어진 담요를 주워들었다.

“아, 담요가….”

소피아가 집어든 담요에는 선명히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변상이라도 해야 할까.
어쩔 줄 몰라 하는 소피아에게 유미는 괜찮다는 듯이 방긋 웃어 보이며 손을 내밀었고 조심스레 그 손을 잡고 일어선다.

“미안해. 침대에 눕히고 싶었는데 피아를 업고 계단을 오를 순 없어서.”
“저야말로 갑자기 잠들기나 해서…죄송해요.”

아마도 세실리아의 장례 이후 제대로 잠들지 못한 반동일 것이다. 소피아는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그런 소피아를 유미는 붉은 눈동자로 지그시 바라본다. 이내 곧 너그러운 웃음을 짓는 유미.

“괜찮아. 어차피 손님도 없거든.”

유미의 블랙 유머에 소피아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벙긋 거린다. 유미는 소피아의 반응을 보며 한참을 쿡쿡 웃었다.
마녀는 소녀를 놀리는데 재미가 든 모양이다.

“우선 짐부터 내려놓고 쉬렴. 지낼 방으로 안내해줄게.”
“앗, 네.”

유미는 소피아에게 담요를 받아들곤 카운터 안쪽에 위치한 문으로 향한다. 소피아는 부랴부랴 짐들이 든 캐리어를 끌며 그 뒤를 따른다.
저택은 밖에서 본 것처럼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은 카페. 그리고 카운터 안쪽의 문으로 들어가면 계단이 보였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서자 부엌과 거실이 보였다.

“거실의 오른쪽으로 가면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어, 참고하렴.”

2층과 이어진 3층의 계단을 딛고 올라서며 유미가 말했다. 소피아는 캐리어를 끙끙거리며 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3층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다. 유미가 자신의 방이라고 가리킨 곳은 계단 바로 앞에 있는 방.
그리고 조금 안쪽에 있는 큰 방은 집주인인 엘빈과 밀퓌유 부부의 방이라고 하였다.
자신에게 보내진 편지에 적힌 이름을 다시 떠올린 소피아는 엘빈은 어디서 무얼 하기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 걸까 의문을 표했다.

“지금 빈 방은 저기 한 곳이야.”

그런 소피아에게 유미는 가장 안쪽의 방을 가리켰다. 문을 열자, 푹신해 보이는 침대 하나와 책상과 옷장, 그리고 큰 창문이 있는 1인용 방이 있었다.
마치 투숙객이 이용하는 작은 여관 같은 이미지였다.

“청소는 항상 해놓아서 쓰는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렇지, 청소하니 말인데 앞으론 어떻게 할까? 내가 해도 상관없지만 사춘기인 여자아이 방을 들락거리는 건 실례겠지?”
“시, 실례는 아니지만…그래도 제 방 청소는 직접 할게요.”

소피아의 대답에 유미는 만족스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혼자 정리 할 수 있겠니?”
“네. 괜찮아요.”
“그래. 그럼 1층에 있을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부르렴.”

유미는 그렇게 말하곤 문을 닫고 나갔다. 밖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홀로 방에 남겨진 소피아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카페에 오기 전까지 있던 복잡한 고민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자 소피아는 이런 저런 잡생각이 든다.
신기한 사람이다. 동양인이라지만 영어도 잘하고 거기에 눈을 끄는 적안. 그 신비한 분위기에 소피아는 경외심마저 들 정도였다.

‘좋은 사람일까? 아냐.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곧 나에게 실망할거야. …이미 좋은 이미지도 아닐 테고.’

초면인 사람 앞에서 추태를 보였다. 그 사실을 실감하자 소피아는 다시 뜨거워지는 볼을 감쌌다.

‘…다시 혼자가 되는 건 싫어.’

소피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심이 흘러나온다. 이미 반쯤 포기하고 온 곳이었지만 할머니와 겹쳐 보이는 유미에게 소피아는 이유모를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돌아간 집에 혼자 남겨지는 것 보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얼마나 있게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소피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적어도 쫓겨나진 않을 거야.’

그래. 그러자. 소피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열어 옷들을 먼저 꺼냈다. 그 후 교복을 벗어 편한 사복으로 갈아입는다.
마지막으로 입은 중학교 교복에 애착이 가지만 더는 입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옷장 안으로 집어넣었다.
소피아가 입은 옷은 세실리아가 처음으로 사주었던 베이지 색 바탕에 자수가 박힌 스웨터와 자주색 스키니 진.
캐리어 안에 넣어놓았던 옷 중에서 소피아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이다.

“……….”

문득 방 안, 책상 옆에 걸린 거울에 눈이 들어왔다. 갈색이 조금 섞인 남색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흘러내린 소녀가 자신의 눈에 비쳤다.
눈을 가린 앞머리 때문에 음침한 인상이지만 소피아는 머리를 자르거나 들추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스스로도 보고 싶지 않은걸. 그렇게 생각하며 소피아는 거울을 뒤로 돌려놓았다.
그렇게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간다. 조용한 집안에 삐걱거리는 오래된 나무 소리만이 들리자 소피아는 다시 걱정의 마수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신 같은 것이 도움이 될까, 방금 전 까지 유미의 친절 탓에 그런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접객 같은 걸 할 수 있을까.
덜렁대기나해서 물건을 깨뜨리지나 않으면 다행일 텐데. 오히려 거치적거려서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을 더 앞당기는 게 아닐까.
그 잠깐 사이에 소피아의 머릿속은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해졌다. 그런 사이, 2층의 계단을 전부 내려와 1층의 문 앞에 섰다.
차라리 가만히 있다면, 조용히 쥐 죽은 듯이 살면 자신에게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들자 소피아는 문을 열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방으로 돌아가자.’

결국 그렇게 포기하는 소피아가 뒤를 돌아 다시 계단을 오르려 할 때였다. 계단의 위에는 이미 누군가 서 있었다.
그 누군가를 확인하기 위해 소피아가 고개를 들자 그곳엔 붉은 눈동자의 마녀, 유미가 서 있었다.

‘점장님…!!’

소피아가 놀라며 뒷걸음질 쳤지만 문에 가로막혀 벗어날 수 없었다. 유미는 그저 포근한 미소를 유지한 채 묻는다.

“무슨 일 있니?”
“아, 그, 그게…저, 저기…….”

당황한 소피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며 유미의 눈치를 살핀다.
여전히 나긋나긋한 분위기로 유미는 커피 원두로 보이는 봉지를 들고 있었다. 아마 저것을 가져오기 위해 2층으로 올라와 있었던 것 같았다.

“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해서, 그게 아니라…….”

유미의 시선을 피하며 눈을 아래로 내리까는 소피아. 변명을 말하는 것처럼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제, 제가 이 집에 사는 동안…뭐라도 하고 싶어서…저, 저 같은 게 도움이 될지 어떨지 모르지만…….”

소피아가 절박하게 목소리를 떨며 말하는 동안 유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온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개의 신중한 발걸음 이였다. 일부러 압박감을 주려는 게 아닐까.
혹시 자신을 괴롭히는 건가? 소피아의 생각이 그렇게 미치자 소피아는 다급하게 곧바로 말을 이었다.

“죄, 죄송해요! 그, 저기, 저는…시, 싫으시다면…그냥 방 안에만…이, 있을 테니까…….”

탁. 발걸음이 멈췄다. 소피아는 유미가 자신의 바로 앞에 멈췄단 사실을 알았고 힉,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양 팔을 들어 방어자세를 취했다.
겁에 질린 소피아는 금방이라도 주먹이 날아올 거 같다고 생각했으나 유미는 그저 소피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기만 하였다.
천천히 눈을 뜨며 팔을 내리자 유미는 기쁜 듯 웃고 있었다.

“고마워. 카페에 일손이 모자란 참이었는데. 맡겨도 괜찮을까?”

그 말에 다시금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자신을 감싼 것만 같다. 소피아가 그렇게 생각했을 땐 이미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목제 가구로 이루어진 카페는 4인용 탁자 하나. 2인용 탁자 세 개. 카운터에 연결된 1인용 자리가 네 개. 총 열 네 명이 수용 가능한 가게다.
그러나 손님의 그림자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애처로울 정도로 장사가 안 되는 현실을 카페의 음악으로 감추려고 해도 비틀즈의 Help! 라는 제목과 가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기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안쓰러워질 뿐이었다.

“자, 이게 카페 메뉴야.”

앞치마를 두르는 소피아에게 유미는 메뉴판을 건넨다. 생각보다 메뉴는 많았다.
특히 차 메뉴는 열 가지 이상이나 되는 이름들이 화려한 글자로 적혀있었다. 가장 익숙한 밀크티부터 시작해 소피아가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차 이름까지 있었다.

“…신기한 이름들이 많네요.”
“이름이 멋있는 걸로만 만들어놨으니까.”

그 선별법엔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소피아는 굳이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혹시 평소 손님은 몇 명 정도 오시나요?”
“어디보자, 일주일에 한 두 명 정도일까?”

겨우 그거?! 소피아는 경악했다, 아무리 손님이 없다지만 그 정도라면 수입이 있긴 한 걸까? 지금 당장 폐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괜찮아. 제대로 수입은 있으니까. 이래보여도 내가 있기 전부터 꽤 오래 운영한 카페거든.”
“네, 네에.”

유미의 말에 소피아는 어떻게 수입이 있단 건지 궁금했지만 더 파고드는 건 그만두자고 생각했다.
다만, 카페에 일손이 모자라다는 말의 신빙성이 부족해졌다. 혹시 자신을 배려하여 거짓말을 한 게 아닐까.
소피아는 신경쓰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미는 들뜬 어조로 말을 잇는다.

“차나 커피 만드는 법은 차차 알려줄게. 그리고 디저트 같은 건 내가 직접 만들 거야. 평소 개점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물론 쉬고 싶을 땐 언제든지 말해도 괜찮아.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일이고.”

소피아는 유미의 말을 메모하며 내용을 잊지 않도록 적어놓은 글을 여러 번 되뇌었다.

“그리고 요새는 뜸해지긴 했지만 고정적으로 오는 두 명이 있어. 손님보다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니까 나중에 소개해줄게.”

가족 같은 사람? 애매한 설명에 소피아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유미는 나중의 즐거움이라며 설명을 미루었다.

“카페 일은 이정도야. 나머지는 간단한 청소 정도. 탁자나 의자는 나무로 된 거니까 물기가 남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
“네!”

청소나 요리정도는 세실리아에게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 점에 한에선 소피아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식사는 어떻게 할까? 아침이나 점심은 상관없지만 카페 정리 때문에 저녁은 늦을 수도 있는데.”
“그럼 저녁은 제가 할게요.”
“정말? 그럼 오늘 저녁부터 피아에게 맡겨도 될까?”

갑작스럽게 당장 오늘부터라니. 하지만 이미 하겠다고 해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소피아는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소피아의 요리가 기대된다고 들뜬 얼굴로 유미는 웃는다.
그러나 갑작스레 미소가 끊긴다. 그리곤 붉은 눈동자가 지긋이 소피아의 얼굴을 훑기 시작한다.
그 행동에 당황한 소피아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유미는 안심하라든 듯이 다시 미소를 띤다.

“앞머리를 다듬는 건 어때? 얼굴이 보이면 더 예쁠 것 같은데.”
“괘, 괜찮아요.”

소피아는 앞머리를 양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예쁠 리가 없다. 음침한 얼굴을 드러내봤자 끔찍할 것이라 소피아는 굳게 믿고 있었다.
소피아의 부정에도 유미는 아쉽다는 듯이 첨언한다.

“그럼 한 번 웃어볼래? 접객업에선 미소가 중요하거든.”

그 말엔 다시금 마법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강제성은 없었다.
금방이라도 뿌리치려면 그럴 수 있었지만, 따스한 온기에 소피아는 마법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피아의 입 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소피아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순 없지만 분명 어색한 미소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급조된 미소는 어색할 수밖에 없으니까. 소피아의 예상대로 유미는 쓴웃음을 짓는다.

“표정이 딱딱하네. 그래도 계속 연습하면 자연스러워질 거야.”
“네….”

소피아는 대답하면서도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불가능해요. 저 같은 게 점장님처럼 그런 미소를 짓는 건.’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결국 카페의 방울이 울리는 일은 없었다.
소피아의 가계사정에 대한 걱정이 다시 머리를 들었지만 유미는 오히려 기뻐 보이는 얼굴로 “조수가 생긴 기분이야.” 라며 가게의 정리를 시작했다.
조수라니, 높게 쳐도 심부름꾼 수준인데. 소피아는 자신에게 그런 거창한 직책은 과분하다 생각한다.
아무튼 2층으로 올라온 소피아는 곧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유미가 정리를 끝내고 곧바로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니 저녁을 만들어야 한다.
이곳에서 만드는 첫 요리다. 앞으로 신경 써서 준비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유미는 벌써부터 배가 아파왔다.

“음….”

팔짱을 낀 채 소피아는 골똘히 생각한다. 유미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미리 물어보지 못해 곤란한 참이다.
소피아는 유미의 이미지를 떠올리다 세실리아의 이미지가 연상 됐고, 세실리아가 버섯과 야채가 들어간 스프를 좋아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의 몸은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재료는 다행히도 냉장고 안에 있었다. 물을 끓이는 동안 냉장고의 양배추와 당근을 꺼내 잘게 썬다.
아쉽게도 버섯의 양이 적었기에 야채의 양을 조금 늘렸다. 물이 부글부글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수프 가루를 넣어 푼다.
보관중인 바게트 빵도 있어 먹기 좋게 여러 등분으로 나눠 수프와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빵과 어울리는 밀크티도 준비한다. 세실리아는 빵과 밀크티의 조합을 고집했다는 것을 소피아는 잘 알고 있었다.
소피아는 내심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집에 온 이후로 자신이 자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자신은 그리 행동이 앞서는 성격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러나 곧 뚝 하고 손이 멈췄다. 돌연 소피아의 몸이 덜덜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휘청 인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소피아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원인은 명백했다. 소피아의 손이 멈춘 것은 밀크티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을 본인이 자각하였을 때다.

‘안 돼. 밀크티만은…안 돼.’

소피아가 우유팩을 집어 냉장고로 달려가 내동댕이치듯 집어넣는다.
볼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려다 그것이 눈물이란 것을 알아차리자 손으로 눈가를 북북 닦아낸다.
너무 강하게 문지른 탓에 눈가가 부었지만 덕분에 눈물은 멈춘 모양이다.

“어쩌지….”

밀크티를 만들던 찻잔 앞에 멈춰 섰다. 어쩔 수 없이 홍차로 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소피아는 한숨을 한 번 내쉰다.
잠시 후 다행히 완성된 요리들을 쟁반 위에 올려두고 거실의 테이블로 향했고, 인기척도 없이 올라온 유미는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신출귀몰하다고 생각하면서 소피아는 놀란 가슴을 진정했다.
사실 이런 점은 마녀보다는 유령에 가까운 것 같다.

“맛있어 보이네. 재료가 적었을 텐데 만들기 힘들었지?”
“괘, 괜찮았어요.”

짤막하게 대답하며 소피아는 유미의 맞은편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았다. 유미가 먼저 스푼을 들어 수프를 입에 가져간다.
누군가가 자신의 요리를 먹는 것은 세실리아 이후 처음 이였기에 긴장된 빳빳한 자세로 소피아는 유미의 반응을 기다린다.

“응, 맛있네.”

다행이다. 소피아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제야 소피아도 식사를 시작했다.

“피아는 곧 열다섯이라고 했던가?”
“네? 네…생일이 지나면요.”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걸까. 소피아는 들었던 스푼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구나. 중학교는 졸업했으니까 이제 어엿한 숙녀네. 고등학교는 어느 학교로 갈 예정이니?”
“…….”

유미의 질문에 소피아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소피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나 같은 게…학교에 다녀봤자 뭘 배우겠어. 어차피 그럴 형편도 안 되는걸….’

소피아의 뜻이 전해진 것인지 유미의 얼굴이 조금 굳는다. 잠시 껄끄러운 침묵이 유지됐고 유미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 다니고 싶지 않니?”
“……괜찮아요.”

세실리아가 남겨준 유산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학교를 다니기엔 벅차다. 그렇다고 유미나 엘빈의 지원을 받아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곳에 머무르는 걸 허락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니까.

‘날…좋아해줄 사람은 더 이상 없어. 오직 할머니만 날…….’

피잉 하고 소피아의 눈가에 눈물이 어린다. 안 돼, 울지 말자. 소피아는 눈에 힘을 주며 눈물을 삼킨다.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노골적인 대화 전환. 덕분인지 유미는 다시 나긋나긋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궁금했는데 카페이름은 직접 지으신 건가요? 신기한 이름이라 서요.”
“응. 내가 지었어. 난 마법을 쓰는 마녀거든.”
“……?”

마법? 마녀? 그 말에 소피아의 말문이 막힌다.
아직 동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피터팬 증후군의 편린이 아닐까하는 생각보다도 그 말을 믿는 쪽으로 소피아의 마음은 기울고 있었다.
반나절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을 때 겪은 마법의 잔재가 신빙성을 더했기 때문일까.
유미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미소를 유지한 채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에 이끌리 듯 소피아 또한 찻잔을 든다. 그러자 곧 소피아의 눈이 휘둥그레 변한다.
찻잔 안에는 분명 홍차가 따라져 있을 터인데, 어느새 밀크티로 변해있었다. 우유는 분명 넣지도 않았을 텐데.
찻잔과 유미를 번갈아보는 소피. 유미는 마치 장난을 친 후 시치미를 떼는 어린아이의 표정을 흉내 내고 있었다.

──마녀는 인간이 모르는 사이 마법을 걸기 시작한다.








에피소드 1은 여기까지야. 에피소드당 분량이 15~17p 정도 나올거 같은데 더 길어질 수도 있음.

각 에피소드에 적힌 노래들을 한 번씩 들어주면 좋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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