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Date: 2020/04/28.
제11회 Zeitgeist 공모전 최종심 이틀째.
다행히 연아에게도 지원군이 생겼다. 편집자 중 한 명이, 연아의 주장에 동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도 수상권에는 드는 작품, 그러니까 본상은 아니어도 가작 정도로는 꼽아 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마 대부분 비슷한 생각이실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은 많지만 기세는 훌륭하다. 이 작품 말고 다른 작품이 보고 싶다. 그런 느낌이 들었죠.”
“그러고 보니 작가는 신인인가?”
“네. 이선영 씨라는 분이고, 공모전 수상이나 출간 경력은 없다네요. 아….”
편집자가 입을 다물었다. 편집부야 당연히 투고 시 기초적인 개인 정보를 받지만, 심사위원들에게 노출되어선 안 된다. 연아가 받은 본심 원고에도 집필자를 특정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은 전부 커트되어 있었다.
“최종심 단계니까 이제 와서 신경 쓸 거 없잖아요. 수상하면 어차피 알게 될 거고.”
화영이 냉담하게 반응했다. 편집자는 볼을 긁적이더니 말을 계속 이었다.
“아무튼 그렇긴 한데, 결국 작중에서 묘사되는 건 근친상간이고 살짝만 냉담하게 쳐다봐도 강간이고. ‘이번 수상작은 모녀상간, 강간 있음. 보아라, 이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라고 하는 거 너무 흉하지 않나요.”
“그런 작품이 없던 것도 아니잖아요? 부녀상간이라면 토할 만큼 널렸는데.”
화영이 싸늘하게 짚었다.
“바로 그게 문제라는 거죠. 터부를 다룬 작품이 딱히 없었던 것도 아니니 신선할 것도 없고, 모녀상간이라는 점 때문에 생생함? 비릿함이 다소 휘발되어서 작품의 문제적 요소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나오면 곤란하지 않느냐는 거죠.”
“흐음…. 그래요?”
“예.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 화자가 미성년자인 것도 좀 면죄부를 얻으려는 교활한 행동처럼 보여요. 나는 안 그러려고 했는데 상대방이 먼저 꼬드겼다, 이거 전형적인 성 범죄자의 논리잖아요. 미성숙한 양육 대상이 어긋난 욕망을 품게 되도록 방치했다면 양육자의 책임이 압도적인데….”
“그렇다고 화자가 반대가 되면 역겨워서 못 보잖아.”
다른 편집자가 농담조로 끼어들었다.
“그건 그렇죠. 아무튼 공모전 수상작이 되는 거니까, 이렇게 일방적인 미화는 좀….”
“그럼 상 주지 말죠.”
가장 적극적으로 작품을 추천하던 화영이 갑작스럽게 내던지자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러나 화영은 뒤에 폭탄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신 작가님 연락처를 저한테 주세요. 제가 다른 출판사 통해서 이 작품 내도록 할 테니까요. 정 안 되면 제가 지원해서 자비 출판을 해도 좋아요.”
“자, 작가님….”
단번에 모두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편집장이 상황을 정리했다.
“임 작가님이 그러시니 뺏기기 싫으면 우리가 낼 수밖에 없겠네. 일단 가작 입선으로 정해 둡시다. 한 작가님, 우려하시는 건 알겠지만 임 작가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실 정도로 확고한 매력이 있는 작품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정 대리가 말하는 문제도 있지만, 문제성이 있는 작품이라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다만 이 분이 이 작품 말고 다른 작품도 과연 이 정도로 쓰실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니까, 발표 전에 미팅 잡아서 어떤 분인지 좀 확인하고 최종 결정을 합시다. 한 작가님, 혹시 뭔가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입을 지그시 다물고 있는 모습이 신경 쓰였던 것일까. 편집장의 우려 섞인 질문에 연아는 애써 입을 열었다. 가슴속을 짓누르는 것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연아의 편을 든 편집자의 말들이었다.
타인의 책임. 면죄부. 양육자의 책임. 그런 말들이 너무 무거워서, 자기도 모르게 본심이 흘러나왔다.
“그… 잘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 깊게 고민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면죄부를 얻으려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연아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이 소설은 틀림없는 사소설(私小說)이라고.
* * * * * *
최종심은 점심을 먹고 나서도 계속 이어졌지만, 가장 난항이던 작품에 대한 토의가 끝난 후라 그 뒤는 비교적 쉽게 마무리가 되었다. 대상작은 『둘의 정원』, 우수상 두 작품은 『아버지의 일』과 『천일함락』, 가작으로 『상냥한 교살』.
연아와 화영은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를 받으며 출판사를 나왔다. 편집자들은 이후에 당선 예정자들에게 연락을 하고 미팅을 해서 5월 1일에 최종 발표를 하게 될 것이다. 최종심이 하루 더 길어진 관계로 일정이 더 촉박해졌겠지. 살짝 미안함을 느꼈다.
“그러면 저는 여기서….”
화영은 차를 가지고 왔으리라는 걸 아는 연아가 건물 앞에서 인사를 했다. 그러나 화영은 연아의 손을 잡아채더니 멋대로 근처 카페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깐 얘기 좀 해요.”
“예?”
오후 3시의 한적한 카페. 겨울이 유독 길게 느껴졌던 시기지만 4월 말의 햇살은 놀랍도록 따뜻해서 어딘지 마음이 평온해졌다. 집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주저하는 마음도 있었기에 이렇게 붙잡아 준 게 약간 고맙기도 했다.
연아가 햇살에 취해 있는 동안, 연아의 몫까지 멋대로 주문을 끝마친 화영이 채근하듯 물었다.
“3월에 나온다던 신작, 왜 안 나와요?”
“저기… 그… 마감을 못 지켜서….”
“경하랑 무슨 일 있죠?”
대놓고 찔러 들어오는 칼날에 말문이 막혔다.
“…어, 어떻게 안 거예요…?”
“연아 씨가 마감 어긴 거 딸 아플 때밖에 없었으니까요. 이번에 원고에 대한 반응도 이상했고.”
“…화영 씨는 모르는 게 없네요….”
화영이 흥 하며 고개를 돌렸다. 표정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귓가가 약간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경하랑은… 조금… 어려운 일이 있어서….”
“무조건 경하 말 들어요. 연아 씨는 글 쓰는 거 빼면 아무것도 똑바로 하는 게 없으니까.”
아무것도 똑바로 하는 게 없다는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좋은 엄마는 못 되어도 싫지 않은 엄마 정도는 되고 싶었는데.
이 이야기는 피하고 싶었기에 애써 화제를 돌렸다.
“화영 씨는 그 원고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든 거예요?”
“장점 말할 때 안 들었어요?”
“들었지만, 그것만으로 그렇게까지 말하나 싶어서.”
이 공모전에서 떨구면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하도록 하겠다니 어지간한 발언이 아니다. 화영은 늘 막나가는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이번 건 농담이라고 해도 좀 과격했다.
“…비슷해서.”
“?”
“…연아 씨 작품 처음 봤을 때 받은 느낌이랑 비슷해서요.”
화영이 애써 감정을 눌러 죽이며 말했다. 목소리는 냉랭하다. 그러나 귀는 더더욱 빨개져서 수치심을 억누르고 있다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자기도 모르게 놀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역시 팬 1호쯤 되면 보기만 해도 아는 거군요….”
“…어렸을 때였다고요.”
“그러고 보니 연말에 대청소를 하다가 화영 씨가 보내 주신 팬레터를 찾았어요.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찾아서 너무 기뻐요. 화영 씨도 그때는 경하 또래였겠죠?”
“…정말로 어렸을 때였다고요….”
조금 더 화영을 놀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전화를 들어 보니 편집부에서 온 연락이었다.
「아, 작가님.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네. 음… 저기, 확인을 해 봤는데, 그 작품 수상은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
* * * * * *
경하에게 꼭 빌라며 몇 번이나 강권하는 화영과 헤어져 집에 들어왔다. 침실로 들어가서 상태를 보자 경하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다행히도 별일은 없었던 듯했다.
연아는 잠든 경하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몇 달 동안 경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마음이 정리된 지금 다시 바라보면, 경하는 역시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그녀의 딸이었다.
연아는 코트와 재킷을 벗었다.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올려 놓고, 카메라를 켜서 영상 촬영 모드로 세트했다. 침대가 잘 비치는 걸 확인한 다음, 경하를 덮어 누르듯 그 위에 몸을 포갰다.
갑작스럽게 실린 무게에 정신이 든 것이리라. 눈을 뜬 경하가 생각도 못한 상황에 당황해 입을 열었다.
“어… 엄마….”
연아는 대답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텅 커버를 벗겨내고, 그 혀를 잡아 끌어냈다. 침대에 속박되어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는 경하는 한계까지 혀를 내밀어야 했다.
그 혀를 입술로 덮고, 혀로 휘감아 핥았다. 예상 못 했던 상황에 경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 확인하면서, 그 혀 중간에 나 있는 상처의 흔적을 계속 핥았다. 소리가 되지 않는 신음이 경하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손가락을 놓고, 입술을 맞대고 적극적으로 키스를 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주저주저하던 경하가 적극적으로 입맞춤에 호응해 왔다. 거칠어지는 자신의 숨소리가 경하에게 들키지 않기를 빌었다.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딥 키스는 연아의 안쪽,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무엇인가를 깨어나게 했다.
이대로 언제까지라도 입 맞출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억지로 얼굴을 뗐다. 녹아들 것 같은 표정인 경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경하야. 정말로, 정말로 엄마가 좋은 거지…?”
경하의 눈에 의문의 빛이 깃들었다. 어째서 이 상황에서 그런 걸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아는 호흡을 가다듬고서, 최대한 냉정하게 말했다.
“그럼, 각오해 줘.”
그대로 손을 뻗어 경하의 잠옷을 잡아 뜯었다. 뚜두둑 뜯겨진 단추가 날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드러난 가슴을 힘껏 움켜쥐었다. 쥐어뜯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깊게 파고든 손끝에 경하가 비명을 질렀지만 연아는 멈추지 않았다.
보드랍고 새하얀 가슴도 이렇게 오랫동안 무턱대고 쥐고 있으면 본래의 색을 잃고 만다. 보랏빛으로 물든 가슴을 살짝 놓았다가 다시 한 번 힘껏 움켜쥐었다. 비명을 애써 억누르는 그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핏방울을 터트렸다. 비어 있는 손으로 머리채를 잡아채 끌어당겨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게 하고, 드러난 목 줄기를 어금니로 훑었다.
“비명 질러도 괜찮아.”
경하의 귀에 그렇게 속삭였다.
“어쩌면 누군가가 벌써 경찰을 불렀을지도 몰라. 아까 그렇게 힘껏 소리쳤으니까. 그러면 아마 엄마는 감옥에 갈 거야. 그렇지?”
딸의 몸에 남은 자살 시도의 흔적들. 치명적이 될지도 몰랐던 병원의 입원 기록. 집에서 감금하고 성적으로 학대하는 현장을 이웃과 경찰이 증언. 몇 꼭지나 차지할지는 모르겠지만 뉴스에 나오기에 부족함은 없으리라.
그리고 경하는 예상대로 입을 꽉 다물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입을 열지 않겠다는 결의가 엿보이는 그 모습에 연아는 그만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아이가 도리어 학대범인 부모를 변호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고 한다. 올바른 어른이라면 이럴 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짓을 하면 저항하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지금 연아는 경하를 학대하려 하고 있었다. 그 몸에 상처를 남기고, 실로 역겨운 방식으로 자신의 딸을 안으려 하는 중이었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 착하네. 기분 좋게 해 줄 테니까, 엄마 말 잘 들어.”
무릎으로 경하의 가랑이 사이를 눌렀다. 습기가 밴 속옷이 몸에 달라붙는다. 무릎을 조금씩 미끄러뜨리며 신경이 밀집된 지역을 비비자 경하의 입에서 비명과는 다른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건 무슨 소릴까?”
새빨갛게 된 경하의 귓불을 씹고, 동그랗게 만 혀로 귀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려고 할 때, 검지와 중지로 비부를 매만졌다.
달콤한 교성이 긴장과 공포심으로 얼어붙었다. 그 반응을, 그 의미를 확인하고도 멈출 마음이 들지 않는 자신이 이상했다.
오늘 최종심 회의에서 오간 이야기를 통해 겨우 깨달았던 것이다.
연아와 경하가 이어지려면, 그것은 절대 경하의 고백을 연아가 받아들이는 식이어선 안 되었다. 연아에게 면죄부가 주어질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선 안 된다. 육욕에 눈이 먼 미친 어머니가, 아이의 사랑을 이용해 학대하는 형식이어야만 한다.
가장 역겨운 방식으로,
경하는 완전한 피해자여야만 했다.
만에 하나라도 누군가가 경하를 향해 손가락질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연아는 결코 경하를 안을 수가 없었다.
* * * * * *
울며불며 그만해 달라고 애원하던 경하가, 그런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된 후에야 연아는 움직임을 멈췄다. 녹화해 둔 휴대폰을 보고 그 전모가 모두 기록된 걸 확인했다. 명백한 증거였다. 그 누가 보더라도 자신은 완벽하고 역겨운 가해자였다.
일부러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신에게 헛웃음이 나왔다.
긴장으로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지만 그래선 안 되었다.
침대로 가서 경하의 속박을 모두 풀었다. 곳곳에 몸부림치느라 쓸린 흔적이 남아 가슴이 저려 왔다. 소독 효과는커녕 도리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다친 손목을 혀로 핥았다. 피의 맛이 나는 그 흔적을, 언제까지라도 계속 핥고 있을 듯했다.
“간지러, 엄마….”
웃음이 섞인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눈을 뜬 경하가 연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움츠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엄마는 이런 사람이야. 그래도 정말 괜찮아…?”
풋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경하는 그대로 연아를 붙잡고는 힘껏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거짓말쟁이. 말도 안 되는 무리나 하고.”
경하의 입술이 연아의 눈가에 다가왔다. 눈물을 핥는 따스한 감촉에, 연아는 비로소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거짓말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이선영이라는 사람, 누구야?”
『상냥한 교살』의 투고자로 적혀 있던 이름이었다.
“…반 친구 언니. 고등학생이 투고했다고 하면 보지도 않고 떨어질 것 같으니까 이름을 빌려달라고 했어.”
“…그거 결국 떨어졌대. 가작을 주려고 했는데, 오늘 그 사람에게 연락해 보니 사실은 네가 쓴 원고라고 고백했다나 봐. 심사위원 관련자가 당선되어 버리면 어떻게 봐도 수상하니까.”
“상관없어. 예심만 통과하면 엄마가 읽어 줄 테니까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는걸.”
처음 읽었을 때부터 자신들의 이야기 같다고 느꼈는데, 결국 착각도 우연도 아니었다.
“왜 그렇게 빙 돌아가는 방법을 쓴 건데. 예심에서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랬어.”
“엄마가 그랬잖아. 엄마한테 책은 갖고 있는 모든 걸 다 꺼내서 가장 아름답게 장식한 꽃다발 같은 거라고. 나,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내 마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거든.”
그러니까 엄마에게 배운 그대로,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의 가장 아름다운 결정을 빚어내려고 했다.
그 작품은 결국 연아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였던 것이다.
경하의 행동은 처음부터 단순하고 일관적이었다. 연아를 사랑했고,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면 죽을 것 같았기에 고백하는 글을 썼다. 닷새나 돌아오지 않자 견딜 수 없어져서 죽으려 했다. 연아가 또 나가 버리는 게 무서워서 자해하며 붙잡아 놓으려고 했다.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 경하는 대여섯 살짜리 어린애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너무나도 서투르기 그지없었다.
“만약에 예심을 통과한다면 누군가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고, 적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주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연아는 기억을 되새겼다. 1월 7일. 그날은 이번 공모전의 예심 결과 발표가 있는 날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 저녁에 갑자기 술을 먹고 싶다고 한 게….”
“조금 들떠서….”
연아는 할 말을 잃었다.
“어, 엄마야말로 왜 갑자기 허락해 준 거야…?”
경하가 잽싸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 러브레터를 읽었는데 어떻게 거부해….”
연아는 힘없이 대답했다.
망설임은 계속 있었다. 목숨과 바꾼다 해도 아깝지 않은 딸인 것이다. 그 사랑을 받아들였을 경우의 위험성이 아니었다면, 그 때문에 경하가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었다면, 한참 전에 그 손을 잡았으리라.
그 열렬한 러브레터가 경하가 쓴 것임을 알고서야, 경하가 한 행동들이 첫 사랑에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애의 그것이었음을 이해한 후에야, 만약의 경우에라도 경하를 탓하는 사람이 없을 방비책을 만든 후에야 겨우 마음에 솔직해질 수 있었다.
“작품은 무조건 사랑스럽지만 딸은 그렇지도 않다면서.”
연아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단 말야?
“당연하지. 미운 구석도 있어. 나를 닮은 부분이 밉고, 나를 닮지 않는 부분이 밉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닮은 부분이 미워. 그렇지만 그것까지 포함해서 훨씬 마음이 큰 거야. 내가 미워했던 그 모든 것들조차 받아들일 수 있게 돼.”
작품은 자기 이상의 체현이다. 「좋아함 100」.
그러나 경하는 연아가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 것의 총합이다. 「좋아함 200 + 미워함 100 = 총합 300」.
엄마가 딸에게 이길 리가 없는 것이다.
X.
이야기를 나눈 연아와 경하는 서로를 안고 잠들었다 깨어났다.
그리고 어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안고 입을 맞추었다. 호흡하기 힘들어져서 간신히 떨어졌을 때, 연아는 또 다시 경하의 상처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역시 아프지 않아? 너무 아프게 했…지…?”
“괜찮아. 엄마가 상냥하게 해 주는 걸 알고 있었는걸.”
“그렇게 발버둥 쳤으면서….”
“끌어안고 싶었는데 묶여 있느라 그러지 못해서였을 뿐인걸.”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반사하는 경하의 얼굴에 거짓말하는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 말에 의지하게 되는 걸 깨달으며, 연아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엄마….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단 말야….”
그렇게 말하는 경하가 정말로 고뇌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연하는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이상해져도 돼. 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라도 괜찮은걸.”
“…아까 엄마가 해 준 거, 해도 돼?”
연아는 아까 자신이 한 일을 돌이켜 보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새빨갛게 되고 호흡이 어려워졌다. 그래도 용기를 쥐어 짜내 대답했다.
“말했잖아. 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라도 괜찮다고. 대신….”
“대신…?”
연아는 아까까지 경하를 묶고 있던 밧줄을 집어 들었다.
“…이걸로, 입… 막아 줘….”
경하는 결국 이상해졌다. 하지만 연아는 원망하지 않았다.
* * * * * *
1년 후.
「제12회 Zeitgeist 공모전」에 『마리아 님을 보고 있어』라는 작품이 투고되었다. 심사단 만장일치로(연아는 심사에 참가하지 않았다)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희대의 백합 성애 문학서로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이 작품이 사소설인 걸 깨달은 화영이 피눈물을 흘린 것은 또 다른 이야기.
『상냥한 교살』 完.
※ 등장하는 작품명은 각각, 이토 하치 갤주님의 '상냥한 학대', 『둘의 방』, 『오파파고토』, 『백일함락』,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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