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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각인앱에서 작성

하나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5.09 09: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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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부터 나는 기억력이 좋았다.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나는 그 기억들을 안고 살아갔다.

그 기억 중에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나의 친부모의 다툼이다. 아마도 네살 무렵이였을까. 나의 부모는 나를 사이에 두고 자주 다툼을 했다.

그때는 다툼의 내용을 몰랐으나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나는 나의 '아버지'와 닮은 점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아기였을 때는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아서 긴가민가했었지만 점점 자라나자 자신과 내가 닮은점이 없다는걸 알았을 것이다.

그 다툼이 끝난 것은 이혼이 아닌 나를 고아원에 버릴때였다.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났는지는 나는 모른다. 아마도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자신들을 쳐다보는 내가 부담스러운 탓에 두 사람이 몰래 합의한 듯 하였다. 어찌됐던 그 날은 나의 부모가 유일하게 내 앞에서 사이가 좋았던 날이였다.

"...아, 우리 처음으로 여행가는거야. 기쁘지?"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뒷자석에 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때 나는 아마 기쁘다는 감정을 이해 못해서 답을 못 한것 같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마 엄마가 처음으로 짓는 미소에 놀랐었던 것 일수도 있다.

내가 답이 없자 엄마의 입꼬리는 다시 내려가고 얼굴이 딱딱해졌다. 평소와 다를바 없는 얼굴에 나는 머물렀던 시선을 떼어내고 이번엔 운전석에 시선을 보냈다.

"말도 못하는 애한테 뭣하러 말을걸어."

"혹시나 해서..."

엄마가 말끝을 흐림과 동시에 차는 인적없는 산 중턱에서 멈췄다.

"앗, 차가 고장났나보네. 아빠가 차 손 볼 동안 우린 나가있을까?"

엄마는 안전벨트를 풀고 조수석을 나서더니 얌전히 앉아있던 나의 팔을 거칠게 당겨 차에서 꺼내며 말했다.

그리곤 어느 방향으로 걷더니 나의 양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아, 오래걸릴 것 같다. 따뜻한 곳에 가 있을래? 이 길로 쭉 걷다보면 어떤 건물이 있을거야.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엄마가 손가락으로 가르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정수리에 있던 해가 지평선에 걸쳐있으며 빨갛게 타오를 때. 멀리서 건물과 부모님이 타고있는 것 같아 보이는 차가 보였다.

나는 타오르는 듯한 갈증과 피로감에 불구하고 최대한 빠르게 뛰어갔다.

나는 열심히 차문을 두들겼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찰나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너 누구니?"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여자에게서 나는 나의 부모님이 연상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나를 건물 안으로 데려가더니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등받이가 높고 푹신해보이는 가죽의자에 앉았다.

"처음오는 아이니까 친절하게 설명해줄게. 넌 뻐꾸기야. 알고있니?"

"..."

"부모가 너를 버렸다는 뜻이야. 너를 이렇게 다른 둥지에 버리고 너는 또 그 둥지에서 다른 아이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야겠지. 운이 좋다면 금방 좋은 둥지를 찾겠지만 대다수는 운이 없는 편이지. 너는 얼굴은 곱상하니 금방 찾겠구나."

그녀의 안목이 형편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운이 안 좋았던 거 였는지 나는 17살이 되서야 둥지를 찾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봉사활동으로 온 불임부부가 말을 못하는 나를 지켜보고 입양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기에 자신있었다.

나를 입양한 후 병원으로 가서 왜 말을 못하는지 검사를 맡았었다. 나의 몸이 정상인 것은 금방 들통났고 의사는 나의 두번째 부모에게 정신적인 요인이라고 했다.

그들은 한동안 나에게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었다. 하지만 밑빠진 장독대에 물붓기같은 결과에 화가난 나머지 나의 두번째 아버지는 나의 뺨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반사적으로 나온 신음소리에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그래, 그렇게 소리를 조금씩 내봐."

서재에서 나온 흘러나온 소리에 부엌에 있던 엄마가 왔다.

"무슨 일..."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과 부어오른 뺨 그리고 올라가있는 아빠의 손을 보고 폭력이 있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서재 안으로 금방 들어온 엄마는 아빠의 팔뚝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만, 그만해요."

"들었어? 아까 소리를 냈다고. 예은이가 드디어 소리를 냈어."

"여, 여보..."

"내가 오죽하면 이러겠어...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되지않는 걸. 그래, 당근과 채찍을 잘 써야되지 않겠어? 우린 너무 당근만 줘서 그런거야. 가끔은 채찍질도 필요하다고."

자기합리화하는 아빠를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외면을 했다.

그 후로도 나는 매일 10분간 서재에 들어갔다. 첫날과는 다르게 얼굴이 아닌 옷에 가려지는 부위를 꼬집거나 회초리로 때리거나 기분이 안좋은 날이면 직접 손으로 때리기도 했다. 엄마는 그때마다 그저 부엌에서 도마와 칼이 부딪히는 소리를 크게 내며 저녁을 준비했다.

그렇게 폭력이 지속되던 날 너무 아팠던 나머지 소리를 내며 펑펑 울었던 날에 아빠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예은아, 우리 일주일 뒤에 파티에 갈거야. 아빠 사업에 중요한 영향을 주실 수 있는 분의 자녀분 축하파티를 열거든. 오늘처럼 너가 노력해서 소리를 내줄 수 있지?"

"으..."

"그래, 그거면 충분해. 우리딸 가기전에 사흘만 더 연습하고 푹 쉬자?"

아빠는 약속을 지켰다. 정말로 사흘간만 서재로 부른 후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유난히 하얀 피부에 푸르른 멍들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더 존재감을 내비췄다.

"음, 드레스는 다른걸 입어야겠네."

"그러게요..."

나는 부모님이 준비해준 드레스를 엄마의 도움으로 입었지만 등쪽이 파인 드레스에 멍이 보였는지 아빠는 다른 옷을 추천했고 엄마는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어차피 예은이는 너무 밝은 곳에 있으면 피부가 아파오니까 그렇지?"

나는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예은아, 다시 옷갈아 입고 어깨찜질해줄게."

엄마는 나를 방으로 이끌며 말했다.

이번에 서재에서 '훈련'을 통해 어깨인대가 늘어나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옷을 갈아입을 때 마다 엄마가 도와주고 있었다.

대화없이 어색한 시간이 흐른 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문을 닫고 나갔다.

서재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들은 무척이나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덧 파티에 가야하는 날이 왔다.

입양왔을 때만 타본 후 그 후론 전혀 타지도 보지도 못했던 비싸보이는 차 뒷자석에 파티의 주인공에게 줄 선물을 꼭 안으며 오른 후 나는 오랜만에 타서 그런지 울렁거리는 속에 눈을 감았다.

"예은아, 일어나. 다 왔다."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아빠는 운전자석에 앉아서 나를 향해 돌아본 채 말했다. 내가 일어난 것을 보더니 답은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이 바로 밖으로 나가버렸기에 나 또한 문을 열고 나왔다.

파티장은 화려했다. 비싸보이는 생화들이 즐비했고 고급스러운 장식들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들은 그에 걸맞게 좋은 재료를 쓴 것이 보였다.

부모님의 등 뒤를 쫓아가다가 걸음이 멈춰진 것을 보고 고개를 드니 흰머리가 조금은 보이지만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지는 않은 남성과 옆에 누가봐도 주인공으로 보이는 여자가 보였다. 드레스와 악세사리가 모두 화려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건 그녀의 얼굴이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이렇게 좋은 날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이사장. 반갑구만."

"아휴, 회장님을 이렇게 봬서 제가 더 반갑죠. 아, 이쪽이 자녀분이시군요. 의사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아빠는 갑자기 나의 양 어깨를 감싸더니 자신의 앞으로 나를 내세웠다. 아직 다 낫지 못한 어깨와 반사적인 반응으로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고개를 들자 행복하다는 미소를 짓고 있던 여자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그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여자는 아빠의 말에 간단히 답했다.

"감사합니다."

"이쪽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딸이구만. 만나서 반가워요."

외형과는 다르게 나이가 묻어나오는 지긋한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여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에게 눈길을 돌렸지만 아무런 말이 들려오지 않았기에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건냈다.

"그건 딸이 직접 만든 귀걸이입니다. 손재주랑 감각이 좋은지 곧잘 만들더라고요."

"딸과 아주 잘 지내나 보구만. 곧 대화도 할 수 있겠어."

"하하하, 안그래도 요새 조금씩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예은아?"

나는 아빠의 질문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다시 만나서 직접 얘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빌겠네."

"제 딸도 영광일겁니다. 하하하."

아빠는 남자의 말 하나하나에도 헤프게 웃으며 답했다.

"이렇게 귀한 선물을 준 손님을 내버려 두다니. 파티의 주인공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이죠. 괜찮으시다면 따님과 대화를 따로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여자는 아빠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고정되 있는 시선을 애써 돌릴려고 하지 않은 채 말했다.

"예, 그러시죠. 저희 딸도 기쁠겁니다. 그렇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그제야 다시 미소를 되찾더니 나의 손목을 잡고 자신 쪽으로 이끌었다. 그러자 내 어깨에 있던 아빠의 손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럼 부디 파티가 재미있으시기를."

여자는 나의 손목을 가볍게 다시 쥐어잡고는 나를 사람 없는 쪽으로 이끌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파우더 룸이 나왔다.

"죄송해요. 조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곳이 필요했어서."

미안하다는 듯이 말하는 여자에게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한쪽에 구비되있던 쇼파 위에 등을 기대며 앉고는 멀뚱히 서 있던 나에게 말했다.

"예은씨도 앉아 있어요."

나는 낮설은 여자가 어색한 점도 있겠지만 등에 멍든 것과 어깨가 아직 아려왔기 때문에 쇼파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아무런 대화없이 한참을 앉아있었을 때 고개를 들어보니 비춰지는 거울에서 여자는 나의 등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짙은 드레스 색상에 멍자국이 드러날일이 없겠지만 왠지 불편한 시선에 바스락 거리자 여자가 눈치를 챘는지 말했다.

"아, 죄송해요. 뒤에 지퍼가 살짝 열린 것 같아서. 조금이지만 혹시 모르니 제가 닫아줄게요."

나는 그녀의 말에 안심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몸에 힘을 풀었다.

지익

지퍼의 소리와 함께 피부에 찬 공기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당황스러운 나머지 빠르게 뒤를 돌며 그녀의 손을 쳐냈다.

"아아, 역시. 그랬구나."

그녀의 말에 나는 그녀가 나의 멍자국을 봤음을 확신했다.

"그 부모라는 작자들이 때렸어요?"

나는 처음으로 빠르게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는 나를 믿지 않았다.

"아까 손이 위로 올라가니 반사적으로 움찔거리는 것도 그렇고. 오른쪽 어깨 움직임도 부자연스럽고. 이래봬도 저 의사에요."

나는 자꾸만 암울해지는 생각에 여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아졌다.
이제 앞으론 어떡하지. 파양은 무조건 당하겠지. 아직 성인도 안됐는데 그것보다 말도 생각처럼 나오질 않는데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굵은 눈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아니. 이럴려고 한건 아닌데. 도와줄려고 그런거였어요. 제가 어떻게든 도움 줄게요. 변호사친구도 있고 폭행은 입증 할 수도 있고. 앞으로 진로도 도와줄게요. 아니 이렇게 말하니까 안 믿길 것 같긴 한데."

울고 있는 나의 앞에서 당황한 나머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손짓발짓을하며 설명을 하고있는 여자가 어이없어 울음이 멈추고 말았다.

"휴, 다행이다. 갑작스러웠죠? 물론 다른사람이 이런 상황이였어도 도움은 줬겠지만 귀걸이가 마음에 들어서. 꼭 직접 도움을 주고싶어요."

나의 눈을 진득히 쳐다보며 진정성 넘치는 목소리로 차분히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 나의 몸 속에서 무언가 바스락하고 깨지는 소리가 들린 듯 했다.

"원한다면 아니 원하지 않아도 저는 그 집에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살 곳은 제가 마련해 줄 수 있으니까. 두려워서 그런거라면 제가 보호해줄게요. 그리고 저 돈 많아서 하나도 부담 안되니까 걱정 하나 안해도 돼요."

"ㅎ..."

나의 입술 사이로 퍼져나오는 소리에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했다.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꼭 말하고 싶었다. 마음과는 다르게 무거운 입술에 혀를 잘근 깨무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자 여자는 더욱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혼자는...싫어요..."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에 여자는 눈이 더 커지더니 환하게 웃고는 나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

"그럼 저랑 같이 살아요."

그 따뜻한 말에 고여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또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애써 참지않고 갓 태어난 새끼병아리처럼 쌕쌕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 행동에 느껴지는 넘치는 해방감에 나는 깨달았다.

뻐꾸기로 남의 둥지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야 알에서 깨어난 것이라고.

나의 울음이 잠잠해지자 나를 천천히 떼어놓는 여자의 얼굴을 다시 제대로 쳐다봤다.

컬이 들어가서 탐스러운 검은머리와 반대되는 하얀 피부. 살짝 올라간 눈꼬리, 오똑한 콧대 그리고 도톰하고 빨간 입술이 차례대로 눈에 띄며 달콤한 향수내음이 코 안속으로 들어왔다.

"저와 같이 살래요?"

"네."

여태 이리저리 알 속에서 굴러 다녔던 나는 미약한 소리를 내며 눈 앞에 있는 존재에게 각인을 마쳤다. 이 맹목적인 마음을 숨기고 숨겨서 부디 그녀가 나를 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그 마음을 숨기며 그녀를 보고 마주 웃어주었다.













잡담:
여태까지 쓴 글 중에서 제일 긴 것 같다. 중간에 새엄마랑 커플링 꽂혀서 진로 바꿀려다가 그냥 원래 생각하던대로 갔다. 아직 머릿속에 있던 므흣한 장면은 안나왔지만 그건 나중에 반응 좋으면 써온다. 리디북스하니까 돈 금방빠지더라... 이제 돈없어서 내가썻다...
다시 읽으니까 너무 급전개네... 글 어떻게 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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