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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창작소설 단편 ' 여왕 엘 '

버터롤빵(59.3) 2020.05.10 14:44:23
조회 1196 추천 35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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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요 앤, 아침이에요. "



앤이 몸을 에는 차가운 추위에 정신이 들어 맨 처음 본 것은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엘이라는 여자였다.


엘, 그녀는 이른 아침부터 옅은 화장을 하고 하얀색 블라우스와 발목까지 달라붙는 검고 긴 바지를 입었으며 아름다운 금발을 어깨 너머로 늘어뜨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심한 곱슬머리이기에 그녀에게는 큰 스트레스였지만 정작 그녀를 보는 많은 이들은 이 곱슬머리를 몹시 매력적이라고 평가한다.


입을 벌려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칼칼한 것이 원한대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눈치 빠른 엘은 탁자 위에 올라와 있는 유리잔 하나를 건네주었다. 안에는 물이 가득 들어 있었고 앤은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싸늘한 추위가 좀처럼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4월을 넘겨 5월을 향해 가는데도 추위는 점점 더 거세지기만 할 뿐 냉기를 거두려 하지 않았다.


앤은 30제곱미터나 될까말까한 이 집의 어디에서 자꾸만 냉기가 나오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난방을 켜면 된다고는 하지만 가까운 대형 마트에서 시간제로 근무하는 그녀가 매일같이 난방을 틀기에는 매달 나오는 관리비와 집세만으로도 부담이었다.


특히 그녀만 살고 있던 이 집에 엘이라는 여자가 종종 찾아오게 된 뒤로는 집세와 관리비 말고도 나갈 돈이 더 늘어났다.



엘은 앤이 근무하는 마트에 찾아온 손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앤이 계산을 하던 중 포도주스 병을 미끄러트려 깨트리는 바람에 엘의 옷을 더럽혔고 앤은 컴플레인을 피하기 위해 엘에게 변상하겠다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안그래도 평소에 그녀를 눈여겨보고있던 마트 점장이 꼬투리를 하나 더 잡는다면 어렵게 구한 직장을 잃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엘은 일체의 컴플레인을 걸지 않았고 그 대신 그녀의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몇 번 해줄 것을 요구했다. 앤으로써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뒤로 저녁 식사 자리를 한 번 가졌지만 가진 것 없는 앤이 대접할 수 있는 것은 변변찮은 음식들 뿐이어서 그녀가 노력한 결과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저가 스테이크와 으깬 감자 정도일 뿐이었다.


그녀는 질 낮은 음식에 엘이 실망하지나 않을까 했는데 엘은 아무 말 없이 앤이 준비한 작은 정성을 남김없이 먹어주었고 저녁 식사 자리가 파한 뒤로는 이따금씩 이렇게 그녀의 집을 찾아와 아침을 깨워 주고 있었다.



" 정신 차렸으면 어서 씻어요. 씻고 나오면 아침 바로 먹고요. "



엘은 앤의 등을 두드리며 그녀를 떠밀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손님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교육을 직장에서 받기 때문인지 앤은 엘이 집에 있을 때면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 그녀가 이 집의 주인인데도! -


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화장실로 걸어가 세안을 시작했다. 머리띠로 머리카락을 붙잡은 다음 꼼꼼히 세안을 하자 거울에는 몹시 투박해 보이는 여자가 나타났다.


순흑색의 짧은 단발 머리카락은 좀처럼 빛을 보기 힘들었고 검은색 눈에도 생기가 돌지 않았다.


남자를 만날 일도 없어서 화장도 제대로 해본 적 없고 일하면서 품위 유지를 위해 아주 조금의 관리만 할 뿐이었다.


지금 거실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엘이라는 여자와 앤 자신은 너무도 달랐다.



엘은 앤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작은 나무 식탁에 음식이 가득하도록 정리했다.


앤의 몫 앞으로 놓인 접시에는 계란프라이 두 개와 도톰한 소세지 하나, 토스트 네 쪽과 베이컨 두 장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 외에도 우유나 오렌지 주스, 차주전자 등이 앤의 접시와 엘의 접시 사이에 자리잡았다.


분명 같은 음식을 준비한 것 같은데도 엘에게 담긴 몫보다 앤에게 담긴 몫이 더 많아 보였다.



" 저...저는 이거 다 못 먹어요. "



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엘은 나이프로 앤의 접시에 담긴 소세지를 썰어 주면서 고개를 저었다.



" 꼭 다 먹지 않아도 돼요.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어요. 하지만 앤은 좀 더 많이 먹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팔이 너무 가늘잖아요. 


이런 팔로 어떻게 마트에서 일을 하나요? 아, 앤을 비하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이 여린 팔로 앤이 감자 상자를 나르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파서 그래요. "



엘은 슬며시 앤의 오른팔을 잡았다가 놓았다. 확실히 앤은 저체중이었다. 식사를 잘 하지도 않거니와 태생적으로 몸이 약한 편에 속했다.


단지 마트 점장은 그런 걸 일일히 배려해주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앤에게 수십 킬로의 감자 상자를 나르는 일은 흔한 일일 뿐이었다.



" 그래도 음식을 남기면... "



" 정 남을 거 같다 싶으면 내가 먹으면 되죠. "



엘은 한쪽 눈을 감아 윙크를 보냈다. 앤에게 있어서 음식을 함부로 남기는 일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엘이 쥐어준 포크를 들고 소세지를 먹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가득 차려진 음식을 먹으면서 아침을 열었다.



" 오늘은 몇 시 출근이에요 앤? "



토스트 조각을 털어 넣던 엘이 물었다.



" 아홉 시쯤...왜 그러세요? "



" 흠, 그럼 몇 시에 퇴근하죠? "



엘은 앤의 질문을 못 들은 체 하고 손가락을 꼽아 셈하는 시늉을 취했다.


" 일곱 시... "



" 그러면 내가 다섯 시에는 집에 들어와야겠네요. 마침 오늘 난 일이 일찍 끝나거든요. 문제없이 저녁 준비를 할 수 있겠어요. 오늘 저녁은 뭐가 좋아요? "



" 네?... "



앤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몰라 우유만 길게 들이켰다. 느닷없이 자신의 집에 다시 들어온다는 건 그렇다 치고 엘은 지금 저녁 메뉴를 묻고 있었다.



" 지난 번에 앤이 나에게 저녁을 대접해 줬잖아요.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앤에게 저녁을 만들어 줘야죠. "



" 그건 제가 옷을 더렵혀서... "



차마 말이 마저 떨어지지 않았다. 몸에 걸친 것 하나하나가 비싸 보이는 엘이 입고 있었던 옷이 얼마였었는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뭐가 좋아요? 클램 차우더 만들어 줄까요? 나 수프 되게 잘 만들어요. "



엘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팔의 반발 작용으로 가슴이 크게 흔들렸다. 그 융기는 역시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앤은 자신의 가슴을 슬쩍 매만져 보다 고개를 밑으로 떨어뜨렸다.



" 왜요? 음식이 맛이 없어요? "



엘은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접시를 보았다. 곱슬머리가 찰랑거릴 정도로 몸을 흔들던 엘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만들어 주겠다는 등의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나 앤에게는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갑자기 이런 말 하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왜 저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어 주나요? "



" 네? "



앤의 목소리를 듣고 엘이 되물었다. 앤은 두 주먹을 쥐고 허벅지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입 안에서 자꾸만 말이 맴도는데 뭐라고 해야 할 지 복잡했다.


결국 앤은 엘의 눈치를 살피면서 떠듬떠듬 이야기를 꺼냈다.



" 지금은 아니지만 더럽혀진 옷은 분명히 변상할 거고 누를 끼친 댓가도 보상할 생각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찾아와서 밥까지 만들어 주시고 챙겨 주시는 건...정말 고맙지만 부담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의심병 가득한 여자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면 사과드릴게요. 


하지만 제게 이렇게 잘해 주시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혹시 원하는 것이 있으신 건가요? 저는 아무것도 드릴 수 있는 게 없는데. "



앤의 고백을 듣고 엘은 잠시 동안 진지한 모습으로 식기를 내려놓았다. 십 초간을 깊게 생각하던 엘은 몹시 어려운 결론을 내렸다는 마냥 입을 오물거렸다.



" 음...맘에 들어서? "



앤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고 장난을 치나 싶었다. 그렇지만 엘의 얼굴은 작은 미소를 짓고 있음에도 사뭇 진지했다.



" 당신이, 마음에 들어서요. 그거면 안 되나요? "



" 무슨 말씀을... "



" 말은 안 했지만 나는 앤이 내 옷을 더럽히기 전부터도 앤을 알고 있었어요. 거 왜 마트에서 처음 일할 때 교육받잖아요? 


그 때부터도 얼굴 몇 번 봤었거든요. 근데 그때는 그냥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은 체구에 어떻게 그렇게 고된 일을 하나 싶어서요.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어요. 여자는 커녕 남자도 기피할 일도 꿋꿋히 해내고 친절함은 덜했지만 묵묵히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뿐이에요. 옷 더럽힌 것도 그렇게 바닥에 무릎 꿇고 빌 것 같까지는 없었잖아요.


괜히 나까지 창피해지더라고요. 난 앤을 좋아하지만 그런 모습은 보여주지 말았으면 해요. 만약 다른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면 난 정말 가만 안 있을 거에요. "



엘은 장난으로 으름장을 놓는 행동을 취했다. 앤의 잔이 비자 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찻잔을 채워 주었다.


낭랑한 목소리에 이어 고풍스러움이 한껏 느껴지는 손동작이었다.


그녀의 다른 손은 어느새 등허리에 올라가 예를 한껏 부리고 있었다.



" 제가 어디가... "



" 옷 변상해 준다고 했었죠? 그럴 생각일랑 하지 말아요. 나는 그거 받을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요. 그거 변상할 돈이랑 시간이 있다면... "



엘은 손을 슬쩍 들어 앤의 머리카락을 젖혔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던 순흑색 눈동자가 엘의 눈동자에 닿았다.



" 자기에게 투자하세요. 앞머리도 좀 드러내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스커트도 좀 입어보는 게 어때요? 맨날 청바지만 입으니까 좀 각선미가 덜하네요.


나는 앤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기를 원치 않아요. 앤은 충분히 더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 아직까지 그 진면목을 알아봐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죠.


그리고 난 그 사람들 중 누구보다 먼저 앤을 알아봤어요. 그러니 앤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어요. "



엘은 앤의 머리카락이나 다리 등을 지적하면서 여러 가지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앤은 엘과 눈동자를 마주했다.


자신의 눈동자와는 다른 밝은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일체의 거짓이나 과장도 없이 진지한 태도로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싣고 있었다.



" 애초에 앤이 나에게 변상해 주면 내가 더 이상 앤을 보러 올 일도 없잖아요. 그건 너무 아깝잖아요. "



엘은 넌지시 말을 넘기면서 입 안 가득 소시지를 깨물었다.


약한 비음이 그녀의 코를 타고 새어나왔다. 앤은 말 한마디를 꺼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음식을 넘기만 소리만 들려왔다.


십분 쯤 지나자 엘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미안하지만 난 먼저 나가봐야겠어요. 이거 꼭 다 먹고 나가요 알았죠? 저녁에는 꼭 맛있는 수프를 만들어 줄게요. "



엘은 자신이 먹은 것을 치우고 앤에게 가까이 다가가 팔로 어깨를 두르려 했다.


그러나 앤은 본능적으로 엘의 몸을 살짝 밀쳐냈다.


엘의 눈동자에 놀란 빛이 스쳐 지나갔다.



" 아직 너무 이른가요? 좋아요, 제가 오버했네요. "



엘은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팔을 거두었다. 엘은 작은 가방 하나를 챙겨서 현관문으로 나갈 채비를 했고 구두 한 쪽에 발을 걸쳐놓았다.



" 저기... "



앤은 두 손을 모으고 작게 엘을 불렀다.



" 저기가 아니에요. 엘 퀸(EIle Queen) , 내 이름은 엘이에요 앤. "



엘은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앤은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엘은 앤을 꼬박꼬박 이름으로 불러주는데 아직도 앤은 엘을 제대로 된 호칭으로 부른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오늘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고마워요 엘. "



앤은 엘의 이름을 부르면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엘은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 그 한 마디가 오늘 내 활력소가 되겠군요. 이따 저녁에 봐요. 와인 한 병도 사올게요. "



엘은 손을 흔들며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엘은 앤을 보고 있었다.


앤은 90도 인사를 한 다음 문을 정중히 닫았다.


그리고 문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안았다.



" 아으... "



앤 하우스(Ann house)는 달아오르는 얼굴을 주체 못하고 양 손등을 볼에 가져다 댔다. 볼을 넘어 손까지 화끈화끈거렸다.


그녀 자신이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만큼 사랑스러운 존재인가는 모르겠지만 앤은 오늘 저녁 엘과의 만남을 준비해야 했고 그걸 위해서 오늘 하루 일을 끝마쳐야 했다.


앤은 오늘 저녁 자신이 무슨 일을 맞이하는지도 모르고 달아오른 얼굴을 누르고 서둘러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안녕, 갤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글 써보는 흔한 백붕이야. 자랑은 아니지만 글 쓰는 취미가 있었는데 기회 삼아서 짧은 단편을 써봤어.


2차창작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재미는 덜하겠지만 한사람이라도 재밌게 봤으면 큰 보람을 느꼈다고 생각해.


다음번에는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와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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