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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하나메르하나 - 악몽

ㅇㅇ(223.62) 2017.08.02 21:53:34
조회 2307 추천 43 댓글 20
														

“네?”

앙겔라는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항상 아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그녀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주위는 조용했고 아이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못들을 리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앙겔라는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 지금 뭐라고 했어요?”
“헤어지자고 말했어요.”

앙겔라는 잠시 그 말을 되뇌었다. 헤, 어, 지, 자, 고, 말, 했, 어, 요. 헤어지자니. 누구와?
멍청한 의문이 떠올랐지만 달리 명석한 두뇌는 앙겔라의 패닉과 상관없이 답을 내놓았다. 아이가-하나가, 앙겔라에게 지금 헤어지자고 말을 한 것이다.
한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너무나도 뜬금없는 말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앙겔라와 아이는 같은 침대에서 마주보고 잠들었는데. 그런데 왜 다음날 갑자기?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침착하려 애를 쓰는 앙겔라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장난이라면 재미없으니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그녀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던 아이의 두 눈은 싸늘하게 식어있었고, 조금의 장난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감정하게 입을 열었다.

“딱히 박사님이 잘못한 건 없어요.”
“…그럼요?”
“그냥, 박사님하고 별로 맞지 않는 것 같아서요.”

그런 말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앙겔라는 뭔가가 꼬여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설명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었고, 본인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어서 앙겔라와 대화할 때면 여러 말을 붙이며 앙겔라가 제 말을 이해할 수 있게끔 했다. 앙겔라는 아이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들은 적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럼에도 아이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 그저 미소 띤 채로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아이는 더 이상의 설명을 붙이지 않은 채로 그저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 따름이었다. 결국, 앙겔라가 물을 수밖에 없었다.

“…맞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말 그대로예요. 박사님은 맨날 연구 때문에 늦게 들어오고, 어쩌다가 약속을 잡아도 병원에서 들어오는 긴급 콜 때문에 데이트는 번번이 무산되고, 집에 와서는 피곤에 쩔어서 자기 바쁘고.”
“그건…….”

지금까지 계속 있던 일이잖아요, 하고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래, 확실히 아이의 말 그대로였다. 앙겔라는 언제나 바빴다.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커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연구를 하고, 수술을 했왔다. 그것이 그녀의 사명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도 그것을 이해해주었다.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는.

앙겔라는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물잔을 집어 들었다. 미지근한 물을 삼키면서 속을 가다듬었다.
침착해, 앙겔라 치글러. 언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잖아.
그러나 정말로 일어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그저 무의미하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던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혀로 입술을 축였다. 뭐든지 이야기를 해야 했다. 대화가 끊겨 적막한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잠시 동안 말이 없던 아이는 손을 들어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힐끗 들여다보더니 똑바로 앙겔라를 쳐다보았다. 빨리 이 자리를 끝내고 싶다는 간접적인 제스쳐였다. 아이는 한 번도 제 앞에서 저런 태도를 취한 적이 없었다. 앙겔라는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왜… 왜, 지금 그런 말을 꺼내는 건가요?”
“시기는 상관없잖아요.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일 뿐이에요.”
“예전부터…….”
“네. 박사님이 나를 조금 더 생각해주기를 기다리면서 말이죠. 그런데 박사님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바뀔 것 같지 않네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하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아,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지만요. 하지만 이대로,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는 박사님 옆에서 나를 돌아봐주기만 기다리기에는 내 청춘이 너무 아까운 걸요.”

청춘, 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대답하는 아이의 얼굴이 시큰둥했다. 아이가 하는 말에는 비꼬는 기색조차 없었다. 정말로 앙겔라에 대한 모든 감정이 다 떠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이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박사님은 날 별로 사랑하지도 않잖아요.”

아니에요, 하나.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말하고 싶었다. 아이를 만나서 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 갔는지, 그리고 아이가 있음으로서 얼마나 많은 위안을 얻었는지. 지친 하루의 끝에 저를 반겨주는 아이의 밝은 웃음과, 재잘재잘 떠드는 종달새 지저귀는 듯한 목소리와, 품에 들어오면 느껴지는 체온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제 입장에서 하는 소리일 뿐이었다. 아이는 줄곧 기다렸을 것이다. 앙겔라가 자신을 조금 더 돌아보기를, 앙겔라의 삶에 자신이 조금 더 자리 잡기를. 그러나 앙겔라는 그렇지 못했다. 사귀기 시작한 후로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이는 앙겔라의 삶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었다.
뒤늦게야 그것을 깨달은 앙겔라는 쓰라려오는 가슴의 통증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앙겔라에게 그것 보라는 듯, 마주본 채로 차갑게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앙겔라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앙겔라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하나… 나는…….”
“나는, 뭐요?”

아이가 차갑게 말을 끊어냈다. 사실 앙겔라는 무언가 꺼낼 말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아이를 붙잡고 싶어 아이의 이름을 부른 것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것을 재빨리 눈치 챈 것이다. 아이는 앙겔라의 행동을 읽을 수 있을 만큼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앙겔라는 그 반대였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당혹스럽고 난감할 뿐이었다. 그리고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아이에게 야속함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런 앙겔라에게, 아이가 비틀린 입가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살아요, 박사님.”
“…….”
“남을 위한 삶을 사는 박사님의 이상이 숭고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못하는 만큼, 대단하다고도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에 비해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멀리 있는 숭고한 이상보다는 가까이 있는 행복을 좇는, 그런 보통 사람이라고요.”
“…….”
“그게 박사님과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예요.”

아이의 말은 틀린 곳이 없었다. 앙겔라는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고, 가슴은 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피를 뿜어내는 듯 아파했다. 반박할 수 없어서 더 아팠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질겅질겅 씹는 앙겔라에게 아이가 선고하듯 말했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가볼게요.”
“아…….”
“그리고 짐은 오늘 오전에 다 뺐어요. 살 곳은 있으니 혹시라도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하나…….”
“이만 가볼게요.”

아이는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페를 나섰다. 멀어져가는 아이의 기다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얇은 어깨를, 앙겔라는 망연히 앉아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앙겔라의 가슴이 혼란스러워하며 외치자, 그녀의 명석한 머리가 대답해주었다.

아이가 떠난 거야. 이제 끝났어.

아이와는 3년 6개월을 같이 살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이 가던 꽃봉오리 같은 아이는, 이내 싱그럽게 피어났다. 그러나 앙겔라는 아이가 피워내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봐줄 수 없었다. 언제나 일에 채여 살았다. 아이가 아침저녁으로 병원에 그녀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며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려 애쓰는 것을 알아도, 미안했지만 그것으로 다였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자신의 행동을 아이가 이해하리라 제멋대로 믿고 있었다.
그 오만의 결과가 이것인가.

앙겔라는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에게 제대로 말도 못 꺼내고 이대로 헤어지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 채로 일단 카페 출입구를 향해 걸었다. 후회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앙겔라 역시 한 번의 기회를 더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카페 문을 열고 나섰을 때, 앙겔라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빨간 스포츠카, 앙겔라가 언제나 앉았던 그 보조석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 누군가는, 운전석에 오르는 아이와 가볍게 입맞춤을 나눴다. 앙겔라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게 지금- 그러니까 지금 이게-.

시동을 걸고 차를 돌리던 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이는 약간 놀란 듯 눈을 조금 크게 떴지만, 그게 아이가 보인 반응의 전부였다. 싸늘한 눈동자가 어딘지 앙겔라를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곧 빨간 스포츠카는 요란한 배기음을 울리며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앙겔라는 온 몸의 힘이 급격히 빠지는 것을 느꼈다.
바람? 이게 지금 바람인 건가?
방금 전에 아이가 한 말은 핑계였던 걸까?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저를 떠나버린 건가? 아니면 홀로 저를 기다리느라 지쳐갈 때, 저 여자가 아이에게 손을 내민 걸까? 뭐가 먼저지?

필사적으로 앞뒤를 끼워 맞추던 앙겔라는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입술을 깨물었다. 뭐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이가 저를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눈앞에서.
살 곳이라는 것은, 그 여자의 집일까. …제 집에서 나가서 새 여자 친구와 동거를 한다고?
상상만으로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앙겔라는 가슴을 부여잡고 벽에 기대어 섰다. 눈물은 나오지도 않았다. 다만 싸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방금 커다랗게 뚫려버린 앙겔라의 심장을 스치며 지나갔다.

“하나…….”

전화, 전화를 해야 해. 앙겔라는 생각했다.
화라도 해야 해. 이대로 끝낼 수는 없잖아. 지금부터라도 바꿔보겠다고, 그러니까 한번이라도 제게 기회를 달라고. 그렇게 말을 해야 했다.

아이는 앙겔라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아침에는 같이 일어났고, 밤에는 같이 잠들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할 때면 듣기 좋은 목소리로 하루 종일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하는 그 시간이 앙겔라는 너무나도 좋았다. 비록 바빠서 1주일에 겨우 하루 이틀만 식사를 같이 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아이가 없는 생활은 생각도 해 본 적 없었다. 그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앙겔라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백 속 휴대폰을 찾아 잠금 버튼을 해제했다. 단축번호 1번을 누르려고 손가락을 키패드에 가져갔을 때, 갑자기 휴대폰이 진동했다.
긴급 콜이었다.
하필 이런 때에.
앙겔라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콜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머릿속 한 구석에서 차갑게 자신을 조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이게 네 인생이지. 남의 인생을 걱정하느라 제 앞가림도 못하는.

아니야. 아니다. 그녀는 그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점멸하는 긴급 콜을 보며 앙겔라는 입술을 사려물 수밖에 없었다.

*

어떻게 병원에 도착했는지 몰랐다.
정신차려보니 앙겔라는 응급실로 향하고 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지도 모르겠다. 앙겔라는 무너지는 가슴을 애써 외면하며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수술 장갑을 낀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환자의 생명이 이 두 손에 달렸다. 이를 악물었다.
정신 차려야 해. 이별 같은 건 누구나 다 한번쯤 겪는 일이잖아.
시선을 손에 떨군 채로 수없이 그렇게 되뇌었다. 머릿속에서 아이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정말 슬프고 비참하게도, 아이에 대한 생각은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수술실 앞에서 앙겔라는 언제나 외과 과장 앙겔라 치글러가 되었다. 가슴이 온통 피를 흘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마저도. 앙겔라는 제 자신을 깊게 조소했다.
이윽고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앙겔라의 발걸음이 거침없었다.

*

길고 긴 수술 후, 앙겔라는 심신이 모두 지쳐서 병원 간이의자에 주저앉았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11시. 집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텅 비어있을 집을 생각하자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응급실에 가서 일손을 돕기에는 기력이 모두 소진된 것 같았다. 수술 중에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치글러, 휴일에 불러내서 미안해. 이만 집에 가 봐. 택시 불러줄게.”

싫다고, 집에 가기 싫다고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럴 힘도 없었다. 결국 동료 의사의 달갑지 않은 친절을 받아, 앙겔라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

불 꺼진 집은 몹시도 낯설었다.
컴퓨터와 관련된 기계 방면에 빠삭한 아이는 집에 자체 원격 시스템을 구축해서, 핸드폰 어플을 이용해 집안의 전등과 보일러 등을 조종하고는 했다. 그래서 아이와 같이 산 3년 동안, 앙겔라는 단 한 번도 불이 꺼진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앙겔라를 위해 언제나 집에 들어가기 30분 전에 전등을 켜고 보일러에 불을 넣곤 했던 것이다.
아이와 살 때는 아늑하게 느껴졌던 제 집은, 마치 빈 집처럼 삭막해보였다.
망연자실하게 불 꺼진 창문을 올려다보던 앙겔라는 가방에서 집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열었다. 바깥과 별로 차이 없는 싸늘한 공기가 그녀를 맞이했다.
매일 같이 드나들던 집인데, 갑자기 이 집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앙겔라는 한참을 망설이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탁, 탁, 슬리퍼 소리가 적막하게 울렸다.

매일 집에 오자마자 곧바로 향하곤 했던 서재를 지나 침실로 향했다.
아이와 매일 같이 잠들곤 했던 침대가, 오늘 아침만 해도 같이 잠에서 깨어났던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자리하고 있었다.
앙겔라는 침실 문앞에 서서 그 침대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침내 다리가 아파올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침대로 다가갔다.
퀸 사이즈의 매트리스 위에 베개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앙겔라는 침대 옆 협탁에 핸드백을 올려놓고 그 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아까는 긴급 콜 때문에 결국 누르지 못했던 단축번호 1번을, 한참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눌렀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앙겔라는 허탈한 마음으로 무너지듯 침대에 앉았다.
텅 빈 집, 어두운 공간에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이 그제야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아이가 없는 생활을 이제부터 시작해야 했다.

잘 해줄걸.
앙겔라는 중얼거렸다.
남들은 헤어지면 같이 지냈던 기억들과 함께 했던 데이트에 대한 추억으로 괴롭다고 하던데, 앙겔라는 그럴싸한 데이트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정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아이와 같이 있을걸. 같이 드라이브라도 하면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걸. 최소한 매일 같이 저녁식사라도 할걸.
아이가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외롭게 살아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오랜 세월 혼자였던 아이가 외로움에 지쳐 있었던 사실도 떠올랐다. 같이 살게 되던 날,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게 꿈이었다고 밝게 웃던 아이가 떠올랐다.
그런 아이에게, 무엇하나 제대로 해준 것이 없었다.
앙겔라는 떨리는 입술을 물고 아이가 누웠던 침대 시트를 매만졌다.

“하나.”

이름만 부르면 '박사님!'하고 밝은 얼굴로 다가오던 아이가 생각났다. 조용히 읊조린 이름은 어둠에 삼켜져 사라졌다. 앙겔라는 다시 한 번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

왜요, 박사님? 그렇게 대답하며 생긋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모든 감정이 싸그리 식어버려 무감각해진 얼굴도.
이 모든 것이 악몽 같았다. 앙겔라는 눈을 감고 간절히 원했다. 제발 꿈이라면 깨어나기를. 오늘 일어났던 모든 악몽이 한낱 꿈이었다고 해주기를.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눈이 마주치면 해사하게 웃는 얼굴로 볼에 키스해줬던 것처럼, 지금 눈앞에 나타나 내 사랑, 하고 말해주기를.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창밖에서 시린 새벽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무렵에야 앙겔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시트 위에 자국을 남기며 툭툭 떨어졌다. 수술실 앞에서는 견고해졌던 가슴이 이제 와서야 미칠 듯이 시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와 닿은 이별의 고통이 앙겔라를 잠식해갔다. 텅 빈 가슴에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

“…사님, 박사님!”

앙겔라는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울컥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건만 가슴속엔 슬픔만이 가득했다. 쏟아지는 오열을 참을 수 없어 앙겔라는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자 따뜻한 두 팔이 앙겔라를 감싸 안았다.

“쉬이- 꿈이에요, 박사님. 진정하세요, 네?”

등을 다독이며 속삭이는 목소리는 분명 아이의 것이었다. 앙겔라는 눈물로 흐려진 눈을 깜박였다. 분명 침대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새 자신은 누워있었다. 동이 트기 전인지 창밖은 어두컴컴했고, 수면등에 의지해 보이는 윤곽은 아이의 어깨였다. 앙겔라는 아이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괜찮아요, 내가 옆에 있잖아요. 쉬이- 진정해요, 응?”

아이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감겨들었다. 등을 다독이는 울림을 느끼며, 앙겔라는 호흡을 안정시키려 애썼다. 노력의 효과가 있던 모양인지 빠르게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다행이라는 것이었고, 그 다음에는 한동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앙겔라의 숨소리가 잦아들어 진정이 좀 된 것 같자, 아이가 등에 둘렀던 두 손을 풀어 앙겔라의 얼굴을 감싸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제 완전하게 밝아진 앙겔라의 시야에 걱정과 염려, 그리고 사랑이 가득 담긴 아이의 눈이 들어왔다.

“무서운 꿈을 꾼 거예요?”
“하나…….”
“내 사랑, 왜 울었어요.”

앙겔라의 볼에 가볍게 키스하며 아이가 물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내 사랑'이라는 단어에 눈물이 다시 핑 돌았다.
아이가 이마에 키스를 하더니 관자놀이를 타고 쪽쪽거리며 입을 맞추었다. 눈, 코,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얼굴을 떼었다. 손짓 하나 하나에, 행동 하나 하나에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꿈속에서의 아이와는 전혀 달랐다. 그제야 앙겔라는 그토록 괴로웠던 일들이 모두 꿈이란 것을 깨달았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아이는 몹시 걱정스러운 눈으로 앙겔라를 보고 있었다. 앙겔라는 그 염려를 덜어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나가…….”
“내가?”
“하나가 헤어, 헤어지자고 했어요.”
“정말요? 내가 그랬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가 반문했다.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아닌데. 내가 그럴 리가 없는데.'하고 혼잣말을 하더니 다시 앙겔라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꿈속의 내가 나빴네요. 미안해요, 박사님. 그런데 나는 절대로 헤어지자는 소리는 안 할 거예요. 나한테는 박사님밖에 없는걸.”

그러니까 나쁜 꿈은 잊어버려요. 아이가 앙겔라를 제 품 안으로 넣었다. 달큰한 살 내음이 비강을 간지럽혔다. 앙겔라는 부드럽게 상하운동을 하는 아이의 가슴을 느끼며 감정을 추슬렀다. 언제나와 같은 온기와 향기가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한동안 규칙적으로 뛰는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던 앙겔라는 스스로가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툭하고 말했다.

“하나가 바람을 폈어요.”
“말도 안 돼. 나한테는 박사님뿐인데 무슨 바람이에요.”

다정한 목소리에는 확신을 담겨 있었다. 앙겔라는 반박하려고 했다. 내가 하나에게 시간을 많이 못 내줘서, 하나는 지쳤어요. 아무리 나를 기다려도 내가 돌아보지 않아서, 그래서 나를 떠난 거예요.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앙겔라는 지금도 꿈속에서와 마찬가지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굳이 그런 말을 꺼내서 아이에게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는 현실을 자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야 해.
앙겔라는 박동하는 아이의 맥박을 느끼며 생각했다.
아이가 없는 생활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무너질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꿈이 마냥 꿈이기만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강렬한 불안에 사로잡혔다.
앙겔라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 말 지켜요.”
“응?”
“나밖에 없다는 말.”
“그럼요, 잘 지킬 거예요. 나 박사님 말 잘 듣잖아.”

아이가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킥킥대며 웃었다. 앙겔라는 한없이 진지하게 한 말이었는데, 아이가 장난스러운 태도로 나오자 뭐라고 하려다가 저도 모르게 핏 하고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이제 벌써 마흔을 앞두고도 꿈이랑 현실이랑 구별 못하는 제 모습이 스스로가 생각해도 웃겼다. 가슴은 한없이 무거운데, 아이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제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난 박사님이 웃는 게 그렇게 좋더라. 꿈은 현실의 반대래요. 걱정하지 말아요. 나 어디 안 가. 박사님 옆에 꼭 붙어있을 거야.”

어쩜 아이는 이토록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지. 말뿐이 아니라는 듯이 아이가 힘을 주어 앙겔라를 껴안았다. 앙겔라는 불안과 안도가 섞인 숨을 길게 내쉬었다.

“…미안하다고 안 할 거예요.”
“그럼요. 꿈속의 내가 잘못했는걸. 박사님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당황스러웠죠?”
“음- 조금? 그런데 박사님이 그렇게 우니까, 마음이 안 좋기도 하고 좋기도 해요.”
“뭐라구요? 좋을 건 또 뭐예요?”

감정의 잔재가 아직 남아 불퉁하게 성을 내는 앙겔라의 등을 다독이며 아이가 말했다.

“박사님이 그렇게 울 정도로 나를 좋아한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것보단 박사님 우는 게 더 마음 아파요. 미안해요.”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 미안하단다. 한참 졸릴 텐데, 정신없는 와중에도 깨어나 저를 걱정해주는 아이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이 천천히 차올랐다.

“자, 다시 자요. 박사님 내일도 일찍 출근 해야 하잖아요. 다 잊고 그냥 자요.”

아이가 손을 들어 눈을 감겨준다.
잊을 수 없는 꿈이다. 자고 나면 깨끗이 잊어버리면 좋겠다는 마음과, 잊지 말고 이 상황을 바꿔야겠다는 마음이 뒤섞여 속내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복잡한 앙겔라의 심정을 짐작했는지 한 손으로는 등을 쓰다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빗어 내렸다. 자신이 옆에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주듯이.

수술 일정을 다시 잡아야겠어.
앙겔라는 눈을 감은 채로 생각했다.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 등을 다독이는 따스한 온기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꾼 꿈은 악몽이 아니라 예지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꾸만 가슴을 맴돌았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이제는 제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도.
앙겔라는 몇 번이나 그렇게 곱씹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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