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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용은 여전히 백합을 수호한다.

ㅇㅇ(220.123) 2020.07.20 00:39:11
조회 971 추천 28 댓글 5
														

 이천 년 정도를 살다보면 꿈도 식상해지는 법인가보다.


 백합향기를 맡았을 때. 용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족히 만 번은 꾸었을 꿈이다.


 유달리 추운 겨울이었지만 춥지는 않았다. 창호지가 촉촉하게 젖을 정도로 물을 끓여대니 창호지 바깥에는 얼음이 얼어 버스럭거렸고 안쪽에는 이슬이 맺혀 흘러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자가 있었다.


 용은 꿈속에서 화로를 뒤적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자가 있었다. 백합향기는 그자의 몸에서 났다. 백합향기라곤 해도 살아있는 꽃처럼 밀폐된 방에서 사람을 질식시킬 정도로 강한 향은 아니었다. 바닷사람의 몸에선 소금냄새가 나고, 포수의 몸에선 초연의 냄새가 나는 것처럼 오랜 시간 향의 근원과 가까이지내면서 몸에 배어버린 그런 향기다.


 백합향기가 몸에 배어버린 자가 말했다.


 “나. 황제가 될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본디 그자는 황제가 될 수 없는 자였다. 황제의 핏줄이지만 부정한 피가 섞여 황실의 화원을 가꾸는 한직에만 종사하는 자였다. 그자의 몸에 백합향기가 배어버린 것도 화원에서만 지냈기 때문이다. 그자에겐 백합향기란 비극의 향기였다.


 “부정한 피가 섞인 자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들을 내 말 한 마디에 벌벌 떨게 만들고 싶어.”


 그자는 천진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자는 거짓웃음으로 감정을 숨기지는 못하는 자였다. 거짓웃음을 지은, 부정한 피를 증명하는, 실핏줄이 보일정도로 하얀 얼굴에 분노로 피가 올라 피를 흘리는 것처럼 붉어졌다. 


 “그리고 어머니가 간통을 했다고 욕보이던 자들을 전부 죽여서 어머니의 무덤에 바칠거야.”


 용은 그런 사소한 것으로 황제가 될 생각이냐고 묻지 않았다. 용은 타인의 바람을 함부로 값어치를 매기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단지 용은 어렸다. 그래서 짧게 물었을 뿐이다.


 “어떻게 황제가 될 건데?”


 그자는 부정한 피가 비치는 붉디붉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나를 황제로 만들어줘.”


 용은 그런 대답이 나올 거라고 짐작했었다. 그자에겐 스스로 황제가 될 여건이 부족했다. 그에게 있는 거라곤 오직 용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용은 다시 물었다.


 “내가 왜?”


 용은 스스로 심술 맞다고 생각했다. 그자에겐 용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다니.


 “내가 너를 용으로 만들어줬으니까.”


 사실이었다. 하지만 용이 바란 대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자는 웃었다. 복수를 꿈꾸며 황제가 되겠다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순진한 웃음이었다.


 그자는 용에게 다가왔다. 그자는 용의 손을 붙잡았다. 그자는 용의 품에 안겼다.


 유달리 추운 겨울이었지만 춥지는 않았다. 창호지가 촉촉하게 젖을 정도로 물을 끓여대니 창호지 바깥에는 얼음이 얼어 버스럭거렸고 안쪽에는 이슬이 맺혀 흘러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자가 있었다. 그녀가 있었다.


 그녀의 몸에선 백합향기가 났다. 그녀에겐 백합향기란 비극의 향기였다. 그러나 용은 그 향기를 사랑했다. 용은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용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사랑해.”


 그녀는 웃었다.


 “나도 사ㄹ




 “으아아아아아앙. 오그라든다 오그라들어. 너무 오그라들어서 달팽이가 되겠네에에.”


 여자는 TV를 보다말고 쿠션을 품에 안고 퍼덕거렸다. 황제는 뭍에 올라온 생선처럼 퍼덕거리는 여자를 보며 쓰게 웃었다. 감히 황제 앞에서 경박하게 구는 여자의 용감함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황제는 말했다. 존대로.


 “왜 그러세요, 용하(龍下). 멋지게 잘 뽑혔는데.”


 여자는 말했다. 하대로.


 “내 이야기를 너무 각색하고 미화했잖아! 너는 네 업적을 과장되게 선전하는 기사를 보면 안 부끄럽냐?”


 “위정자로서의 의무입니다. 그걸 부끄러워하면 안 되죠.”


 “야. 눈 돌리지마.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이 자식아.”


 황제의 어머니 황태후조차도 하지 못할 험한 언사였지만 황제는 그 호칭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여자에게는 허용되는 언사였다.


 황제는 탄산음료로 목을 축이고 말했다.


 “극적인 재미를 첨가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스토리는 용하와 인터뷰를 한 내용이잖습니까.”


 “‘애정이 없었다면 백룡제를 황제로 만들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한 마디가 저렇게 변할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


 백룡제. 현 황가의 시조였다. 천 년 전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해량’은 저렇게 노골적으로 애정행각을 하던 녀석은 아니었다고!”


 황제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해량’이라는 단어를 못 알아들었다. 그러나 문맥과 스쳐지나가는 기억의 도움을 받아 뒤늦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떠올렸다.


 백룡제의 이름이었다.


 황제는 지금 눈앞에서 쿠션을 끌어안고 바닥을 구르는 여자가 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온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모든 사람이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역사속의 인물을 실제로 체험한 자였다.


 여자는 용이었다.


 황제는 질투를 느끼며 물었다.


 “그렇습니까? 조상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애정을 표현하셨습니까?”


 용이 멈췄다. 황제는 용의 굳은 얼굴에서 후회를 읽어냈다. 그러했기에 황제도 질문한 것을 후회했다.


 용은 바닥에 누워 한참 침묵한 후에 말했다.


 “대답하지 않겠다.”


 용은 짧게 그리고 차갑게 대답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용은 리모컨으로 드라마를 다시 재생했다.


 드라마 속의 자신과 해량을 보던 용은 말했다. 


 “이 부분은 삭제하거나 수정하라고 해. 대의가 아니라 사심으로 내가 백룡제를 도와서 지금의 제국을 만들었다고 보일 수 있으니까. 아니면……”


 용은 말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말 걸 그랬어.”


 황제는 두려워졌다. 


 이 드라마는 황제가 용을 위해 제작하라고 사비를 들여서 제작한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몰래. 중간에 들키기는 했지만.


 드라마는 용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학자들은 용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고, 기자들은 용과 인터뷰를 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작가들은 그렇게 모인 자료로 대본을 만들었고, 감독과 연출가, 배우들이 드라마를 만들었다.


 용이 용이 되고, 제국의 용이 된 이후 현재까지. 천 년이라는 시간을 영상화 한 것이었기에 드라마는 길었다. 거기에 든 예산도 적지 않았다.


 드라마는 지금 마지막 편집과정을 거치는 중이었다. 용이 직접 보면서 이상하거나, 틀린 부분을 지적하여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만약 용이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한다면 모든 것을 폐기해야했다.


 황제는 그것이 두려웠다. 지금까지 든 돈과 시간과 노력이 무용해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황제는 자신이 용을 위해 한 일이 용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 두려웠다.


 “용하…….”


 황제는 쿠션을 끌어안고 있는 용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만두었다.


 용은 상냥했다. 만약 지금 황제가 용의 손을 잡는다면 용은 황제의 의중을 파악하고 자신을 죽일 것이다. 싫어도 황제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해 줄 것이다.


 황제는 그것이 싫었다.


 용을 위하고 싶었다. 천 년이라는 시간을 자신을 죽이며 살아온 용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황제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용은 고개를 돌렸다.


 용과 황제가 눈이 마주쳤다.


 황제의 얼굴을 본 용이 웃었다.


 “에이, 농담이야, 농담. 민망해서 그래.”


 그렇게 말하고 용은 황제의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붙였다. 황제는 용의 어깨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그리고 위팔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용에게는 왼쪽 팔 아랫부분이 없었다.


 용이 자신을 죽인 증거였다.


 그리고 용은 오늘도. 지금도 자신을 죽였다. 황제를 위해.


 황제는 용의 반만 남은 팔뚝을 끌어안고 용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용은 그나마 멀쩡한 오른손으로 황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용과 황제는 드라마를 이어서 보았다.

 



 용은 문뜩 백합냄새를 맡았다. 그래서 용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족히 만 번은 꾸었을 꿈이다.


 유달리 추운 겨울이었지만 춥지는 않았다. 창호지가 촉촉하게 젖을 정도로 물을 끓여대니 창호지 바깥에는 얼음이 얼어 버스럭거렸고 안쪽에는 이슬이 맺혀 흘러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자가 있었다.


 용은 꿈속에서 화로를 뒤적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자가 있었다. 백합향기는 그자의 몸에서 났다. 백합향기라곤 해도 살아있는 꽃처럼 밀폐된 방에서 사람을 질식시킬 정도로 강한 향은 아니었다. 바닷사람의 몸에선 소금냄새가 나고, 포수의 몸에선 초연의 냄새가 나는 것처럼 오랜 시간 향의 근원과 가까이지내면서 몸에 배어버린 그런 향기다.


 백합향기가 몸에 배어버린 자가 말했다.


 “나, 임신했어.”


 백룡제가 그 말을 했을 때, 용은 자신이 화로를 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용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얼굴이 굳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백룡제가 말했다.


 “차대 황제야.”


 “그렇겠지.”


 용은 자신의 목소리가 바깥의 추위에 얼어붙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차가웠고, 딱딱했다.


 수천의 병사를 도륙하라고 명령하고, 수백의 신하를 숙청하여 황제가 된 이는 용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 아이. 이 아이는 나랑 같은 일을 겪게 하지 않을 거야.”


 백룡제는 용의 귀에 진득진득한 목소리를 흘려 넣었다.


 “이 아이를 지켜줘. 그리고 이 아이의 아이도 지켜줘. 그 아이의 아이도 지켜줘. 내 후손들을 지켜줘. 나의 황가를 지켜줘. 나의 제국을 지켜줘.”


 그 말은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제국이 멸망하고, 백합의 황가가 멸족되고, 백룡제의 후손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용을 묶어버리는 저주.


 하지만 저주는 너무나도 달콤해서 알고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수천의 병사를 도륙하고, 수백의 신하를 집어삼켜 사랑하는 이를 황제로 만든 용은 백룡제의 손을 잡았다.


 “알겠어.”


 용은 백룡제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백룡제가 웃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마워.”


 백룡제는 용을 돌려 세웠다. 제국의 지배자의 얼굴이 보였다. 소름끼치게 하얀 피부와 요사스러운 붉은 눈이 보였다. 용이 사랑하는 얼굴이 보였다.


 백룡제는 용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했다.


 백합 냄새가 더욱 진해졌다.


 “사랑해.”


 용의 입이 막혔다.

 




 용은 하나만 남은 눈을 떴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니 방금 전까지 맡았던 백합 향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용의 곁에는 역시나 어느새 잠이든 황제가 용의 몸에 팔을 두른 채 잠들어 있었다.


 용은 황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사랑하는 이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1000년의 세월 동안 그 흔적은 서서히 흐려지더니 지금은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후손이었다. 용은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용은 황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황제의 팔을 조심스럽게 치웠다.


 용은 기지개를 키고 몸을 일으켰다. 언론에서는 연일 100년만의 혹한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춥지 않았다. 자동으로 방의 기온과 습도를 조절하는 난방기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니 추울 일이 없었다.


 그러나 다리를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높은 하늘의 차가움을 알고 있는 용에게 자신이 하늘로 올라왔는지 의아해하게 만드는 차가운 공기가 순식간에 용의 몸에서 따뜻함을 앗아갔다. 숨을 쉬면 구름 같은 김이 눈앞을 가렸다. 


 과연 100년만의 혹한이라는 말이 나올만했다.


 용은 100년 전에도 이렇게 추웠던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기억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확실하게 생각나는 것은 있었다.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렇게 하늘을 떠받치듯 서있는 마천루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을 가리는 회백색 숲을 올려다보며 용은 하늘을 가리는 것이 없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 옛날 오직 용과 날짐승에게만 하늘이 허용되었던 시절의 인간들은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면 경의를 표했었다. 그러나 하늘을 자기 것으로 삼은 인간들은 용의 승천에 항의를 표하게 되었다.  


 용이 인기척을 느껴 고개를 돌리니 용의 시중을 드는 시종이 어느새 다가와 외투를 한쪽 팔에 건 채로 서 있었다. 용은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절감했다. 한 때는 수백의 시종을 부렸건만 지금은 채 백이 되지 않았다. 용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던 시종들은 사라지고 이제는 금에 충성을 바치는 시종만이 남았다.


 용은 시종의 도움을 받아 외투를 입었다. 외투를 입고 나니 왼쪽소매 팔뚝아랫부분이 펄럭였다.


 사람들은 성스러운 용이 제국의 적과 맞서 싸우면 얻은 영광스러운 상처라고 말하지만 용은 한 여자를 사랑했기에 얻은 상처라고 생각했다.


 용은 여자를. 이제는 백룡제라 불리는 그 여자를 사랑했다.


 그러나 백룡제 사후 천 년이 지났다. 백룡제의 유골조차도 진토가 되어 사라질 긴 시간. 그리고 용에게도 사랑이 사그라지어 향기 없는 조화(造花)처럼 감정 없는 기억만 남아있는 긴 시간이었다. 감정 없는 기억만 남았기에 용은 어렴풋이 백룡제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었다.


 용은 외투에 수놓아진 하얀 꽃을 바라보았다. 백룡제 이후 황가의 상징이 된 꽃이었다. 멋모르는 사람들은 이 꽃에 온갖 상서로운 의미를 부여하지만 용은 이 꽃이 담긴 백룡제의 악의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백룡제에게 백합은 비극이었다. 용은 백룡제가 황가의 상징으로 백합을 고르며 지은 냉소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용은 백합을 좋아했다. 용은 백합을 보고 백합향기를 맡으면 자신이 사랑했고 자신을 용으로 만들어준 여자가 떠올랐다.


 그러했기에 사람들이 용에 대한 경의를 상실하는 지금의 시대까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여전히 백합을 수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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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가 이상한 것은 뒷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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