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기억이 수면 위로 피어오른다.
너와 처음 만나, 처음으로 너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그날의 기억을 나는 잊지 못한다.
“이 손... 절대로 안 놓칠 거니까!”
도망쳐서 붙잡힌 건 나인데, 오히려 네가 울먹이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고개를 살며시 끄덕일 뿐이었다.
하늘 높이 피어오르는 형형색색의 폭죽처럼.
내 사랑도 그날 피어올랐다.
한 송이 꽃처럼.
[ 내일 방학하고, 같이 바다로 놀러가지 않을래? ]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확인한다.
오타는 없나? 혹시 이상한 말 잘못 쓴 거 아니지?
이모티콘도 예쁜 걸로 골라서.
후... 하..... 심호흡 심호흡......
송신!
[ 응! 좋아! ]
보내는데 10분 넘게 걸렸던 카톡 메시지는 너다운 활기차고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1분도 안 돼서 돌아왔다.
마치 내 메시지를 기다린 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빠르게.
나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스마트폰을 던져버릴 뻔했지만 가까스로 바동거리며 스마트폰을 구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여전히 손이 파르르 떨렸다.
길고 긴 여름이 시작되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
찰싹 찰싹 흔들리는 파도를 맨발로 느끼며, 나는 너를 향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응, 당연히 기억하지. 어떻게 그날을 잊겠어.”
너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범인으로 오해받아서 도망가는 걸 내가 열심히 뛰어가서 잡았잖아.”
“하하, 그때는 진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었는데.”
지금으로부터 거의 7년 전쯤의 일이었다.
반에서 지갑을 훔친 도둑으로 누명을 쓰게 된 나는, 아이들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을 쳤다.
하지만 그때 유일하게 나를 잡아주었던 게 바로 너였다.
‘제대로 설명하고, 오해를 풀지 않으면 해결되는 게 없잖아.’
똑부러진 표정으로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는 너에게 현혹되어 나는 너와 함께 오해를 풀기 위해 열심히 설명했고, 그 결과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네가 안 도와줬으면 난 꼼짝없이 지갑 도둑으로 낙인 찍혔을 거야.”
“그러니까 거기서 왜 도망갈 생각을 하냐? 끝까지 나는 아니라고 부정했어야지.”
“그때 애들 얼굴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누구라도 그 상황이었으면 도망쳤을걸.”
“확실히 엄청 무섭긴 했었지. 특히 세은이 표정이. 큭큭.”
붉은 노을빛이 너의 미소와 맞닿아 무척이나 눈부시게 느껴졌다.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점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내 마음을 전하면... 너의 대답을 듣는다면...
터져버릴 듯, 터지지 않는 불발탄 같은 마음이 내 주위를 계속해서 맴돌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용기를 내는 거야.
나를 따라 걷고 있는 너를 향해 빙글 돌아 너를 마주보았다.
“있잖아... 그...”
“응? 무슨 일이야?”
태양의 잔광이 해변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오늘을 위해 준비한 화려한 스테이지처럼.
나는 무대의 주인공인 너를 향해 한 발 내딛으며 말했다.
“줄곧 예전부터 좋아하고 있었어.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매일매일.”
너는 내 말을 듣고선 깜짝 놀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너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나랑... 사귀어주지 않을래?”
지금은 보잘 것 없는 무대의 조연이지만, 네가 서있는 무대의 주연으로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줄래.
‘친구’의 의미를 넘어, 너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줄래.
그런 부끄러운 말들이 뇌리를 스쳤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런 말들을 내뱉었다간 내 얼굴이 붉게 물들어 벽에 던진 토마토처럼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았으니까.
너는 잠시 멍하니 나의 손을 바라보더니, 살며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 갑자기 그런 말하면 조금 당황스러운데......”
너는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평소 습관처럼 머리를 살며시 뒤로 넘기고서,
은은한 미소와 함께.........
딸깍.
[ 내일 방학하고, 같이 바다로 놀| ]
익숙한 문장이었다.
나는 멍하니 스마트폰 자판의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꿈을 꾼 건가?
방학하기 바로 전날 있었던 순간이 재현되고 있었다.
내가 너에게 고백하기 바로 전날.
내가 너에게 문자를 보내기 직전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날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문자 메시지를 이어 적었다.
[ 내일 방학하고, 같이 바다로 놀러가지 않을래? ]
내 안에 있던 기억과 전혀 다르지 않게 너의 답장이 날아왔다.
[ 응! 좋아! ]
이모티콘도 정확하게 어제와 같은 종류였다.
나는 멍하게 네가 보낸 이모티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과 당혹감이 내 감정을 지배하고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맑은 하늘이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날의 하늘과 전혀 다르지 않은, 그런 하늘이었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
네가 살며시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엄청 덥구나~ 싶어서.”
나는 살짝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역시 어제의 대한 건 전혀 기억 못 하는구나.
안타까우면서도, 살짝 안도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이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여름 방학 숙제 같이 하지 않을래?”
“숙제? 우으... 방학 당일인데 조금은 행복한 이야기를 해도 되잖아.”
“이렇게라도 말 안하면 또 여름 방학 끝날 때 다 돼서 ‘숙제 좀 보여줘~’ 이럴 거잖아. 내가 너랑 지낸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부정은 하지 않겠지만... 원래 여름방학은 그런 거란 말이야~ 귀찮은 건 미래의 내가 전부 해주겠지~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조금 행복해도 괜찮아~”
나는 투정부리듯 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너는 그런 나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면서 ‘정말~ 어린애라니까~’ 라며 빙긋 미소 지었다.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너와 함께라면 분명, 숙제라도 즐거운 시간이 될 테니까.
다시 한 번, 해변을 맨발로 걸으며 수평선 너머를 바라본다.
고개를 숙인 태양이 저만치에서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고 있었다.
조용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고백하는 거야.
고백하기 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이 감각은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거 같았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너를 바라보았다.
“있잖아.”
“응? 무슨 일이야?”
어제와 전혀 다르지 않은, 너의 대답.
나는 살며시 흠칫 놀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 두근거리는 마음이, 너에게 다시 한 번 닿기를 바라며.
“나랑 사귀어주지 않을래?”
말 한 번 더듬지 않고, 깔끔하고, 담백하게 내 마음을 전했다.
“가... 갑자기 그런 말하면 조금 당황스러운데......”
어제와 같은 대답.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 파도처럼 덮쳐오기 시작했다.
너는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평소 습관처럼 머리를 살며시 뒤로 넘기고서,
은은한 미소와 함께.........
안 돼.........!
딸깍.
[ 내일 방학하고, 같이 바다로 놀| ]
스마트폰에 찍혀 있는 문자 메시지 화면.
나는 저 멀리 스마트폰을 던져버렸다.
격렬하게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하루 전으로 돌아온 나는, 방안에 있었으니까.
갈 곳을 잃어버린 감정이 마구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너를 향한 내 마음은, 다시 한 번 시간을 거슬러 리셋되었다.
“으.... 으우......”
방울방울,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멈추지 않는 눈물을 계속해서 흘렸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건지.
전해지지 않는 나의 마음에 하염없이 비를 뿌렸다.
첫 번째 루프.
그리고 두 번째 루프.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13번째 루프.
나는 계속해서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내 감정을 너에게 전하는 것에.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는 사실에.
사실은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것도 사실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내가 너와 연인 사이가 되고 싶다는 것도 일시적인 감정에 휘둘렸던 건 아니었을까.
13번째 고백을 하며, 나는 느꼈다.
이 고백에는 진심이 없다고.
너를 생각하는 마음 따위, 없었다고.
수없이 많이 본 문자 메시지 창을 닫아버리고선 생각했다.
‘장난은 이걸로 끝이야.’
라고.
전부 다 포기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어째서 나는 너에게 고백하려고 그렇게 애썼던 걸까.
도달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그렇게 머리를 싸맸던 걸까.
원래 난 그런 캐릭터도 아닌데 말이야.
힘든 일이 있으면, 피하면 되는데. 도망쳐버리면 되는데.
다시 한 번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어두운 것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인 걸까.
“무슨 생각하고 있어?”
네가 살며시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로 ‘평소처럼’
“엄청 덥구나~ 싶어서.”
나는 살짝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일부러 똑같이 대답했다.
이 다음은 분명, 여름 방학 숙제 이야기겠지.“
“아, 그러고 보니까 이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여름 방학 숙제 같이 하지 않을래?”
“아, 응. 같이 하자.”
“뭐야, 왜 그렇게 뚱한 반응이야? 다은이 너 또 방학 끝날 때쯤 돼서 나한테.......”
“그만해. 방학 당일까지 그런 이야기를 해야 돼?”
그렇게까지 말하고,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 그.......”
“뭐야, 그렇게 화내면서 이야기할 것까지는 없잖아!”
너의 눈빛이 완전히 변해있었다.
“계속해서 하기 싫은 일 있으면 도망치려고만 하고, 피하려고만 하니까 맨날 나만 고생하는 거 아니야. 내가 너 도와주려고 얼마나......!”
“그러니까 누가 도와달래?”
서로의 감정이 부딪힌다.
지난 13일간 담아왔던 감정이 터져버려서, 억누를 수가 없었다.
“쓸데없이 오지랖 부리지 않아도 나 알아서 잘 할 수 있다고! 네가 뭔데... 네가.......”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나서 깨달았다.
실수했다는 걸.
나는 자리에서 벗어나 그대로 학교 밖을 향해 달렸다.
“야! 정다은! 어디 가는데!”
몰라, 그런 거.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정말로 있는 힘껏.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라....?”
그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멈출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장대비가.
창밖으로 엄청난 장대비가 쏟아진다.
13일 동안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살며시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자, 어느덧 항상 너에게 고백을 전했던 시간이 가까워져있었다.
오후 6시 37분.
앞으로 14분만 있으면 너에게 고백을 했던 시간이 돌아온다.
안절부절 못 하고 방안을 배회한다.
이대로 이 시간이 지나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너에게 고백을 하지 않고, 만약 오늘 하루가 지나가버린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몰라, 그런 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너와 하룻밤 지나고 자연스럽게 화해를 하고, 다시 한 번 친구로서 여름 방학을 보내게 될 수도 있고.
아님 네 쪽에서 먼저 화해의 문자 메시지를 건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가 흘러갈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
하지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 서로 갈라진 채로 연인으로도, 친구로도 지내지 못 하게 된다면.
너와 영원히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가 없다면.
왜 하필 오늘 장대비가 내린 건지.
이대로 달라져버린 미래가 그대로 고정되어 버린다면.
나는, 나는,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몸이 먼저 현관문 밖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가 무섭게 쏟아진다.
그대로 떠내려가 버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섭게 몸을 두드린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이대로 너와 헤어지게 되는 미래가.
바보 같은 싸움으로 너와 함께 하지 못 하게 되는 미래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대로 달렸다.
너의 집 앞 정도는 눈이 보이지 않아도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가봤으니까.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불만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나를 막았다.
“우산도 없이 어디 가는 거야! 바보야!”
어라? 너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살며시 들자, 네가 눈앞에 있었다.
우산을 한 손으로 들고선, 뾰로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네가 있었다.
“으이그, 정말이지. 설마 했는데.”
“그... 무슨 일로 여기에?”
나는 흠뻑 젖어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꼴사나운 모습으로 너의 우산 안에 서있었다.
너... 너무 가까운데.
나는 왠지 부끄러워져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잘 들어, 한 번만 말할 테니까?”
너는 살며시 까치발을 들고 내 입술에 너의 입술을 포겠다.
우산이 빙글 돌아 옆으로 떨어졌다.
“나도 좋아한다고. 바보야.”
그 말을 듣는 그 순간.
다시 한 번 시간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 내일 방학하고, 같이 바다로 놀| ]
다시 한 번, 또 다시 한 번....... 익숙한 문자 메시지 창.
하지만 분명하게 다른 건.
[ 지금 당장, 바닷가로 나와. ]
조금 화가 난 듯한, 너의 메시지가 먼저 내 스마트폰에 날아왔다.
‘도망쳐야 해.’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든 걸까.
왜 그런 생각을 해버리고 만 걸까.
그런 생각이 뇌리에 스치자마자 다시 한 번 시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하루 전.
여름 방학 이틀 전으로 돌아왔다.
스마트폰에는 어느덧 너의 메시지가 사라져있었다.
나도 모르게 작게 한숨이 나왔다.
왜 안도하고 있는 건지.
왜 조금 기쁜 마음이 들어버린 건지.
이상야릇한 기분이 마구마구 감정을 뒤섞던 그때.
[ 지금 당장, 바닷가로 나와. ]
[ 정말로 화낸다? ]
( 볼을 가득 부풀리며 불평하는 이모티콘 )
다시 한 번, 너에게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몸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질끈 눈을 감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 도망치자, 고. ’
시간이 역류한다.
꽉 막혀버린 그날의 기억에 부딪혀 사정없이 역류하기 시작한다.
하루 이틀, 과거의 시간으로 회귀하기 시작한다.
도저히 멈출 기색조차 보이지 않은 채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파노라마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처럼,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너와 함께 웃었던 기억들, 너와 함께 울었던 기억들.
전부 없었던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눈을 뜨면 너와의 기억들이 전부 지워지는 감각들이 가득 나를 물들였다.
심장이 따끔따끔 아파왔다.
그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망치고 있었구나.
이 고백의 결과로 너와의 관계가 달라지는 게 두려워서, 계속해서 도망치고 있었던 거야.
바보네... 정말 바보네........
얼마나 겁쟁이인 거야. 나는.......
방울방울,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벌이었다.
제대로 너를 마주하지 않았던, 나에게 주어진 벌.
제대로 나의 감정을 바라보지 않았던, 나에게 주어진 벌.
이대로 시간이 흘러서.....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돌아간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대로 시간에 틈새에 갇혀 나라는 존재가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어느 쪽이든 나란 사람의 최후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대로 시간이 흐르는 그대로.
나에게 주어진 벌을 달게 받자.
도망쳐버린 이 감정의 굴레에서 영원히.......
“잡았..... 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또렷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명량하고 밝은, 정말 오랫동안 좋아했던 너의 목소리가.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자, 네가 있었다.
화가 난 건지, 단지 달려서 숨이 가쁜 건지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하고선.
“이 손... 절대로 안 놓칠 거니까!”
너는 울먹이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너를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모든 게 달라져있었다.
눈에 띄게 낮아진 내 시야.
눈에 띄게 귀여워진 너의 모습, 자그마한 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아, 너를 처음 만났던 그 때구나.
네가 나를 잡아주었던, 7년 전의 그 때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왜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바보야! 다은이는 정말로 바보야! 왜 도망치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망가는 것뿐이라고.
아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도망가는 것뿐이었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넘쳐버릴 것 같은 눈물방울에 비친 너의 감정 앞에서, 나는 가만히 너를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도망쳐버리면, 거기서 끝이잖아.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지도 모르는데.”
너는 원망하듯 나를 두드렸다.
“정말로 좋아한다면, 정말로 같이 있고 싶다면 제대로 마주하란 말이야! 싸우란 말이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끝까지 발버둥치란 말이야... 끝까지... 이야기를 들으란 말이야.....”
“미안.......”
“나를 좋아하는 감정은, 고작 그 정도였던 거야?”
너의 그 말을 듣자, 가슴에 갇혀있던 무언가가 날개를 펴고 탈출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한심해서, 제대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똑바로 이야기했다.
“아니야! 좋아한단 말이야! 정말로, 진심으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네가 좋아!”
눌러왔던 나의 감정이 터지기 시작했다.
불발탄이었던 내 감정이, 드디어 한 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정말로.... 좋아한단 말이야.........”
그리고 나는 너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아, 어렸을 적에는 내가 너보다 키가 작았었구나.
그런 자그마한 감상을 품에 안고, 이번엔 내가 까치발을 들고.
너와의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했다.
서로의 숨을 주고받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나는 다시 한 번 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적이 훨씬 귀여운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여기서 그런 말이 나오냐?”
너는 나의 뺨을 주욱주욱 늘리며 불평했다.
“고백했는데 7년이나 걸렸잖아.”
“이 경우에는 거꾸로 7년이라서...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라인?”
“뭘 세이프야. 이미 한참 전에 아웃됐거든?”
“우으... 너무해.”
너는 절래절래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을 어째서 좋아하게 된 건지.”
“죄송합니다........”
너는 나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자, 두 번째니까 이번엔 더 잘할 수 있지?”
나는 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응, 당연하지.”
이번에는 ‘친구’가 아닌 ‘연인’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너와 함께하는 길고 긴 7년이 시작된다.
----------------------------------------------------------------------------------------------------
공모전 소식을 듣고 빠르게 빠르게 적어보았습니다.
기획 자체는 예전부터 하고 있었던 내용이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써보니까 또 느낌이 다르네요.
나름 재밌네. 정도로만 읽어주셔도 엄청 큰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