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정반대의 사람인 지현은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지현의 입에서 쉬지않고 쏟아지는 말에 동기들은 웃고 맞장구쳐주었고 나 역시 그 중에 한 명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지현은 언제나 구석에 앉아서 술을 홀짝거리는 나에게 윙크를 했다. 저 윙크가 나를 보고 한거라며 꺅꺅대는 소음을 뒤로한 채 나는 오늘도 씁쓸하게 잔을 기울였다.

"그으러니까~취해서 그러는게 아니래도~?"

"시끄러워. 그럴 시간에 똑바로 걸어."

"참나, 오늘따라 왜이리 까칠하실까? 저기요~"

술에 취해서 축 늘어진 사람을 부축하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볼을 콕콕 찌르는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살을 에는듯한 겨울 바람에 벌벌 떨며 겨우겨우 자취방 앞에 도착했다. 언제나 자신한테 기대어 달리는 지현을 보살피는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집에 왔으면 손부터 씻어, 야! 아, 미안. 하..."

어느새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집어들고 벌컥벌컥 마시는 지현의 모습에 순간 소리를 쳤다가 사과해버렸다. 왜 사람이 힘들 때까지 이러는 걸까.

"지현이도 혼자 술 마시고 그러나보네?"

"몰라."

"흐응."

지현이 화를 내길 바란걸까. 제가 생각해도 평소답지 않게 까칠하게 반응했다.

"지현아 나 한 캔만 더 마실게~"

"뭐?"

순간 내 귀를 의심해서 생각할 틈도 없이 입이 먼저 움직였다.

"맘대로 해. 내 허락이란게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어."

자조적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제멋대로인 지현이 지긋지긋했다. 제발 꺼져버리란 말이 턱 밑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마음 속으로 한 번만 더 참자며 꾹 눌러담았다. 그 순간 눈을 강타한 불빛에 본능적으로 팔을 올렸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네 허락없이 한 일은 없어."

얼굴에 진 그림자에 겨우 눈을 떠보니 술에 잔뜩 취한 지현이 팔을 벌벌 떨며 내 위에 올라타있었다. 내 눈동자 안으로 들어갈 것 같은 기세로 나를 째려보는 지현에 위축되어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참고 있는데, 아직도 멋대로 구는 것 같아?"

방금까지 맥주 캔을 잡고 있어서 차가워진 지현의 손이 내 목덜미를 훑었다. 광기어린 그 손짓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한은혜. 눈 떠."

잔뜩 확장된 동공에는 생글생글 웃는 지현의 얼굴이 비춰졌다.

"진짜...너무 귀엽다 은혜는."

"아하하..."

멋쩍게 웃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는 방금까지의 행동은 다른 인격의 것이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언제나처럼 쓰잘데기 없는 잡담을 나누고 잠을 청했다.

그 뒤로 술자리에 불려가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나 혼자만 끙끙거리는 게 바보같아서 지현에게 본심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 날 그게 정말 장난이었냐고. 어쩌면, 너가 고백했다면 나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이내 그 고민은 마음 속에 영원히 박혀버렸다. 지현이 과시하듯이 다른 여자를 안고 다니는 것을 보았으니까. 아직도 나의 냉장고엔 그녀가 자주 마시던 맥주들이 놓여있다. 이런다고 지현이 나를 돌아볼 리 없는데. 뒤늦게 냉장고 불빛 앞에서 쓰러져 우는 나는 바보보다 모자란 겁쟁이에 불과했다.

보고싶다 글 보고 회로돌려씀. 또 술마시고 써서 나중에 봤더니 이상해서 글이 날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