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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돈 안 갚는 거로 회로 돌렸던 거 (1)

00(125.138) 2020.11.23 14:20:22
조회 610 추천 23 댓글 2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648885&_rk=EYz&s_type=search_subject_memo&s_keyword=%EB%B6%88%EC%8C%8D&page=1


내가 돌린 건 아닌데, 소재 너무 재밌는 거 같아서 허락 받음!

(1)은 그냥 내가 소재에다가 살 붙인 거고 (2)부터 본격적인 뒷 이야기야


 “젠장.”

 벽을 내리쳐봤자, 내 손만 아플 뿐이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 내가 남들보다 성격이 급하다는 건 알고 있다. 답답한 걸 싫어하는 탓에 상대가 누구든 직설적으로 말해버려서 쓸데없는 적이 많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도 여태까지 내가 내뱉은 말에 지금처럼 후회해본 적은 없었다.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던 너의 얼굴. 떨리는 손으로 내밀던 지폐 2. 병신 같이 아무말도 못하고 뒤돌아가는 널 그냥 둔 나.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네가 받았을 상처가 욱신거린다. 엄마가 그놈의 성질머리 좀 죽이라고 할 때 듣는 척이라도 할 걸. 넌 그럴 애가 아닌데.

 학기 초에 난 반에서 굉장히 겉돌았다. 반애들이 대놓고 티를 내는 건 아니었지만, 다들 나를 어려워하는 분위기였지. 내가 첫인상이 그렇게 좋은 타입은 아니라 익숙했다. 중학생 때도 매년 초반에는 이런 분위기였다가, 좀 지나면 , 그냥 저런 애구나하는 분위기가 돼서 괜찮아졌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도난 사건이 있었다. 담임의 생일선물을 사자고 애들끼리 돈을 모은 거였는데, 책상에 넣어뒀던 게 음악, 체육 2 번의 이동 수업 사이에 없어져 버린 것이다. 하필이면 오후 내내 내가 양호실에 누워 있던 날이었다. 평소 인상도 별로였던 데다가, 양호실에 항시 선생님이 계신 것도 아니라 내 동선을 증명 해줄 친구 하나 없는 내가 범인으로 몰리는 건 예정된 일이었다.

 당연히 난 내가 아니라고 말했고, 그걸 믿어 주는 애는 없었지만 물증이 없어 사건은 흐지부지 됐다. 그 뒤로 반애들은 노골적으로 날 피했고, 가끔 시비가 걸려와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난 반의 구성원에서 밀려났다. , 원래도 친한 친구를 두는 편은 아니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나에 대한 악의적인 시선들에 그냥저냥 익숙해져 갈 때쯤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갑자기 도난사건으로부터 3주나 지난 시점에서 옆 반에서 범인이 나온 것이다. 우리 반의 음악시간 다음에 바로 옆 반이 음악이었고, 음악실에서는 출석번호로 앉으니까 우리 반 총무 자리에 앉았던 애가 범인 이었다. 우리 반 총무는 교실 책상에 돈을 두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음악실에도 들고 갔던 거였다.

 이 사건의 전말이 또 웃긴 게, 돈을 훔친 애가 돈 봉투를 그대로 가방에 두고 조금씩 꺼내 쓰던 중에 자기 반에서 소지품 검사를 하는 바람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지품 검사를 주도한 건 바로 너였다.

 네가 3주 동안 여기저기 애들한테 물어 출석 번호를 알아내고, 수상한 점을 발견해 옆 반 반장에게 우리 반에 억울하게 몰린 애가 있다며 간절하게 요청했다고 했다. 평소에 다른 반 애들하고도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화력이 좋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

 ‘우리 반에 억울하게 몰린 애가 있다.’ 넌 나의 어떤 점에서 무고함을 본 걸까. 너와 나의 접점이라고는 학기 초에 네가 나에게 몇 번 말을 걸어왔다는 것과 과학 실험이 같은 조라 실험을 몇 번 같이 한 것, 그게 다였는데 말이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위구심은 곧 너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 일 이후 우리 반 아이들은 나에게 사과했고, 나에게 관심을 보여 오는 아이들도 생겼지만, 내 관심은 오로지 너에게로만 향해있었다.

 그렇게 너를 관찰하면서 알아낸 것 몇 가지.

 첫째, 너는 정말로 아는 애들이 많았다. 낯 안 가리고 모나지 않은 성격에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타입. 이건 뭐 원래도 알고 있었던 거지만, 새삼 그런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둘째,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너는 남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쩌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다른 아이들과 티격태격 하는 나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 사실이, 너를 더 궁금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곤란한 상황에서도 웃는 너의 얼굴 뒤에 무언갈 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던 것 같다. 그 생각을 이어가기엔 네가 너무 사람이 좋았지만.

 셋째, 이건 깨닫고 나서도 꽤 의외였다. 앞선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넌 친구가 없다는 것. 너는 누구와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잘 보면 항상 타인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너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진득하게 어떤 무리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냥 물 흐르듯 어떤 무리에서든 잘 어울렸고, 어떤 무리에서든 금방 빠져나왔다. 그 모습이 학교에선 이런저런 애들과 어울려도 방과후에도 어울릴 만큼 친한 친구는 없는 나와 어딘가 닮았다는 생각에, 조금 오만하지만 친밀감을 느꼈다.

 그 사건 이후로 달라진 게 있다면 언젠가 부터는 나도 너에게 말을 걸게 되었고, 가끔 같이 밥을 먹었다는 거? 다같이 시끌시끌 뭉쳐 먹는 밥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내가 몇 마디 안 해도 혼자서 조잘조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는 네가 싫지 않았다. 내가 하는 재미없는 농담에 빵 터져 웃는 네가 좋았다. 나도 그렇게 점점 너의 자연스러운 친근함에 녹아들어갔다. 우리는 종종 방과후에도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네가 우물쭈물 거리면 돈을 빌리러 왔을 때, 별 망설임 없이 빌려준 거였다. 20만원. 학생이라는 신분에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오히려 그 정도의 돈을 나에게 빌릴 정도로 너도 나를 친하다고 생각해 주는 것 같아 기쁜 마음까지 들었다. 네가 그 후로 며칠 간 학교를 빠지고, 나를 피해 다니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정이 있었겠지. 좀 지나면 언제나처럼 먼저 다가와 알려주겠지. 그런 생각이 날 타일렀지만, 내 눈을 피하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사라지는 너의 모습을 보며 점점 화가 쌓였다. 그리고 또 학교가 끝나자마자 사라지려는 널 붙잡았던 그 날, 네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새겨진 나에 대한 두려움이 날 폭발하게 만들었다. 네가 왜 그런 표정을 하는 건데.

 “, 왜 돈 안 갚아.”

 “...미안

 너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날 화나게 했다. 그냥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지. 우리가 그 정도 사이도 못됐나. 친해졌다고 생각한 건 나 혼자였구나.

 나는 너에게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말들을 쏟아 부었다. 눈지 챘어야 했다. 너의 퀭한 눈과 위태로운 걸음걸이를. 너를 붙잡았을 때, 눈에 띄게 가늘어졌던 팔을.

 “혹시 그 돈으로 니 애미 장례식이라도 치뤘냐?”

 애석하게도 내 마지막 말에 네가 참던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연신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만 원짜리 2장을 내밀었을 때, 그제서야 나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네가 떨어트린 수첩에서 날짜, 금액, 액수가 펼쳐진 수첩을 봐버렸을 때, 당황스러웠다. 크고 작은 금액들과 빼곡한 이름들, 내 위에 몇 개에는 두 줄이 그어져있는 게 날 혼란스럽게 했다. 이정도의 금액을 빌려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 거야?

 다음 날, 같은 반 애의 입에서 한 달 전에 네 어머니의 장례식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너한테 욕하지 말걸. 솔직하게 왜 날 피했냐고, 서운 했다고 화낼걸. 적어도... 마지막 말은 하지 말걸.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너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내가 한 실수를 주워 담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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