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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여전히 아이인 채, 아침을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4 02:48:28
조회 568 추천 15 댓글 7
														

학교를 빠져나와 걸어가는 길, 우리 동네는 분명 한 해가 다르게 변해가 그 흐름 속에서 내 친구들은 하나 둘 사라져갔다. 예빈이도, 수희도, 상희도. 어느샌가 내 곁을 떠났다. 그렇지만 녹슬어 발을 내밀기 두려운 철제 계단은 그대로 남아있다. 언제나처럼 계단 앞에 서, 청록색 페인트가 반쯤 벗겨진 계단 앞에 한참을 멈춰있는다. 그래도 다르게 갈 길은 없어서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발을 내민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언제나 들어도 듣기 괴로워 손잡이를 꼭 쥔다. 거칠고 차갑지만 나를 지탱하는 손잡이에 몸을 맡긴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려가 땅에 발을 디딘다.


계단을 벗어나 밟은 땅은 큼지막하게 일방통행이라 적힌 골목길, 내가 나고 자란 고향. 아스팔트는 드나드는 차에 닳아버렸다. 나는 그곳에서 집이 있는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렇게 갈 수 있는 곳은 할머니들이 가만히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구청의 로비. 나는 화장실 옆 계단으로 향한다.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라 적혀있는 3층의 대문. 유리문을 연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라벤더 향이 머릿 속으로 퍼진다.


“오늘은 꽤 일찍 왔네요?”


“조금, 걸음이 빨라져서요.”


“앉아요, 오늘도 어제처럼, 그제처럼.”


내가 아프다고 인식하는 것은 언제였을까. 내가 최초로 인식하기 전부터 내 그림자에 들러붙어 나와 함께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만 할 뿐이다. 처음으로 마음이 찢어지게 아파왔던 그 날 그 고통은, 자그마한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쌓여 내 몸으로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슬픔의 산물.


“말 할 수 없어도 괜찮아요,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될테니.”


이렇게 상담실을 찾아오는 것은 어느새 내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은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어 가만히, 상담사와 시선을 주고받으며 라벤더 향에 잠겼다. 어느 날에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어떤 결론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이 있어서일까. 서서히 말을 할 수 있었다. 내 안의 고통을, 슬픈 마음을.


“마치 제가 없어도 좋은 것처럼, 제가 없어도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요.”

“불안해하지말아요, 학생은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일거에요.”


“...그럴까요.”


“그런 불안은 그 나이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달리 말하자면 어른이 되는 과정이에요.”


“저는...저는...다른 사람들보다 더 아파하는 것 같아서…”


학교에서 모두는 행복하게 웃고있다. 나처럼 상담실을 집처럼 다니는 그런 아이는 본 적이 없다. 언젠가 영상으로 보여준, 나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 기분 나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면면만이 있었으니.


“그런 건 걱정하지 말아요. 누구나 다 아픈 마음은 있는거니까.”


오늘의 상담은 그렇게 끝이났다.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상담사가 쥐어준 야쿠르트의 껍질을 뜯는다. 제대로 뜯기지 않아, 결국 구멍을 뚫어 마시지만.


“우리 딸, 오늘도 늦었네? 자습하고 왔어?”


“응, 오늘도.”


“그래, 고생했다. 밥 먹으렴.”

오늘도 거짓말을 해버렸다.


“참, 다른 아이들은 이 나이가 되어서 사춘기다 뭐다 속만 썩이는 데 우리 딸은 효녀라니까.”


그러면서 쓰다듬어 주는 손에 나는 증오를 느끼는가, 아니면...슬퍼하는가. 어머니를 속여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나를 칭찬한다. 칭찬에 기뻐하는 얼굴 뒤로 있는 것은 병들어버린 어린 아이인데도.


“딸은 잘뒀다니까, 엄마가.”


웃는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아서 가면을 쓴다. 그렇게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농담을 던지고 TV를 본다. 잠을 잘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기쁘게 웃음짓는 어머니를 뒤로 한 채 방으로 돌아와 하루를 끝마친다. 침대에 누워, 오늘을 보낸다.


아침이 밝아와 학교로 향한다. 똑같이 녹슬어버린 철제 계단을, 조심조심히 올라 버스에 탄다. 발디딜틈도 없어 숨이 막혀오는 버스의 안. 그렇게 도착하는 학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학교로 오는 이유는, 단지 점심 시간을 위해. 한영이를 만나기 위해. 무익하게 시간을 보낸다. 해가 점차 떠오르는 것을 보며, 그에 따라 내 마음을 점점 고조시키면서. 긴 휴식을 말하는 종이 울리면 나는 서동으로 간다. 우리의 아지트로.


“...있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천천히 천천히 한영이는 계단을 걸어올라온다. 그렇지만 내 옆에 안지는 않고, 한 칸 아래에 앉아 핸드폰을 켠다.


“...저기 있지.”


“왜?”


“오늘 저, 그…”


“똑바로 말해, 얼버무리지 말고.”


“데이트...가지 않을래?”


이곳은 분명 둘 만의 비밀공간.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며, 여기라면 우리끼리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던 서동 3층.


“미안, 약속이 있어서.”


“아, 그래...그러면…”


둘만의 공간이지만 한영이는 핸드폰만을 바로보고 있었다. 자판을 누르며, 거기에 답하는 말에 엷게 웃음지으면서.


“사랑한다고...해줄 수 있어?”


“그런 말 안해도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잖아.”


그러면서 한영이는 자판을 누른다. 지읒, 오, 히읗, 이응, 아. 파편에서 조합되는 단어의 연속. 그 이상은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렸다. 내가 봤다는 걸 한영이는 알까. 들리는 것은 핸드폰의 입력음. 그리고 한영이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데이트 한 지...오래 됐네.”


말만이라도, 말이라도 한다면 그 대화를 끊을 수 있을까 싶어 운을 뗀다.


“여름방학 때 수영장이 마지막이었나?”


한영이는 의외로 빠르게 답했다. 하지만...그건 정답이 아니다. 우리의 마지막 데이트는 여름 방학의 마지막 날, 영화관에서. 그리고 우리는 애초에 수영장을...가지 않았다. 해가 내리쬐는 날,


‘싫어, 수영복도 없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한영이에게 사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영이가 좋아해줄까, 귀엽다고 말해줄까, 고민해서 산 점무늬 수영복을 다시 옷장에 고이 접어둔 날. 그 날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맞아, 그랬었어.”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한다. 나는 그러지않고서야 한영이를 사랑할 수 없으니, 손에 쥐고 있는 것을...잃어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이후로도 내가 말을 걸었지만 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더 이야기 할 추억도, 기억도. 전부 나만 가지고 있었다. 더 이상 무언가를 품을 수 없을정도로 두 손 가득 쥐어, 한영이만을 부를 뿐이었다. 하지만 한영이는 바쁘다며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그런 한영이의 뒷모습을 보며 주저앉았다. 그 날 5교시 수업은 결석했다.


“아파서...”


“계속 말할 수 있겠니?”


라벤더 향이 짙게 나는 방 안에서 나는 오늘도 상담을 받는다. 어제처럼, 그제처럼. 쳇바퀴돌듯 반복되는 사이클 속에서.


“너무 아파서 손에 쥔 것을 놓고 싶어요.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거라...놓고 싶지 않아서 더욱 더 손에 힘을 주게 돼서…”


상담사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보았다. 내가 토해내는 그 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이, 시선만을 응시한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손에 피가 나고...그러는데도 놓을 수가 없어요…”


“그렇구나.”


“만약 어른이 된다면,”


전에 했던 이야기. 아직 어리니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으니까 아픈 것이라면. 이것도 그런 고통일까? 어른이 된다면, 모든 고통을 겪고 어른이 된다면 나는 행복하게 손에 쥘 수 있을까. 한영이를...사랑하는 한영이를…


“어른이 된다면, 저는 웃는 얼굴로 있을 수 있을까요? 손에 행복을 쥔 채로, 아프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상담사는 다른 때와는 다르게 바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대화를 끊지 않던 그런 사람의 입이 멈췄다. 그렇다고 말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필사적으로 내게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해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음소를, 음절을 조합해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시키려 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답을 위해서였을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기나긴 침묵에 숨이 막혀 올 때 쯤, 드디어 상담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걸 놓아버리고서야,”


그 말은.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에요.”


나를 무자비하게 찌르는 칼날이 되어.


“그 고통은 이겨낼 수 없으니까.”


‘있잖아...지금 전화해줄 수 있어?’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한영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번호는 분명 맞다. 결코 잊어버릴 리 없는 11글자. 가장 소중한 숫자의 행렬에 매달린다.


‘미안...바빠서.’


‘한 번만, 해 줄 수 있어?’


‘바쁘다고 그랬잖아.’


‘저기 그래도…’


‘미안.’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제발 내게 너의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상처받은 마음이 더 찢어지기 전에 흐르는 피를 멈춰달라고.


‘오늘은 그만 하자.’


산산이 깨져버린 자신을 주워담는 것에는 얼마만큼 시간이 걸릴까. 못내 주워담지 못한 나의 파편들이, 거리에 널부러져 있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나는 내일이 되어서도 서동에 향하겠지, 3층으로...향하겠지.


초등학교를 벗어나 교복을 입었을 때, 가슴이 뛰었다. 키가 크고 멋진 언니들의 전유물이 교복이었으니. 이런 생각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지겹다고, 디자인이 촌스럽다는 말을 곧장 입에 담았지만 나는 그 말들을 뱉지 않았다. 내가 보는 누군가의 교복의 블라우스는 바람에 맞춰 춤을 추었고, 블레이저에서는 고귀함이 흘러내렸다.


“가자, 뭐하고있어?”


“아니 오늘도 예쁘구나, 싶어서.”


언제나처럼 빛이 되어주는 한영이를 보면 행복하다는 기분밖에 들지 않았으니까. 믿지 않는 신께 감사하고 하늘에 빌었다. 어제와 같은 안녕이 오늘로 이어지도록, 어제 입에 담았던 달콤한 말을 오늘도 내가 속삭일 수 있도록.


“가끔은 오글거린다니까.”


“뭘, 생가나는대로 이야기하는건데.”


분명 그 날의 우리는 웃고있었다. 나나 한영이나.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애정을 느끼며 사랑해나가는 나날.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나는 끝없이 증명하고, 너는 답을 피하고. 그런 굴레 속에서.


“좀 더 일찍 말해줄 걸 그랬나.”


우리만의 장소에 있는 것은 처음 보는 아이. 학년은 같지만 전혀 모르는 아이. 그 아이는 내게 말했다.


“한영이한테 귀찮게 그만 달라붙으라고.”


“헛소리 하지마.”


하지만 내 목소리는 단호하지 못했다. 초조한 마음을 대변하듯이 내 말은 조금, 떨렸다.


“그쯤되면 불쌍해서 못봐줘.”


“...”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른이 되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한영이는 괴로운 관계를 끊어냈다는 것을. 커진 키에서, 차가워진 말투에서 알 수 있었는데도.


“그렇지않아.”


“뭐라는거야?”


“한영이는 나를 제일 좋아하니까.”


“...재수없게.”


분명 그 때 핸드폰으로 누르던 좋아해라는 말은, 이 아이를 위해서였을까. 이제 나는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사랑을 이 아이는 받고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걸 인정하지 못한다. 포기하지 못한다. 아이인채로, 어른이 되지 못해서.


“있잖아요.”


“말해보렴.”


“제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이제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면...어떻게 해야할까요.”


상담사는 잠시 고개를 숙여, 답을 강구했다. 이번 답은 지난 번 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른이 되길 빌게요, 이제는 더 아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다시 또 그 말은 칼이 되어.


“이제 상담은...끝인 거 같네요.”


나를 꿰뚫었다. 집으로 가는 길, 야쿠르트는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언제나의 점심 시간이 된다면 나는 서동으로 향했다. 3층의 계단에 걸터 앉아, 어떤 날은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또 다른 날은 하늘에서 흐르는 비를 우산으로 내려보내며 계단의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언젠가 저 계단을 올라와줄까, 천천히 천천히 올라와 내 옆에 앉아줄까.


“졸업을 축하합니다.”


그 날 이후로 한영이는 서동에 오지 않았다. 우리가 학교에 함께 있는 마지막 날 까지도. 그 날도 나는 학사모를 쓴 채로 3층 계단에 앉아 있었다. 계단을 바라보며, 들리지 않을 소리를 상상하며. 언뜻언뜻 들리는 소리에 기대를 가졌지만 마지막 추억을 기념하려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다. 해가 지고, 달이 떠, 경비 아저씨에게 끌려나가기까지 나는 포기하지 못했다.


새로운 환경으로 발을 옮기기 위해 새로이 교복을 맞췄다. 어머니는 전에 입던 것보다 훨씬 예쁘다고 말해줬다. 배색도 촌스럽지 않고, 조끼도 고급지다면서. 하지만 이 교복의 블라우스는 바람에 맞춰 춤을 추지 않았다. 블레이저에서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교복 별로네.”


“어머, 웬일이래.”


그렇게 교복이 예쁘지 않은 학교를 다닌다. 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인데 어느 순간, 그 불안불안했던 철제 계단은 사라지고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이제 나는 심호흡을 하고 발을 디디지 않는다. 그저 버튼을 누르고 승강기가 올라오기를 천천히 기다렸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기계에 몸을 내맡긴다. 일방통행이 적힌 골목은 붉은 색으로 덧칠했다. 하얀 글자가 더 잘 보이도록.


하지만 나는 철제 계단을 그리워한다. 그 불안했던 마음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닳고닳은 검은 아스팔트를 상상한다. 내가 늘 바라보던 그 길을.


‘놓아버리고서야, 어른이 되는 거에요.’


눈을 떠 맞이하는 것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스물 셋의 여름. 하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열다섯, 계단을 내려다보고 있는 미련한 아이. 욕심 때문에 손에 무엇인가를 가득 쥐고 있는 아이의 모습.


“이제 철 좀 들어야할텐데.”


익숙한 11자리의 번호는, 답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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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이렇게

적은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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