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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내 기숙사 룸메이트는 서큐버스앱에서 작성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4 04:46:54
조회 1672 추천 47 댓글 13
														

"여울. 마음에 드네. 좋아."

전신에 인간의 것이 아닌 살기를 띈 그녀는 대뜸 자신의 이름을 물었다. 무슨 의미냐고 되묻고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살아있는 기분이 들지 않아서 아무렇게나 여울이라고 둘러댔을 뿐이었다. 그런 나의 대답이 그녀는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이름을 소리내어 발음했다. 이것이 룸메이트인 여울이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


"그러니까 나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종족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말한 여울이는 2층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앞뒤로 흔들거리며 태연하게 혈액팩을 쪽쪽 빨아먹었다. 여울이는 그새 바닥을 드러낸 팩을 나에게 흔들어보이며 해맑게 웃었다. 그 미소에 반들거리는 입술 사이로 드러난 송곳니는 우리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야 여울이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서큐버스니까.

여울이를 만나고 나서 서로의 종족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서큐버스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도 기본적으로 타인과 친해지기 쉽다던가, 꼭 섹스가 아니더라도 양분을 보급할 방법은 많다던가 하는 잡다한 이야기들이었지만 나에겐 흥미로웠다. 내가 여울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은 이야기도 여울이에겐 소설 속 이야기같이 들릴 것을 생각하니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내가 알던 정보와 비교해서 확실히 여울이는 특이했다. 하루는 나의 이불을 끌어안고 턱없이 부족한 온기와 향기에 낑낑대는 여울이의 모습에 제발 고집은 그만 부리고 나를 안으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는 자기 전에 진한 포옹을 나누고 있지만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을 빼먹지 않는 여울이의 모습은 서큐버스 답지 않았다.

"봐봐, 서큐버스가 정기가 없으면 죽는다는둥 미친다는둥 하는 건 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이라구. 물론 야한 짓으로도 충당할 수 있지만 성욕보단 방금까지도 심장에서 뿜어낸 것 같이 생명이 살아 숨쉬는 피가 더 효율이 좋다는 말이지!"

아직도 재잘대는 여울은 자신이 헌혈홍보대사라도 된 마냥 혈액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나한테 어필해봤자 인간인 나에겐 먹을 이유도 비위도 없어서 절대 먹을 리 없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저런 말을 하니 설득력이 더 떨어졌다. 날 원하는 만큼 안아도 되는데 무리하게 강한 척 하는 여울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저 예, 예 하며 무성의하게 맞장구만 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비릿한 향이 두 입술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한동한 넋을 잃고 공중에 부유한 여울이를 쳐다보았다. 유리창을 등진 채 나를 내려다보는 고혹적인 자태. 여울의 뒤에 떠오른 달은 제 주인을 만난 것 처럼 빛나며 그녀의 전신을 은은하게 감쌌다. 찰랑이는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여울은 꼬리 끝으로 내 입가를 훔쳐 그것을 천천히 핥았다. 그 요염한 몸짓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매료된 것일까, 나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며 두 볼을 선홍색으로 물들였다.

"자, 여기까지!"

어느샌가 내려온 여울이가 얼이 빠진 채 서 있는 나의 이마를 검지로 톡 치자 나의 눈 앞에 자욱했던 핑크빛 안개가 순식간에 걷혔다. 방금까지 최면이라도 걸렸던 것 같이 몸이 붕 뜨는 감각에 오묘한 표정으로 여울이를 응시하자 그녀는 싱긋 웃으며 이불을 들춰 들어오라는 듯이 손바닥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이불을 들어올린 팔 뒤로 보이는 여울이의 꼬리가 살랑거릴 때마다 꼬리에 묻은 타액이 움직임에 맞추어 반짝거렸다. 장난기어린 미소를 보아 정말로 잠을 청하자는 의미였지만 나 자신도 왜 홀린듯이 침대에 누운지 설명하기 힘들었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자 여울이가 능숙하게 움직여 편안하게 서로의 몸을 겹쳐 안았다. 적막한 방에는 두 사람의 가슴이 뛰는 소리만이 고막을 쉬지않고 울렸다. 빈틈없이 몸을 밀착한 나와 여울은 한동안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다. 잔뜩 열을 내뿜는 나의 심장과 조금 서늘한 여울의 심장이 서로 투닥거리며 콩닥거리는 것이 기분좋게 느껴졌다.

"나, 방금 그거, 첫키스였어."

아무렇지 않은 척 장난스럽게 굴던 여울이의 갑작스런 고백에 나는 문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한마디를 위해 계속 뜸을 들인 것인지 여울의 전신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다시 말을 잇는 여울의 체온이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서늘해진 기분이었다.

"네 타액을 맛보는 순간 네 기분이 내 마음 속으로 전해졌어. 그리고 막, 나도 잘 모르겠는데 마음 속에서 뭐가 끓어올랐어. 인간들이 매료라고 부르는 건가봐. 하지만 그럴거면 왜 네 마음의 소리까지 들리는 거야? 서큐버스란 종족은, 다 이런거야?"

떨리는 여울의 목소리에 서러움과 자신을 향한 원망이 스며들어 있었다. 혈액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타인의 정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그 본능을 거스르며 살아온 여울에겐 적잖이 충격이었을 것이다. 여울은 본능적으로 타인을 매료시켜서 무방비하게 만들면서도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모순적인 능력을 무서워했다. 여울의 정신은 간신히 본능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육체는 이미 한계인지 꼬리로 나의 허벅지를 천천히 휘감고 쓸어 내렸다.

그 애달픈 꼬리짓이 안타까워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쓰다듬자 여울은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뜨거운 숨을 뱉었다. 나와 입맞춤을 했을 때의 위압감과 색기가 줄줄 흐르던 여울이가 이제는 내 품에 안겨 어쩔 줄을 모르는 전혀 다른 모습에 그녀를 조금 짓궂게 괴롭혔다. 여울이의 오르내리는 가슴과 조금 어긋나는 박자로 꼬리를 쓰다듬자 호흡이 점점 흐트러졌다. 들숨과 날숨을 고르지 못하게 번갈아 쉬는 여울이의 숨소리는 점점 물기 어린 우는 소리로 바뀌어 갔다.

여울이가 가쁜 숨을 내뱉을 때마다 온 몸으로 뿜어대는 달콤한 향기에 점점 의식이 흐려질 무렵 쾅-하는 소리와 함께 찬 바람이 나의 등을 강타했다. 언제나 부드럽게 염력을 다루던 여울이의 답지 않은 거친 손짓에 유리창이 뜯어질 뻔 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여울이는 잔뜩 달아오른 몸 때문에 숨을 고르기 바빴다. 열린 창문으로 흩어지는 여울이의 향기를 아쉬운 듯이 쳐다보며 여울이의 품 속으로 파고드는 나의 모습에 등을 토닥이며 여울이 입을 열었다.

"나 같은게 룸메라 기분 나쁘지? 잘 대해준 사람한테 욕정이나 하고. 야한 것 밖에 모르는 멍청한 종족이라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여울이에게 선뜻 위로의 말을 건네기 힘들었다. 결코 선을 넘기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고수하며 스킨십이나 혈액으로 연명하던 여울은 충분히 강인했다. 입술을 포개고 조금 끈적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저렇게까지 자기혐오적인 사고를 하는 태도가 인간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찬 바람보다 더 냉랭해진 분위기에 사과할 타이밍은 한참 전에 지나가버렸다. 기계적으로 나의 등을 두드리는 그 손짓에는 더 이상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사과할 타이밍을 만드려고 올려다보는 내 시선을 노골적으로 피했다. 그마저도 불편한지 눈길조차 주지 않고 등을 돌리는 여울이를 급하게 잡아 끌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입술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울이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날카로운 목소리와 다르게 여울이는 입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진심은 충분히 전해졌으리라. 여울이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흘러내리는 굵은 눈물이 서로의 입술을 적시자 다시 시작된 질척하게 살을 섞는 소리는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


"그냥 키스 해달라고 해."

나는 2층 침대에 걸터앉는 여울이만 봐도 이제는 무얼 바라는지 알 것 같았다. 속을 훤히 읽힌 게 부끄러웠는지 귀까지 새빨개진 여울이의 모습은 남을 유혹하는 서큐버스는 커녕 누가 봐도 나에게 여울이가 유혹당한 그림이었다. 언제나처럼 여울이는 공중에 뜬 채 나를 내려다보며 1번, 그리고 땅에 내려와 나를 올려다보며 1번 서로의 타액을 음미했다.

"오늘도 고마워, 아?!"

오늘따라 끈적하게 옭아매는 키스와 서로의 혀 사이로 늘어진 것을 아쉽다는 듯이 쳐다보는 애처로운 눈길에 설마하고 허리를 쓸어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울이는 허리를 내게 바짝 붙이며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민망한 교성을 내뱉었다. 그 야릇한 소리에 볼을 붉히며 멋쩍게 웃는 내 표정에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으며 변명거리를 찾던 여울이는 이내 이마를 내 가슴팍에 푹 기대어 좋아한다고 속삭였다.

"남이 보면 내가 서큐버스인 줄 알겠어 여울아."

그 말에 꺄르르 웃던 여울이는 이래도 내가 서큐버스가 아니냐고 도발하듯이 나를 자극했다. 한껏 가녀린 척을 하며 침대에 누워 나를 필요로 하는 듯한 여울이의 동작은 과감하면서도 귀여웠다. 매번 같은 수법에 당하지만 침대 위에서는 리드할 것 같은 종족의 독점욕을 자극하는 구애는 악마적이었다. 결국 도발에 넘어간 나는 오늘도 일찍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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