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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한 쪽이 진짜 아무 생각 없을까 4

legaldru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6 02: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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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안녕, 먼저 와 있었네."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들어가자."


 내가 전남친과 사귀기 시작했을 때 헤어지면 밥 사줄 테니 연락하라는 이상한 약속을 먼저 한 건 지윤 언니였다. 물론 전남친 욕을 하기 위해 오늘 같이 저녁 먹자고 얘기한 건 아니었다. 지윤 언니와 얘기하는 게 맞을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첫 MT 때 했던 말도 있고, 연아 언니와 쭉 친하게 지내왔으니까 어느 정도 조언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약간은 기대했다.


 "지윤 언니, 나 실은....."


 "걔 좋아하는 거지?"


 "......네."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지윤 언니가 선수 쳤다. 역시 지윤 언니는 그때부터 알고 있었구나, 나만 내 마음을 몰랐구나 생각하니 씁쓸해졌다.


 "그래서 어쩔 거야?"


 "모르겠어요."


 "걔 저번에 방에 와서는 네 방에서 쫓겨났다고 화내던데."


 "연아 언니가 그랬어요?"


 쫓겨났으면 쫓겨난 대로 '아, 어쩔 수 없네.' 하며 무심하게 방에 돌아갔을 거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니가 존나 그거 같다고 말했다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성희롱하지 마라는 얘길 들어야 하냐고 하더라, 하하."


 "솔직히 연아 언니 잘못 아닌 건 알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태평하게 그러고 있으니까....."


 내 접시로 가져온 치킨 조각을 포크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튀김옷 부스러기가 조금 떨어져 나왔지만 접시 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걘 말 안 하면 절대 모를걸?"


 "그건 저도 알아요."


 "그럼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고백할 거야?"


 "고백한다한들 진지하게 생각할 리 없잖아요, 연아 언니 성격에."


 "뭐야, 거기까지 다 생각해 봤네."


 지윤 언니는 이 얘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치킨을 크게 한입 베어 먹었다. 자신의 일이 아닌 조금 꼬인 상황을 다 알고 지켜보는 기분은 어떨까. 기분은 몰라도 저렇게 여유로운 태도로 얘기할 수 있어서 좋겠다.


 "MT 때 그런 얘긴 왜 했어요?"


 "그때도 니가 누굴 신경 쓰는지 보였고, 연아는 절대 누군가를 신경 쓰는 걸 인정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엑? 신경 쓰는 걸 인정, 네?"


 "아, 걔가 아무한테도 전혀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보여도 보통 사람들이 지인에게 신경 쓰는 만큼이라도 신경 쓰는 경우가 있거든."


 "그래서 그게 저라고요?"


 "음, 이건 걔가 절대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던 건데....."


 치킨을 뜯으며 거침없이 말하던 지윤 언니가 잠시 망설였다. 연아 언니가 나한테 숨기는 게 있다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기에 남이 숨기는 것에 대해 궁금한 것도, 자신이 먼저 숨기려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니 전남친, 걔가 쓰레기인 거 연아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어."


 "왜 그런 이상한 애랑 사귀냐는 얘긴 사귀는 동안에도 많이 들었는데요."


 "아니, 막연히 성격 이상해서 연애 상대로서 꽝이다 수준이 아니라...... 걔가 1학년 때 연아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차여놓고도 계속 따라니면서 귀찮게 했거든."


 "네?"


 "이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아리 1학년 교육 담당도 원래 걔만 정해져 있었거든. 추가로 1명 더 구하는데 교육 담당 애가 걔라는 얘기를 듣더니 연아가 하겠다고 해서 걔랑 연아 둘이 하게 된 거야."


 그러고 보니 연아 언니는 고백받은 적은 있냐는 질문에 고등학교 때 받은 적 있다고 했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곤 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요."


 "뭐가?"


 "걔가 그런 애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게 찝찝해서 1학년 교육담당을 맡은 거라면 왜 저한테 당시에 그런 얘기를 안 해줬던 거예요?"


 "글쎄, 내 생각엔 연아는 니가 철벽을 칠 거라 생각했던 게 아닐까? 연아가 그랬거든. 걔 하는 짓 같잖은데 수진이가 잘 튕겨내고 있는 것 같다고."


 "튕겨낸 게 아니라 걔가 날 좋아하는 거 고백받기 전까지 몰랐어요."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이 둔치들아."


 나와 연아 언니를 싸잡아서 둔치라고 말하는 것에 조금 울컥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의 난 연아 언니보단 눈치가 낫다.


 "그래도 차인 뒤로도 계속 따라다니는 이상한 놈이라고 말해줬으면 제가 먼저 찼을 거예요."


 "연아가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고 싶어 하겠니?"


 "음....."


 "뭐, 아무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귀고 싶은 거라면 이 부분을 찔러서 찝찝하게 만들어. 그럼 혹시 알아? 미안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지?"


 지윤 언니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라서 먹던 치킨을 내려놓고 쳐다봤다. 하지만 태연하게 치킨을 먹는 태도에 오히려 내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뭐, 다 알면서 왜 안 말렸냐고 따지기라도 해요?"


 "응."


 "그게 먹힐지 아닐지는 둘째치고, 그건 싫어요."


 "그래, 그렇게 말할 거라 생각했어."


 "지윤 언니는 역시 제 문제에 대해 중립적이시네요. 포기하라고 하시지는 않는 걸 보니."


 "음, 그건 아닌데."


 의외로 지윤 언니는 이 말에 반응하고 치킨을 먹던 걸 잠시 멈췄다.


 "난 굳이 따지자면 너네 둘이 사귀었으면 해서."


 "네에?"


 오늘 놀랄 일은 더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 솔직히 걘 좀 겪어봐야 해."


 "제 의사는요?"


 "좋아한다며?"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난 처음부터 응원했다? MT 때 내가 너랑 둘이 있을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


 "......고백 안 하면 내가 먼저 걔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해버릴 거라 하셨죠."


 "잘 아네. 물론 내가 고백할 거라는 건 농담이었지만."


 "끄응....."


 "아무튼 당장하라고는 안 하지만 언젠가는 고백해."


 "......"


 소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왔다.


 '연아 언니가 날 어느 정도는 생각을 한다라......'


 그냥 친한 선후배 정도의 거리도 연아 언니한테는 최대한 신경 써서 유지하고 있는 인간관계인 걸까. 그렇다면 고백했을 때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진 않을 거라고 기대해도 되는 걸까.


 '도대체 지윤 언니와 연아 언니는 어떻게 몇 년 동안 룸메할 정도로 친하면서 성격은 완전 딴판일까.'


 한 명은 인간관계에 전혀 신경 안 쓰고 한 명은 꼼꼼히 관찰하여 다른 사람끼리의 관계도 다 파악하면서 관망하는 걸 즐기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폰이 울려서 봤더니 지윤 언니로부터 카톡이 와있었다.


 [아 이 말해준다는 게 깜빡했네]

 [자신의 마음을 알고도 부정하고 숨기는 사람과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을 넌 구분할 수 있어?]


 '연아 언니는 그런 걸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 빨리 고백이나 하라는 건가?'


 [으 언젠가 고백할 거예요]

 [아마도]


 [음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닌데]

 [아 내가 설명을 잘못 했네]

 [남의 마음을 알고도 아닐 거라 부정하며 무시하려는 것과 그냥 무슨 마음인지 모르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


 무슨 의미로 하는 질문인지 알 수 없어서 답을 하기 망설여졌다. 연아 언니는 어차피 내 마음을 전혀 모를 텐데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냐는 질문은 왜 하는 걸까.


 [솔직히 구분 못할 것 같긴 한데]

 [연아 언니가 전자라면 티날 것 같아요]


 [흐음]


 그러고 지윤 언니는 더 이상 톡을 하지 않았다. 폰 화면을 끄며 오늘 얘기를 하고나니 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전남친이랑 사귀는 걸 싫어하면서도 나한테 별 말 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신경 쓰고 있었고, 지금도 언니 치고는 나한테 신경 쓰고 있다?


 '하지만 그게 연애 감정은 아니잖아.'


 모르겠다. 그냥 연아 언니의 속마음이 어떻든 절대 연애할 것 같지 않은 그 이미지가 자꾸 나를 겁먹게 만든다. 차라리 나도 내 마음을 몰랐을 때가 편했던 것 같다.


 혼자 있는 자취방은 고요했고, 눈을 감고 가만히 있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평온과 적막 사이의 애매한 느낌에서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갑자기 들려 고요함은 깨졌다.


 이 관계에 내가 변화를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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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치와 치킨의 자강두천

둘이 사귀는 거까지 갈지 아니면 계속 엇갈리는 거만 쓸지는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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