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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건전) 이것은 비루한 화가의 사진.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2.06 15: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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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ilyfever&no=659756&_rk=JRL&page=1


그것은 같잖은 에고의 발악. 유년기를 지나 조금 키가 자랐을 때, 이상하게 마음 속에 샘솟는 반발심리가 있었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발현이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억압하기만 하던 부모님, 좋은 소리는 생전 한 마디도 내뱉지 않는 인간이었으니.


“다시.”


언제나의 밥상에서 제대로 밥을 먹은 날이 없었다. 젓가락을 쥐는 방법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아버지는 옆에 있는 회초리를 휘둘러 내 연약한 손가락을 찍어버렸으니까. 가시지 않는 통증때문에 손가락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그럴 적이면 다시 회초리가 내리쳐져 손가락을 부쉈다. 그런 식으로 자라나는 아이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똑같이 언젠가 법봉으로 내리쳐버리겠다는 감각이 마음 속에서 꿈틀거렸다.


“조금만 가만히 있어줘요.”

“힘든 거 알잖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닳아빠진 바람막이를 입고 있는 비루한 화가를 보면 그런 옛날 생각이 난다. 내가 어째서 이런 곳에 굴러 들어 왔는 지, 그 최초의 계기가 자꾸만 머릿 속에서 아른거린다.


여느 때 처럼 일터로 가는 길에 나를 쫓는 그림자가 있었다. 쿨하게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스토커일까, 경찰에 신고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너무 대놓고 쫓아오는 여자에게서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 들어 얌전히 핸드폰을 접었다. 애초에 저렇게 볼품없는 사람이 손님으로 온 적이 없다. 침대 위에서 방금 전 그 사람의 정체를 고민하던 찰나, 챠임벨을 울린 것은 방금 전의 그 볼품없는 여자였다.


“당신한테서는 숨길 수 없는 비루한 감상을 느꼈어.”


“...지랄하네.”

지금 눈 앞에 빼빼마른 스토커가 이야기하는 나의 첫 인상, 그 누구보다 비루한 사람이 자신이면서 나를 보고 비루하다고 이야기한다.


“아니다, 됐어.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래서 뭘 하고 싶은거야 당신은?”


“그림을,”


“뭐라고?”

“...당신을 그리고 싶어.”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요구였다. 이런 일을 하며 처음 해보는 모델의 역할.


“좋아, 다 좋은데. 그런데 왜 그리고 싶은거야?”

“...아름다우면서도 이런 곳에 있는 당신을 그리고 싶어.”

아 역시 기분 나쁜 여자라고,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잔뜩 썩어버리고 돈으로 굴러가는 천박한 장소에 나를 남기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니. 내가 있는 곳이지만 이런 곳 나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멋진 이유야.”


그래도 그런 특이한 말이 마음에 들었다. ...육욕을 탐하는 돼지들만 오는 이 방에서 느끼지 못한 기묘한 감각. 아름답지만 비루한 모습을 그리겠다는 선언.


“당신같은 변태도 없어, 사실.”

“..뭐가.”


“그림을 그리겠다니, 특이하잖아.”

“...미안하게 됐네.”


고개를 돌리며 대답하는 그 모습에 어딘가 순진한 구석이 있다고 느꼈다. 비루한 화가가 제시한 포즈는 자유, 그저 이 장소에 있는 나만을 원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냥 침대에 앉아 정면을 응시했다. 나를 그리는 그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시선이 쏘아지는 것에 맞춰서 여자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펜을 들어 캔버스에 손을 옮기고 서서히 선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사각사각하고 흑연이 깎이는 소리가 공간을 메운다. 우리는 말없이 그렇게 한 동안 있었다. 이 여자가 지불한 2시간의 시간 동안. 타임 아웃을 알리는 건 내 휴대폰의 벨소리.


“오늘은 이만 끝.”

화가는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별 말 없이 짐을 챙겨 나갈 채비를 했다.


“완성은 못했나봐?”


“앞으로 조금이었어.”


“연장하던가.”


“그럴 돈은 없거든.”


확실히 그래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럼 별 수 없고.”

닳아빠진 바람막이의 자크를 목까지 단단히 채우고, 결코 찬 바람을 막아줄 것 같지는 않았지만, 화가는 오피스텔의 바깥으로 향했다. 그 화가는 다시 올까, 미완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돌아올까. 사실 그 날의 특별한 경험으로만 남을 것 같았다. 이 화가는 다시 올 만한 지갑 사정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았으니까. 그렇게 차차 얼굴조차 잊혀져 갈 때 쯤에 챠임벨이 울렸다.


“그림을 완성하러 왔어.”


다시금 닳아빠진 바람막이를 입은 채 나를 찾아왔다.


“전처럼 앉아 줘.”


“어려울 거 없지.”


그렇게 앉아 다시 그 날 처럼 그 화가를 바라보았다. 한 번 보는 것과 두 번 보는 것이 다른 것처럼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화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손에 언뜻언뜻 보이는 푸르스름한 자국, 저건 분명 상처일 것 이다. 그리고 조금 내린 자크 사이의 안에는 찢어진 티셔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건 흉터자국.


“다쳤나 봐.”


이런 내 말에 자기 모습을 돌아보더니 황급히 자크를 목까지 채웠다.


“...훔쳐보지 말았으면 하는데.”


“삐졌어?”

“됐어.”


아 괜히 말했나 싶었다. 여자는 사뭇 무서운 얼굴로 그림에만 몰두하고 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처를 들켜서 상처입은걸까. 그렇다면 티셔츠라도 좀 제대로 된 걸 입던가.


“...제대로 된 옷이 이거밖에 없어서 미안하네.”


“어머, 나 설마 입밖으로 내뱉었어?”

“나쁜 년.”

그 이상 말은 나누지 못하고 시간만이 무정히 흘러갔다. 숏타임은 생각보다 짧다. 누구나 아쉬워하는 그런 시간.


“오늘은 이걸로 끝, 연장할거야?”

“...”

“아, 그런 표정 하지 말고.”


하지만 화가는 말없이 방을 떠났다. 떠난 자리에 남겨져 있는 것은 그림 한 장. 가만히 정면을 쳐다보고 있는 나의 모습.


“...가슴이 작은데.”


이건 사소한 복수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일로 상처받아서 또 안 올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화가는 다시 내가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언제나의 바람막이는 변하지 않은 채로, 하지만 그 안에 있는 티셔츠는 구멍없이 말끔한 것이었다.


“그래, 그런 옷 입으니까 얼마나 예뻐.”

“...비꼬지 말고.”


내밀어진 돈을 받고 나는 다시 포즈를 취한다. 전과 달리 오늘은 정해진 자세가 있었다.


“오드리 헵번 알아?”

“유명한 여배우.”


“그럼 이야기가 빠르네.”


타인에 대한 선행을 설파한 내면마저 아름다운 배우라고 했던가, 아래를 살짝 흘겨본 옆모습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던 미인.


“그대로 있어줘.”


타인에 대한 이타심을 아름다움의 비결로 이야기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요구하다니 어딘가 우습단 생각이 들었다. 나나 이 사람이나 내면의 진실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일텐데. 더욱이 물욕에 빠져있는 내가 그런 사람의 모습을 취할 자격이 있을까? 생각해봐야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돈으로 묶인 사이에 주관은 필요없다. 돈을 뿌리는 돼지와 그에 맞춰 춤추는 원숭이로 있으면 족한 것.


“연장 할거야?”

“....항상 물어보더라.”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이 화가는 돈이 없어 정해진 시간에 칼같이 문밖을 나선다. 결코 돈은 안 되는 그런 손님.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부터 그 비루한 화가의 방문을 바라고 있었다. 뭇사람들과는 다른 색다른 자극을 주는 그 닳아빠진 바람막이를 머릿 속에서 그리고 있었다. 차디찬 바람을 맞은 채 나가는 빼빼마른 여자, 어떤 세상의 풍파도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나는 바라고 있다.


“...뭔 생각하고 있어?”


“갑자기 왜?”


“아니, 평소랑 다르게 아무 말도 없길래.”


마주앉아 담배를 피는 휴식 시간.


“별 일 아니야.”


“그래.”


너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면 이 여자는 어떤 얼굴을 보일까. 이 연약한 여자는 어떤 말을 할까.


“오늘은 이걸로 끝.”


그것은 단지 상상의 일로 고이 접어 넣었다. 언제나처럼 놀린 것이라, 그런 발상을 할 게 분명하니까. 그래도, 그래도 생각하는 마음은 변하지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던 사이에 그림은 완성되었다. 나는 도도하게 옆을 돌아본 채로 그림 안에 있었다.


“이번에는 얼굴만 그렸네.”


“얼굴만으로 충분하잖아.”


무어라 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오늘의 시간도 끝이 났다. 안녕, 잘 가, 또 오고. 그런 인사는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가버리는 그런 여자였기 때문에. 늘 입고 있는 바람막이의 자크를 채우곤 문을 닫는 사람. 그런 모습을 몰래 한 번 찍었다. 이 날 찍은 사진이 내가 가진 화가의 마지막 모습.


일을 그만둔 내게 남은 화가의 흔적은 디바이스에 남아있는 단 한 장의 사진 뿐이다. 찬 바람을 맞으며 실이 뜯겨져 나온 옷의 자크를 채우는 가녀린 여자. 일을 그만둘 때, 나가려는 화가에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나는 너를 만날 자격이 없어...”

차일 지도 모를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유는 보통 상상과는 달랐다. 내가 이런 일을 했던 여자라서 아니라, 이런 오피스텔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탓하며 도망쳐 방을 나갔다. 왜 그렇게 자신을 탓했을까, 그 때에는 도저히 몰랐지만 언젠가의 일이 생각났다.


어느 날이었을까, 아마 그 날은 술에 취해 들어와 그림은 그리지도 않고 잔득 푸념만 했었던 것 같다. 가학적인 계모의 짙은 월화향의 향수가 몸에 남아 백화점에만 가면 토가 나온다는, 그런 이야기. 유년기의 아이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스러운 통증의 연속. 그런 한 사람의 철저한 파멸은 나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을까.


“나는...글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볕이 안 드는 방에서 나고 자란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이곳에 있네.”


“그러게나 말이야.”


자의건 타의건 어느정도 망가져버리고만 서로의 상황에 공감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방을 채운 독한 알코올의 향 때문이었을까. 어느 새 우린 입을 맞추고 거슬리는 단추를 뜯어냈다.

“보기 흉하지...”


언젠가 한 번 흘겨보았던 가슴의 흉터, 그거 하나만이 아니었다. 갸날퍼 금방이라도 꺾일 것만 같은 여린 몸체는 허용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품고 있었다. 자칫 하면 다시 또 터져나올 것만 같은 붉은 열꽃의 화원.


“...너랑은 달라, 너같이 아름다운 사람과는 달라. 나는...우리는 원래 만나면 안 될 사이야.”


비루한 감상을 느꼈다고, 그래서 따라왔다고,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분명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지금 내가 이 오피스텔에 있어서, 그렇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는 관계. 내가 이런 곳까지 굴러 내려왔기 때문에 그 날 나는 화가를 품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힘들었지…”

불우한 사람.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 끝없이 깎아내리고...그러면서도 외로워 다른 사람을 갈구한다. 하지만 자신이 너무도 비참해서 남을 깎아내리지 않고는, 그러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없는 불우한 사람.


“...이젠 괜찮아.”

실이 뜯겨져나간 닳아빠진 바람막이만을 입고 다니는 그 여자. 아름답지만 고결하지 않다는 나의 모습을 그린 화가.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싫어하던 그 사람. 찬 바람을 맞으며 자크를 끝까지 채우던 그 사람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사진은, 그런 비루한 여자의 모습을 담고있다.


__________________

연민도 못난 자존심때문에
못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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