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에, 웅크려앉아있던 채로 뒤를 돌았다. 품 안으로 날아드는 고양이를 얼떨결에 받아들면서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은 것은 덤이었다.

"아야야, 넌 누구니?"

한 박자 뒤, 길다란 그림자가 드리우며 달려오던 누군가가 멈춰섰다. 고양이의 주인일 거라고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내리고, 배 위에 아예 자리를 잡고 누워버린 하얀 고양이를 집어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은 보통과의 타카사키 유우군요."

파란 체육복을 입고, 장대처럼 긴 뜰채를 들고 있는 양갈래로 땋은 머리의 안경 미소녀가 묘하게 낯이 익었다. 같은 반, 은 아니고..... 잠시 생각하던 유우의 머릿속에 희미한 이미지가 스쳐지나갔다. 높은 단상 위에서 차분하고 담담하게 원고를 읽어나가던-

"학생회장!"

이름이 뭐였더라? 내심 난감해하는 유우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지 그녀는 대답 대신 유난히 반짝이는 안경을 치켜올렸다. 

"사람도 잘 지나다니지 않는 학교 뒷편에서 당신은 뭘 하고 계시는 건가요?"

고양이의 주인일까. 유우에게 붙잡힌 상태로도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고양이는 아무리 봐도 학생회장과 정반대의 성격으로 보여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려던 웃음을 꾹 참았다.

"당신, 제 말을 듣고 있나요?"

"아, 미안. 나는 사람을 찾고 있어."

일단 고양이부터 조심스럽게 학생회장의 품 안에 넘겨주었지만, 뭐가 그리 마음에 안드는지 폴짝 뛰어서는 그대로 시야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미, 미안."

"아뇨, 당신 탓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학생회장의 어깨가 지나치게 축 늘어져있는 건 기분탓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누굴 찾고 있는 건가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사람. 한 순간이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영원같던 3분. 뜨거운 불꽃 속에서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 소리치던 모습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아서 찾고 있었다.

"유키 세츠나, 라고 알아?"

대답은 없었다. 아니,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유우가 눈을 반짝이며 스쿨아이돌 유키 세츠나에 대해 읊기 시작했다. 

"그런 대단한 스쿨아이돌이 우리 학교 학생이라고 해서 찾고 있었어."

"........"

"학생회장은 알아?"

깊은 한숨, 그리고 다시 한 번 안경을 치겨올린 학생회장은 아까보단 다소 힘이 빠진 목소리로 지적했다.

"그녀가 이렇게 외진 학교 뒷편, 거기에 버려진 박스 안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데요."

고양이가 날아들기 전, 유우는 세츠나의 이름을 부르며 박스를 뒤집어보고 있었다. 간파당한 모양이다. 

"아하하, 이건, 그게, 그러니까...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혹시 있을 리 없는 장소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또다시 대답대신 날아오는 차가운 시선에 뺨을 긁적였다.

"그래서 학생회장은 알아? 하다못해 몇 반인지라도 알면 좋은데."

"알아서 뭘 하시려고요?"

뭘 하려고? 거기까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다시 한 번만 더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의 말대로 그녀는 유명한 스쿨아이돌. 흥미 본위의 시선이라면 질리게 받았을 거에요."

"아냐! 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말로 소리치고나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래, 만나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래서 며칠동안이나 학교 안을 찾아헤멨던 거다. 학생회장은 팔짱을 끼며, 바로 섰다.

"제가 전달해드리죠."

"어?"

"유키 세츠나는 이제 스쿨아이돌로서 무대에 서지 않을 거에요. 당신이 영영 만날 일도 없을 거에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내딛었다.

"세츠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어디 아프다거나 한 건 아니냐는 유우의 박력 넘치는 질문에 학생회장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듯 했다. 곧 이게 아니라고 중얼거리며, 크게 숨을 들이키고 다시 안경을 치겨올리며 물었다.

"당신은 유키 세츠나와 무슨 사이죠?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잖아요."

"나는 세츠나의 팬이야."

"네?"

"나한텐 그 이유면 충분해."

세츠나에겐 이미 무수히 많은 팬이 있겠지만, 유키 세츠나에게 타카사키 유우는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겠지만, 적어도 팬인 유우에게 세츠나는 세상의 전부같은 사람이었다.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싶고, 힘들어보일 때는 지지해주고 싶고, 항상 행복했으면 좋다고 진심으로, 진심으로 기원하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그녀의 무대를 볼 수만 있다면-

"정말로 좋아해!!"

순간 아주 살짝이지만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세츠나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거울을 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정말로 바보같이 웃고 있던 게 틀림없었다. 단단하게 굳어있던 학생회장의 얼굴이 한순간에 풀어질 정도로.

"-라고 전해줬으면 좋겠어."

말하고 보니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조금씩 조금씩 올라온 열기는 어느새 유우의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었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열을 식히는 동안, 줄곧 침묵을 지키던 학생회장이 입을 열었다.

"유키 세츠나가 들었다면 분명 기뻐했을 거에요."

안경 너머로 보이는 학생회장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스쿨 아이돌이 되길 바랐거든요."

곧 눈을 질끈 감고, 그녀는 등을 돌렸다.

"보통과의 타카사키 유우"

"네!"

"위험하니까 이런 곳에 있지 말아요."

그 말만을 남기고 학생회장은 떠났다. 역시 이런 곳에 세츠나가 있을 리가 없지. 딱히 학생회장이 충고해주지 않더라도 유우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같은 학교는 맞겠지? 학생 명부라도 찾아봐야하나? 

명부가 있을 만한 곳.

....아무래도 학생회장과 또 만날 인연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