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르테미스 여신님의 사냥개 중 하나다. 특이점이 있다면, 사냥이 끝나고 나면 사람으로 변한다는 거다. 암캐인지라 변신 후 여자가 된다. 

보통 신화 속에선 사람이 동물로 변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동물에서 사람이 되는 거라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축복인지 형벌인지 아리송하다. 형벌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왜냐하면, 낮에 여신님과 함께 사냥하며 혀 빠지게 달렸으면 저녁에라도 쉬게 해 줘야 하는데 사람이 되고 나서 또 일을 해야한다. 낮과 밤, 일만 해야하니 지친다. 

여신님이 나에게 시킨 일은 다음과 같다. 

여신님과 함께 달리며 사냥감 몰이하기, 여신님이 벗어 놓은 옷 빨래하기, 빨래 잘 말려서 개어 놓기,여신님 신전 청소하기, 여신님 목욕 시중들기 등등. 

한 마디로 하녀다. 삶이 고되다. 왜 대체 나만... 눈물이 나온다. 

여신님 뒤치다꺼리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여신님을 따르는 요정들마저 나를 하찮게 여긴다. 여신님 빨래를 하고 있으면 지들 속옷까지 빨라고 던지고 가는데 신분이 미천한 관계로 빨라면 빨 수밖에 없다. 

"킁킁. 근데 어디서 개 비린내가 나지?"

"쟤 원래 개잖아."

"사람으로 변해도 비린내가 여전하네. 역시 신분은 못 속여."

요정들 속옷 빨래해주는 것도 서러운데 이젠 언어폭력까지 당하고 산다. 정말 삶이 고되다. 

어머니가 개 열 마리를 낳으셨는데 난 그 중 두 번째로 나왔다. 둘째라 그런지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아주 민감하다. 그래서 내가 당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울컥할 때가 많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긴 여신님이 지배하는 세상이고 신분이 엄격하니까. 나는 하찮은 개일 뿐.

가끔 나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나는 개인가,사람인가? 혹시 변신 요정일까? 점점 이도저도 아닌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다른 나라에도 나와 비슷한 사례가 있나 싶어 찾아 봤는데 한국에 웅녀가 있었다. 곰이 사람이 돼서 신과 결혼한 아주 특별한 케이스다. 나도 저런 신분상승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낮에는 개이고 밤에만 사람이다. 해가 뜨면 다시 개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 다니며 사냥감을 쫓아야 한다. 그리고 밤에도 일.일.또 일....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지 여신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날도 여신님의 빨래를 끝낸 후, 요정들이 두고 간 속옷까지 빨고 있는데 여신님이 그걸 보고 대노하셨다. 여신님은 가끔 온화하시고 한 번 화를 내면 불같이 내신다. 

"감히 어떤 자가 너한테 이딴 걸 빨라고 한 거지? 그 자의 이름을 당장 대."

"괜찮아요. 여신님, 여신님이 내놓는 옷에 비하면 요정들의 속옷은 사이즈도 작고 가벼워서 금방 빨 수 있..." 

"누군지 이름을 대지 못해? 당장 결딴내 버릴테니."

"괜히 여신님이 나서시면 저만 더 곤란해져요. 그냥 못 본 척 해 주시면..."

"말대꾸하는 거야? 감히 견녀가."

"죄송해요..."

결국 여신님은 해 주시는 것도 없이 속만 긁고 가 버리셨다. 

견녀 라는 말에 갑자기 머리를 세게 맞은 거 같이 아팠다. 나에게는 '시리우스'라는 예쁜 이름이 있는데... 

태어나자마자 여신님이 붙여 준 이름인데 기억조차 못하셨다. 하긴 누가 개 따위 이름을 기억해 주겠어? 나는 여신님이 키우시는 열 마리의 사냥개 중 한 마리일 뿐. 한국의 웅녀는 신분상승 후에도 계속 웅녀라고 하는데 뭐... 나는 신분도 미천하고.

견녀의 삶이 대체적으로 고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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