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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사요치사(타에)] 그것은 마치 눈과 같이앱에서 작성

타에치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24 22:08:11
조회 888 추천 15 댓글 5
														

 겨울 냄새가 났다. 

 개인 연습을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선 히카와 사요는 차갑게 찌르는 냄새에 곧 눈이 내리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고 휴대용 우산을  챙겨두었기에 눈 자체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사요가 걱정하는 것은 지난 시절의 기억 쪽이었다.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일임에도, 그 기억은 뿌리를 단단히 박았는지 사요가 눈을 볼 때마다 싹을 틔우곤 했다. 

 떠오른 기억으로 우울해지기 전에 빨리 집에 들어가야겠다고 사요는 결심했다. 가는 길에 가볍게 마실 거리를 사 가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적당히 취한 채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어떻게든 오늘을 넘길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모든 계획은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 순간 휴짓조각이 되어버렸다. 

“아, 히카와 선배!”

 하나조노 타에. 

 한때는 사요의 학교후배였던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멀리서 알아봤을까 싶을 정도의 먼 거리에서 사요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지금 타에를 만나기에는 조금 껄끄러웠던 사요는 모른 척 지나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손을 들어 작게 흔들어주었다.

 그대로 지나가줬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사요의 바람과는 달리 타에는 바로 그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사요를 향해 뛰다시피 하는 검은 머리의 미녀를 흘끗 돌아보았다. 

“오랜만이네요!”

 순식간에 사요의 눈앞까지 다가온 타에는 순수한 반가움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밝은 미소에 사요는 방금 전 그녀를 피하려 했던 일에 죄책감마저 조금 느꼈다. 

“오랜만이네요, 하나조노 씨.”

 타에의 인사를 받은 사요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만간 이사를 가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요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 시부야구 아니면 아다치구였을 것이다. 

“네, 안 그래도 대충 준비가 끝나서 마지막으로 이 근방을 돌아보는 중이었어요.”

 그렇게 말한 타에는 갑자기 잊고 있던 뭔가를 떠올린 표정을 지었다. 

“히카와 선배, 혹시 지금 바쁘세요?”

 사요는 타에가 동행을 제안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당히 변명하고 자리를 뜨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 아이와 알고 지낸 이래로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기가 쉬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뇨, 딱히.”

“그럼 잠시 저랑 어울려주실래요? 분명  히카와 선배 마음에 드실 거예요.”

 그렇게 말하자마자 타에는 사요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 손의 따뜻함에 놀라 사요는 손을 빼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뭐, 뭔가요?”

“잡았어요, 히카와 선배.”

 타에는 싱긋 웃어 보이고는 사요의 손을 잡은 채로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요는 영문도 모른 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강제연행이었다. 

 다행히  타에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말한 대로 두 사람이 들른 가게는 사요의 마음에 들었다. 손님들이 너무 시끄럽지도 않았고, 점원들의 서비스도 괜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주로 나온 감자튀김이 맛있었다. 

“맛있죠?”

 이미 맥주를 몇 잔 비워 얼굴이 살짝 붉어진 타에가 감상을 물었다. 사요는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입안의 감자튀김을 삼키고는 말했다. 

“그렇네요. 이런 곳에 이 정도의 감자튀김을 내놓는 가게가 있었다니, 몰랐어요.”

“예전에 아르바이트 동료들이랑 왔었는데, 감자튀김을 먹는 순간 히카와 선배가 떠올랐어요. 히카와 선배, 감자튀김 좋아하시잖아요.”

 그리고 타에는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치사토 선배를 좋아하시는 것처럼.”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던 사요는 뒤늦게 마지막에 붙은 이름을 눈치챘다. 한 박자 늦게 놀란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네?! 어째서 그런 생각을...?”

 당황하는 사요의 모습을 본 타에는 자기가 알던 세상의 상식이 부정당한듯한 반응을 보였다. 

“감자튀김 싫어하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사요는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머리를 손으로 누르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말했다. 

“시라사기 씨말이에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타에는 아, 하는 소리를 내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야 히카와 선배, 저랑 취향이 같으시잖아요?”

 타에는 사요의 옆에 올려져 있는 기타 케이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좋아하는 악기도, 좋아하는 색깔도 저랑 겹치잖아요. 그러니 좋아하는 여자도 겹칠 거라 생각했어요.”

“....”

 사요는 대답하지 않았다. 타에 역시 별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은 채 맥주만 마실 뿐이었다. 

 잠시 후, 타에는 창밖을 보고는 감탄하며 사요를 불렀다. 

“봐요, 히카와 선배.”

 사요가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나 눈이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산을 펴는 모습이 마치 눈을 맞아 싹이 트는 씨앗들 같았다. 

 천천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발을 보던 사요는 시선을 창밖에 고정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그건 마치 눈과 같아요.”

---

 그건 사요가 아직 하나사키가와의 교복을 입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미 수업이 끝난 지도 오래라 한산한 학교 현관에서 사요는 밖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눈이 오는 것은 아침 일기예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히나에게는 우산을 챙기라 하면서 정작 자기 우산 챙기는 것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학교에 발이 묶인 상태였다. 

“우산을 깜박했니?”

 익숙한 목소리에 사요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동급생인 시라사기 치사토였다. 작은 동물처럼 귀여운 그녀는 아이돌과 배우를 겸하는 유명인이었지만, 사요와는 이런저런 일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하필 치사토 앞에서 바보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지만, 사요는 티를 내지 않은 채 힘없이 웃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어떡하지? 나도 예비 우산은 없는데.”

“괜찮습니다. 기다리다 보면 그치겠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요는 자기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이 지역에 폭설 예보가 내려진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뒤에도 일이 있는 듯 시계를 확인하는 치사토를 더 붙잡고 있는 것도 미안한 일이었다.

 사요가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치사토는 그럼, 하면서 인사하고는 우산을 펴고 현관을 나섰다. 

 하지만 순백의 세계를 채 몇 걸음을 걷기도 전에 치사토의 발이 멈춰 섰다. 그대로 잠시 눈 속에서 서 있던 치사토는 몸을 돌려서 의아해하는 사요에게 다가왔다. 

“시라사기 씨?”

“됐으니까.”

 치사토의 손이 사요의 손을 붙잡았다. 놀랍도록 작고 부드러운 느낌에 사요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치사토는 사요의 남은 손에 우산을 건네주고는 그녀를 밖으로 끌고 나왔다. 쏟아지는 차가운 느낌에 사요는 황급히 우산을 썼다. 

“키는 사요 짱이 더 크니까 우산 들어줘. 괜찮지?”

 치사토는 그렇게 말하면서 우산 밑에서 사요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이래서는 완전히 아이아이가사라는 생각에 사요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아이돌이 이래도 괜찮나요?”

“사요 짱은 노카운트야.”

 치사토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사요는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어째서 노카운트인 걸까. 

 불순 교제와는 거리가 먼 풍기위원이라서? 아니면 같은 여자끼리라서? 그것도 아니면,

이쪽에는 전혀 마음이 없어서?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속으로 되새기느라 사요는 옆에서 치사토가 해 준 경고를 제때 듣지 못했다. 

“...심해!”

 무언가를 치사토가 말했다고 생각한 순간, 사요는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축축한 느낌에 정신을 차린 사요는 자신이 미끄러져서 눈 위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찮니? 안 다쳤어?”

“...그냥 넘어졌을 뿐입니다.”

 치사토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사요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그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차라리 비웃어줬으면 마음이 편할 텐데. 하지만 치사토는 진지한 표정으로 사요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설 수 있겠니?”

 사요는 치사토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치사토가 이끄는 대로 일어서는 대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작은 치사토의 몸이 그대로 사요의 위로 엎어졌다. 

 달콤한 냄새와 함께,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졌다. 

 입맞춤은 실제로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사요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미안합니다.”

 입술이 떼어지자마자 사요는 반사적으로 사과했다. 치사토는 그런 사요를 경악이나 경멸의 눈빛으로 보지는 않았다. 

 대신, 사요는 그녀의 눈빛에서 측은함을 느꼈다. 

“방금 일은 비밀이야.”

 치사토는 가볍게 웃으며 손가락을 입에 대었다. 그렇게 말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사요는 자신이 거절당한 것을 깨달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다시 우산을 같이 쓰고 눈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헤어질 때 작은 목소리로 치사토가 미안하다고 말한 것을 들었지만, 사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사요의 마음속 한구석에선 항상 눈이 내렸다. 

---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쌓이고 쌓인 그 눈은 차갑고, 또 더러워서 절대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요.”

 사요의 말을 다 들은 타에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했다.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역시 전 히카와 선배가 치사토 선배를 좋아해도 괜찮아요.”

“하나조노 씨는 저에게 치사토 씨를 좋아하지 말라고 할 권리가 있는데도요?”

 마치 상처받은 짐승 같은 사요의 말에도 타에는 태연히 웃어보였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좋아하는 사람 것이니까요.”

 어쩌면. 사요는 어쩌면 치사토가 타에를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하나조노 씨는 마음이 너무 넓어요.”

“그런가요? 하지만 역시 좁을지도요.”

 갑자기 타에의 손이 사요의 팔을 잡아끌었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사요는 입술에 부드러운 것이 닿는 것을 느꼈다. 

 짧은 입맞춤 후에, 타에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치사토 선배의 입술은 돌려받았어요.”

 멍해 있는 사요를 내버려두고 타에는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봐요, 눈이 그쳤어요.”

 타에의 말대로 어느새 눈은 그쳤다. 사요는 창밖의 풍경을 보다가 진작 했어야 하는, 하지만 여태까지 하지 못하고 있던 말을 떠올렸다. 

 마치 봄과도 같은 미소와 함께, 사요는 그 말을 입에 올렸다. 

“하나조노 씨, 결혼 축하드려요.”

 이제는 이 말을 해도 괜찮았다. 

 히카와 사요의 마음속에도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았다.

————————————

사요치사 하니까 얼마 전에 쓴 게 생각나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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