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보통 둘은 번갈아가며 찾아오는데
뭐가 먼저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
“...”
먼저고 나중이고 나발이고
여하간 수담은 지금 작은 혼란에 빠져있다
“강수담”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넓고 푹신한 거 아닐까 싶은 침대 위에
어쩌면 지구에서 제일 부드럽고 포근할지 모를 이불을 덮고
무조건 우주에서 최고로 싸가지 없는 게 분명한 여자를 마주보며
“강수담”
“강수담”
지금 이건 좋은 일일까
아니면 나쁜 일일까
하는 혼란
“...”
“...”
“같이 자는 게 그리도 싫니?”
“뭐?”
“방금 눈 뜨고 자는 척 했잖아”
“그딴 짓을 누가 해”
“잠깐 딴 생각 한 거야”
“그래?”
“손잡아도 돼?”
“...뭔데 갑자기”
“뭐가 뭐야”
“손은 왜”
“...글쎄?”
“손을 잡고 싶어서 손을 잡아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왜 손을 잡고 싶냐 물으시면”
“그저 손을 잡ㄱ”
“아 씨발”
“자 자”
“응”
“...”
다른 건 몰라도
눈앞에서 내 손을 잡고 있는 저 여자에겐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좋아 죽을 일이구나
라고 수담은 생각했다
“실실대지마”
“흐흥-”
“니 나 만질 때”
“허락 받는 거 지금이 처음인 거 아냐?”
“몰래 만지면 손가락 부러뜨린다며”
“만지기 전에 말해달란 뜻이 아니었는데”
위에서 수담의 손등을 간지럽히던 지우의 손가락들이
순간 일제히 손목을 향해 내려간다
“어머 그래?”
그리곤 손목 안 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파른 손바닥을 유려하게 거슬러 올라
수담의 다섯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든다
“...”
“뭔데”
“깍지 끼면 못 부러뜨리잖아”
“손목은 꺾을 수 있어”
“꺾을 거니?”
빈 틈 없이 부둥켜안은 두 손을 수담은 멍하니 바라봤다
희고 가녀린 지우의 손목에는 솜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니”
“왜?”
“...”
“...지금 다치면”
“또 학교 못 나올 거 아냐”
“푸흡”
“...그래”
그러고서 시간은 입을 다물었다
이불 안에서부터 차오른 온기가
지우와 수담의 몸을 타고 흘러
하나가 된 두 손 안에 섞였다
깍지를 끼고서 톱니처럼 맞물린 두 손이
둘의 시선 사이로 개기일식날 달처럼 검게 차오르면
그 너머에서 수담의 눈은 지우에게, 지우의 눈은 수담에게
은색 고리가 되어 빛났다
서로 태양이 됐다가 지구가 됐다가를 반복했다
“...”
“...”
“...”
“...”
굳게 닫힌 시간의 입술
“...”
“반지우”
그 사이를 수담의 숨결이 비집고 들어간다
“응”
“있잖아”
“지난주에”
“나... 쓰러졌을 때”
“..응”
“울었다며”
“...”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툭’
지우의 검지가 수담의 손등에
초조한 리듬을 새긴다
“가만 있어봐 정신 사나워”
깍지를 낀 채로 손을 뒤집는 수담
지우의 손가락이 수담의 손등 밑에 깔린다
“아깐 밑에 젖었냐고 물어보더니”
“이젠 얼굴 젖었냐고 물어보네”
“무슨 말을..”
“너 학교 끝나고”
“가방도 안 풀고 우리 집 찾아온 거”
“나한테 사과하러 온 거 아니니?”
“...”
“응”
“근데”
수담의 손이 지우의 손에 이끌려 다시 한 번 뒤집힌다
‘쿡’
‘쿡 쿡 쿡’
‘쿡 쿡 쿡 쿡 쿡’
짧게 자른 손톱을 바짝 세운 채
지우의 검지가 다시금 리듬을 새긴다
초조함과는 완전히 다른 감정
수담의 손등에 초승달 모양 자국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자고 싶대서 오순도순 누웠더니”
“왜 갑자기 청문회야?”
“...”
“알았어”
“뭘 알았는데”
“오늘은 그만 쓸게”
“질문권”
“...”
“두 개 남은 거다”
“...푸흡”
“끅끜끽끗끅”
“눈만 마주쳐도 죄다 얼려버릴 것같이 생겨놓고는”
“쿨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니까”
지우는 작게 웃으며
천장을 향해있는 수담의 손등에 이마를 비볐다
“다행이야”
“너가 또 미안하다고 안 해서”
“뭔 소리야”
“그런 거 모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실수에 삽질에”
“그래서 맨날 미안하다 죄송하다 노래 부르면”
“나중엔 아무리 진심으로 사과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거”
“...뭐”
“틀린 말은 아니네”
“당연하지”
“난 틀린 말 안 해”
“허”
“그럼 당분간 너한테 존나 못되게 굴고서”
“사과는 나중에 몰아서 한 번에 할게”
“진-심을 담아서”
“...”
수담은 손등에서 지우의 이마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우는 올곧은 눈빛을 수담에게 향했다
“...강수담”
“너는 너가”
“진짜 그렇게 씨발년이라 생각해?”
손톱으로 맹렬히 초승달 자국을 남기던 지우의 검지는
어느새 수담의 손등을 상냥하게 쓰다듬고 있었다
“나쁜 사람 된답시고”
“분에 안 맞게 굳이 스스로를 몰아세울 필요가 있을까”
“괜히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너 하고 싶은 대ㄹ”
“그만해”
경직되듯 멈추는 지우의 손가락
수담은 손에서 힘이 살짝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느슨해진 손깍지 사이로 바깥 공기가 들어왔다
“아는 척 하지 마”
“듣기 싫어”
“...”
“그래”
“...”
“...”
“아까 청문회랑 쌤쌤이다?”
“...참나”
“지도 하나도 안 쿨하ㄱ..”
“긋으ㅎ아-하음..”
밤공기로 가득 찬 하품이 내뿜는 검은색 향기에
수담의 입가와 눈꺼풀도 느슨해져갔다
“입 좀 가리고 할래?”
“아 씨”
“무슨 예절교육 받으러 온 줄 아나”
“...”
“푸흣-”
정적 속에 피어나는 푸른 미소와 함께
지우는 수담과의 손깍지를 천천히 풀고는
손등을 조심스레 포개 쥐었다
‘스-륵’
그리곤 수담의 손을 자신의 뺨 위로 가져가 살며시 얹었다
“궁금하니?”
“내가 울었나 안 울었나”
“...”
나긋한 목소리와 입술의 움직임이
수담의 손바닥 위에 그려졌다
“바보처럼 궁금한 대로 죄다 그렇게 물어만 보지 말고”
“스스로 알 수 있게끔 해봐”
“...”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뭐냐면”
“궁금하면 궁금한 만큼”
“질문을 나 말고 너 자신한테 해보라구”
“...”
“반지우는 어떤 사람일까”
“그 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이런 상황이면 어떤 짓을 할까”
살짝 더 따뜻해지는 수담의 손바닥
“별로 어려운 거 아니거든?”
“내가 울었는지 어쨌는지 하는 거”
지우는 그러면서 수담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촉촉한 살갗이 차분하게 맞부딪는 소리가 둘의 귀를 핥았다
“내가 말 안 해줘도”
“알 수 있어”
“너가 내 생각 많이 하면 돼”
“그러니까...”
“나한테 궁금한 게 있으면 그만큼”
수담과 지우의 눈동자를 잇는 투명한 선에서
“...나 많이 좋아해주면 돼”
짧은 순간 전기가 흘렀다
“...”
“...”
만약 지금 이 순간이
영화든 드라마든 뭐든 어떤 형태의 픽션이었다면
여기서 어느 한 쪽이 상대방에게 키스해도 아무도 불만 없을 거라고
분명 그럴 거라고 수담은 생각했다
“...반지우”
“응”
“너가 나한테 왜 이럴까 생각을 해봤는데”
“일단 넌 레즈야”
“...”
“푸-흡”
“큮끅귺...”
“확실해”
“뭐... 그래”
“상관없어”
“너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면”
“레즈 할게”
“레즈를 하고 말고 자시고”
“레즈가 맞잖아”
“글쎄”
“난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 모르겠어”
“그럼 중요한 게 뭔데?”
“어휴 정말!”
“아!”
수담의 손바닥 어딘가를 지우가 콱 깨문다
“일일이 질문하지 말라니까?”
“여기가 유튜브 Q&A 댓글창이니?”
“학습능력이 없어 애가”
“아 졸라 미친년”
“깨무는 거 개좋아ㅎ”
‘쪽’
물린 자국 위에 닿는 입술
“흐깃”
수담의 본능이 오른팔을 있는 힘껏 당긴다
품속에 와서 안긴 손바닥엔 볼과 입술의 보드라운 온기가 서려있다
“아하하하!”
“섹스 해주겠다면서 위풍당당하던 강수담 어디갔니?”
“놀라 자빠지는 것 좀 봐”
“ㅁ, 뭐하는데 진짜!”
“물고 빨아봤어”
“레즈처럼”
“내가 레즈였으면 좋겠다며?”
“지랄 내가 언제”
“아닌가?”
“아니면 됐어”
“하...”
수담은 누운 채로 몸을 돌려 지우를 등졌다
지우가 잔뜩 닿았던 손은 여전히 품 안에
“자기가 당할 땐 부끄럼 많이 타는 쪽이니?”
“좆까 미친년아”
“나 잘 거니까 진짜 건들지 마라”
“나도 자야겠다”
“졸리다 이제”
“털끝만 닿아봐 바로 쥐어뜯을 거야”
“흐흥-”
“강수담”
“...있잖아”
“뭐”
“...”
“...”
“잘자”
나지막한 작별인사
수담의 등을 타고 넘어오는 숨소리의 리듬이 완벽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
지우가 입으라고 준 잠옷 바지에서
수담은 휴대폰을 꺼내 통화기록을 확인한다
‘수신 - 엄마’
‘부재중 전화 - 엄마’
마지막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그래서 더 소중한 통화기록
하지만 모든 감정은 영원불멸하지 않고 절대소멸한다
멎어가는 소중함의 끝자락에서 수담이 마주한 것은
죄책감이었다
ㅡ공부 때문에 친구 집 갔다고?
ㅡ공부 때문에 친구 집 갔다고?
ㅡ공부 때문에 친구 집 갔다고?
“...”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이미 여동생이 언니를 감싸려고 거짓말을 해놓은 상황
그 거짓에 호응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동생이 피해를 볼 테니까
말려들 테니까
하필 왜 오늘 엄마와 여동생이 통화를 했을까
어쩌다 여동생의 입에서 언니가 집에 없다는 말이 나왔을까
분명 여동생이 실수로 먼저 말했겠지
왜냐면 엄마는 궁금해 하지 않으니까
처음으로 낳은 아이가, 강수담이 자신의 아이라는 걸
혐오하는 사람이니까
“스-읍”
“흐-우”
등 뒤에선 지우의 하얀 숨소리
공기 중에 부드럽게 섞여들어 귓바퀴를 감는다
그 음성은 복잡한 신체기관을 타고 흘러들어
심장 속에서 뒤적뒤적 섞인다
어두운 밤
침대 위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숨소리가
여동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게
어린 핏줄을 집에 혼자 두고 왔다는 게
그러기 위해서 다른 핏줄에게 거짓을 말했다는 게
거짓을 말했다는 게
죄스러운 밤
“스-읍”
“흐-우”
눈을 감는다
길로틴에 묶인 채
칼날을 고정시키는 밧줄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은
먼 옛날 어느 나라의 사형수처럼 질끈
눈을 감는다
시신경을 꽉 감싸 쥔 완전한 어둠
감긴 눈 너머의 시야가 검은 것은
눈꺼풀로 눈동자를 가려 죄를 외면했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끌어안았기 때문 아닐까
눈꺼풀로 눈동자를 가린 게 아니라
몸 안으로 감싼 것 아닐까
자신이 저지른 죄의 색깔
단순히 지금 이 순간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 것을 빼고
여동생이 거짓말을 하게 만든 것을 빼고
빼고 또 빼고 또 빼고 또 빼서
그 모든 것을 한 곳에 뭉치면
그것은 분명 검은색일 것이다
“스-읍”
“흐-우”
이 세상 모든 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나오니까
“...”
“...”
끊임없이 부유하는 죄책감 사이에서
수담의 얕은 숨소리는 가까스로 일정한 리듬을 되찾았다
“스-읍”
“흐-우”
“...”
속절없이 돌아가는 초침과 분침은
낚시 줄을 감는 태엽이 되어
검은 하늘 너머의 태양을 조금씩 끄집어냈다
아마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을
평화로운 아침
“스-읍”
“흐-우”
“...”
“...읏”
“귿..”
검은 시야의 뒤편에서 안개처럼 아른거리던 죄책감은 그러나
끝끝내 수담의 무의식 위로 누군가의 얼굴을 현상해냈다
“..흣...”
“으읍, 듵...”
ㅡ
ㅡ니
ㅡ언니
“ㅅ.. 슫...”
ㅡ언니
ㅡ수담언니
“섣...ㄲ엌-”
“컷.. 헙...서..”
“서ㄷ...다...”
ㅡ수담언니
ㅡ좋아보이네
ㅡ저 사람이랑
수담의 하얀 목을 감싸 쥔 두 개의 손
그 위로 뻗은 팔에 시선을 맞춰 천천히 따라가면
무표정한 여자의 얼굴 위를 덮은 그늘이
아침햇살에 벗겨지고 있다
“ㅅ담...섯...”
“서..담...”
‘꽈-악’
“커흑-”
ㅡ나는 온 몸이 산산조각 났는데
ㅡ그 상태로 불구덩이에 들어가서
ㅡ뼛가루만 남았는데
“서...담아...”
‘꽈-악’
“얻...ㄴ...ㅌ....”
ㅡ이렇게 넓은 침대에서
ㅡ친구인지 뭔지랑 나란히 누워서 잠이나 쿨쿨 자고
ㅡ엄마한테 거짓말까지 하면서
ㅡ수람이한테 거짓말까지 시키면서
“흩, 느얻-”
점점 좁아지는 기도 사이로 공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수담은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이 없다
목과 얼굴을 제외한 전신의 감각이 녹아내려
죄책감의 찌꺼기 사이로 촘촘하게 스며든다
“ㄱ...ㅋ....”
왼쪽으로 향하는 수담의 눈동자
산소를 갈구하는 소리에 방해를 받았는지
지우가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뒤척이고 있다
ㅡ그냥 죽어 수담언니
ㅡ수담언니도 항상 생각하잖아
ㅡ그 때 나도 죽을걸 하잖아
“....ㅎ”
“..ㅋ...”
시야가 흐려진다
얼굴의 피부가 찢어질듯 당겨온다
원래 목을 졸리면 다 그런 것인지 아니면 슬픈 건지 무서운 건지
새벽녘 풀잎 위 이슬처럼 맺힌 눈물이 관자놀이로 흘러내린다
“...”
“...ㅌ”
“...”
산자락을 뒤덮는 용암처럼
천천히 융해되는 수담의 생명력이
침대시트에 녹아든다
ㅡ죽겠지 수담언니
그래 진작에 이러는 게 맞는 거였을지도 몰라
죗값을 치른다는 것과 산다는 건
양립할 수 없는 거였을지도 몰라
너가 나 때문에 죽었을 때
너를 따라가는 게 정답이었을지도 몰라
ㅡ아
하지만 어떡하지
지금 내가 죽으면
여동생은 혼자 남고
엄마한텐 용서도 못받고
그리고
그리고
ㅡ아깝네
반지우한테
반지우 이 년한테
ㅡ
ㅡ또 올게
ㅡ언니
“...ㅅ담!”
“강수담!!”
“강수담!!!!”
“ㅍ...”
“..ㅊ”
“ㅇ, 얘 왜 이러지”
“왜 숨을 안 쉬어?”
“아니 시, 수, 쉬나??”
“ㅋ, 큿...”
“강수담?”
“강수담?!”
“강수담!”
“흩...ㅌ”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절반 이상 몸을 담갔던 수담의 심장과 폐가
저주받아 죽지 못한 익사체마냥 아득바득 살아 뭍으로 기어 올라왔다
“어.. 어... 어....”
“잠깐만 잠깐만”
“몸 가만히 냅둬”
“아니 움직이지 마”
“힘 쭉 빼고 있어봐”
지우는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한 손은 수담의 허리 밑
다른 한 손은 날갯죽지 아래를 감싼 채
흠뻑 젖은 수건마냥 늘어진 몸을
천천히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어떡해 몸에 히, 힘이 하나도 없어”
“너 뭐 그거야?”
“ㅈ, 지, 지병 있어?”
“아니 허리를 좀 좀 지탱을 하고 있어봐”
“아아아아 산 사람이 이렇게 늘어지는 게 어딨어!”
지우는 수담의 상반신이 고꾸라지지 않도록 한 쪽 팔로는 그녀를 부둥켜안고
다른 한 손으로 땀에 흠뻑 젖은 수담의 등을 두들겼다
‘토닥토닥‘과 ‘찰싹찰싹’의 중간 정도 되는 소리가 울린다
“숨 쉬어져?”
“어? 쉬어져?”
“흩...트하..”
“하.. 흡...푸-”
“후우... 후”
“하”
“...”
“하아”
“괜찮아?”
“안 죽겠어?”
“살아있는 거지?”
“죽는 거 아니지?”
“...”
“어?”
“대답해봐”
“아무 말이나 해보라니까!”
“..ㅎ”
“ㅎ무..”
“..아무... 말”
“...”
“후..”
“나 안ㅈ, 안 죽었어..”
“호들갑... 그만 떨어”
“...”
죄책감에 잘려나간 팔다리의 신경이 느리게 돌아왔다
발끝과 손끝의 저릿저릿함도 천천히 연해졌다
“...하”
“진짜 죽을 ㅃ”
‘와락-’
“읏!”
겨우겨우 일으켜 세워진 수담의 몸이
땀에 젖은 시트 위로 지우와 함께 쓰러진다
“...”
“...”
목에 팔을 힘껏 감고서 수담을 짓누르는 지우의 몸
어쩌면 마음도
“저기..”
“무거운...데”
“다물어”
“가만히 있어”
“나 괜찮다니까?”
“내가 안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
화가 잔뜩 섞인 울음소리
지우의 이마가 수담의 심장을 진득하게 누른다
“가지 말고 여기 있어 그냥”
“그냥.. 그ㄴ...”
“귿..”
“...”
“...반지우”
수담의 가슴께에 말없이 고개를 파묻는 지우
그렇게 누군가에겐 짧고 누군가에겐 긴 시간이 흐른다
수담의 팔이 완전하게 감각을 되찾을 때까지
“...”
“...”
“반지우”
이윽고 육체에 자기 의지를 온전히 실을 수 있게 됐을 때
수담은 이제서야 자신의 것이 된 팔을 움직여
작게 떨리는 지우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
“안 괜찮아”
“나 안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그냥 누워있어”
“...응”
“강수담”
“너 뭐야”
“너 왜 그래”
“뭐?”
“수면무호흡증?”
“..아니”
“그러면”
“...”
“나 진짜”
“너무 놀라서”
“..아 잠깐만”
“...”
“...”
크게 한 번 ‘훌-쩍’ 하는 소리
“..하”
“있잖아 반지우”
“...”
“나중에”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까”
“나 지금 괜찮거든?... 완전?”
“그러니까 일단”
“일단... 진정해”
“...강수담”
“너 설마”
“...”
“...”
“아니야”
“뭐가”
“됐어”
“뭔데”
“몰라”
다시 한 번 ‘훌-쩍’
그러고서 지우는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아래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어정쩡하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기괴하게 움직이며
침대를 빠져나가 수담을 등졌다
“아니, 야”
위태로워 보이는 손목에 수담의 손이 휘감겼다
“어디가”
“...씻을 거야”
지우는 수담을 돌아보지 않는다
“괜찮아?”
“...”
“아픈 건 너잖아”
“...”
제자리로 돌아오는 수담의 손
“난 화장실에서 씻을 테니까”
“넌 목욕탕 가서 씻던가 해”
“목욕탕에도 샤워기랑 다 있으니까”
“...”
“응”
침대 위에 홀로 남아
수담은 아직 온기가 옅게 남아있는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지우의 얼굴이 파묻혔던 자리는 여기저기가 젖고 얼룩져있었다
그 축축함을 손으로 느끼며 수담은 뜨겁게 숨을 내쉬었다
땀에 젖은 시트와 베개 커버, 이불을 빼서 몰아두고
목욕탕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알아서 세탁기를 찾아 간밤의 사투로 땀에 젖은 옷들을 던져 넣고
가지런히 벗어둔 교복을 챙겨 입었을 때 시간이
“아직도 7시가 안 됐네”
널찍한 마루에 멍하니 서있던 수담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학교 가면 교문 잠겨있을걸”
지우의 옷도 땀에 젖었는지
잠들 때 입었던 것과는 다른 것을 입고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다
베란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
도자기처럼 하얀 다리 위로 솜털이 일렁였다
“그러네”
“강수담”
지우는 수담의 이름을 부르더니
소파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쳤다
“...”
“뭐”
“지금 나갈 거 아니잖아”
“앉아있어”
“바보같이 서있지 말고”
수담은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올려놓고 몸을 축 늘어뜨렸다
소파 가죽과 허벅지가 뽀득거리며 부비는 소리
감색 교복치마가 잔뜩 말려 올라갔다
“하”
“숨 차...”
하지만 앉아있어도 멍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루 사이에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혼란 없이 받아들이기가 수담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뭐해”
“...몰라”
“어지러워”
“...약 있는데”
“아픈 거 아니야”
“그럼 됐어”
지우는 햇살 속에서 짚신벌레처럼 움직이는 먼지를 가만히 쳐다봤다
“...”
“있잖아”
“...”
“너 아까 진짜 왜 그런 거야?”
“침대에서?”
“그것 말고 뭐가 있겠어”
“나중에 말해준다고 했잖아”
“...”
“알았어”
“...”
“...”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환경이 바뀌면 인간도 바뀐다
“강수담”
“왜 또”
“...”
“씻으면서 생각한 건데”
“너 아까 그거”
“...일부러 기절하려는 척 해서”
“내가 우나 안 우나 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지”
“...”
지우의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적응을 넘어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는 자신을
수담은 아직까진 발견하지 못했다
“진짜 미친년이냐 너”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그냥 물어본 거야”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되지”
“왜 화를 내고 그러니?”
“닥쳐”
“계속 쓸데없는 소리 하면 너 두고 그냥 간다”
“어딜 가?”
“학교지 그럼 어디 해외여행을 갈까”
“난 다음 주부터 갈 거라니까?”
“몇 번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
“...”
“그래도 돼?”
“일주일 통으로 빠져도 졸업이 돼?”
“저기야”
“내가 너보다 머리도 훨씬 좋고”
“아는 것도 비교 불가한 수준으로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최소 출석일 수거든?”
“아무 문제없으니까 갈 거면 가시든가요”
“...”
수담은 짜증이 났다
물론 지우의 기본적인 말투나 태도는 두말할 것 없이 원래부터 짜증났지만
지금은 핀트가 조금 달랐다
“...”
“왜?”
“나랑 학교 가고 싶어?”
“내가 교실에 없으면 괜히 신경 쓰이니?”
“하...”
“하긴 내 생각이 사무치게 나서 집까지 찾아온 거 보면”
“말 안 해도 알겠다 기집애야”
“...됐어”
“다음주에 오든가 말든가”
“...”
“좆도 신경 안 쓰니까 맘대로 해”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는 수담
“있어봐”
지우는 앉은 채로, 수담은 선 채로 짧은 정적을 맞이한다
“...”
“지우야 나랑 학교 같이 가자”
“이렇게 말하면 같이 가줄게”
“내 눈 보면서”
“...”
“꺼져 등신아”
현관문을 향해 한 걸음
“아랫집에서 올라와 살살 걸어”
두 걸음
세 걸음
“...”
“...”
수담은 자리에 멈춰서 눈썹을 찌푸리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치아의 묵직한 마찰음
지우를 향했던 수담의 등이 이번엔 현관문을 향했다
“...학교”
“같이 가자”
“땡”
“...나랑...”
“학교 같이...가자...”
“때-앵”
“...”
“...”
“반지우”
“땡 땡”
“하아아...”
만약 지금 수담이 절대반지를 삼킨다면
분명 위장에서 녹아 없어질 것이다
“...”
“하는 거야 마는 거야?”
“...”
“...”
“...”
“...지..ㅈ,지우...야”
“응”
“나랑...학교 같이 가자”
“...”
“...”
“땡”
“뭐?”
“시간 초과”
“아닛, ㅌ하...”
단전에서 끓어오른 열기가 곧바로 정수리까지 닿았다
수담은 ‘이게 뇌출혈인가’ 싶었다
“...”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 진짜 어?”
“속이 막 후련해?”
“흐흥-”
더 쎄게 때렸어야 했다
처음 반지우를 만난 날
손목이 아니라 한 쪽 어깨를 당분간 못 쓰는 한이 있었더래도
저 몸뚱이가 영원히 침대에만 붙어있도록 팼어야 했다
“키스해줘”
“...”
“뭐???”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둘 중 하나가 미친 건지
둘 다 미친 건지
사실 미친 건 이 세상인지
“키스 해달라구”
“그럼 이 자리에서 바로 교복 입고”
“두 말 없이 학교 갈게”
“진짜야”
“...”
머릿속에 안개가 낀 기분
손끝에 힘이 들어가질 않고
안면이 마비될 것만 같았다
“시간제한도 없는 걸로”
“...”
수담은 다시 한 번 지우를 등지고
현관문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못하겠지?”
“다행이다”
“내 사정도 좀 봐줘”
“월화수목 학교를 다 빠지면”
“금요일엔 나갈 수가 없어 사람이”
“적응이 안 돼 진짜”
신발을 신고
“휴”
“잘 가 강수담”
“나름 재밌었어”
손잡이를 붙잡고
“다음주 월요일날 보자~”
붙잡고
붙잡고
“...”
“진작에 죽였어야 되는데”
“어?”
손잡이를 놓고
신발을 벗고
햇빛이 드리운 거실로 조용히 걸어갔다
수담은 다시 한 번 현관문을 등지고
“가, ㄱ.. 강수담?”
지우의 턱을 한 손으로 잡고
치켜세운다
“눈 감아 개같은 년아”
“ㅁ.. 틋, 읏.. 어??”
“찔러서 뽑기 전에 감으라고”
“잠, 잠깐만!”
“감으라 했다”
“...”
“ㄱ, 흣...”
질끈
지우의 시야가 검게 잠식된다
입을 함부로 놀린 죄의 색이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
“...”
두 입술이 가까워진다
숨결은 닿지 않는다
지우도 수담도
숨을 참고 있다
“...”
“...”
“...”
“...”
이 상태에서 빼빼로게임을 하면
세계 챔피언이다
‘꿀-꺽’
묵직하게 침을 삼키는 지우
그 소리가 수담의 귀에 달라붙는다
“아아아아아 진짜 씨이발!!”
‘스륵-’
‘쪽’
“흐긋!”
“하아아...”
“...ㅁ, ㅁ, ㅁ”
“믓.. ㄷ..”
“모... 무, ㅁ, 뭐야?”
초생강처럼 붉어진 얼굴을
지우는 양 손으로 감싸쥐었다
“...뭐가”
“오, 왜 이마야??”
“...”
“그냥 키스랬지”
“어디에 해달란 말은 안 했잖아”
“...”
“...ㄸ”
“땡! 땡땡땡!”
“어후 진짜 개썅년!!”
수담은 자신도 모르게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래 그래 어차피 이럴 줄 알았어”
“반지우같은 걸 믿은 게 등신이지”
“어? 내가 아주 최고의 등신년이라고”
“됐어 니 출석이고 졸업이고 몰라 드러운 년아!”
성큼성큼
정강이에 잔뜩 힘을 싣고 현관문을 향하는 수담
“아 좀!”
“살살 걸으라니까?”
“살살?”
“살살?!”
수담은 빠르게 신발을 신더니
그 상태 그대로 마루바닥에 올라와
양발로 쿵쾅쿵쾅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점프를 뛰기 시작했다
“꺄악!”
“미쳤나봐 진짜 왜저래!”
한바탕 점프쇼가 끝나고
수담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지우의 빨간 얼굴은 여전히 양 손에 감싸여있다
“후으...”
“..후”
“...”
“진짜 내가 여길 다신 오나 봐”
“니는 어? 다음 주에 학교 오든가 말든가”
“아니 그냥 오지 마 영원히”
“진짜 웬수같은 새끼”
수담의 발이 마루를 건너 다시 신발장으로 이동했다
“ㅈ, 잠깐만!”
“또 뭐!”
“거기 있어봐”
“왜!!”
“...”
“참나”
“왜 와서 한 대 치기라도 하시게?”
“...”
“...”
“뭐 뭐! 뭐!!”
“그렇게 가까이 와서 쳐다보면 어쩔 건데?”
“...”
“...”
“...”
“입 다물고 있으면 뭐 어쩌라고”
“할 말 없으면 나 학교 ㄱ, 흡-”
지우는 있는 힘껏 까치발을 세웠다
“음...믐-”
“븝- 뜨읍!!!”
‘쪼-옥’
“흗.. 떹... ㅁ.. ㅁ...”
“미.. 이러, 일ㄹ”
“이.. 이런 미ㅊ.. 미친년아!”
“...”
한 쌍의 인디언이
아니 아프리카 원주민이
메두사와 눈싸움이라도 한 듯
그 자리에 굳어 손끝 발끝만 움찔움찔
“...ㄷ”
잔뜩 촉촉해진 눈으로
지우가 먼저 저주를 깨고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열었다
“ㄷ...”
“디..”
“...딩동댕”
“ㅎ, 아.. ㅎ아니 이ㄹ”
“ㅇ.. 이거 진짜”
“너, 너 너 똘아이야?”
“...”
“...”
“교복..”
“입...어야ㄷ”
지우는 획 하고 뒤돌더니
긴 복도 오른쪽의 방문 안 쪽으로 총총총 사라졌다
“야 반지ㅇ-”
다리에 힘이 풀려
수담은 신발장에 그대로 푹 주저앉았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은 입술로 향했다
“진짜 쳐돌은년..”
손을 가져다 대는 건 쉬운데
떼는 건 왜 이리 어려울까
“미친년..”
그게 어려운 건지 아니면
“...”
사실은 싫은 건지
“...”
“씨발년”
1부 끝
다음편은 에필로그 및 후기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