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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네온 스모그가 눈을 가린다 - 3

삼일월야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29 09:58:57
조회 205 추천 12 댓글 5
														

앨리스, 그것이 나의 이름. 트리쉬에게 고용되어 그녀의 부친을 돌보는 주치의이자 언젠가 환자의 목에 칼을 겨눠야 하는 의사.


“나머지 이야기는 차에서 할까요, 앨리스?”

밖에는 네온의 거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흑색의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웃기는 그래피티도 없고, 과한 튜닝이 가미되지도 않은 순수 주의자들이 선호할만한 깔끔한 디자인. 잠시 감탄하던 사이 어느새 트리쉬는 리무진의 문 앞에서 손짓하고 있었다. 밖에서 안으로, 나를 안내하는 손길. 앨리스는 그렇게 차에 올라탄다.


“앉아요.”


기분 나쁠 정도로 웃음짓는 트리쉬를 뒤로 하고 나는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댄다. 이어 트리쉬가 앉고, 차는 자연스럽게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 안은 비추는 은은한 푸른색이 지배하는 공간. 이렇게 몸을 편안히 해주는 공간이 없어서 그랬을까, 몸을 감싸는 가죽 시트에 맥이 풀려서 였을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내 몸은 천천히 녹아내려 가고 있었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트리쉬는 능숙하게 글라스와 병을 꺼내들었다. 테이블에 놓인 두 개의 잔.


“여기 한 잔.”


투명한 글라스가 주황빛으로 채워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병을 놓고 트리쉬는 잔을 들어 가볍게 흔든다. 그에 맞춰 나도 잔을 든다. 이어지는 간단한 건배. 서로 한 모금을 목으로 넘겼을 때, 트리쉬는 품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든다.


“그럼 본격적으로 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앨리스."


테이블에 펼쳐진 것은 현상된 네 장의 사진.


"이게 저희 가족이에요.”


그런 네 장의 사진 중에서 트리쉬는 유일한 남성의 사진을 내게 내민다.


“이 사람이 제 아버지, 아담. 당신이 맡아야하는 환자죠.”


아담이라 불린 남자, 그리고 나의 살해 대상. 아담은 분명 사진 속에 있지만 그 눈초리는 마치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나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 강한 힘에 조금 위축될 정도로. ...언젠가 이 사람의 목에 칼을 꽂아야하지만.


“예전에야 꽤 정력적인 분이었지만 지금은 그 시절의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캡슐에 자신을 가뒀어요.”


“그렇다면 대부분의 건강 관리는 그 캡슐이 할텐데…”


“그러면서도 허영심은 사라지지 않아 의사를 원하는 거에요. 그 덕에 앨리스, 당신이 온 거지만.”


트리쉬의 입꼬리는 조금 올라간 채로, 자신의 아버지를 비웃는 것일까. 하지만 사진과는, 이전과는 다르게 약해졌다는 남자의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내가 본 아담은 강한 사진 속의 모습이니.


“그리고 이건 제 동생, 베스랍니다.”


앳된 아이의 사진. 트리쉬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듯 했다. 그에 더해 자매라지만 트리쉬와 그다지 닮지 않았다. 그나마 닮은 점을 찾자면 똑같이 푸른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그런 색을 빼고 보면 베스의 차가운 눈은 분위기는 감정을 겉으로 금방 나타내는 트리쉬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귀염성이라고는 없는 아이에요. 참, 예쁜 얼굴을 가졌으면서 웃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며 트리쉬는 다른 사진을 내민다. 그 사진 속에는 실로 아름다운 한 여인의 모습이 있었다. 더 이상은 보지 못하는, 사람의 몸 그 자체에 천천히 스며드는 밤하늘과 같은 머리카락 또한 매력적이었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어떤 파문도 일지 않는 호수와도 같은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천천히 사람을 홀려 빠뜨릴 것만 같은 푸른 눈동자. 비상식적으로 빛나 위화감을 느낄 정도였지만...얼마 지나지않아 그 위화감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오른 쪽 볼에 있는 형식번호와 기업 마크. 안드로이드군요.”


“눈썰미가 좋군요. 맞아요, 이 아이는 ATLAS사가 공급하는 SMT-002 가정용 안드로이드에요. 저희는 에바라고 부르죠.”


SMT-002라는 형식번호, 언젠가의 광고에서 들었던 것이다. ‘가장 완벽한 인간을 합리적인 가격에.’ 라는 오만한 문구로 치장된 광고의 중심에 있던 안드로이드, SMT-002. 출시 당시 이 문구를 두고 순수 주의자들이 데모를 벌였지만 그것은 금방 사측의 강경 대응으로 초라하게 끝이 났다.


"당신의 생활은 에바에게 일임할 생각이니까, 불편한 일이나 부탁이 있거든 에바에게 말하세요. 아마 그 아이가 최대한 빠르게 조치해 줄 거에요. 그리고 이제...마지막으로 소개할 사람은 바로 이브."


"이브…”


“아담과 이브, 꽤나 운명적인 엮임이죠? 저희 자매의 어머니에요. 저나 베스나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피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 말대로 이브는 트리쉬와도 베스와도 다른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금발. 검푸른 머리칼의 두 자매와는 다르게 사진 속에서도 이브는 빛나고 있었다.


“어머니라고 해봐야 1년 전쯤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게 전부니까 뭐라 할 말이 없네요. ...그럼 이렇게 가족 소개는 끝났고.”


말을 마친 트리쉬는 잔을 들어 나머지를 단숨에 털어 넣는다. 이어 다시금 잔을 채운다.


“연기는 자연스러웠어, 그래. 다른 가족들이랑 이야기할 때도 그런 태도를 유지하라고. 그래서, 술 맛은 어때?”


술을 따르는 그 말투는 순간에 바뀌어.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지금 그런 존대는 필요 없어.”

그러면서 내게 잔을 권유한다. 채워진 잔을 건네받고 이어지는 것은 가벼운 건배.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넘긴다. 그 사이 잔을 비운 트리쉬는 다시 한 잔을 따른다. 투명한 유리잔을 서서히 채워가는 주황의 알코올.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자. 트리쉬와 앨리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과 나의 이야기.”


가족의 소개가 끝났는데도 아직 내게 할 이야기가 있는 걸까. 채 비워지지 않은 내 잔을 채워가며 트리쉬는 말을 이어간다.


“당신은 지금은 반쯤 협박당해서 일하는 거잖아.”


그걸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멋대로 납치하고, 멋대로 일을 진행하고, 그리고 멋대로 나를 바꿔버린 주제에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처럼 뻔뻔하게 입을 놀릴 수가 있을까. 그래도 나는 말을 떼지 못한다.


“...”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지금 솔직히 속으로 불안하겠지. 막말로 이번 일이 끝나고도 어떻게 될 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말야. 그러니까, 당신을 위한 보수를 약속할게. 그 편이 더 좋잖아?”


이 여자한테서 정말 그런 것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잠시 동안의 목숨 연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할게. 내가 지금 관리하고 있는 구역을 넘겨줄게. 아버지의 유산을 넘겨받으면 나는 좀 더 큰 물에서 놀거니까.”


트리쉬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내 가슴을 쿡, 하고 찌르며 이야기한다.


“관리하는 구역이란 건 분명 마리아 같은…”


“그래, 바로 그 얘기야. 그런데 좀 더 크게 바라보라고.”


트리쉬의 얼굴은 붉게 상기된 채로, 열띤 연설을 이어나갔다.


“마리아 같은 년들만이 아니야. 나는 네온 스모그가 눈을 가리는 그 거리의 모든 것들을 손에 쥐고 있어. 당신이 브로커한테 넘겨받던 그 주사도, 사람을 반병신으로 만들어버리는 퓨즈도, 그것들을 가지고 놀면서 손에 쥐는 것들을 생각해봐. 돈이며 사람이며 마음대로야. 당신도 알잖아, 주사 한 방이면 무엇이든 내놓는 놈들은 많다는 거. 그것들을 직접 부릴 수 있는 기회를, 당신이 살면서 쥘 수 있을까? 없어, 절대 없다고. 그런데 그걸 당신한테 넘겨주겠다는거야.”


어느 덧, 트리쉬의 손가락은 마치 내 가슴을 꿰뚫어버릴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고통에 표정을 일그러트릴 정도로. 하지만 오히려 그 고통에 감사했다.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마음을 오히려 고통으로 억누르지 못한다면 분명 이상한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을 테니.


기회, 이건 분명한 기회였다. 애초에 지금 내게 선택권같은 건 없다. 그렇다면 지금 트리쉬가 베푼 넓은 아량에 기대는 것이 최선. 정말 트리쉬가 약속을 지켜 관리하던 구역을 내게 넘겨준다면 나를 비웃던 그 망할 브로커들도, 자신을 망치는 약에 취해 모든 것을 팔아버리는 부랑자들의 돌아버린 모습 그 전부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의사라고 지칭하면서도 사람을 죽이는 나 자신도 전부 바꿔버릴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이것을 기쁘게 받아들여도 괜찮을까? 이미 그 거리에서 모든 사람의 도리를 버리고 살아가고 있었지만...목숨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진정 욕망이 움직여 제안을 수긍한다면, 내게 남아있는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그래...그렇게 웃으라고.”

잔에 비친 나는 어느새 입꼬리를 조금 올리고 있었다...나 또한 이미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것일까. 분명 이 거리에 사람의 도리같은 건 없다. 인간성이란 것은 진작에 흘려보냈기에 거리에는 오로지 욕망의 마천루만이 남았다면.


“내 손등에 맹세의 키스를 해줘, 이건 계약이야. 네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너에게 하는 계약.”


나는 천천히 트리쉬의 손등에 입을 맞춘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어딘가 서툴게.


“...앨리스, 후후...그래, 당신이란 사람은…푸흡, 푸하핫...큽.”


내 대답에 트리쉬의 광소는 한참을 멈추지 않은 채로, 그 중간에 나 또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차 안을 가득 채운 건 두 사람의 웃음 소리. 그러면서도 어딘가 미어지는 가슴은 내 안에 있는 마음을 들쑤신다. 후회, 자책, 자괴, 그 모든 것들. 어느덧 멈춘 리무진의 창 밖에는 화려한 외관의 저택이 있었다.


“자, 앨리스. 도착했어요.”


후회는 죽어하면 되는 것.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편부터는 이제 다음주에

주말에는

욕망대회용으로다가

불타라, 마신 메타폰

을 쓸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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