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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멀수록 가까운

Ly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30 08: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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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OOO씨 맞으신가요? . 거기 건너편에 앉으시면 돼요. 뭐라도 좀 드시겠어요? 말씀드린다곤 했어도, 제 얘기가 지루하지 않을지 걱정이네요. 말주변이 없어서요.


  아시다시피, 저는 눈이 보이지 않아요. 다행스럽게도 좋은 반려를 만났지만요. 말 그대로 반려요. 한평생 제 옆에 있어 줬고, 앞으로도 있어 줄 사람이거든요. 눈이 멀기 전부터, 그리고 멀고 나서도 변함없이 옆을 지켜준 소중한 사람이에요.


  처음부터 눈이 이렇게 안 좋았던 건 아니에요. 아주 어렸을 땐 괜찮았거든요. 풀 끝의 반짝이는 잠자리 도, 꽃 위의 화려한 나비도 모두 생생하게 보이던 시절이 있었어요. 작은 글씨도, 그이의 얼굴도 또렷이 보이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의 얼굴이라도 기억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죠.


  즐거웠어요. 그때는 친구였는데, 동네를 엄청 쏘다녔어요. 얇고 하늘거리던 공주님 옷. 쉽사리 터져버리던 반짝이는 비눗방울. 몽실 부풀던 무지갯빛 본드 풍선. 매번 날아가면서 버텨보던 알록달록한 뺑뺑이. 검푸른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도 시간 가는 줄 몰라서 부모님이 찾으러 나오실 때도 있었어요. 물론 둘 다 엄청 혼났죠.


  제 눈이 이렇게 되지만 않았더라도 더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처음에는 그냥 눈이 나빠진 줄 알았어요. 안경 정도로도 잘 보였거든요. 안경 데뷔기는 했어도, 초등학교 때는 그럭저럭 다닐 수 있었어요. 그래도 안경을 써도 점점 앞이 흐려서, 내성적인 아이처럼 지내야 했지만요. 뛰어다니기에는 보이는 것도 없었고, 걸어 다녀도 자꾸 넘어졌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손을 잡아주기도 했었어요. 워낙 돌아다니기를 좋아해서 갈색으로 탔어도, 부드러운 손이었죠. 어머님께서 깎아주신 동그란 손톱도 예뻤고여전히 매끄럽지만, 색은 어떠려나


  으흠. 얘기가 잠깐 샜네요. 그럼 중학교 얘기를 할까요? 그때는 더 어떻게 하기가 어려웠어요. 아무리 도수를 높여도 보이지도 않아서요. 부모님도 그제야 이상하다 싶어서 저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죠. 그러고서 들은 말이, 제 눈은 이미 어쩔 수가 없다나요. 겨우 윤곽만 보여서, 멀쩡한 척하기도 너무 힘들었죠. 결국 들켰고요.


  , 부모님들이 친하셨거든요. 볼펜도 못 찾고, 필기도 못 읽고 하는 걸 얼버무리기도 힘들었고. 자꾸 병원 간다고 조퇴하고. 그러니 눈치를 챈 거죠. 결정적인 건 부모님들 전화였대요. 제 눈 얘기를 하셨었나 봐요. 그걸 듣자마자 아주 열이 뻗쳐서 엄청 따져 물었다나 봐요.


  그러고는 저를 보더니 아주 펑펑 울었어요. 왜 안 말해줬냐고, 숨겼냐고. 우는 얼굴을 볼 수 없던 건 차라리 다행이네요. 소리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거든요. 겨우 얼굴 윤곽을 찾아서 눈물을 닦아주는데, 저도 울 뻔했어요. 전 그 날 아무 말도 못 했죠. 안 보이는 건 전데, 우는 건 걔고, 달래주는 건 나고. 다음날에 안 보이는 것 때문에 다들 멀어질까 무서웠다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또 그래서 혼났다니까요.


  그 뒤로는 아예 떨어지려고 하질 않더라고. 길 치워주고, 밥 먹여주고, 책 읽어주고. 주변 시선이 진짜 장난 아니었죠. 좀 지나면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몇 달을 계속 그러더라니까요. 부끄러우니까 그만 하래도 안돼, 안돼, 그 말만 계속하고. 겨우 시야에 적응 끝내고, 좀 멀쩡히 돌아다니는 거 같으니까 그제야 멈추더라고요.


  고마웠어요. 덕분에 학교를 계속 다닌 셈이니까요. 챙겨주는 사람이 있긴 했는데 드물었고, 뒤에서 헛소문 만드는 애, 왜 너 같은 게 이 학교에 있냐는 선생님진짜 그이가 아니었으면 펑펑 울면서 방에서 안 나왔을 거예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갑자기 고백을 하더라고요. 입학식 날에요. 너무 놀라서, 그 날은 거의 도망치듯 했던 기억이 나요. 많이 의지가 됐었지만, 그래도 많이 힘들었거든요. 의지가 됐다는 것도 문제였고요. 동정하나 싶은 느낌? 중학교 내내 자꾸 뒷얘기가 돌고, 부모님은 전학 보내라는 항의를 받고, 선생님들은 눈도 안 보이는 애가 면학 분위기 해친다고 그러고. 그걸 몇 년을 했으니 기분이 멀쩡하질 않았죠. 그런데 챙겨주던 애가 갑자기 고백을 한다? 그것도 여자애가? 원래 그런 쪽인데, 챙겨주다 보니 만만해 보이는 나한테 고백을 한 건가 싶기도 했었죠.


  지금은 보시다시피 서로의 아내가 되고, 별 볼 일 없는 반지나마 교환했지만그때 고백을 받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어요. 동성인 것도 그랬고, 나는 얘를 좋아하나 사랑하나 하는 거. 동정하거나 갖고 노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 그런 것 때문에 되게 어지러웠고, 한동안 서먹했죠. 그 덕분에 이렇게 사귀었지만요. 떨어져 있어 보니까, 외롭고, 그립고, 미치도록 보고 싶었거든요. 그동안 너무 당연히 붙어있어서 몰랐던 거예요.


  그다음은 진짜 죽을 만큼 노력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평생 같이 있어 준 애였고, 눈이 멀어가는 동안에도 다 챙겨주려고 노력했던 고마운 사람이니까요. 보이지 않으니까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최대한 표현해 줄 수밖에 없었죠. 틈만 나면 끌어안고, 입 맞추고, 사랑한다고 해주고. 그럴 때마다 제 얼굴도 빨개졌겠지만, 저는 눈에 뵈는 게 없으니까요. 그냥 무작정 들이댔죠. 밤에는 반대긴 했는데흠흠


  덕분에 많이 웃었어요. 제 대신 울어줘서 그런가 봐요. 사귀고 나선 거의 안 울었는데, 엄청 크게 운 적이 한번 있어요. 얼마 전이죠. , 이 반지 때문에요. 갑자기 무슨 노래로 분위기를 잡더니, 따듯한 금속이 끼워지더라고요. 손에 얼마나 쥐고 있었는지 좀 축축하기도 했지만진짜로, 엄청 긴장을아뇨, 그때 생각하니 눈물이 또…… 조금, 잠시만 쉴게요.


……

………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진짜, 떨리는 손이랑 목소리로 결혼하자고 얘기하는데, 제 눈물이 왈칵 쏟아진 거예요. 고등학교, 대학교 몇 년으로 다 갚지도 못한 것 같은데. 저는 아직 일자리도 못 잡았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자기가 부족한 만큼 더 채우면 된다고안 받아줄 수가 없더라고요. 젖은 반지가 무슨 마음인지 아니까요.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요. 사귀자고 했을 때도 제가 엄청 힘들어한 걸 아는 앤데요.


  지금은 그냥 기뻐요. 한가족이 되었다는 게요. 그래서 돌아오면 꼭 안아주죠. 물건 하나하나 제자리에 놓아주는 게, 저 때문에 뼈 빠지게 일하는 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요. 그래서 꼭 간단한 요리라도 차려줘요. 따듯한 건 따듯하게, 차가운 건 차갑게 먹을 수 있게요.


  제 얘기는 여기까지예요. 앞으로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더 노력하려고요. 어차피 저는 파 뿌리가 되어도 모르겠지만. 어디에 쓰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제 얘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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